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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 여로보암읙 길로 간 아합의 결말
    말씀 2019. 7. 21. 21:35

    여로보암의 길로 간 아합의 결말  왕상 14:7-11, 21:17-24

     이스라엘 역대 왕들에 대한 일대기를 기록한 열왕기를 읽으면 부패한 왕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부패한 왕이 바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인데 성경은 그에 대해 기록하기를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주의 눈앞에서 악을 더욱 행하였다(왕상16:30)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왕상21:20)
    또 네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하고(왕상21:22)
    아합에 대한 성경말씀만 보더라도 그가 역대 왕들 중 가장 악한 왕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솔로몬 죽은 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한 나라를 나뉘게도 하시고 합치게도 하시고 또는 성을 지키시기도 하시고 성을 무너지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통치하던 북쪽은 다윗으로부터 찢어서 여로보암에게 주었다. 
    다른 왕들과는 달리 이 여로보암은 사후에도 그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 하는 말앞에는 여로보암의 길을 행하고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방금 위에서 보았듯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아합에게 있어서도 여로보암의 집같이 된다고 하였는데 도대체 이 여로보암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나이 늙어 이방 출신 왕비들이 믿던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행치 아니함으로 진노하시어서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어 솔로몬의 신복이었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북이스라엘을 맡기기로 하였다는 것을 선지자 아히야로 하여금 여로보암에게 전하게 하신다(왕상11:31).
     주께 순종하고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서 다윗과 같이 견고한 집을 세우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을 하셨다(왕상11:38). 이렇듯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가운데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 마음 속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다.
    그런 증거로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제 왕국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기리로다(왕상12:26),하고
    이스라엘에 제사 절기가 돌아오면 자기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기를 원할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백성들이 남유다의 르호보암에게로 마음이 돌아서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닥치면 불안하다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지만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지 그 자체를 가지고 불안해 하면서 낙심하면 안된다. 여로보암에게 생긴 불안은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워 주셨기에 불안해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런 불안으로 그가 만든 대책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가 불안을 해소하고자 만든 대책은 산당을 짓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절기를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왕상12:32)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워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처럼 제사를 드리자고 하고 제단에 분향하였다. 이것은 분명 우상숭배인데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선 것이 여로보암의 죄요 여로보암의 길인 것이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스스로 생각하고, 비슷하게 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하여 가는 길이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결정하고 혼자 좋아 하며 가는 길이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엉터리요 모래위에 성을 쌓아가는 모조품 인생길인 것이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피조물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오늘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배은망덕의 길인 것이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살 자리를 지나쳐서 죽을 자리를 찾아 가는 길인 것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어쩜 이리도 바보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가 생각한다. 여로보암은 바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철썩같이 약속하셨는데 왜 믿지 못하고 저렇게 행동했는지 혀가 끌끌 차지게 만든다.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악한 왕들의 수식어가 되어버린 것을 알았다면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그런데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의 대명사인 아합이 바로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늘 하나님앞에서 나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가는 길들이 여로보암의 길임을 명심하여야겠다.
     아합이 여로보암의 길로 가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 바알을 숭배했었고 아합도 아내의 우상숭배에 동참했던 것이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 이들 부부는 강력한 도전자를 만났다. 하나님은 가장 능력있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악한 아합왕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십계명의 제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왕부터 시작된 우상숭배로 인해 나라는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어 졌으며 이후 이스라엘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대신하였는데 갈수록 이스라엘 왕들은 우상숭배를 경쟁이라도 하듯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데 아합왕이야 말로 하나님앞에 가장 악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1. 아합과 엘리야의 대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냈다는 것은 이는 아합이 섬기는 풍요의 신 바알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있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지역에 3년 동안 이슬이나 비가 오지 않게 되는 가뭄을 선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엘리야가 가뭄을 선언한지 3년후에 주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셨다.
    그 때에 아합은 가뭄으로 인해 가축이 죽어가자 궁내대신 오바다와 더불어 물 근원을 찾아 헤매였을 때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라고 대들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주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을 좇았음이라"라고 말하면서 그런즉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라고 제의하였다.
    엘리야가 가뭄으로 물을 찾고 있던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선포한 것은 아합이 섬기는 바알이 비를 관장하여 소출을 많게 하는 풍요의 신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말한대로 3년동안 비를 멈추게 하여 바알이 거짓임을 드러냈으며 이제는 갈멜산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여 하나님이 참신이고 바알이 거짓됨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결전을 원했는가?
    갈멜산과 관련하여 성서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아세라 선지자들과 신앙대결을 벌린 결과 불로 응답받은 엘리야 선지자가 승리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역사적으로 본다면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알신앙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더욱 많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갈멜산을 결전의 장소로 제시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갈멜산이 어떤 곳인가 하는 것과 바알 신앙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갈멜산 자체는 높은 산 최고봉은 550m 정도에 불과하고 갈멜산은 하나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라 길이가 약 24km 정도나 되는 산맥 형태의 산이다. '갈멜'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란 뜻인데, 이는 그 지역이 얼마나 비옥한가를 잘 드러내 주는 말이다.
    땅의 비옥함이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갈멜산이 언급되고(사33:9)
    지형적 위치로 볼 때 갈멜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지역으로 알려진 평야로 둘러싸여 있는 중심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스블론 평야가 있고, 동쪽으로는 이즈르엘 평야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지중해 해변의 샤론 평야가 자리잡고 있으나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려 연평균 강우량이 800mm나 된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 의하여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자연적 조건이 좋아 예로부터 울창하게 우거진 아름다운 숲으로 유명하였다. 오늘날의 하이파 근처에 위치한 갈멜산 기슭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의 위협을 피해 숨어 지냈던 곳이라고 전해오는 동굴이 있다. 구약시대 당시 세계의 두 강대 세력이었던 바벨론과 이집트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국제도로였던 '해안길'은 갈멜산을 통과하는 대로였다는 것은 갈멜산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안길과 갈멜산이 마주치는 이즈르엘 평야쪽의 산기슭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던 므깃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바알 신앙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남신인 바알은 인간 생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땅의 비옥함과 풍요 곧 다산의 신으로 숭배되었으며 아세라는 바알의 여신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삿3:7). (삿 2:11-13) 11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주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주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 곧 그들이 주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아스다롯이 아세라이다.  남신은 바알이고 여신은 아세라로 다른말로는 태양신과 달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 우상이다. 과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섬겼던 바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신앙은 이스라엘의 여러 산당에서 성행하였으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러한 바알 신앙에 끊임없는 유혹을 받았다. 다산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바알 신앙에 비추어 볼 때 갈멜산이 보여주는 비옥함이나 풍요로움이 넘치는 점에서 갈멜산은 바알을 숭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엘리야 시대에 이세벨이 갈멜산을 바알신앙의 중심지로 삼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1) 불로서 응답받는 엘리야
    이처럼 갈멜산이 바알신앙의 중심지였던 것을 잘 알면서도 엘리야가 바알과의 신들의 대결장소로서 갈멜산을 선택한 것은 엘리야 자신의 신앙적 결단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 것으로서 엘리야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 850명 선지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불리한 상황들이었지만, 엘리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으로 바알 선지자들과 신앙대결을 벌린 셈이다.
    대결 방법은 나무로 쌓은 제단위에 제물(송아지)을 올려 놓고 불로서 태워버리는 것인데 이는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이 임하셔서 불로 제물을 살라 버리는 것이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온종일 기도하였지만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는데 엘리야의 제단에는 "하늘에서 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물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8)로 나타나 승패는 엘리야의 완승으로 끝났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불로 응답하심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주심으로서 아합과 엘리야의 대결 중에 가장 정점을 이루는 장면인 불로서 제물을 태워버리는 것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은 바알이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선전하였던 바알 추종자들의 허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역전 드라마와 같은 통쾌한 승리였다. 이 대결을 지켜보던 모든 백성들이 엎드려 말하기를 "주는 참 하나님 이시로다"를 거듭하였으며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한 사람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아가지고 기손강변으로 내려가 거기서 처단하였던 것이 갈멜산의 불의 응답이었다.

    바알과 대결에서 이긴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비를 불러 오기 위해 기도하였다. 아무리 불로서 응답하였더라도 만약 비가 오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엘리야는 비가 오기 위해 기도하였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약 5:17-18)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계속하여 일곱 번 기도하였더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 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과연 주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삼년 반만에 비를 오게 하는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었다.
    엘리야는 갈멜산 대결에서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싸움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갈멜산에서 제단을 쌓고,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400명, 총 850명과 맞서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어 제물을 다 태우는 능력을 과시하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준 극적인 승리와 환희가 24시간을 채 지속하기도 전에 엘리야에게 믿음의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 체포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잡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허풍을 떠는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세벨의 이 선전포고가 얼마나 떨리는 일이고 무서운 일이었는지 방금 놀라운 기적을 행한 엘리야까지 간담이 서늘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엘리야는 급히 일어나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고, 그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습니다.

    (2) 아합 왕가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
      그곳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임금이 되게 하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를 새 이스라엘 임금,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를 예언자로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이후 엘리야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 그를 후계자로 세웠다. 그 뒤 아합은 이스르엘의 사마리아 궁 옆에 있는 나봇이 가지고 있던 포도밭을 소유하고자 했다. 아합은 나봇에게 더 좋은 포도밭을 주던지 아니면 그 포도밭을 사려 했으나 나봇은 이 밭은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땅이므로 팔지 않으려고 하니 아합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이세벨은 그를 조롱했다.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그녀는 모략을 꾸몄다. 불량배 두 명을 시켜 나봇이 신성모독을 범하고 왕에 대한 반역을 꾀했다고 모함한 것이다. 결국 나봇은 돌에 맞아 죽었고 아합은 그의 땅을 차지했다. 아합이 새로 얻은 땅을 살펴보러 갔을 때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나 앞으로 일어날 아합의 가족이 어떻게 파멸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열왕기상 21). 엘리야는 닥쳐올 파멸을 상세히 예언했다. 아합의 집이 여로보암의 집같이 된다고 하였다. 개들이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합은 엘리야의 태도에 겁을 먹고 잘못을 뉘우쳤다하지만 회개는 잠시뿐이었다. 엘리야의 예언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2. 아합왕가의 심판
    이제부터 엘리야가 예언한 아합집의 결말을 하나씩 살펴보자.
    아합은 오므리의 아들로 오므리가 죽자 왕위에 올라 그 이전 어떤 왕보다도 악한 짓을 많이 저질러 여로보암 1세의 죄를 따라 걷는 것도 모자랐는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두고 사마리아의 바알 신전에 바알을 위한 제단을 쌓았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그보다 더한 짓을 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더욱 돋우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아합은 자신을 팔아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한자가 아무도 없었는데 이는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를 부추겼다고 하였다(왕상21:25). 아합은 22년을 재위하는 동안 내내 아람과 싸웠다.
     
    (1) 아합의 죽음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3년간 전쟁이 없었으나 3년째가 되는 해 유다 왕국의 여호사밧이 방문하자 아합은 유다 왕국과 힘을 합쳐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 했다. 아합은 예언자들을 불러 전투에서 이길지 물어보게 하였다. 다른 예언자들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듣기좋게 말하자, 아합은 미가야 예언을 들으려 하였다.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전하는 예언자인데 처음에 미가야는 아합에게 가서 싸우라고 말했다. 그 말에서 뭔가 빈정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아합은 미가야에게 진심을 말하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미가야는 아합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화가 난 아합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겨우 연명할 정도의 빵과 물만 조금씩 주었다. 이후에 아합은 여호사밧과 함께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과 벌어진 전투에서 아합은 왕복을 벗고 변장을 한후 전쟁에 나갔다. 적들은 아합왕을 찾고자 했으나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아합이 맞아 죽게 되었다. 아람병사는 우연히 쌌을 지라도 미가야선지자가 한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의 시신을 실은 전차가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사마리아연못에서 그 전차와 그의 갑옷을 씼으매 개가 그의 피를 핥아먹었다. 나봇의 피를 핥은 개들이 아합의 피도 핥아 먹으므로 엘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으로 통치하게 되었는데 아람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2) 아합왕가의 해결자 예후 
    아람왕 하사엘과 북왕국 이스라엘왕 요람(여호람) 간에 길르앗 라못에서 전쟁이 있었는데 요람이 부상당해 사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길르앗 라못에는 군대장관 예후가 이스라엘 군사를 통솔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생도 한사람을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했습니다. 생도는 엘리사의 명대로 허리를 동이고 기름병을 가지고 길르앗라못으로 가서 예후를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지체하지 않고 도망하여 왔습니다(왕하9:1-3).
     엘리사가 보낸 그 소년이 예후에게 전한 말은
    (왕하 9:6-10) 주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주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곧 문을 열고 도망했다.
    주께서 오므리 왕조를 종식시키는 반역은 상례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반역은 반역을 낳으므로 한 공동체를 항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했다. 예후는 군장관으로서 오모리 왕조를 종식시키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혁명을 하도록 택함받은 자였다.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는 신복들에게 기름부음 사실을 전했고, 심복들은 예후를 왕으로 칭송하며 반역을 모의했다(왕하9:11-13).

    (3) 요람(여호람)의 죽음 
    북이스라엘왕 요람(여호람)이 아람왕 하사엘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길르앗라못을 지키다가 요람왕이 아람군대에 의해 상처를 입을 치료를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왔다. 길르앗라못에서 북이스라엘군을 지휘하던 군대장관 예후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신복들에게 왕으로 추대받았다. 예후는 누구도 이스르엘로 먼저 가지 못하게 한 다음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행했다. 이스르엘 망대에 있던 파숫군이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했을 때 요람왕은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알아보게 했으나 그 사람이 예후를 따르고 돌아오지 않았다. 요람왕이 다시 한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도 돌아오지 않았다. 파숫군이 그 무리가 예후의 무리인 것 같다고 보고하자 요람왕은 직접 병거를 타고 나섰다. 요람왕은 자신을 병문안하기 위해서 온 유다왕 아하시야와 함께 갔다.
    아하시야는 요람의 여동생 아달랴와 정략 결혼한 여호람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는 요람의 조카입니다. 요람은 병문하러 온 아하시야와 함께 예후를 맞으러 갔다. 요람이 예후를 만난 곳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였습니다. 요람이 예후에게 평안을 묻자 예후는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너찌 평안이 있으랴고 대답했다. 요람은 예후의 반란임을 눈치채고 아하시야에게 반란이라고 말하면서 도망했습니다. 예후가 도망하는 요람을 향해 활을 쏘니 화살이 요람의 염통을 꿰뚫고 병거에서 엎드러졌다. 예후가 신하 빗갈에게 명하여 요람의 시체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게 하니 예후가 그렇게 한 것은 요람의 아버지 아합이 자기 정원을 넓히기 위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사건을 기억하고 아합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25-26).

    1) 요람의 어리석음 :
     요람은 예후의 반역에 대한 보고를 들었음에도 경계하지 않고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지성을 닫았다고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리석다. 왕이 반역한 신하한테 문안하는 왕은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본문에서 아합의 아들 요람이 죽게 되고 나봇의 포도원에 시체가 버림받은 것은 엘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합 때에 즉시 심판하지 않고 아들 요람 때에 이루어진 것은 아합이 엘리야의 예언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왕상21:27-29). 요람은 아버지 죄 값을 대신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죄를 지었으므로 자기 죄값을 담당한 것입니다. 결국 아합에게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4) 아하시야의 죽음 
    북이스라엘왕 아합의 아내는 시돈왕의 딸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의 자녀는 요람(여호람)과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남유다왕 여호람 아내였다. 여호람의 아들은 아하시야였습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왕 요람과 남유다왕 아하시야는 외삼촌과 조카 사이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왕 요람이 길르앗라못에서 아람왕 하사엘과 전투중 부상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을 때 유다왕 아하시야는 외삼촌을 병문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길르앗라못에서 군대를 통솔하던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었습니다. 예후가 이스르엘로 왔을 때 요람이 예후를 맞으러 갔는데 그 때 아하시야도 동행했다. 예후가 요람을 활로 쏘아 죽이자 유다 왕 아하시야가 므깃도까지 도망했지만 거기에서 죽임을 당했다(왕하9:27). 
    남유다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과 화친하다가 북이스라엘이 위험에 처할 때 같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시돈의 이세벨로 인하여 더욱 우상을 많이 섬겼고 유다도 그들과 화친하므로 여호람은 결혼까지 하고 아하시야는 병문안 갔다가 같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악한 동무들은 행실을 더럽힐 뿐 아니라 같이 망하는 길로 가게 합니다 (고전15:33).

    (5) 이세벨의 죽음
     아합왕이 죽은 후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른 아들 요람이 왕이 되었으나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어서 섭정을 했습니다. 이세벨을 향한 예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합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세벨은 오므리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예후의 손에 의해 죽게 됩니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이세벨을 잡으러 옵니다. 예후가 온 것을 본 이세벨은 화장을 하는데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죽을 준비를 합니다. 그녀는 예후가 왕궁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창문으로 보고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고 묻습니다. 예전에 반란을 일으키고 단 7일 동안만 왕위에 있었던 시므리에 빗대 예후를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목소리를 들은 예후는 이세벨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세벨이 있는 창을 올려보며 자신의 편에 설 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32). ‘누구냐’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에 설 것을 독촉합니다. 그러자 내시 두세 사람이 예후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예후는 그들에게 이세벨을 밑으로 던지라고 명령합니다(33절). 그러자 이세벨 곁에 서 있던 내시들은 예후의 명령에 따라 이세벨을 밑으로 던져버립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며 수종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예후를 주인으로 여기고, 그의 명령을 따라 자신을 집어던지는 것입니다. 아마 이세벨의 입장에선 예후의 반란보다 자신 곁에서 입의 혀처럼 굴던 내시들의 배신이 더 뼈아팠을 것입니다.

    이세벨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봇이 포도원을 아합왕에게 팔려고 하지 않았을 때 거짓증언을 내세워 나봇을 돌에 맞아 죽게 하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일로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19)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한 이세벨에 대해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23)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이세벨의 최후는  왕하 9:30-37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럼 이세벨의 내시들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진 이세벨은 피가 담과 말에까지 튀며, 예후가 탄 말이 그 시체를 밟았습니다. 이세벨은 누구보다도 매우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렇게 이세벨을 죽인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왕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깁니다. 그는 일부러 이세벨을 장사 지내는 것을 지연시키며, 그녀의 비참한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잔치를 하던 중, 예후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이세벨을 장사 지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예후가 먹고 마시는 사이에 이세벨의 시신은 개들에 의해 훼손되고 유실되었습니다. 두개골과 수족 외에는 개들이 먹어 버렸으므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로서 주께서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악인의 최후는 비참합니다. 이세벨은 개의 먹이가 되었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은 30량에 판 가룟 유다도 자살했습니다. 성경은 (시편37:1-2)“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채소는 비가 오면 잘 자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만 있어도 다 시들어 버립니다.“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37:10). 악인이 잠시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들은 멸망하고 주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시37:20). 예후가 이세벨을 장사하라고 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장사하기 위해 그 시체를 찾았으나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 지라고 했는데(왕상21:23), 그 예언대로 개들이 시체를 먹고 두개골과 발과 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세벨 이라는 이름이 정결하다는 뜻이지만 그의 행위는 물론 그의 시체도 거름같이 되어 다시는 이세벨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세벨은 예후라는 적이 다가와 자신의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창에서 바라보고는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민 후' '시므리여 평안햐" 고 비아냥을 댔다는 것은 마치 영화의 한장면 같다. 대단한 '악녀'.
    무서움이 없는 겁없는 희대의 여걸 뭐 이렇게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기개가 대단하였다. 한편으로는 멋져 보이기도 하고 두려움 없고 겁없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는 것같이 기가 세다는 것을 부러움을 주었던 그 주인공이 처참한 죽음에서 금방 알수 있듯이 악인은 잠시후에는 온데 간데 없이 소멸된다는 말씀이 이렇게 정확하지 않은가? 
    그러한 처참한 죽음을 떠나서라도 역사에 기록되고 하나님의 가장 미워 하시는 자로 기록됨 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8년 경- 100년 경)에 의하면 엣바알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을 겸임한자로 그의 딸 이세벨을 통해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보급시킴으로 주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말살하려는 계략을 품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세벨은 시집올 때 바알 신상과 아세라 목상을 가지고 와서 아합으로 하여금 경배케 했으며 온 국민들에게까지 신봉을 강요했다.
     
    계시록에서 주님이 두아디라교회에 대해 이세벨교훈을 용납한다고 책망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으면 질병과 환난에 던진다고 했습니다(계2:18-23). 이세벨 교훈은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과 같은 것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고 그 제물을 먹게 하고 신전제의로 행음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조장했습니다. 그 죄로 그 왕가가 몰락하고 그는 비참하게 죽어 개들에게 먹힘을 당했습니다. 소아시아에도 그와 같은 교훈이 있었는데 두아디라 교회가 그것을 용납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겠고 회개할 기회가 왔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아합의 왕가와 이세벨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왕권을 영구히 세워 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경고한대로 아합과 아하시야와 요람 그리고 이세벨을 죽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멸시하며 자신들을 신뢰하는 그들은 죽임 당하고 말았습니다. 

     (6) 아합의 아들 70명이 죽음
    예후는 사마리아에 아합의 70여명의 아들의 선생들과 귀족들에게 편지하기를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면 그를 왕으로 삼겠다고 공지했다(왕하10:1-3). 성의 귀족들과 교사들은 공포에 쌓였고 예후에게 처결을 구했다. 예후는 그들에게 왕자들의 70명의 머리를 갖고 이스르엘로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그들이 왕자 70명을 죽이고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 보냈다(7).
    이미 아합의 남자들을 전멸시키겠다는 엘리야의 예언은 이렇게 예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예후의 마지막은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전멸시켰다. 반면 하나 남은 아합의 딸 아달랴는 다윗의 씨를 전멸시키려고 했으나 한 씨를 보존하여 다윗 왕국은 유지될 수 있었지만, 70명의 왕자 중 한 사람도 남지 못한 오므리 왕조는 몰락하고 말았다.

     북이스라엘 왕조는 여로보암, 오므리 왕조, 예후 왕조로 진행한다. 여로보암에서 호세아까지 19명의 왕이 있었다. 왕조는 오모리왕가 예후왕가 2 왕가가 있었고, 나머지는 왕가를 구축하지 못했다. 북이스라엘 왕조는 BC 931-BC 722, 약 200년을 유지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에서 19명의 왕이 있었지만 왕조의 기간은 10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아달랴 통치 6년은 제외했다). 북이스라엘은 주께서 여로보암을 세우셨고, 엘리사로 예후를 세웠지만 주의 규례로 왕국을 세우지 않았다. 예후는 오므리 왕조를 종식시킬 임무를 부여 받았고, 여로보암의 죄를 단절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악행과 하나님의 공의 실행은 전혀 부합되지 않는 구도이므로 이러한 역행관계일 때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아합은 세상적인 왕권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파괴한 대표적인 왕이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법을 인간의 방식으로 조작한 왕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이루도록 해야 하고, 세상속에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해서 하나님의 질서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바알선지자들의 죽음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아합왕가를 제거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에서 우상을 믿는 백성들의 믿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아합왕가와 백성들에게 수년동안 바알신앙을 뿌리내리게 한 자들이 바로 바알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다. 예후는 이들까지 제거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그래서 예후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바알선지자들을 척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바알선지자들을 섞어내야 한다. 예후는 뭇 백성을 모아 자신이 아합보다 더 열심으로 바알을 섬기겠다고 공포했다(왕하10:18). 그말을 들었을 때 백성들은 기뻐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들을 사마리아로 초청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 신당으로 모였다. 예후는 바알 선지자에게 예복을 나누어주며, 주를 섬기는 사람은 그 안에 있지 않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80명의 군사를 모든 문을 지키며 나오지 못하도록 명령했다(왕하10:24). 바알 산당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명령했다. 예후는 바알 산당에 모인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바알의 목상과 산당을 헐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바알 선지자를 멸절했다(28). 우리주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3. 예후의 혁명과 염려스러운 행동
     예후는 모든 무리들에게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의 집에 관하여 주신 주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왕하10:10). 엘리야가 아합 가문에 대한 예언은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왕의 귀와 모든 백성이 들을 수 있게 선포한 것이다.
     왕을 반역하는 발언을 했지만 엘리야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은 남아 있었다. 그 엘리야의 예언이 탐욕과 속임수가 풍부한 예후의 손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예후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일들이 실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예후는 벧엘과 단의 산당에 있는 금송아지들을 따르는 죄들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다. 예후는 주하나님을 믿는 신앙 회복에 있었는데, 여로보암의 범죄는 개혁하지 못했다(왕하10:29). 주께 말씀을 들었음에도 예후의 행동이 여로보암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인간의 교만한 상태를 보여준다. 이말은 예후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후는 주의 말씀을 자기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후는 신앙 개혁을 첫 목표로 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튼튼히 하기 위해 정치적 적들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왕하10장)예후가 죽고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고, 예후는 28년을 통치(왕하10:36)하며 새로운 왕조를 시작한다.

     주께서는 예후에게 정직하며 마음에 합하게 행동하고, 아합을 심판했기 때문에 사대의 왕조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후는 전심으로 주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치는 막대기로 하사엘이 침략했다. 이스라엘의 요단 동쪽 지역이 많은 위협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용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아합( B.C.874-853)왕가의 죄악을 징벌할 자로 예후를 택하신 것에도 잘 나타난다. 아람 왕 하사엘도 마찬가지다.


    엘리야가 죽음앞에서 두려워하면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려오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신다.
    "주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왕상 19:15-17)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대언자를 통해 한나라의 운명을 말씀하셨고 그 사역에 예후가 이스라엘나라에 널리 만연되었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는데 택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예후는 B.C. 841년경 제 10대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B.C.852-841   아합왕의 둘째아들)을 배반한 후 여호람왕과 유다의 아하시야( B.C.853-852) 왕을 죽이고, 이세벨(아합 왕의 비)을 죽이고 아합왕의 70명의 아들들을 죽임으로서 우상숭배로 사악한 아합가를 파멸시켰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주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때에 주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왕하 10:31-32)
              
    이스라엘의 역사를 진단하면서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우리들이 감히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과 그크신 사랑을 생각해본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그분에게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2-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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