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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4 예수님의 보혈로 천국에 입성한다
    말씀 2018. 3. 26. 13:00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아 천국에 입성한다 9:12 벧전1:18-19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 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들이 교회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과연 우리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당연한 말을 질문한다면 별걸 다 물어보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영생할 수 있는가이다. 신앙새활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위의 말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죄를 사하여 정결하게 하여서 우리들이 새로운 피조물인 성도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서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여주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인간이 죄를 범하면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죄씻음 받아 죄를 용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죄를 용서받는 상징적인 방법이었다. 한마디로 피흘림이 없이는 더러운 죄에서 사함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간다면 천국에서 어떻게 생활 하는가를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고 있다.

    밧모 섬에 추방된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요한을 환상속에서 천국으로 데려갔을때 요한이 천국 본 광경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 서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찬양하는 구속받은 무리를 보게 하셨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불렀던 노래의 주제는 한 마디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주님의 보혈에 대한 구속이었습니다.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가 들은 바 나팔 소리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하늘나라에 있는 성도들이 우리 주님을 찬양할 주제가 많지만 가장 중요한 찬양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속이란 죄사함인데 이 찬양은 일찍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흘리신 그 보혈로 우리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었다는 찬양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성도들의 찬양의 주제는 자신들이 천국에서 수고 근심 걱정 사망없는 것에 대해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속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에 올라간 모든 성도들께서는 자신들이 어떻게 구속을 받았는지 알게 되는데 그들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구속을 받았다고 외칩니다. 천국의 보좌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에 대한 감격적인 찬양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받았다는 감격이 찬양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더 유추해 본다면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에 있는 의의 문을 지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 구속을 받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 예루살렘의 진주 문을 지나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의 생명수 강물을 마실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의 황금 길을 걸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영광의 보좌에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주위에는 찬양하는 모든 성도들 중에는 짐승의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천국에 온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으로 천국에 도달한 사람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 침례를 받고 기도를 하고 성모 마리아를 부르고 십자가를 붙들고 교회에서 성찬식을 하고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교황의 반지에 입을 맞추고 묵주의 구슬을 꿰고 성상들 앞에 무릎을 꿇고 길 거리 가난한 노인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하여 천국에 온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지 않은 한 어느 누구도 천국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한 구속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필요성과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속의 충분성과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한 구속의 필요성

    모든 사람은 반드시 구속받을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기 때문이고

    2. 죄가 우리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고

    3.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속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구속(redemption)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속을 받는다는 의미를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1 되사다 또는 회복시키다(to buy back, recover)

    2 몸값을 지불하다(to ransom)

    3 속죄하다 혹은 죄에서 구해내다(to atone for, deliver from sin)

    왜 모든 사람들이 구속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좀더 깊이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1).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십계명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믿지 말것이며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절하지 말 것, 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 것, 안식일을 기억할 것, 부모를 공경할 것, 살인 하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도둑질 하지 말 것,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내지 말 것 이라고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이 율법을 범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잣대에서 죄를 짓이 않았다고 자유로울 수 없으니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들이 죄인이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봅시다.

    (14:2-3) 주께서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그들이 다 치우쳐서 다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3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유법을 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백성들에게 물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앞에서 율법을 범하면 당연히 벌을 받겠다는 대답을 약속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27:26)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동일한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니라(3:10)

    인간이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물론 에덴동산에서 쫓겨날때부터 땀흘려 일을 해야 하고 해산의 고통을 당해야 하고 마지막은 사망의 저주를 받는 것이 율법을 범한 인간이 받아야하는 저주이다.

     

    저주당한 인간이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정결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다 그 분의 율법을 위반한 사람으로 마땅이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필사적으로 우리가 범한 죄를 속죄 받아야 우리가 저주를 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구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야 하는 저주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사람이시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주 받으셨는가?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인데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이 십자가 형벌을 받아야만 하고 동시에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정죄를 율법적으로 온전히 제거하셨다는 것입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받은 자라 하였느니라

     

    (2:13-14)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율법의 저주에서 저와 여러분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율법이 더 이상 당신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속량)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할렐루야

     

    구속은 특정한 교회나가는 것이나 사제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에나 선행에 있지 않습니다. 구속은 오직 한 곳 즉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에만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위에서 피를 흘리고 죽지 않았다면 죄사함의 구속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114절은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사함 받은 사람을 고후5:17 새로운 창조물 이라고 하고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제부터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다 구속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하늘의 보좌에 서서 주께서 주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라고 예수님께 노래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구속받아야 할 둘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2) 죄가 우리를 결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죄에 묶이지 않았던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4:15). 이 분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본래부터 죄인이며 스스로 원해서 다 죄에 묶여 있으며 죄에서 구속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8:32-36)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니라

    이 말씀을 통해 죄의 종인 우리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결박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죄에 포로되어 죄의 노예로 팔린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우리는 죄의 노예로 있는데 그대로 있으면 사망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1:15)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구출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의 속박 가운데서 죽는다면 둘째 사망인 불 못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20:14, 21:8).

    그러나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고 죄의 노예로서 죄 아래 팔렸으며니 인간 누구도 죄의노예인 우리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누군가가 죄값을 지불하여 주고 우리를 구속해 주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죄의 노예 시장에서 해방시킬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 아닌 존재만이 우리를 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하나님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함과 공의와 주권 속에서 죄는 오직 피흘리는 것을 통해서만 죄가 용서되고 사면될 수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오직 피만이 죄를 속죄할 수 있다는 것과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죄인의 피는 결코 우리의 죄를 용서하거나 우리를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므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반드시 그분의 죄 없는 피가 흘려져야만 했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6:23)하였으니 죄에 속박된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사람이 되셔서 자신의 피를 흘리시며 죽으사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일이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인류죄를 속죄하기 위해 처녀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혈액 전문 의사들에 의하면 아기가 수태될 때에 자기 어머니로부터 피를 한방울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말은 마리아는 죄인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피를 한방울도 물려받지 않았으므로 죄인의 피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피가 왜 중요한가는 레위기 17: 11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담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기 까지는 생명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생명을 불어 넣으니 그는 곧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생령)이 되니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어떤 부분이 죄를 범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혼입니다.

    히브리어 네페쉬는 창세기 2:7생명의 숨은 혼soul으로 번역되었으므로 우리가 육체의 혼 soul이 피에 있다고 말해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혈관 속에 마리아의 피를 단 한 방울이라도 물려받았다면 그 분의 피는 죄로 더럽혀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700년 전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예언되었습니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오직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통해 그분은 반드시 더럽혀지지 않은 피를 지닌 채 사람이 되셨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죄로 더럽혀진 피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면 그런 피로 결코 죄인들을 구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전혀 피를 주지 않았으므로 그분의 처녀 탄생은 하나님의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었습니다. 절대 무오한 성경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증명합니다.

    (1:30-32) 30 그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10:36)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인 내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그에게 네가 신성모독한다 하느냐?

    이제 요약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시며 아기를 수태한 어머니는 아기에게 전혀 피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혈관 속에 들어 있는 피는 죄 없고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피로 다 하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의 피는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던 예수님의 혈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바로 하나님의 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말합니다

    어느 이단 딤 목사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붉은 피는 우리의 구원과 상관이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어떤 영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합니다.

    또한 맥아더 목사라는 자도 뻔뻔스러운 이단 교리로 말하기를 예수님의 육신적 피는 사람을 구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들은 혈액전문 의사가 말한것도 믿지 않고 전혀 비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혈관에 있는 피는 하나님의 피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여 죄의 노예가 된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분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죄사하여 주시는 길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일을 이루셨습니까?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갈보리 험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흠 없고 점없는 피를 흘리심으로써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

    저는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기쁜날에 저는 하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무리들과 함께 예수님의 이름을 힘껏 찬양할 것입니다.

    (5:9)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되 사셨습니다. 이렇게 저를 구속하기 위한 대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구속하시면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그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저를 죄로부터 되사실 때에 바로 그 피를 몸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흘린 피가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죄의 노예 시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 소망 없이 영원히 버려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 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죽음은 피를 흘리는 죽음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독살, 교수형, 질식사 같은 죽음을 당하셨다면 우리의 죄가 사면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도 구원도 속죄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10:45)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면 결코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죄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구속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구속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구속을 받아야 하는 필요성과 연관된 셋째 기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3).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상태로 죽으면 결국은 지옥 불 못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임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죄를 지은자는 저주를 받는 것인데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해산의 고통을 당하고 육체의 죽음이 전부가 아니라 더 무서운 것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인데 지옥의 저주를 알게된다면 반드시 지옥에 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는 것이다.

     

    대신 속죄

    다음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

    하나님은 눈이 심히 정결하시므로 악을 보지 못하신다(1: 13) 그러므로 누구라도 죄가 있는 사람은 그분 앞에 설 수 없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께서 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그의 죄악에 대한 수치를 가리도록 옷을 만들어 주신 이후로(3:21)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서려면 죄 없는 희생물을 대신 죽여 피를 흘려서 속죄가 이루어야만 함을 보여 주었다. 특별히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는 소나 양 염소 등의 짐승을 끌고 성막 앞의 제사장에게로 간다(1: 2-9)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자기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고 칼로 직접 짐승의 목을 찌른다. 그가 칼을 양의 목에 꽂는 순간 양은 비명을 지르고 피가 몸에서 튀겨 나온다. 이로써 죄인은 죄가 있으면 반드시 피를 흘리는 희생물이 있어야만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는 이 제물을 여러 조각 내서 번제 헌물 제단에 태워야 한다. 이것을 통해 죄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 뜨거운 지옥 불의 정죄가 있어서 불의 고통을 받아야 함을 깨닫는다. 이런 일은 또 유월절(12)과 속죄일(23: 27-32)에도 이루어져서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해 흠없는 어린양이나 소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짐승의 희생은 죄를 온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죄를 덮는 역할을 하며 예표의 기능을 했을 뿐이다.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스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희생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지옥의 고통을 다 담당해서 단 한번에 영원한 대신 속죄를 이루셨다(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시대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이라는 중보자가 있었으나 우리 주님께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면서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27:51 6: 19-20) 그분께서 단 한번에 세상의 모든 죄를 영원토록 제거하셨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희생물이나 제사장이 필요 없다(10;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위에서 죽으심이 나의 죄값이라는 것을 믿는자는 지옥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성경은 지옥의 실존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9;17) 사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되

    (23:33) 뱀들아 독사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14;9-11) 셋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 안에나 손 안에 그의 표를 받으면 바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도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낮이나 밤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는도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는 불 못에 던져졌더라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들만 보아도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주께서 주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라고 예수님께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천국에 도착합니다. 피로 인한 구속이 없이는 결코 구원도 없으며 지옥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둘째 부분을 살펴봅니다.

     

    2. 그 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충분성

    이 책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신분에서 벗어나 구속받을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에 그 땅을 두루 다니시며 한 가지를 찾고 계셨습니다.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있는지 없는지를 찾고 계셨다. 피를 바른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고 피가 발랄져있지 않은 집은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저주가 있었다.

    (12;13)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각 집의 대문 위에 있던 단 한 가지만이 모든 맏아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죽음을 저주를 피하는 일에 충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어린양의 피만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유일한 요소입니다. 물론 이 피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그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그를 피의 희생물 받치라고 말씀하신 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22; 7-8) 7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그가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친히 예비하시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두 가지 즉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물론 자기가 예정된 희생물이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손에 든 칼과 자기 아버지가 가져온 불을 보면서 이삭은 자신의 등에 놓인 나무의 무게를 느끼며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헌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자 아브라함의 대답을 살펴봅시다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위 구절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하여 드릴 어린양을 준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이 정확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희생물이 될 존귀한 어린양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셨습니다. 만일 이분이 사람이었다면 이분께서 흘린 피와 희생물이 된 이분의 몸은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의 처벌에서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 피는 반드시 흠이 없고 점 없는 이런 성질의 피를 가진 유일한 사람은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 없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요단 강에서 허리 깊이의 물에 서서 둑에 늘어선 무리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한 곳을 쳐다보았고 예수님께서 둑 아래로 내려오셔서 강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면서 곧바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1:29) 다음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한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갈릴리 사람을 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유다 지파의 사자를 보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표현들도 다 예수님께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실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일에 대해 분명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어떤 사람의 피나 희생적인 죽음도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만이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피를 찬양합시다. 이제 셋째 부분을 살펴봅시다

     

    3.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 구속을 받는 진리의 말씀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인용하는 성경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17:17)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저는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성경의 모든 장의 모든 말씀이 사실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늘에 올리우신 후 예수님의 지위를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존재로 자신의 아들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2: 9-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오직 한 이름 즉 예수라는 이름만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마귀들과 모든 타락한 천사들과 모든 좋은 천사들이 오직 한 분 예수님에게만 무릎을 꿇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영광과 명예를 예수님께 주셨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제가 방금 인용한 구절의 문맥 그러므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방금 말한 사실에 기초하여 그러므로는 절대적인 진리 즉 예수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의해 지극히 높여지지 않았고 우리의 구원자 이외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지 않으며 하나님의 어린양 오직 그분의 이름에 온 세상 만물이 무릎을 꿇고 모든 존재가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이유를 보여 줍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여기의 그러므로는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이제 그 앞의 네 구절을 살펴봅시다.

    (2: 5-8)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체로서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이처럼 최고 위치와 지위에 높이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그분의 권위를 찬탈하는 반역 행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진리 다음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이시고 ....’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죽기까지 복종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이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 복종하시며 자신의 십자가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교수형으로 돌아가셨다던지 만일 예수님께서 독살되어 죽으셨다던지 만일 예수님께서 질식사를 당하셨다면 결코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토록 높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몸안의 피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진술을 통해 이단 목사인 맥아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실 필요가 없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가 효력이 없다면 그분께서는 자신의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도 여러 형태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상태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죽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죄들의 사면이 없다(9:22)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 즉 피를 흘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이런 사실이 절대 무오한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고 죽으신 후에는 로마병정이 창으로 옆구릴를 찔러서 자신의 피를 전 인류의 속죄를 위해 흘리신 것은 확신한 진리입니다.

    맥아더목사의 교리는 순전히 이단 교리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셨다면 가련하고 무능하고 희망없이 버려진 죄인들을 구속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맥아더와 딤과 또 그들과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악한 이단 교리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의 나머지 생애 동안 제가 값없이 구속받은 것을 계속해서 찬양할 것이며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그것을 찬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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