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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시간에 사도신경 신앙고백 과연 필요한 것인가?
    말씀 2018. 5. 11. 12:17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1. 사도신경의 유래

    사도 신경이란 말그대로 사도들이 믿었던 신앙을 믿는다는 말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사도 신경을 제정할 당시 잘못된 신앙이 전해지게 되었고 그래서 사도들이 믿은 진리를 그대로 전수한다는 의미에서 사도 신경이라 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와같은 이야기로부터 사도 신경은 사도들로부터 전승되었다고 말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사도 신경이 채택된 것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431년의 에베소회의, 451년의 칼케톤 회의를 거치면서 확정되어진 것이고 이런 형태의 신앙고백문이 만들어진 것은 당시의 이단성 규명을 위해서 만들어진 동기가 되었으며 여러 종교회의를 거치면서 수정되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의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일컬어 니케아 신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도 신경이 채택된 것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부터 라고 하는데 300명이 넘는 감독들이 참가했던 이 최초의 니케아회의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와 같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젊은 아다나시우스라는 두 사람사이의 논쟁에서 출발하는데 아리우스 주장은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과는 별도로 모든 피조물의 제일 첫째 되시는 하나님이므로 두 하나님을 주장하였다. 그리나 아다나시우스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논쟁이다. 니케아회의 결과는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정죄하였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A.D 4세기경 니케아 신경고백을 기초로 만들어져서 서방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하여 보급되었으며 9세기부터 모든 서방교회(로마교회)는 세례의식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기에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사도신경이 된 것이며  그리고 주일 미사때마다 암송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한번도 사도신경을 고백한 적이 없으며 오직 니케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니케아 신경>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드신 한 분의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중의 신이며 빛 중의 빛이고 참 신 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고 장사되었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생명의 부여자와 주님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세계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주시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립니다. 아멘.


    2. 사도신경의 변천사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밀란의 감독 암브로스(Ambrose, a bishop of Milan, A.D. 340-397)이다. 그는 사도신경은 12명 사도가 한 절씩 합작한 사도들의 신앙고백서라고 하였다.

    또 라틴벌게이트(Latin Vulgate)성경 번역자인 제롬(345-419) 역시 사도신경은 12사도들이 한절씩 신앙을 고백한 사도들의 합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2사도들이 한절씩 만든 신앙을 합작한 것이라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이다. AD700에 공인된 사도신경이 등장한다.

    공인된 사도신경이란 서방교회에서 공인한 사도신경을 말한다. 공인된 사도신경에는 "천지를 만드신", "잉태하여",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전능하신", "나는 믿기를" "공(公)", "성도가 교통하는 것", "몸", "영생" 등이 추가되어 오늘날의 사도신경으로 갖추어졌다. 그런데 오늘날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옹호하는 쪽과 거부하는 쪽의 주장들을 살펴보자.


    3. 사도신경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주장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1) 사도 신경은 성경의 중심 교리이다.

    사도 신경을 제정할 당시 잘못된 신앙이 전해지게 하는 이단들을 막고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수해주신 진리를 사도들이 믿었고 그 사도들이 믿은 진리를 그대로 요약하여 전수하는 의미에서 사도 신경이라 한 것이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성경의 진리를 믿는데 그 진리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 광범위한 진리를 체계적으로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그러기에 사도신경은 기도문이 아니라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며 성경 진리를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교리신학이라고 한다.

    (2) 사도 신경 진리를 수호하기 제정되었다.

    사도신경의 유래는 교회가 세례식을 행할 때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기에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사도신경이 되었고 그 후 교회 안에 이단자 그노시스파를 비롯하여 여러 이단이 일어나게 되자 전통적인 교리와 신앙을 지키고자 325년 니케아신경을 신앙의 표준이 되어 오늘날과 같은 사도 신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리우스의 삼체론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교회 분열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종교 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이 사도신경이 만들어 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아리우스는 안디옥에서 신학을 하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로 금욕주의적 태도와 설교의 능숙함으로 인기를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알렉산드리아 교회 장로인 아리우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었고 성자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최초로 성부에 의해 창조되었다.

    ② 아들은 아버지와 별개의 존재이다

    ③ 그리스도는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떤 존재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삼위삼체론으로 세 분이 모두 신이기는 하지만 본질과 등급에 차이가 있는 신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부인했다. 아리우스의 이단 사상이 교회 안에 확산 되어 교회의 분열 위기에 있었을 때 콘스탄틴 황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열띤 논쟁이 계속 되었고 아리우스의 언변을 당하지 못했다. 그때에 나타난 사람이 아다나시우스 집사이다. 그는 알랙산더 감독의 제자이며 집사 자격으로 온 알랙산더 감독 수행원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다나시우스는 동질론을 말했다.

    (3) 아리우스에게 던진 아다나시우스의 질문

    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질이 아니냐 ?

    ②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질이 아니면 사도들의 말이 거짓말이고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은 거짓 책이냐 ?

    ③ 양태론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가 아니냐?.

    양태론이란 성부가 나타날 때에는 성자와 성령이 나타날 수 없으며 성자로 나타날 때에는 성부와 성령이 나타날 수 없다. 성령이 나타날 때는 성부도 성자도 나타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가 함께 역사 하셨음을 증거함으로써 양태론을 반박한다.

    양태론 반박[마 3:16-17]16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렸으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17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으르시되 이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에 아리우스와 양태론을 주장한 자들은 반박을 못했다. 결국 아리우스는 A.D. 325년 니케야 회의에서 이단으로 규명되고  이처럼 이단교리를 막고자 사도신경이 정해진 것이다. 

     

    4.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자들의 견해

    사도신경은 성경의 핵심이며 성경 진리를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교리신학이며 성경의 광범위한 진리를 체계적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옹호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자들은 사도신경은 분명히 성경과 상치된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부분들이 그런가. 과연 그럴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은 시도신경을 외우지 않는 교단은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교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제 정신이 있는지 알고 싶다. 과연 사도신경을 교회에서 외우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카톨릭이외에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은 한국의 장로교회가 유일한데 이유는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으면 이단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4세기부터 예배에 사용하는 사도신경이 현재까지 사용되는데 사도신경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그러니까 사도신경을 예베중에  사용함은 사탄이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무엇이 잘못된 문제점들인가를 짚어 보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 아버지는 천지를 창조하셨지 만들지 않았다. 창조하다를 히브리어로 바라 라고 하는데 이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천지창조는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인간은 존재하는 재료를 갖고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은 만드는 데서 출발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말은 창조론을 진화론으로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탄의 이야기이고 하나님을 인간으로 낮추는 것이다. 예배때 이 비성경적인 단어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야 말로 사탄의 술책이라고 봐야 한다.

    (2)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예수님은 외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his only begtton son  유일하게 낳은분 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아버지와 성자예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이시다. 독생자는 홀로 스스로 계신 독특하신 분이시라는 것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속성상 제2위의 하나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외아들이라는 비진리를 진리처럼 신앙고백의 전통으로 여겨온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다.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 나시고

    아버지가 나오면 아들 예수님이 나오고 다음은 성령님이 나와야 하는데 마리아가 나온다. 순서적으로 성령님이 영광을 받을 자리에 마리아가 나온 것이다. 마리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3위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저들은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고 한다. 마리아는  예수님 낳기까지는 동정녀이었지만 그 후로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예수님 이외에도 여러 자녀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13:55). 그러므로 마리아를 동정녀라고 부르는 것은 마리아를 신격화한 것으로 비성경적이다. 마리아는 하늘로 승천하였고 누구든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통해 마리아 숭배사상을 집어넣은 것이다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 

     내가 그를 데리고 너희에게로 나오나니 이것은 내가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함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하더라(요19:4)를 보더라도 빌라도는 끝까지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석방시킬려고 노력하였고 그의 아내도 저에게 사형을 벌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했다. 그 뿐만아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했다. 그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여섯시쯤이더라. 그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왕을 보라 하거늘(요 19:14).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되 그를 없애 버리소서 그를 없애 버리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하매 수제사장들이 대답하되 카이사르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요 19:15).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사람에 대해 심판하는 것은 무죄하다고 하였을 때 백성들은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달라고 외쳤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으며, 사도들 역시 사도행전을 통해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고 분명하게 증거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도신경만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성경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서 오늘날 천주교나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이 내용으로 신앙고백을 할까? 이것이 과연 누구의 장난일까?

    누군가 신앙 고백을 외운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죄사함받은 것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을 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관을 틀리게 믿도록 한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해 바로 내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다. 나의 죽음이 곧 예수님 죽음이심을 믿어야 한다.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이 내 죄값으로 죽었다는 것을 믿느냐 안믿느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바로 내 죄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모르면 예수님의 부활이나 예수님의 재림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핵심을 놓치면 생명을 잃고 생명을 잃으면 온 천하를 얻는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구원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넣어 주는 마귀의 전략인 것이다.

    (5) 성령을 믿사오며

    성경 66권을 다 봐도 성령을 믿으라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다 성령은 충만히 받아야 하고 사모해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다. 예수님도 아버지를 믿으면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 성령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를 깨닫게 하여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오직 사도신경에서만 이런 오류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서 성경지식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6) 거룩한 공회와 (The Holy Catholic church)

    만약 카톨릭 신자들이 개신교인들이 신앙고백하는 것을 듣는다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니 자기들이 큰집이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는 교황권이 유지되는 카톨릭을 번역한 것이다. 카톨릭 교황은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교황권이 계승되는 카돌릭의 수장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은, “거룩한 공회”를 헬라어 원어로는

    άϒἰαν ἐϰϰλησὶαν이지만, 영어로 번역하면 The Holy Catholic Church 이고 Catholic이란 뜻은 보편적 혹은 세계적인, 우주적인 이라는 뜻이다. .

    그러나 사도신경이 쓰여진 배경을 살펴보면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던 당시의 카톨릭 교회로서는 땅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가 카톨릭 교회라고 주장하고 이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던 때였다.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순교자였지 초대교황은 결코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거룩한 공회가 교회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는 의미이다.

    초기 교회가 분열이 안 되었을 때는 카톨릭이 보편적인 교회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없었지만 교회가 동서교회로 갈라지고 또한 서방교회가 다시 로마교회와 개신교로 갈라진 상황에서 가톨릭교회라는 의미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땅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


    ; 는 그러므로 라는 말이다. 교황이 거룩한 카톨릭교회 수장이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고 몸이 다시 살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고백이다. 이 거룩한 공회라는 것은 천주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개신교인들이 그대로 따라서 고백하는 신앙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거룩한 공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주류, 이단으로 정죄하는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라는 단어가 로마가톨릭교회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여진 마당에 있어서 이  표현이 곧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이 된다는 것이므로 개신교에서는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로 한 수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공회 즉 카톨릭신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7)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도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카톨릭 사람들을 신자라고 한다. 성인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성도라는 것은 성인과 교통하는 거룩한 신자를 말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인에게 기도하면 성인이 쌓아놓은 공적이 자기에게 온다고 하여 카톨릭 신자들은 죽은 성인앞에서 기도를 한다(김수한추기경).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강신술인 영적교류를 하는 것이다.

    율법에는 귀신과 교류하면 돌로쳐 죽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서는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고 알고 있으며 따라서 천주교인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모든 지상의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만 잘못 알고 있다. 그래서 오해가 없도록 이 문구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라고 수정했다. 그 수정이유는 가톨릭에서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신조는 죽은 성인들과 교통하며 그들의 공적을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 있어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복과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성도들과 죽은 성도들과의 교통을 신약성경은 전혀 밝히지 않고서 외우고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또 원래 원본에는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을 삭제하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원래의 사도신경이 이단분별의 기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도신경 끝에 이러한 표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도신경에서 끝 부분에 붙어 있던 이러한 표현을 빼버린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초창기에는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 지어다" 라는 말로 사도 신경은 끝맺음되어 있었다.

    (8)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는 문구도 원문에는 있었으나 삭제

    사도신경 원문에는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동안 지옥에 내려갔다 오셨다고 한 것이 있는데 감리교단의 경우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는 내용이 찜찜하다고 하여 그것을 넣으면 한기총에서 탈퇴한다고 하여 이 구절은 한글 사도신경으로 번역되면서 삭제되었지만 영어 사도신경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원문을 감리교단 저항에 부딪쳐  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는 분명히 지옥으로 가셨다 오신 증거는 성경 여러 군데에 나온다. 킹제임스성경 (마12: 39-40)에는

    3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행2:31) (다윗이)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벧전 3:19)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예수님의 혼이 지옥에 가셨다는 것은 이처럼 성경 여러군데서 밝히고 있다. 베드로 또한 예수님이 무덤있을 동안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구원의 완성자임을 전파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지옥에 갔다 오신 것은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데도 이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개역성경에는 지옥을 음부라고 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하였다.

    (9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다. 알 수 없는 말을 신앙 고백으로 주문 외우듯이 하는 행위는 로마 카톨릭의 상징주의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곳으로부터라는 뜻이다.

    사도신경 부적격성의 이유를 정리해 보면

    ①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며, ② 출처가 분명하지 못하고, ③ 외우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닌 이단의 판별을 위한 것이고, ④ 온전한 신앙고백이 되지 못하며, ⑤ 어떤 부분은 성경과 다르며, ⑥ 미신적인 요소가 개입되었고  알고보면 사도신경을 통한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교묘한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천주교는 사도신경을 교묘하게 변형하여, 자신들의 주요 교리인 "교황권, (성서보다 우위에 두려는)교회의 권위, 마리아 숭배 사상

    (1854년에 '성모마리아 무염시태 교리, 1950년8월15일에 '성모 마리아 승천 교리'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천주교인들의 대축일), 성인 숭배 사상" 등과, 비성서적인 교리를 삽입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로 막고 있다는 함정이 있다.   

    사도신경은 카톨릭교회, 개신교 할 것 없이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 공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앙고백문이다.

    사도신경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지 약 천년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자들 역시 비록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교리에는 반대했지만 사도신경만은 공동의 신앙고백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와의 분리는 성화논쟁,  마리아 숭배 등으로 725-842년에 이미 벌어져 있다가 1054년 완전히 분리되었다.  결국 12세기  부터는 이 사도신경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신조가 되어 모든 공적인 (미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고백하는 신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되어진 것이 오늘날의 사도신경이지만 동방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엄밀히 따지면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의 신앙고백서이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는 오늘 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전히 주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정죄될가봐 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단이라고 지칭하는 신천지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천부교 안식교 등 모든 이단들은 사도신경을 거부하는데 비해 한국 대부분의 교회가 이단을 피하기 위해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고백한다는 것은 성경무지로 인한 넌세스임에 틀림없다.

     사도 신경 옹호론자들은 결국 중세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뿐이다. 이것 외의 어떤 것을 주장한다면 그것이 곧 이단일 것이다. 다시말하면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나 개신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진 [로마교회 구 신조]가 아니고 그 이후 300여년 동안 서방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한 것이며 이것을 12세기 이후에는 오늘날 처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 하였던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최초로 만든 것이  4세기경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결정한 니케아 신경이다.

      8세기경 (로마 교회가 정교회와 카톨릭으로 분열되기 전) 로마 카톨릭이 니케아 신경을 모방하여 내용을 절반 이상 줄여 만든 신앙고백문이 "천주교 신경"인데  이 천주교 신경을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900년경이 되어서야 이 사도신경이 동방을 제외한 모든 교회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어졌다.

    16세기 이후 종교개혁에 의한 개신교는 아무런 개념 없이 개혁 정신도 없이 천주교 신경을 표절해 쓰게  되었는데 그 자체가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엄밀히 따져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의 신앙고백서인 것을 개신교들이 표절해 사용하는 것인지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교회목사들이 먼저 이러한 잘못된 전통을  버릴 수 있는 지혜와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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