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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예표
    말씀 2019. 8. 4. 21:20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예표  11:29-32 2019.8.4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용감하게 현직 판사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김태규(52·사법연수원 28)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자신의 SNS'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글을 게재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이 사회 분쟁을 해결하는 중요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세상 분쟁은 당사자들의 협상, 정치적 타협, 외교적 협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된다"고 말했는데 대법원은 지난해 1030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강제징용에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한 판결은 "대법원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했다는 생각"이라며 "원고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판결이 되는 법이 됐다"고 했다. 이 강제징용판결은 "2012년 최초 3심 판결로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 모른다. 또 김 부장판사는 "자신이라면 아마 최초 1·2심 판결(원고 패소)처럼 판단했을 것"이라며 대부분 판사들도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법원 판결에 대해 소멸시효 문제를 지적했다. 민법 제766(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해 소멸된다'고 규정한 것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이 사건은 1945년께로 돌아가니 그 시점부터 따지면 소송이 최초 제기된 2005년까지 봐도 약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봐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언급했다. 김 부장판사는 소멸시효의 벽을 어떻게 넘었을까 하는 것"이라며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자 소멸시효 제도를 형해화'(형태만 남기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게 하는 것')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소멸시효를 놓친 사건을 대법원이 소멸시효의 원칙을 무시한채 승소판결한 것이 오늘  일본이 한국을 무역에서 백색국가로 지정하게 했다고 봐야한다.

    2016년 박근혜정부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일본정부가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는 예산으로 10억엔을 내고 한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 한을 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재단을 설립했으면 좋겠다.”, “합의가 완전히 마음에 차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나름대로 고생했다.”그간의 고통과 모진 세월을 생각하면 피해자 분들의 입장에서는 지난 한·일간 합의가 완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합의를 평가하고 재단 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혀 주시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치유화해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마저도 문재인정부가 이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하면서 오늘의 난국을 일으킨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정부에서 출연한 10억엔 우리돈 약 1000억원으로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얼마씩 지급하고 남은 금액으로 위안부기념사업을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후세대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재단 설립의 취지였는데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어럽게 설립된 화해치유대단을 적폐청산대상이라 생각하듯이 해체하였다. 일본정부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와같은 징용문제 배상이나 위안부합의 화해 치유재단 해체가 결국 일본정부로 하여금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켰다고 봐야 한다. 우리국민들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오늘의 난국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반일과 불매운동으로 애국을 한다고 하지만 정부대 정부 협약을 누가 먼저 어겼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 60년이 지났거나 40년이 지난 사건을 국가대법원이 소멸시효의 원칙을 무시하고  승소판결 하여 이 나라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과연 국가를 위한  일인가? 기도할수록 그것은 아니라고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의 이 난국을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를 가져온 문재인 정부가 소멸시효 원칙을 무시한채 결정한 강재징용배상승소판결 무효화와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을 회복시키는 것이  한일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 이 난국을 위해 기도하자.

    금식하면 이슬람교인들이 집단적으로 금식하는 것을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하는데 해가 뜨기전부터 해가질 때까지 금식 한다. 금식 동안은 물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저녁 먹고나서 밤중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자고 종일 금식 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점심만 안 먹는 금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은 음력으로 되어 있어서 매년 10일 일찍 하게 되므로 여름에도 하고 겨울에도 하게 되는데 금식 기간은 1달 걸린다.

    이런 금식을 어느 신이 받겠는가? 우리하나님은 당신이 금식에 알려준 대로 우리가 금식을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또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성경에는 금식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58:5-9) 5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주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그것은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앞에서 주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 말씀은 자칭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기도를 하며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탄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금식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원통한자, 가난한 자, 그리고 혈육을 돌보는 것입니다. 본문은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착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헛된 금식, 참 된 금식, 금식의 효과 등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나를 찾고 내 길 알기를 기뻐하는 듯 하니 그들이 정말 올바르게 행동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지키는 민족 같구나. 그들은 무엇이 올바른 가를 내게 묻고 나에게 가까이 나오는 것을 기뻐하는 듯 보인다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 모순된 이스라엘을 향한 조롱이 담긴 역설적인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였을 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금식하는 날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즐거워하는 일들을 하였고, 그들이 부리는 일꾼들을 혹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종이나 일꾼들에게 일을 강요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곧 종업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엄포를 놓으며 교회를 가는 업주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내가 받고 싶은 금식이며 통회하고 괴로워하는 날이란 말이냐? 그저 갈대처럼 고개만 숙이기만 하고 굵은 베 옷과 재를 펼쳐 놓는 것뿐이 아니냐? 이것이 너희가 금식이라고 하고 너희가 주께서 기꺼이 받으실 만한 금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냐?’라는 말입니다.

    진솔한 회개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금식을 어찌 하나님이 받을 수 있겠느냐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갖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주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라는 말은 어두움에서 광명을 본다는 뜻이고,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라는 말은 질병이 낫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공의가 행한다는 것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는다는 뜻이고, ‘주의 영광은 하나님과의 단절로부터의 재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말로 마치 물 댄 동산 같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금식을 통한 결과를 나타나는 말들입니다. 금식의 결과를 더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흉악의 결박과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하는 자를 자유케한다고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의 조건은 크게 약 3개 정도입니다. ,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필요한 자에게 거저주며, 일부러 못 본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금식을 한다면 복을 주시겠다는 것은 무려 10개 이상입니다. 이 수지 맞는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말씀은 우리가 한번 도전해 볼 말씀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성경 말씀을 감히 우리가 시험해 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의 효과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금식기도를 통해 멸망에서 구원받게 된 한 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도시는 선지자 요나가 전도하여 구원받았던 니느웨성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자들이 표적을 보여잘라고 하였을 때 요나의 표적이외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중 몇 사람이 우리에게 표적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시다.

     

    오늘의 세대를 향하여 예수님은 악한 세대라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웬만한 사건들은 이제는 더 이상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재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일도 해마다 몇건씩 발생합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도 부부간의 부정한 사건을 숨기기 위해 일어나는 살인 사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성폭력 강간 강도 등 숱한 사건들은 이세대가 얼마나 악한 세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하셨지만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예수님 당시보다 수십배 수백배나 더 악하고 음란한 시대라고 해도 모두가 동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악을 행하면 그 댓가가 무서운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우리 사회속에 돌아와 결국은 인간이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악한시대일수록 빈부의 차이는 더 급격합니다. 지금 이시간도 인간의 욕망으로 인하여 너무나 많이 먹어 배터져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1달라가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사는 인간의 욕망은 아무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악한 세대라는 말은 불의와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의 삶을 말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없으므로 인간은 점점 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삶은 구제와 봉사를 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인간의 양심이 흐려지지 않는 법입니다. 성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한 실천으로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1) 표적을 구하는 음란한 세대

    예수님은 음란하고 악한시대가 기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요나의 표적이 무엇인가 요나서로 갑시다.

    요나서는 BC793-753년에 살았던 선지자 요나에 의해 기록되어진 것으로 주제는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사건으로 인하여 니느웨 성읍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 얻은 사건을 요나자신의 개인체험을 통해 기록된 책이 요나서입니다. 1장부터 4장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으며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어 가는 중에 기적같은 일들이 적절히 가미되어 있는 친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요나서의 시작은 하나님의 명령이 요나에게 임합니다로 시작됩니다.

    (1:1) 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음이니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은 코밑 까지 다가오는데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낼까 하시다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보내시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역사적인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니느웨성으로 가서 외치라는 것인데 니느웨성은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티그리스강 상류 동쪽에 있는 곳으로 오늘날 이라크 북동쪽 지역이다. 이스라엘과 앗수르와의 관계는 쉽게말해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관계보다 더 악한 관계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가 1910년 나라를 빼앗겼다가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면서 우리의 강산과 재산과 우리 삶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았는가요? 그 결과가 지금 한일간의 무역갈등까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과 스포츠든 뭐든 경쟁한다 하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정신으로 대하다 보니 우리가 더 정신을 집중하여 이기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합니다. 니느웨성을 수도로 갖고 있는 앗수로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자마자 민족말살 정책을 펼쳤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에스겔 등도 이때 끌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이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백성들은 앗수르에 대한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은 약하지만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멸의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앗수르가 하나님의 진노의 첫 번째 대상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러한 생각은 세계만민에 대한 구원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민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편협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배타적 선민의식을 가진 요나로 하여금 북이스라엘백성들이 가장 적대의식을 갖고 있는 앗스르제국의 수도 니느웨 성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여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구원얻도록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 앗수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철전지 원수지간이었다. 하나님은 요나를 그 악한 니느웨성에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1)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요나는 그 소명을 거역하여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피신하기 위해 욥바항구에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길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무사히 잘 갈 수 있는가?

    (1:3) 요나가 주의 앞을 떠나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일어나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모든 일이 순풍에 돗 달고 잘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 명을 거역하여 사역지와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피신하기 위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요나의 마음이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신데 백성이 왕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나의 일탈된 행동을 보신 하나님께선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왔을 때 갑자기 큰 풍랑을 준비하십니다.

    (1:4) 주께서 큰 바람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가운데 강략한 폭풍이 일어나 그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된지라.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준비된 풍랑은 순간 집채만한 파도가 넘실대면서 배를 부딪치면서 배가 깨지기 직전입니다

    배 젓는 사공들은 배가 파도에 깨질 것 같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와 차기 시작하고 배는 가라앉을 정도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들을 바다에 던지고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기도 하지만 파도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여 곧 배를 삼킬 것 같은 무서운 상황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 풍랑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요나를 깨우면서 말합니다. 오 잠자는 자여 너도 네 하나님을 부르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면 우리가 망하지 아니하리라.

    각자가 자기들 신에게 기도하지만 풍랑은 여전합니다. 이제 그들은 이야기 하기를 풍랑의 원인이 뉘 때문인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1:7) 그들이 말하기를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왔나 알아보자 하고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제비에 뽑히게 됩니다.

    요나는 더 이상 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였지만 큰 풍랑 때문에 제비를 뽑았는데 하필이면 요나가 뽑히니 요나가 자신을 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말합니다.

    (1:9) 나는 히브리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주 곧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이말은 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요나의 신앙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1:10) 자기가 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였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배에 탄 무리가 심히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을 피하여 도망하던 요나를 책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요나가 도피한 것은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원받을 자이며 모든 열방은 당연히 심판받아 멸망해야 한다는 배타적인 민족감정 때문에 니느웨 성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1:11) 요나가 자신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원인을 말하였지만 바다는 점점 흉흉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네게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잔잔하겠느냐?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요나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들이 구원받는 것이 싫어서 니느웨이 가는 것을 거역하였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뱃 사람들이 참 착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요나의 말대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어떻게든지 힘닿는 데로 노를 저어 육지로 돌리고자 하였지만 .

    (1:13) 바다가 점점 사나워지므로 능히 육지까지 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2)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간 요나

    (1:16) 그들은 결국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었더니 파도가 그쳤다는것 아닙니까? 그렇게 배를 삼킬 것 같은 파도가 기적처럼 잠잠해지니 선원들과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주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였고 주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일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가 바다에 던지자마자 요나는 큰 물고기에 삼켜져서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하여 큰 물고기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는 것이 이해가 안갔는데 어느 해양학자가 바다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 사진은 배가 말을 싣고 가다 말이 바다에 빠졌는데 고래같은 큰 물고기가 그 말을 통째로 삼키는 것을 보고서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였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물고기 뱃속에 삼일 있으면서 요나가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는데 그 회개기도한 내용이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이 마치 지옥 같은 곳이라고 하여(2:2) 내가 지옥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라고 말합니다. 지옥같은 고래 뱃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그의 기도가 주께 상달되었고 그가 고백한 대로 구원은 주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말하였는데 삼일 후에 주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니라(2:10).

     

    (2) 요나의 전도

    3일 동안 뱃속에 있었던 것은 요나가 죽음의 깊은 지옥까지 내려 갔다 가 삼일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살아난 것이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심과 무덤에서 부활을 예표하시는 것이라고 마태복음12장과 누가복음11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물고기 뱃속에서 육지에 토함을 받아 생명을 얻은 요나에게

    (3:1) 주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3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주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갔는데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어다닐 정도로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외쳐 이르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이가 무너지리라고 전하였더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3) 회개하는 니느웨성

    (3:5)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앞에서 금식을 하는데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6 이일이 왕에게 들리니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으니라.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는다는 것은 가장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7 왕과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선포하는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것이요 물도 입에 대지 말것이며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8 니느웨 성의 왕이 선포합니다.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악한 폭력에서 떠날지니라고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앞에서 눈물로 회개를 하였지만 성전체가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아니 가축까지도 금식을 선포한 회개는 없었습니다. 실로 전무후무한 금식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감히 하지 못한 회개기도를 가장 악하기로 소문난 니느웨성에서 했었다는 것은 가장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니느웨 성의 왕은 희망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3:9) 하나님께서 돌아서시고 뜻을 돌이키시사 자신의 맹렬한 분노에서 떠나심으로 우리가 멸망하지 아니할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라.

     

    (4) 구원받은 니느웨 성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한 성이 왕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 까지 아니 소나 양같은 가축까지 금식을 하였다는 것은 아마 인류역사상 이런 금식기도는 처음이었고 전무후무한 회개기도에 하나님도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10 하나님이 니느웨성 사람들의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지라 아멘.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전체의 회개운동으로 니느웨성이 구원받은 것은 요나가 전도를 잘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요나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3일 동안 다녀야 되는 지역을 겨우 하루 다녔고 외친 것도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무너지리라고 한 정도입니다. 전도 같지 않은 전도를 듣고도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하였고 가장 진솔한 회개를 하였고 절말로 전무후무한 회개를 하였기 때문에 니느웨성 사람들이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회개하면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1:4: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인애하시고 누구든지 죄용서 받기 원하면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국가적인 금식기도의 날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은 남북전쟁(1861-1865)이 중반으로 접어 들어 한창 치열했던 무렵인 1863430일 목요일을 국가적인 금식기도의 날로 정하자는 연설문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온 미국 국민이 자기의 죄와 허물을 온전히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나라만이 축복받을 수 있다는 숭고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황폐게 하는 이 남북전쟁의 참화는 하나님만이 끝낼 수 있다고 믿고서 우리 모두 금식 기도를 하자고 요청한 대국민 연설인 것입니다. 그 결과 노예해방을 둘러싼 남북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어메이징 그레이스 죤 뉴톤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죄를 짓고 노예로 팔려가 아프리카 집단 농장에서 일하던 죤 뉴톤이 그의 아버지의 친구였던 선장에 의해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그들이 탄 배가 캐나다 부근의 바다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더니 배가 곧 뒤집힐 듯이 흔들렸다. 식량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갔고 바닷물이 넘쳐 들어와 선원들이 사력을 다하여 물을 퍼냈다. 그들은 배에 요나와 같은 말썽꾸러기 뉴톤이 탔기 때문이라며 그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톤은 자기를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었는데도 감사하기는 커녕 늘 술에 만취되어 선원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려 곧잘 싸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강팍하고 완악한 그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자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가 통렬히 회개하며 눈물로 부르짖자 바다는 곧 잔잔해졌고 그 공포의 7일간 한사람의 희생자만 생겼을 뿐 모두가 구원을 받았던 것이었다. 죽음을 극적으로 모면한 뉴톤은 자기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그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후에 목사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자신의 삶을 간증으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앞으로 인도하였고 그가 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라는 찬송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멸망받아야 할 니느웨성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을 기뻐하지 않고 불평한 사람이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이 구원받기 보다는 차라리 멸망하라고 대충 전하였는데 이 니느웨성 사람들이 전부 회개를 하였는데 그것도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열이 올랐던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두 번 들어갈가봐 전도흉내만 내고 간절함이 없이 전도했는데 성전체가 회개를 하였는데 이러한 회개역사야 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전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회개역사와 니느웨성 백성들의 구원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도록 하는 메시지가 전도입니다. 왜 전도를 해야하는지 전도받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26)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말씀한 것이 있어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너희가 보거니와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부르심을 받은 너희들의 출신성분과 사회적인 배경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 세상적으로 볼때 너희들 똑똑한 사람들 아니였잖아 능력있는 사람들 아니였잖아 가문좋은 사람들 아니였잖아 솔직히 말해서 돈도 별로 없었고 신분도 별볼일 없었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자들을 미련한 자들을 없는 자들을 택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지 않느냐?

    복음전도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전하는 것이 전도의 핵심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인데 구원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지혜롭게 전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 가서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만 하였는데 구원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확인만 했다. 요나서의 주제는 뭐니뭐니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애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를 돌이켜서 이방인의 성읍 니느웨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케 하시고 결국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신 사실은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계만민을 사랑하시며 그들 모두가 회개하고 구원받길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나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4:10-1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던 곧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한 자가 12만명이 넘고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전도가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이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지혜를 들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고 전도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곧 전도입니다.

     

    (1) 요나서의 교훈

    우리는 오늘 이 요나서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야 말로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온 백성이 금식함으로써 죄를 회개하였던 니느웨성 사람들이 바로 이같은 진리를 증거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면서 죄악된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죄악과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며 요나서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받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구약 선민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통치권은 모든 인간과 자연계의 전피조물까지 미치는 진실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2.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패하거나 변경되는 일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모든 시도를 좌절시키시고 니느웨백성 구원이라는 목표를 일관성있게 이루어 나가신 것은 이같은 사실에 대한 훌륭한 예증이다.

    3.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민족이나 혈통에 의해서 차별되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의 은총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4. 하나님의 은총은 실로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당신께 불순종한 요나를 용서하셨으며 수백년간 죄악을 일삼아 오던 니느웨성사람들이 회개하였을 때에도 즉시 용서하셨다. 지금도 어떠한 죄인이지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용서하여주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은 요나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분이십니다. 지금도 온 나라가 금식을 선포한다면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요나가 지옥이라고 말한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3일을 보내고 다시 살아나온 요나의 경험은 예수께서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장사되어 3일간 무덤속에 계시다가 부활하게 될 자신을 예표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3야를 지낸 사건을 통하여 구약 성경중 요나서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장 생생하게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온 것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10:37-38)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4:12)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의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표적을 주십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여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고향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분명히 의원아 너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내게 말하며 우리의 들은바 네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모든 일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행하라 하리라”(4:23)고 하셨습니다. 이들처럼 교만하면 표적을 행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이라는 아람나라 장군도 처음에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와 서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했습니다. 즉 나아만이 처음에는 네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니 나를 고쳐 보아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엘리사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을 때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4:27)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느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16:2-4)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이렇게 비판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표적을 구하기 직전에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는 표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고 말을 하게 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악평하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3) 시험하기 위해 표적을 구하지 말라

    사단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했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속해 있으면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하여 예수님을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26:68) 했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7:40) 했습니다.

    시편 7818~20절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했습니다.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수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고(6:7),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십니다(1:13).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에게는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5:9).

    (4)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진리이다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3일간 있다 부활된다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세대의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남방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그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31-32절을 보십시오.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먼저 예수님은 심판 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방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부터 와서 솔로몬을 방문하여 묻고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시바여왕은 영적인 소원으로 솔로몬을 방문했지만 예수님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있는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표적을 사단의 역사라 악평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남방여왕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 하셨습니다. 남방여왕뿐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도 일어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절박한 회개하고자 재에 앉으면서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성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요나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악평했습니다. 그러므로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의 말씀이 자기들 속에 없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벙어리가 말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를 바알세불의 역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 남방여왕과 니느웨성 사람들이 일어나 외치는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4. 폐허로 변한 니느웨성(2:10-3:7)

    (2:13) 만군의 주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를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으리라 하셨느니라.

    본 단락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이가 폐허가 되기까지 멸망하게 됨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앗수르는 근동 지역의 가장 강한 나라이자 가장 강한 침략자 였다. 그래서 근동의 모든 나라들은 앗수르를 두려워했다.

    앗수르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했고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끊임없이 주변의 나라를 괴롭혔다. 히스가야 시대에 앗수르의 군대 장관 랍사게는 남유다를 공격하면서

    (왕하 18:35) 앗수르 이웃여러나라들 모든 신들가운데서 누가 자기 나라를 내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주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라고 말했고, 앗수르 왕 산헤립도 이스라엘 주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하여 (대하 32:17) 그가 편지를 써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욕하고 그분을 비방하여 이르기를 다른 땅들의 민족들의 신들이 자기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내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리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이런 그들의 교만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잔혹한 압제로 인해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 폐허더미가 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만다. 선지자 나홈이 있기 약 150년 전에 니느웨는 선지자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서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으나, 이 나홈서에서는 그들이 회개했다는 기록이 전혀없는 것으로 볼 때 니느웨의 멸망은 전적으로 그들의 교만으로 인한 것임을 일 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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