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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끝마치는 자말씀 2018. 4. 29. 15:41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끝 마치는 사람 갈 3:1-5
박태선 장로가 창시한 전도관은 63년 전 1955년 서울 남산집회, 영등포 집회, 한강 백사장집회 등 전국적인 대형 집회를 시작하면서 종교계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기독교계 신흥 종교이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대다수의 전도관교인들은 “그 당시 한국의 기성교인 중에 한 번이라도 천막집회에 참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기성교회의 목사들 2000여 명이 박태선 장로에게 안찰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서 한국기독교연합회(N.C.C.)는 박태선 장로의 새로운 신앙운동이 ‘사이비’ 종교운동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1956년 3월 15일 경기노회에서도 박태선 장로를 이단으로 규정해 버렸다. 박 장로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흩어지고, 단 80명이 남아서 원효로에 있는 박 장로 자택에서 ‘전도관’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전도관수는 전국적으로 300여개나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박태선 장로는 자신이 "성경 호세아 14장에 근거하여 이슬성신을 처음 내리는 ‘감람나무’이고, 이사서 41장에 ‘동방’, ‘땅 끝’, ‘땅 모퉁이’로 묘사된 것을 인용해 자신이 동방의 의인으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온 감람나무 하나님’임을 발표하면서 전도관이라는 교회가 생기게되었다. 박태선장로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대형집회에서도 이적을 행하였던 것은 인정하더라도 나중에 그의 모습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자신을 육신으로 온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십자가를 지우고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 상을 지붕위에 단 것이며 전도관에서 부른 찬송이 박태선을 찬양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박태선은 자칭 감람나무 하나님이라도 인간인지라 1990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영혼이 무덤으로 내려간 후 불타는 지옥에 가서 고통받고 있으리라고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세운 신앙촌은 신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1957년부터 박태선의 주도로 경기도 부천시, 경기도 남양주시,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신앙촌이 건설되었으며, 2000년 이후 제1, 제2신앙촌이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부산 기장신앙촌이 남아있다. 이와같은 신흥종교인들을 향해 사도바울은 뭐라고 이야기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봤다. 마침 아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고자 하느냐?”(갈3;3) 교주 하나 잘못만나서 수많은 영혼들이 함께 지옥무저갱에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땅에는 제2의 박태선같은 이만희, 문선명, 유재열등 자칭 하나님이라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수많은 이단들을 향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의 어리석은 자들아 감람나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생각해 봐라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고자 하느냐?”(갈3;3)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아 기뻐하는 모습을 기억하는데 바울이 그들을 떠나온 후 지금 들리는 말로는 은혜와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해 지혜가 없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성령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냐고 근심어린 마음으로 갈라디아서를 기록 하였던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갈3:11)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의 모든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시작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떠나는 순간 사단의 미혹을 받기 때문에 미련한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미련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사단에 속아 거짓된 인생으로 전락되는 것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1:22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그러면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1.어리석은 자의 특징.
(1)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침
마라톤은 처음에 1등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완주하여 골인점에서 1등이 진짜 일등이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상속 받았어도 다 잃고나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어 비참해지는 것이 성경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등잔불이 계속 타려면 기름을 계속 공급하듯이 예수믿는 사람들도 성령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앙이 좋을 때는 은혜가 넘쳐나지만 죄를 짓게 되면 성령이 떠나가고 신앙은 하나의 형식적인 모습으로 남게 된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우리들도 불순종하게 되면 성령님이 떠나가고 열정이 식어지고 모든 것이 형식적으로 되어 결국은 비참한 모습이 된다. 비참한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살전 5:19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소멸치 말라) 하였는데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가 성령을 소멸하면 다시 옛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이란 육체가 살아있는 이상 자기 자존심, 견고한 자기 이론, 고집 - 이런 것을 죽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육체로 다시말하면 옛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이 땅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어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영광을 누리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순간에 성령이 떠나고 다시 옛생활로 되돌아 가기 쉬운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갈라디아교인들도 바울이 있었을 때는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인데도 바울이 없는 동안 다시 옛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성령 받고 금방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오래된 사람일수록 성령 충만해야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으면 몇일짜리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사람이 어느날 딴 사람으로 변하였다면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를 마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베드로후서에는 이런 사람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벧후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벧후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예수님 말씀하셨다면 지옥갈 바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2) 의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사도야말로 - 예수님 믿고나서 엄청나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도 갇혔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에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도 있었고 셋째 하늘 낙원에 올라갔던 것같이 우리에게도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날마다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에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죽음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왜 육체에 빠집니까? 바울이 떠나자 유대주의와 싸워 이길능력이 없으니까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과 고난은 은혜를 유지하는 안전 방패막이 된다. 주님을 위한 훈련과 고난받는 것을 싫어하면 성령님이 떠나고 사단이 틈을 탑니다. 훈련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꼭 이렇게 해야하는가?'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감당하지 못할정도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삶도 편하지 않습니다. 612개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보다 몇십배 어렵습니다. 그들이 더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면서도 힘들어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의 영광이 나타나고, 자기의 공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힘들다 하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들 편하게 살것 같습니까? 더 바쁘게 세상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은 천국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쓰지 않는 인생들은 돈과 시간, 에너지는 어디에 쓸까요? 모두 심판거리, 세상을 위해, 죄 짓는데 사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갈라디아교인들도 예수님 믿으며 고난받는 삶이 싫어서 율법주의로 갔습니다. 바울과 함께 있을 때는 조금만 고난받아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율법으로 선한 행위로 살면 힘들어도 불평이 없습니다. 자기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썩어갈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면 고생해도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3) 믿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감 (5)
너희가 지금 은혜를 받은 것이 믿음으로냐? 율법으로냐? 과거에는 음란, 거짓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율법을 지키다가 믿은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은 것이냐?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선한 행실로 살다가 믿게 된 것인지.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믿게 된 것인지 따져보라. 이전처럼 죄만 짓고 살았던 인생이 예수님을 믿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지?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율법을 행하여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았느냐? 아무 종교의식도 행하지 않고 예수를 믿음으로 너희의 인생이 변화되었는가? 너희들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는데 내 고집과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마치 낡은 가죽부대에 갇혀있는 인생과 같습니다. 2년이 되고 3년이 되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살이 강한 곳에 그냥 가만히 서있을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며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이에 비해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 갈수록 인격이 성숙해지는 사람. 계속 성령충만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느기간동안 성령의 역사로 수렁에서 건져냄을 받고 그렇게 변화되었어도 떠날때는 교회를 욕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육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회가 웅장하고 교회 성도들이 많아질 수록 구원받는 사람도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틈새로 안주하는 종교인들도 많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사람은 뽑힙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지 않으면 세속주의나 인본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 인생은 성령 받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인의 속성이 나타납니다. 처음받은 은혜를 유지만 해도 귀한 일꾼이 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현대판 홍길동이라 불리기도 했던 대도 조세형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 저택만을 대상으로 수억원대 금품을 털어서 일부 금품을 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해 현대판 홍길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대도였습니다. 그 후 경찰에 체포되었고 1983년 4월14일 오후 3시 조세형은 서울 서소문 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구형공판에 출석한 직후 화장실다녀오겠다고 한 후 구치소 환기통을 뜯어내고 법원담을 넘어 세탁소에서 솟옷을 갈아입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그의 탈주가 성공한지 몇 시간만에 온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1983.4.18 조세형은 희대의 탈주범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결국 1년 뒤에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게 형을 마친 후
1998년 11월에 출소할 때 당시 당담 검사였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그에게 성경책을 주면서 전도하였기 때문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등 착실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조세형이 잠시나마 회심하게 되어서 신학공부한 후 목사 인수를 받아 2000년에는 간증을 다니는 등 변화된 삶을 살았다. 또 범죄관련 특강도 하며 '범죄예방 전도사' 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던 조 씨는 2000년 11월 신앙 간증 차 일본에 갔다가 빈집에 들어가 금품을 털다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 6개월의 복역한후 2004년 3월 귀국했다.
하지만 대도 조세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며 귀국한지 1년후 다시 모 치과의사집에 침입하여 절도행각을 벌였다가 경찰에 검거되는 등 교도소에서 들락날락거리다가 2013년 나이 75세가 된 대도 조세형이 또 예전에 버릇을 못고치고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털다가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한 때 개과천선하여 좋은 성도가 된 줄 알고 기뻐했는데 이렇게 된 조세형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2.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
우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을 성경을 통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사울 왕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고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선망과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 1절은 “그 때에 사무엘이 기름 한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이르되 주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자신의 상속백성을 다스릴 대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이 아니냐”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용감한 투사가 되어서 이스라엘에 쳐들어오는 암몬족속을 멸하고 해방을 갖다 준 위대한 장군이요, 임금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이 어떻게 하여 타락했습니까?
그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푹 빠져 버려서 세상이 들어오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만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와서 그를 점령하매 악령에 몹시 시달렸고 자기 신하겸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10년동안이나 골몰하였으며 결국에는 블레셋과 전투에 나가서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당한후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람이 너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이 바로 사울 왕인 것을 알 수 있다.신약에서는 가룟 유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가룟유다는 지혜있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 중 가룟 유다를 신뢰하셔서 돈 궤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점점 마귀의 탐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육신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돈주머니를 맡았는데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5- 6에 보면 “5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므로 가방을 맡아 그 안에 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더라”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그는 또 안목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그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 독립을 가져와 영웅이 되고 싶은 불순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안목의 정욕의 시험에 빠져서 그는 하늘나라보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그 가운데서 자기가 영웅이 되는 것을 더 기대했습니다. 그는 정마로세상 탐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 부귀, 영화를 꿈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천국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겠다고 하니 분노했고 그 분노가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해서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돈이 필요해서 판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서 종을 사고 파는 금액인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가룟 유다 속에 마귀가 들어가매 그가 예수님을 팔았던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야말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육체로 마친 대표적인 신약의 인물인 것입니다.영국의 유명한 부흥사 로렌드 힐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돼지 떼가 한 사람을 따라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호기심에 그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돼지가 모두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힐 목사님은 돼지를 이끌고 온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콩이 담긴 바구니를 가지고 걸으면서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돼지들이 그 콩을 주워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자신도 모르게 도살장으로 얌전하게 들어옵니다. 마귀의 수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성도들 주위를 맴돌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콩을 떨어뜨립니다. 경계하지 않고 주워 먹는 사람은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쾌락은 가장 완전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마귀의 전략임을 알 수 있다.
3. 우리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는 마귀
마귀는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의 제일의 무기는?
(1) 이번 한 번만
중세기 유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악마의 두목이 작은 악마들에게 '인간을 파괴하는 무기'에 대한 현상 공모를 냈다. 1등으로 당선된 묘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번 한 번만 하고 절대 안 할 자신이 있다.'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기에 대하여 자신이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한 번의 선만 무너뜨리면 조만간 자멸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마귀가 당신을 공격할 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성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2) 마귀를 대적하는 말씀 :
‘벧전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울 왕의 문제도 가룟 유다도 마귀가 유혹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 대적을 안했습니다. 마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라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근신(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는 것)하는 것이다. 마귀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약함을 이용해 넘어뜨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마귀는 끈질긴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은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깨어 있음으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깨어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 마귀를 대적하라. 당신과 같이 유혹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고 주를 의지하여 마귀와의 싸움을 이기라.
시편 44: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이 말씀은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을 통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전쟁의 궁극적인 승리가 되심을 기억하라. 믿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도우심을 구할 때, 자신감을 갖고 마귀를 밀치고 이긴다는 것이다.
역대하 20:15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기독교인이 마귀와 친밀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시험과 도전에 직면했을 때 나는 안된다는 회의감이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은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으며 당신이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라. 사단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상처 입히는 것이다. 만약 마귀가 당신의 믿음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굉장히 아프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용기를 갖고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구절 중 또 한 가지는 바로 이 구절이다.
당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갖고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없다.
당신이 그분을 의지하고 믿는 한 그분은 당신을 실망시키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마귀와 더 쉽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마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주변에 방패를 두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마귀와의 전쟁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무기가 되게 하고, 당신 안에서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육체의 일로 시험 당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40주 40야 금식했으니 얼마나 주리겠습니까? 그때 사단이 와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으로 배고픔부터 해결라고 했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사단이 얘기한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권능을 사용해서 돌이라도 떡을 만들어 굶주림부터 채우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적했습니다.
그 다음 안목의 정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다. 마태복음 4장 5절과 6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대로 순순히 높은 꼭대기에서 뛰어 내렸던 것이 아니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마귀가 이 세상의 자랑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권력을 다 주겠다’ 이 번에도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왜 세상 부귀, 영화, 권세를 다 얻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가 어떻게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마귀는 세상 임금이라 마귀를 따라가서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되 그대신 영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영혼을 바치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되 영원한 지옥불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귀, 영화, 공명을 영혼과 바꾸는 것입니다. 마귀가 공짜로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시험한 것도 그것입니다. “네 영혼을 내게 맡겨라! 나에게 엎드려 절하라! 그러면 부귀, 영화, 공명을 주겠다” 사울도 거기에 굴복했고, 가룟 유다도 굴복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적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대도 조 씨가 당한 시험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것은 조 씨는 마귀를 대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났지만 신앙이 미숙해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할 때 마귀를 물리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조 씨에게 육신의 정욕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야∼ 쉽게 돈 버는 것 알지 않느냐. 네가 담만 뛰어 넘으면 하루 저녁에도 수억씩 손에 쥐지 않았느냐? 지금도 돈이 필요하지? 그가 마귀를 대적했으면 ‘마귀야 기록 하였으되 도적질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랬더라면 그 마귀는 물러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씨는 대적하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듣고서 담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사람이 쉽게 돈 버는 것에 물이 들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그는 또 안목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즉, 교만입니다. 마귀가 속삭입니다. “너는 절도 전문가 아니냐? 너 벼락같이 담을 뛰어넘고 창문을 털고 들어가서 훔친 과거 있지 않느냐?” 마귀가 꾀니까 자기도취에 빠져서 “그렇지! 내 기술을 당할 자가 누구냐?” 그리고 마귀는 이생의 자랑으로 꾀었습니다. ‘야∼ 너는 사람들이 홍길동 같은 사람 아닌가! 너는 보통사람 아니다! 너는 대도다!너는 영웅이야, 영웅!’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마귀의 속삭임에 우쭐했습니다.
‘그렇지∼ 나는 영웅이지. 나는 온 천하가 다 아는 대도야! 현대판 홍길동이야’ 그런 착각에 빠져서 그는 그만 죄를 짓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고 말았습니다.그렇게 세상이 축하하고 교회 교회마다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성령의 은혜가운데 간증까지 했던 그가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육체로 마치고 만 것입니다. 조씨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19절로 22절에 “그들이 저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신들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사람이 누구에게 정복되면 바로 그 사람에게 속박되느니라.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것입니다.
4.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보호를 받기 위해서 율법과 계명이란 철책을 주었습니다. 산길에 위태로운 절벽에는 철책을 쳐놓았는데 만약 철책을 넘어가면 낭떨어지기에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안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이 철책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말씀과 계명의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우리는 크게 상처를 입거나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이요, 계명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철책을 쳐놓았습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이 철책을 무시해버리고 뛰어 넘었습니다. 마귀가 ‘이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뛰어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끌려서 그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철책을 무시하지 말고 뛰어 넘지 않았으면 보호를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시편 89편 31절로 32절은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 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 다음 항상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하여 영적으로 소생하고 성령님과 교통하여 육체의 소욕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면 육체를 통해서 오는 시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는 데로 다 넙죽넙죽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가져오는 것은 대적해야 합니다.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있고 성령이 충만하고 흉악한 자를 대적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적막의 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뱃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적막의 섬에서 들려오는 요정의 노래 소리였습니다. 선원들이 밤중에 배를 타고 이 섬을 지나가면 사람의 간장을 녹일 듯한 요정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노래 소리에 귀를 가만히 귀울이던 뱃사공들은 모두다 한 사람 두 사람씩 그 요정에게 가기 위해서 물에 뛰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빈 배만 물에 둥실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막의 섬을 지나갈 수 있는 배가 없었는데 꼭 배 한척은 적막의 섬을 지나다니면서도 희생자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묻자 선장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요정의 노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우리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노래를 하도 크게 부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귀를 울려서 요정의 노래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에 뛰어 들어가지 않고 무사히 지나갑니다”마귀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속삭입니다. 육신의 정욕의 소리, 안목의 정욕의 소리, 이생의 자랑의 소리로 속삭입니다. ‘내말 들으면 너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재미를 볼 수 있다. 이리로 오라’ 그럴 때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외우면 그 마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유혹의 소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압도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이 목소리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마귀의 유혹이 있을 수록 더 크게 기도하고 더 크게 찬송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시험에 안 드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큰소리 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조 씨와 같이 그런 시험에 다 들 수 있습니다. 조 씨는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또 하나님이 용서하여주시고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심판하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듦으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조 씨와 같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시험에 빠져 죄를 지었더라면 즉시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조 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입니다. 나도 언젠가 한순간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계하지 않으면 똑같은 마귀의 시험에 빠져 범죄 하게 됩니다. 더구나 과거 깊은 죄악의 늪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꼭 그 마귀가 약점을 알고 찾아 유혹합니다. 옛날에 도박하던 사람, 옛날에 주먹쓰고 싸움하던 사람, 도둑질하던 사람, 음란한 사람이 그것을 씻고 나왔으나 마귀는 그 약점을 알기 때문에 또 와서 유혹을 합니다. 마귀는 두 번 세 번 꼭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계명의 철책을 쳐야 됩니다. 마귀가 뛰어넘지 못하고 나도 뛰어넘지 못하게 말씀과 계명의 철책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내 마음에 이와같은 계명의 철책을 쳐놓고 내가 뛰어넘어가지 않으면 마귀도 뛰어 넘어오지 못합니다. 마귀가 오면 단호하게 이 철책에 서서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도적질하지 말라.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기록하였으되 탐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대적을 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마귀와 협상하면 안됩니다.
항상 계명을 마음 판에 새기고 자신을 뒤돌아 보고 이웃을 돌보아 주며 시험이 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를 갖고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간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항상 믿음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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