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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 부모공경은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다.말씀 2018. 5. 13. 17:40
부모 공경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엡6:1-3
5월 2째 주일을 교회에선 어버이주일로 지킨다. 어버이날 시작은 1910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서 26년간이나 부모 없는 아이들을 꾸준히 보살피며 봉사해 온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교회학교 제자들이 추도식을 열었고 그녀의 딸이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바치면서 어버이날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 때부터 전국적으로 이날을 어머니를 기리는 날로 전해오다가 마침내 미국 제28대 윌슨 대통령이 1914년 5월 둘째 주일을 국가적으로 어머니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에서 5월 두번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지키다가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5월 8일을 어머니의 날로 공포하였고 1974년 정부에서 이날을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다.
아무튼 이 날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날 낳으시고 길러주신 것’만으로도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하신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 나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부모님 없이는 지금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어버이주일인 오늘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면 이땅에서 잘되며 장수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10계명의 율법을 주시면서 5번째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출 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그리고 이 계명을 받은지 40년이 지난 후 모압평지에서 다시 반복하는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 계명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고 강조하였다.
(신 5:16) 주 네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대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게 되고 네가 잘되리라고 마지막으로 부탁하면서 다시한번 계명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1-4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이고
5-10 계명은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잘지키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는 어려가지 증거가 나타납니다.
천국의 소망이 확실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이란 창고문을 여는 키인데 왜 못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일평생 희생하다가 자식들이 성장하면 자식들을 처다 보다가 실망 합니다. 바라보다가 의지 하다가 결국은 포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부모님 잘 섬기는 것이 인생의 삶의 목적 아닙니까?
그래서 이 두가지를 인륜이라고 합니다. 인륜이 무너지면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무너집니다. 5계명에 이어서 나오는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10계명 주시기에 앞서계명을 잘지키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개역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는 개역성경이 번역을 잘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지키기 무거운 것이 아니요 도리어 은혜를 주시기 위한 방편이요 축복의 근거가 되는 계명입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만 살면 부족할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면 자꾸만 불행의 길로만 가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지킬려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십계명중 다섯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부모 공경은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 중에서 제일 먼저 주어진 계명입니다. 이것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어떤 계명보다도 더 으뜸으로 강조되고 있는 까닭은 부모는 사람이 제일 처음 관계를 맺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분이 바로 부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 부모는 인간이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
사람이 태어날 때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부모이고 또 부모와의 만남은 내가 선택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섭리에 의해 만나게 된것이니 이보다중요한 만남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부모와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랑과 이해로 자신을 대해주는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부모처럼 자신을 대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모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나중에 부모 공경하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도 존중하게 되는 것이지 부모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리 만무하다(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5계명이 무너지면 이후 나머지 계명도 살인 간음 도적질이나 거짓증거 탐심도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계명들은 타인을 존중하라는 것인데 부모공경을하지 않으면 그런 계명을 잘 지키지 않게 되는 것이며 이것들의 뿌리는 부모 공경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2. 부모는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
성경은 단순히 부모이기 때문에만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까닭은 그 부모가 바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위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우리에게 주신 분이 예수님이셨고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얼만큼 사랑하셨가를 보여주신 것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사건인 것입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서는 부모들이 자식 사랑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수십번 잘못해도 더 이상 자식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당했던 부모라도 그 부모는 자식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들이라도 경찰이 와서 자식에게 행여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봐 끝까지 자식을 보호하는 부모들을 보노라면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은 이보다 더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떠났어도 회개 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집나간 자식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면서 기다리시는 분이 부모님이시며 또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땅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의 일부분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밥만 먹고 키만 자랐다고 사람이 아닙니다. 교육을 받아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자식에게는 부모가 최초의 스승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식은 부모의 삶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고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모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교육을 가르치는 최초의 신앙 교사이기도 합니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신앙을 배운 자녀들은 커서도 곁길로 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부모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언젠가는 자녀들도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믿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예수님을 잘 믿었지만 막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았는데 마지막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첫째와 둘째에게는 see you again in heven 천국에서 다시 보자고 말했는데 막내에게는 goodbye 굳 바이라고 합니다. 막내아들은 왜 나에게 그런말을 하냐고 묻습니다. 너와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으므로 지금이 마지막 작별하는 순간이라는 말에 막내 아들이 예수님을 잘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는 죽는 순간까지 자식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데 가장 영향력을 가진 스승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보통 어릴 때 부모님을 통해 배웠던 것들은 어른이 되어도 잊지 않는 법인데 부모가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모습 찬양하는 모습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자식들은 지금 주님을 안믿어도 때가 되면 주님앞에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1)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명으로 주셨으니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명이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더군다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부모의 명령도 아니고 모세의 가르침도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잊지 않도록 돌판에 새겨서 주신 계명입니다.
제5계명인 부모공경하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바울은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형통한 일들이 내게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첫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고 또 그 다음의 계명들까지도 잘 지켜서 이웃간의 관계가 잘 유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부모의 말씀이 충돌할 때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또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할 것도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하나님을 가르쳐주고 보여주는 부모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방인의 부모는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을부모들이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공경하지 않아도 되고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문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나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절에서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방인의 부모라도 못난 부모라도 부모는 공경해야 하고 그 말씀에는 순종해야 하지만 그런데 이방인의 부모가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부모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 처음 믿었을 때 부모님이 예수님 믿는 것을 막는다면 그 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믿지 말아야 합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되 주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이 부모님의 명령보다 상위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상위 법과 하위 법이 충돌될 때는 상위 법을 지키게 되듯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된다면 가족 모두가 구원받을 수 없으므로 사후의 세계는 불행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큰 명령으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부모까지도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선 이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형통과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엡6:3).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명령(제1계명- 4계명)에는 어떤 축복도 약속하지 안하셨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식들에게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어지는 장수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 바로 제5계명인 것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이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에베소서 6:1-4의 말씀처럼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또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는 축복의 약속이 있다는 말씀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도 도적질하지 계명은 안 지키면 벌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 계명들을 지켰다고 상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에는 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상급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이라고 하였는데 이보더 더 좋은 상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부모님을 공경하여 형통하고 장수하는 축복받은 사람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3 부모를 공경하여 복 받은 사람들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여 복 받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 복받은 사람들 중 우선 생각나는 사람이 이삭과 요셉입니다.
(1)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생명을 되찾은 이삭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아침부터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 지금의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데 번제에 쓸 나무를 지게에 지고 갈 정도로 어젓한 소년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110살이 훨씬 넘은 늙은 아버지가 아들 이삭을 결박한 후 칼로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데도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하면 능히 도망갈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었지만 아버지를 믿었고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버지의 신앙을 즉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의 믿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만약 자식을 죽이려 한다면 당장에 아버지하테 반항하고 도망치지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자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죽음앞에서도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은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한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축복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제물로 드려질뻔 하였는데 대신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처럼 생명을 다시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에는 그의 삶이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창26:12-16에 보니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흉년이 들었을 때 아내리브가와 함께 블레셋 땅 그랄에 거주하였을 때입니다.
12 이삭이 그 땅에서 씨를 뿌려 바로 그 해에 100배를 받았고 주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이 사람이 크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 성장하여 마침내 심히 큰 자가 되었으니
14 그가 양떼를 소유하고 소떼를 소유하였으며 종들이 심히 많았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였으며
15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시대에 그의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에 이삭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즉 우리에게서 떠나가라 하니라.
이삭이 자기 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동안 우물팔적마다 우물물이 콸콸 나와서 가축을 기르는데 양떼와 소떼가 심히 많았고 종들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흉년을 피해 잠시 블레셋 땅 그랄지방에 가 있는 동안에도 이처럼 형통의 복을 받았던 것은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2) 아버지 야곱에게 순종하여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
이삭말고도 부모에게 순종하여 복받은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를 시기하는 형들이 양치는 도단까지 찾아갔습니다. 창세기37장에 보면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60여 km나 떨어진 세겜땅으로 보냈을 때 요셉은 곧장 아버지가 지시한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형들은 세겜을 떠나 도단으로 양들을 몰고 이동한 후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세겜에서 북쪽 30km까지 더 올라가서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심부름을 충실히 하던 중에 결국 형들 시기심에 의해 애굽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에 결국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노예신세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언제 어디 있든지 함께 하여서 성경은 그가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지 13년 후에는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총리가 된 후에 아버지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훗날 아버지와 형제들을 이집트로 초청하여 기근을 면하게 됩니다. 요셉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형통했을 뿐만 아니라 약속대로 장수의 복도 누렸는데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고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
(3) 시어머니를 공경했던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입니다
성경에는 부모에게 효도하여 축복받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위에서 말한 이삭이나 요셉은 자기를 낳은 부모를 공경한 인물이었는데 사실 자식이 자신의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를 낳지 않은 시부모까지도 공경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의 자부 룻입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공경하여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모압지방에 살았던 룻은 베들레헴에서 모압지방으로 온 나오미 며느리였습니다. 룻기 1장 15-18절의 말씀을 통해 시어머니를 자기 친어머니처럼 공경한 룻을 하나님은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우선 룻은 누구보다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왜 룻이 불행하였는가 하면 룻은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민 온 유대인 남자와 결혼했는데 결혼한지 얼마안되어 자식도 낳지 못하고 남편이 죽었습니다.
룻의 불행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혼하기 전에는 시아버지되는 사람이 죽었고 또 얼마전에는 시아주버님까지 죽어서 룻이 사는 집에는 나이많아 홀로 된 시어머니와 생과부된 동서 그리고 자기까지 과부만 셋이 남아있는 정말로 희망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봐도 볼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롯의 시어미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잘 살아 보겠다고 이곳 모압땅으로 이주했는데 불과 10년도 안되어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제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자기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으니 이제 너희들도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 재가하여 행복하게 살 것을 말하였습니다. 첫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대로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어디든지 같이 가겠다고 단호한 결심을 합니다.
룻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마침내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마음을 알고 룻을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룻은 불행한 삶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직도 젊은 나이에 또 자식도 없는데 또 가난하고 희망도 없는 가정을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라, 남편 잃고, 두 아들마저 잃은 슬픔에 젖은 시어머니를 보살피겠다는 것이 자기의 운명이라고 믿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포기하고 시어머니 따를 것을 자청했습니다.
16룻이 이르되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이러한 마음은 그가 시어머니로부터 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날들이 길리라는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고 힘든 일이지만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고백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룻은 지금 이 불행한 상황을 그대로 감수하려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어려움도 감내할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고향 모압을 떠나면 친정부모를 영영 보지 못할 곳으로 가는 것이나 또 장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난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무조건 따라 나서겠다는 그녀의 각오는 보통의 여인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룻의 선택은 한마디로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늙으신 시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착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 볼 것 없고 얻을 것 없다 싶으면 마음 정리하고 스스로 떠나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일텐데 롯과 같은 며느리는 동서고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집에 시집 온 여인으로 남편이 죽고 가정 상황이 변했을지라도 자기의 본문을 다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친부모도 가정 형편 운운하며 돌아보지 않는 이 세태에 남편도 없는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룻이야말로 진정한 효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난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따라 나서는 룻의 희생적인 모습에서 오늘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룻은 낯선 땅에 와서 가난과 고독을 이겨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룻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곡식 추수할 때면 남의 밭에 가서 떨어진 곡식 이삭을 주우면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면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그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어떻게 늙고 가난한 시어머니를 따라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을 하면서도 저렇게 시어머니를 봉양하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효성이 가득한 룻을 그대로 남겨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그 지역에서 명망있고 부유한 나오미 남편의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도록 역사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모 나오미를 통해 룻이 보아스와 새 가정을 갖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남편 잃은 여인으로서 일생동안 외롭게 살 줄 알았던 룻이었는데 그녀는 존귀한 가문의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큰 복을 받아 새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오벳입니다. 오벳이 누구냐고요?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입니다. 마태복음 1장 5-6절에는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이방여인 룻이 시모 나오미에게 효도하였더니 그녀가 받은 축복이야 말로 이방여인으로서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부모공경을 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시는지 세 사람을 통해 살펴 보았습니다. 부모공경 하는데 재물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평생 가정과 자식들을 위한 부모님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헤아려 드리는 것, 때로는 부모님이 미안하여 작은 소리로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것, 말로 표현하시지 않는 심중의 생각을 헤아려 드리는 것이 바로 공경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다음에 미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하고 공경할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내일로 미뤘다가는 후회하게 되는 것이 부모공경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경이 부모 공경을 강조하는 까닭은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말씀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역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곧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효가 세상에서 말하는 효와 다른 점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였지만 실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자식들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불효한 자식들도 넘쳐난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들을 성경은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4.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죽여 마땅하다.
자식을 낳아서 키워주시고 공부시켜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세대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입니다. 어버이 날 되면 평소보다 더 쓸쓸하게 느끼는 외로운 부모님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차라리 어버이날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무료급식소에는 줄이 한없이 늘어선 것을 보면서 쓸쓸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기획재정부와 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해마다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로 즉 OECD 평균의 4배 수준입니다.
고령화 속도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노인인구 비중이 7%(2000년)에서 15%(2018년 예상)가 되는 데 18년이 걸렸으며 또 15%에서 21%에 도달하기까지 프랑스는 43년, 미국은 27년, 일본은 12년 걸릴 것으로 예측되지만 우리나라는 8년(2026년)이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노인 빈곤 실태가 노인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부모 부양과 자식 교육이라는 두 가지 의무 속에서 자신의 노후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빈곤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이런 노후가 되면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화병'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지난 한해에만 12만명에 달했다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자료에서 입증되었다. 성경은 불효하는 자녀들에 대해 단호하게 가르친다.
첫 번째는 장수하는 복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저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신21:21)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출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잠30:17) 자기 아비를 조롱하며 자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쪼아 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먹으리라
여기서도 보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죽여도 되고 안죽여도 된다는 불분명한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죽이는 방법도 돌로쳐 죽이든지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고 참으로 끔찍한 죽음입니다. 물론 이런 부모가 있겠느냐만은 공경하지 않고 배은망덕하는 자녀에게는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영적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치 않는 죄는 부모만을 거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요 그 권위에 불순종하거나 도전하는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악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불순종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가 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치 않는 불효는 죽음으로 밖에 다스릴 수 없는 중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상급을 걸어놓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우리는 고려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나이든 부모를 먹을 것과 함께 생매장하기 위해 지게로 짊어지고 산에 가서 내려놓고 온다는 고려장이 현대판에도 방법은 다르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젊은 자식들이 부모가 짐이 된다고 하여 버리는 경우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니 그런 것이 지금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학대하는 것도 너무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가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인데 천국같은 가정이 사랑이 메마른 세태에서는 지옥처럼 변질되어갔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부모공경하는 계명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할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2-3절에는 이렇게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2‘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 다를 바 없는데 자식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게서만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은 자연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교육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식들로부터 부양 받으려면 내가 먼저 부모님께 효도하는 교육을 통해 생활속에서 알려주어야 한다.
인류라는 말은 인간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해 부르는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모든 종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로 여기는 이유가 지혜나 사랑과 존경 등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들을 말할 수 있지만 특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부모에게 되갚을 줄 안다는 것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은 부모의 사랑을 되새기는 인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부모 챙기는 건 인간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과 가장 닮은 유인원도 부모자식간 효도개념은 없다고 한다.
온몸을 불사르며 새끼를 돌보는 가시고기나 황제펭귄처럼 태어난 뒤 일정 기간 자식을 돌보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일, 늙은 혈육을 챙기는 자식이 존재한다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유인원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수화도 알아 듣는다’ 등 인간과 닮은 점이 있지만, 부모를 챙기는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닮은 면이 없다.
오랑우탄은 암컷이든 수컷이든 홀로 생활한다. 암컷의 경우 새끼를 낳고 얼마간은 같이 생활하지만 이내 성장하면 영영이별하게 된다. 새끼 오랑우탄이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성행위만 하고 떠난 아빠 오랑우탄을 찾을 길이 없다. 누가 아빠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랑우탄 자식이 아버지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이다. 성장한 자식 역시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어미 오랑우탄과도 영영 이별하게 된다.
인간과 가장 닮은 종으로 여겨졌던 침팬지들도 힘쎈 수컷 중심의 침팬지 사회에서 암컷은 난교를 한다. 10~14일간 지속되는 발정기 동안 암컷은 오빠나 아들을 제외한 모든 수컷과 교미를 한다. 수컷의 사정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2-3분 내에 12마리 안팎의 수컷과 성행위를 가질 수 있다. 이처럼 고릴라나 침팬지 사회에서는 누가 자신의 부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교가 횡행하는 것이다. 만약 은혜를 갚으려는 자식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다.
끝으로 피그미 침팬지로 불렸던 보노보는 유전적으로는 인간과 약 1.6%만 다를 뿐이다. 보노보는 경쟁자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평화롭게 생활했다. 보노보 사회를 설명하는 두 가지 단어를 들라면 암컷와 평화다. 보노보 암컷들은 사춘기 때 무리를 떠나서 암컷 중심의 새 무리의 사회가 형성돼 있다. 그렇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보노보 사회에서는 다른 유인원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모에 대한 사랑도 볼 수 있을까? 보노보 사회에서 어미는 자식이 5살이 될 때까지 돌보지만 그 반대의 일은 보고된 바 없다. 보노보 역시 난잡한 성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실 누가 자신의 아버지인지는 유전자 검사를 인간이 해주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최근 각박해지는 세상 때문인지 자식을 등지고 부모를 져버리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전체로 보면 부모와 자식이 평생 혈육의 정을 나누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라 할만하다.
오늘의 자식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었을때 전통적인 관념의 효는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 흔히들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내리사랑이라 하고 그의 반대경우를 치사랑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선 옛 부터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란 말이 전래돼 오고 있다. 아마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효"는 바로 치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모든 삶의 근본에서 으뜸되는 최상의 가치임에도 날이 갈수록 경로사상이 쇠태해 가고 노인 학대문제가 이 사회에 화두가 된지도 오래되는 것 같다. 어르신들의 탄식의 소리가 날로 늘어만 가는 현실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누구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후회가 가슴에 깊은 멍처럼 남을건데...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경로우대 사상이 계속 전수되기를 염원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한 인격체로 살다가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대부분 죽을 때 가족이 있는 곳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내 소망도 별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나도 내일이면 노인이 될 텐데하니 노인존중하고 부모공경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분석을 해봤다.
가족 Family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각 단어의 첫글자를 합성한 것이 Family 가족이다. 부모와 나를 빼면 가족은 없는 것이다.
효자동이라는 동 유래에서 나온 효자 이야기를 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청와대 아래 동네가 효자동인데 그렇게 불러지게 된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 젊은 농부가 어느 해 여름 아내와 함께 밭에 일하러 갔다. 워낙 일손이 부족한 터라 젊은 며느리는 아기를 홀시아버지께 맡기고 폭염이 쏟아지는 밭으로 남편과 함께 일하러 나갔다. 애기는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 안심하고 잘들 다녀들 오너라는 시아버지의 말씀에 조금은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워낙 가난한 집안에 일손 마저 부족한 터라 애기엄마는 거동이 부족한 시아버지께 아기를 맡기고 온 것이다. 한참 때가 지나니 젖이 퉁퉁 부어오르자 그제야 애기엄마는 배고파 보챌 어린것을 생각하고 젖을 먹이려고 한걸음에 집에 달려갔다. 아가가 배가 고파 요란하게 울고 있을 줄 알았던 아낙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지지 않아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기 울음소리도 시아버지의 아기 달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아기를 데리고 혹시 옆집이라도 가시지 않았는가 했는데 거동이 불편하신데? 의문은 금새 크나큰 놀라움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듯한 한숨으로 변했다. 시아버지의 비둔한 몸에 어린 것이 깔려서 벌써 숨을 멈추었던 것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일하러 나가고 아기를 달래던 시아버지는 평소 좋아하던 약주를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고 어린 손자가 자기 배밑에 깔리는 것도 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며느리는 억 소리를 지르고 혼이 나갈 뻔 하였는데 워낙 시아버지에 대한 공경심이 남달랐던 터라 억 소리를 누르고 아기를 꺼내 들쳐 안고서 들에 있는 남편에게로 뛰어갔다. 며느리는 그제야 눈물 콧물로 통곡하면서 기왕에 아기는 죽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시아버님이 깨셔서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상심하실까 생각하니 남편에게 죽은아기를 아무도 몰래 매장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이 기막힌 상황에 남편은 한 수 더뜨는 상황이었다.
들판 가운데서 축 늘어진 안기 시체를 받아 든 남편이 이놈아 나도 불효하지만 너는 더 큰 불효자니라 어쩌자고 네가 죽어서도 할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는단 말이냐? 이 불효 막심한 놈! 이 불효 막심한 놈! 연신 그 어린 시체의 두뺨을 때리면서 목 놓아 통곡했다. 그런데 그 때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따귀를 맞고 그 충격으로 아기가 깨어 난 것이다. 할아버지 배 밑에 깔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기가 실은 잠시 질식했던 것이다. 나중에 이 이야기가 조정에 알려지자 임금님께서는 이들 부부에게 큰 상을 내리시고 그들이 사는 동네를 효자동이라 불러 만대에 그 효를 전하게 하신 것이다. 서울 문안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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