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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 고향으로 돌아갈 때의 감사
    말씀 2019. 6. 30. 23:21

    고향으로 돌아갈 때의 감사 4:13-17 1:5-6

     

    이스라엘의 가나안땅에는 해마다 우기와 건기라는 두 계절이 공존한다. 우기는 10월 중순에서 시작하여 다음 해 4월 중순까지 이른비, 늦은비가 내리는 계절이고 4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이다. 어떤 해는 우기때인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서 가뭄으로 인해 기근이 들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에 해당되는 베들레헴은 우기에 비가 온다 하더라도 년 강수량이 300-400mm정도일 때가 허다하다보니 비가 잘 내리지 않으면 곧 바로 가뭄으로 인해 기근이 온다. 그러면 물이 있는 곳을 찾아서 이동하는데 대체적으로는 라일강을 중심으로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가하면 간혹 모압 지방으로 옮겨가는 이들도 있다. 모압지방은 사해바다 동쪽근처이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시작하여 요단강을 거쳐 사해바다로 들어온 물은 낮은 해저지역이기 때문에 더 이상 빠져나가기 못해서 따가운 햇살에 의해 수증기가 발생하게 되면 모압 지방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더라도 사해바다에서 이동한 수증기로 인해 농사짓는 데 어려움이 없는 지역이라서 모압지방으로도 가게 된다.

     

    1. 룻기의 역사적 배경

    룻기의 역사적인 배경은 사사들이 치리할 때라고 되어 있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사울 왕이 세워져 왕정정치가 이루어지기 전 약 350년 동안은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셨던 신정시대이었다. 이 사사시대에 유다지방 베들레헴에 에브라다 사람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유다 혈통이며 베들레헴에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힘입어 살아온 그에게는 나오미라는 아내와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네 식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누리며 잘 살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고 강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고 그 땅에 흉년을 보내셨다. 흉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를 겪어야 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26:20-21) 20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21 너희가 나를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진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시면 그들이 고통당하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깨닫고 회개하면 다시 그들에게 은혜를 내리셔서 회복시키시는 역사가 이 사사시대부터 반복적으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계속되다보니 나오미의 가족은 멀리 모압지방으로 갔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중 진노를 받게 했던 불신앙적 배은망덕이요, 하나님께 대한 대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모압 지방에가서 10년 동안 거주하는 동안에 나오미의 가정에는 좋은 일들도 있었고 좋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좋은 일은 두 아들을 결혼시키는 경사로운 일이다. 반면에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남편 엘리멜렉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설상가상으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오미에게는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10년 사는 동안에 좋은 일들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제는 여기서 아무런 소망도 갖지 못하게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때 고향 베들레헴에서 기쁜소식이 들려왔었는데 기근 때문에 떠났던 베들레헴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모든 것들이 풍족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오미에게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그런데 남편 잃고 자식 둘 잃고 이제 와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고향에서 떠나올 때 크게 성공할 것을 기대하고 여기 모압 땅으로 왔는데 이제는 남은 것이라곤 자신처럼 청상과부가 된 모압 여인인 두 며느리 밖에 없다. 남편이 없는 며느리들이 나를 따라가겠나? 다들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겠지. 그러면 나 혼자서 빈털터리가 되어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크게 성공해서 금의환향해야 되지 않나? 고향으로 돌아갈 땐 떳떳하고 당당하게 선물 보따리도 사들고 가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이웃들에게 보란 듯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성공은 커녕 거지꼴이 되어서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벼룩도 낮 짝이 있다고 하는데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거지꼴이 되었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내 이름이 나오미 아니던가? ‘나오미라는 이름은 희락, 즐거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희락도, 즐거움도 하나 없이 이제는 슬픔과 고통과 불행만이 남아 있지 않나? 그러니 난, 돌아갈 수 없다. 여기서 두 며느리와 함께 살다보면 며느리들의 친정에서 뭔가 도와주지 않겠나?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면 그럭저럭 다 끝나는 것이지 별거 있나? 이런 마음이 온 통 꽉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2. 고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비록 모압 땅에서 10여년 사는 동안에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었지만, 고향 땅에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셨는데 시기도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하면서 한 달 정도 보리를 추수하면 곧 이어 한 달 동안 밀을 추수하는 시기에 돌아가게 하신다. 또 이런 것이 생각났다.

    이스라엘에는 폐아법(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인 약자들의 식량을 제공하는 법)에 의해서 밭의 모서리나 떨어진 곡식은 거두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인 약자들이 이삭을 주어서 식량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 폐아법에 의해서 이삭을 주우면 어느 정도 식량을 마련할 수 있다. 보리 이삭을 주우면 곧 밀 이삭도 주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은 빈털터리가 된 나오미에게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감동을 주신다.

     

    (1) 동행자를 붙여주시는 하나님

    늙은 나오미 혼자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두 며느리 중에서 룻에게 감동을 주면서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 주신다. 청상과부인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간들 아무런 소망도 없는 처지이다. 룻은 모압에서는 자기 고국이며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도 있지만, 베들레헴에는 이방나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겨주는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마음하나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룻에게 홀시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감동을 주시면서 나오미에게 동행자를 붙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룻은 자기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에게 (1:16-17)“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고 고백하면서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선한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알고보면 하나님은 외롭고 쓸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오미에게 든든한 동행자를 붙여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나도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 너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너를 끝까지 지켜주겠다. 그러니 아무 걱정도, 염려도, 말고 네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라고 감동을 주신 것이다.

     

    3.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나오미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시고, 동행자 룻을 붙여주시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나오미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지만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회복의 은혜를 주신다.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떡집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떡집을 떠났던 나오미에게 이제는 하나님의 신령한 떡집으로 회복시켜 주신다.

     

    (1)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사람들

    (1:19-21)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주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주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고향사람들은 나오미가 돌아왔다.”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고향사람들은 왜 그 때 좀 더 참지. 참지 못하고 모압 땅으로 가서 이렇게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고, 쫄딱 망해서 돌아왔느냐?’하면서 나오미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잘 돌아왔다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가 세상의 떡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영원한 떡집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천군천사를 보내주시면서 환영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우리들을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먼저 간 성도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하면서 우리들을 얼싸 안아주시고 따뜻하게 감싸 주실 것이다.

     

    (2) 이삭을 줍도록 배려해 주는 이웃들

    부자집에서 얼마만큼의 곡식을 나눠주면 좋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삭을 줍는 것은 적어도 노동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여 곡식을 얻게 함으로서 누구 앞에서라도 떳떳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노동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성경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셨다. 자신의 땀으로 얻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동정 받는다는 부끄러움, 수치, 모멸감을 당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구에게든지 비난받거나 비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같이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노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보리 추수할 시기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보리이삭 줍고, 곧 이어 밀이삭을 주우면 적어도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4.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보아스

    하나님은 나오미의 가업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는데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를 예비해 놓으셨다. 이스라엘에는 잃어버렸던 기업을 회복하는 고엘 제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기업을 무른다는 말인데, 가정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원래 그 고엘의 책임을 이행해야 하는 사람은 가까운 친족이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기업을 팔게 되었다면, 팔았던 액수를 다시 지불하면 기업을 무를 수 있다. 자신이 그 기업대금을 지불할 수 없을 때는 가까운 친족이 그 액수를 대신 지불하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제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50년이 지나 희년이 되면 본래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 나오미의 기업은 희년이 되기까지는 40년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고엘법에 따라서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보아스를 예비해 놓으시고 보아스를 통해서 기업이 회복되어지도록 하신다.

    보아스는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되는 줄 알면서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기꺼이 나오미의 기업을 회복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지만 하나님은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 기업을 무를 즉 대를 이을 친족을 예비해 놓고 계셨다.

     

    (1) 시어머니를 지극히 효도하는 룻

    먼저 효성이 지극한 룻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효행자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효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극한 효도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에는 갈들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룻은 자기의 일가친척과 고국산천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자기 남편이 귀한 줄 알면 그 남편을 낳은 시부모도 귀중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남편이 있든지 자식이 있든지 하면 체면상 효도한다고 하겠으나 룻은 남편도 죽고 혈육 하나도 없는데 홀시어머니를 따라와 공경했으니, 이보다 훌륭한 효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유대인 시어머니가 뭐 그리 탐탁했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먼 유대 땅까지 와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무슨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유대인 시어머니를 그렇게 잘 섬겼던 것입니다. 이제는 룻이 이삭을 주워다가 봉양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재산이나 있으면 그 재산이나 바라고 시어머니를 섬긴다고 하겠지만, 가난하기 비할 데 없는 시어머니를 잘 봉양했으니 그러면 롯이 행한 효행을 살펴보겠습니다.

    1)룻은 물질로 봉양했다.

    룻은 양식이 없어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다가 그것을 찧어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시어머니를 버리고 도망갔을지 모르는데 룻은 끝까지 정성을 다해 봉양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보리 이삭을 주우러 갔던 밭이 마침 친족인 보아스의 밭이었다는 것에서 룻의 인생역전이 시작됩니다.

    룻기 2장은 이 보아스와 룻의 첫 만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이 처음으로 이삭을 주우런 갔던 밭이 보아스의 밭이었는데 마침 그 날 보아스가 밭에 나왔다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여인에 대해 감독하는 종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바로 나오미가 모압지방에서 데리고 온 나오미의 며느리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시모를 봉양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2: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2: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2: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2:12) 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2:8) 내 딸아 네가 듣지 아니하느냐? 보아스는 룻을 딸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나이 차이가 좀 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룻은 20대였고 보아스는 40대가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보아스는 이미 소문을 들어 룻이 얼마나 대단한 효부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려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창세기는 리브가가 며느리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한 것을 은근하지만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에서의 아내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그런데! 룻은 달랐습니다. 이방 여인인데도 아무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 땅까지 와서 이삭을 주워가면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아스도 보고 알았습니다.

    보아스는 최선을 다해 룻을 배려합니다. 이방 여인이 주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것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게 하고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게 하고 그리고 볶은 곡식을 주어 배불리 먹고도 남게 하고 또 아주 맛있는 초 소스에 떡을 찍어먹도록 자상하게 배려합니다. 게다가 다른 소년들이 함부로 대우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연약한 여인, 젊은 과부 룻은 주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온 것을 안 보아스는 그 날개가 되어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성에서 꽤 유력한 사람인데 왜 이때까지 결혼을 안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별을 한후 룻을 후처로 맞이한 것일까요? 보아스가 나이도 많고 재력도 있고 성읍의 유력자인 것으로 보아 당시의 관습에 따라 이미 결혼한 유부남일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는 사별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아직 자식도 없는 홀로 사는 경건한 신앙인 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룻에게서 나은 자녀 오벳이 가문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아스의 어머니입니다. 보아스의 어머니가 바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입니다.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보아스는 유다지파이고 다윗의 조상 가문이었지만 동시에 보아스의 어머니는 이방여인 가나안여인 기생 라합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이방여인을 애틋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보아스는 지금 고엘(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에는 룻의 놀라운 신앙과 효도의 성실성과 진실성이 바탕이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입을 것과 먹을 것, 자식들을 위해 쓰는 것은 아낄 줄 모르면서 자기를 낳고 키운 부모님이나 자기 남편을 낳은 시부모님은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핵가족 제도로 부모는 아예 안 모시는 것으로 알고, 기껏 한다는 것이 양로원에 보내 놓고 자녀들이 갖다 주는 모이를 먹고 사는 새장에 갇힌 십자매처럼 부모를 대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룻은 가난한 중에도 마음을 다하여 시어머니를 잘 섬겼습니다.

    (2) 효도는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어떤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님의 은덕을 생각해서 효도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기 위해서도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효도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하는 계명 중에서 으뜸가는 계명이므로 불효의 죄는 살인죄나 간음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대체로 다른 계명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효는 모든 윤리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와 같으므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부모님의 권위에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 권위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3) 효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

    효도를 하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십계명 중에도 다른 것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효도에 대해서만은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는 복을 약속했습니다. 룻의 이런 지극한 효도도 깜짝 놀랄 만하지만 그가 받은 복도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룻의 운명이 바뀌고 족보와 국적이 바뀐 것입니다. 후에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오벳이 이새의 아버지이며 다윗 왕의 조부입니다. 그러니까 이방 모압 여인 룻이 효도를 잘 하다가 이스라엘 나라의 유명한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잘것없는 이방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 나오미 말에 무조건 순종한 룻

    (1) 룻을 위한 나오미의 계획

    (3:1-6)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나오미는 늙어 소망 없는 자기를 끝까지 따라와 효성스럽게 섬기는 착한 며느리 룻의 앞날의 행복을 위해서 오래 기도하고 깊이 생각한 끝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놀라운 계획을 말했다. 그것은 룻에게 안식할 곳을 찾아주는 재혼계획으로써 율법이 명한대로 보아스와 계대결혼을 시키는 것이었다. 룻기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모세가 경계한 혼합결혼이 혈통적으로 피를 섞는 결혼이라기보다는 종교적으로 혼합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강력히 대변해준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단순히 혈통만 중시하는 한 민족 공동체라기보다는 신앙을 중시하는 신앙공동체였다.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룻이 이방인이지만 이미 개종을 하여 하나님 안에서의 결혼이므로 신앙적으로 볼 때 결코 혼합결혼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신앙을 혼합하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여자가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것은 안식할 곳을 찾는 것이다. 여자들은 무엇보다 자기 생애를 기꺼이 의탁하고 잘 맡아줄 수 있는 영적으로 잘 구비된 좋은 남편감을 만나도록 기도하고 열심히 찾아야 한다. 배우자를 택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신앙이다. 왜냐하면 신앙이 좋은 자는 다른 모든 면에서도 충실하며 모범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조차 신앙을 우선해서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우선하고 지나치게 많은 결혼 조건들을 따진다. 보아스와 룻은 서로가 신앙이 아닌 다른 것을 우선으로 하여 계대결혼을 수락하지 않았다. 결혼은 하나의 모형일 뿐이고 실은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와 신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인 된 인간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안식하고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다.

    (2) 결혼계획의 방안

    룻과 보아스의 결혼과정은 마치 007작전계획을 방불케 하듯 주도면밀하고 치밀했다. 그것은 성적 유혹을 통한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 율법이 정하고 있는 계대결혼법에 따라서 보아스가 수혼자로서 행동하고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1) 룻의 준비사항

    목욕하고, 기름바르고, 의복을 입으라. 혼인을 위해 아름답게 단장하는 신부처럼 자신을 정결하고 아름답게 단장해야 하는 것이다.

    타작 마당에서 누울 때까지 보이지 말고 숨어 기다리는 것이다.

    룻은 단장을 하고 해지기전에 타작 마당에 가서 은밀히 숨어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했다. 인생에서 기다림은 중요하다. 조급해 기다림에 실패해선 안 된다. 그가 참지 못하고 경솔히 뛰쳐나왔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특히 결혼에서 참는 것을 배워야하고 인내가 중요하다. 참는 것은 어렵고 성숙의 가장 분명한 증거다.(1:4, 5:7)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가 누우라

    보아스의 이불을 들고 들어가 누워야 했다. 이는 자신을 의탁하고 용납을 구하는 용기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자매들도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고 찾고 담대히 접근하여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기도가운데 적극적으로 찾고 교제를 청해보자.

     

    2) 시모에 대한 순종하겠다는 고백

    룻은 시어머니를 존경하므로 절대 거스르지 않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명령하시는 대로 다 순종할 것을 고백했다. 나오미가 며느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나? 그러나 그가 단 마음으로 순종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흐뭇하고 며느리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였을까? 하나님도 제사보다 순종을 더욱 바라고 기뻐하신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으나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아 물 속에 잠기듯 십자가 죽음으로 의를 이룰 것을 나타냈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 했다. 우리는 주의 명령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순종은 사랑의 시금석이다.(14:21, 23)

     

    3) 계획을 실행하는 룻

    (3:3-9) 그녀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보아스가 추수를 마치고 날이 어두워져 노적가리 곁에 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주인이 노적가리곁에 눕는 것은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룻은 그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가 보아스가 잠들 때까지 잠시 더 기다린 후에 조용히 잠든 보아스에게 다가가 발치에 이불을 들고 들어가 누웠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떨리고 두근거렸겠는가.

    룻은 시모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명한대로 다 실행했다. 그는 핑계를 대어 미루고 망설이고 불순종하지 않고 또 자기 생각대로 계획을 바꾸고 빼먹지 않고 시어머니가 세운 계획대로 다 실행했다. 주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 땅에 오사 33년 간의 지상의 삶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증거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구속하셨다.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성경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된다.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승리의 길이요, 순종하여 살면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시고 지켜주신다.

    이런 행동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잘 이해가 안되나 사자를 위해 계대결혼을 위한 적극적인 순종의 행위였다. 룻이 보아스에게 은혜를 입기 위해 발치에 누웠듯이 우리도 주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받기 위해 주님 발 앞에 나가 엎드려 겸손히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4) 룻의 간청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을 밝힌 이후 옷자락을 덮으소서.’라고 간청했다. 옷자락을 덮는 것은 남녀간에는 결혼을 수락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어떤 자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형제가 그녀를 자기 옷으로 덮어 아내로 취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을 덮어 달라하여 자신을 의탁하였듯이 우리도 주님의 피묻은 은혜의 옷자락에 자신을 맡기고 의탁해 죄 사함과 정결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룻은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임을 상기시켰다. 우리의 기업 무를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기업을 물으사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자신의 정결한 신부로 삼아주셨다. 이제부터는 주님께 나가 우리의 일생을 주의 은혜의 옷자락으로 덮어 보호하고 축복해 주시도로 간구 하자.

     

    (3) 보아스의 응답

    (3:10-13) 가로되 내 딸아 주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주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보아스는 룻의 간절한 간청을 받고 이렇게 응답 했다.

     

    1) 축복기도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의 아름다운 행실을 소문으로 듣고 가까이에서 지켜본 보아스는 몰래 자기의 발치에 들어와 누움으로 놀랬으나 곧 사랑스럽게 여기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축복을 빌어 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며 어떤 자의 집에 들어가면 먼저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했다.(10:12)

    2) 위로

    두려워 말라보아스가 갑자가 잠에서 깨어나 놀라 누구냐고 소리쳐 물었을 때 룻은 두려워했다. 그러나 보아스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두려워 말라위로하고 안심을 시켰다. ‘이 밤에 여기 머물라.’ 보아스는 잠이 깨어 허락도 없이 발치에 끼여든 룻을 혼내고 내어쫓지 않았다. 놀랐지만 자기에게 은혜 입으려고 찾아온 그를 따뜻이 받아주었다. 그는 자기의 겉옷을 덮어 따뜻이 품어주고 보호해 주었다. 예수님도 자기에게 나오는 자를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 누구든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오면 다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의 은총으로 품어주신다.(6:37)

    3) 약속

    내가 네 말대로 다 행하리라.’ 그는 율법규정에도 있거니와 룻이 겸손하고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다 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신실한 자로 자신이 약속한 바를 반드시 지키는 자였다.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예수님도 신실하사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 예수님은 신실하셔서 자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다만 재림에 대한 약속만 남겨두고 있다. 그것도 불원간 약속하신 바대로 오셔서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이 신실치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구원도 헛될수 밖에 없다.

    4) 난점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보아스가 엘리멜렉 집의 기업을 무는데는 커다란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는 것이었다. 그가 거절을 해야 보아스가 기업을 물어 룻과 계대결혼을 할 수가 있었다.

    보아스는 의롭고 정직한 자이므로 속이고 편법과 술수를 동원해 그를 부정하게 젖히고 룻과 결혼하길 원치 않았다. 정당하게 그의 우선권을 존중해주고 그가 포기하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자기가 기업을 물어 룻과 결혼하길 원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기도하고 자기보다 높은 순위자에게 먼저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기도와 선한 마음을 받으사 합법적으로 그가 룻과 결혼하게 하셨다. 우리도 모든 일을 말씀을 좇아 정직하고 정당하게 행해야한다. 편법과 인간의 수단방법을 동원해선 안 된다.

    5) 칭찬

    보아스는 룻이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한 것을 칭찬했다. 룻이 젊은 자가 아닌 나이든 보아스에게 생을 의탁하려 한 것은 전에 죽은 남편과 시모에게 베푼 선대보다도 더 큰 인애로 받아들였다룻은 아직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한 것 같다. 그러나 보아스는 재력이 있었으나 나이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룻은 육신적인 안목으로 젊은 자와 재혼하려 않고 죽은 남편의 가정의 기업을 회복시키려고 나이든, 자기에게 생애를 의탁하려 했음을 칭찬하고 있다. 그는 율법을 소중히 여기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을 현숙한 여자라고 칭찬했다. 열심히 일했기에 허약하지 않은 건강한 외모를 지녔고 정신적, 영적으로도 강인한 자였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과 부합했을 것이다. 그녀가 현숙한 여인됨은 예루살렘 성읍 백성들이 다 알았다. 우리도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영적인 면을 도외시하고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안목에서만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4) 보아스의 약속

    보아스는 신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알면 남녀가 함께 밤을 보냄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상처를 받고 계대결혼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에 돌려보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고 선한 일을 할 때에 쓸데없는 오해나 비난을 받지 않도록 빌미를 만들지 말고 신중함과 주의를 기울여 지혜롭게 해야한다. 또 보아스는 룻을 새벽에 돌려보낼 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겉옷에 최대한 담을 수 있을 만큼 보리를 6번 퍼서 주어 보냈다. 보아스는 자신에게 은혜를 입기 위해 수치를 무릎 쓰고 겸손히 결단하여 온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더니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은 할 일을 다했기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이제는 바턴을 물려받은 보아스가 나서 일할 차례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에 아주 신실하고 열심 있는 자였다. 룻과의 약속 이행에 있어서도 그는 약속을 다 이룰 때까지 신실하고 열심히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오미는 가까운 친족이기에 오래동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접촉해 봄으로써 그가 어떤 자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우리 주님도 인간을 위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데 신실하시고 열심이시다. 그것을 다 이루기 전까지는 결코 쉬지 아니하신다. 신실하신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마치고 승천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지금도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고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기도를 드리시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사탄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송사 할 때마다 십자가 대속사역을 기초로 우리편에서 대언해 주시는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경건한 보아스를 통해 비천한 이방여인 룻을 돌아보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서 다윗왕의 조상이 되는 복을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허락해주셨다.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한 약속과 주의 일에 신실하고 쉬지 않고 열심을 다해야한다.(1:6, 12:1)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부터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제일 중요한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바른 관계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렐루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때 우리에게 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신경 쓰느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그때로부터 문제와 어려움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 이와 같은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룻기 4:17~18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부쳐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고 했습니다. 이방여인 룻이 마태복음 15절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이것은 룻의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룻은 그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구원을 얻기 위한 영적소망을 기대했기 때문에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것입니다. 그 영적소망에 대한 믿음과 희생과 수고, 겸손과 섬김을 통하여 감동을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은 우리들의 믿음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형식적이고 습관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룻과 같이 실질적인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진지한 실천적 신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룻기는 다른 성경에 비해서 매우 짧은 4장 밖에 되지 않기에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며 룻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인 우리들을 예표하는 줄로 믿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되신 우리들의 만남을 예표하고 있으므로 더욱 우리들에겐 은혜스러운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룻이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생각하면서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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