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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녹 300년간의 동행
    인물 2018. 1. 26. 23:45

    에녹 300 년간의 동행

    에녹(히브리어 חֲנוֹךְ,영어: Enoch)은 히브리 성경과 구약 성경에 의하면 아담의 계보(Generations of Adam)에 속한 인물이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 5장에 따르면, 에녹은 아담의 6대손이며,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의 5대손으로 가인의 계보가 아닌 셋의 계보에 속한다. 또한, 에녹은 야렛(Jared)의 아들이며 성경의 최장수 인물인 므두셀라(Methuselah: 969년을 살았다)의 아버지이며 노아의 증조 할아버지로 나온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 4장에는 "에녹"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은 가인의 아들이다.

    창세기 5장에는 각 인물들이 주로 누구의 자식이며 몇 해를 살다가 죽었는지가 기술되어 있는데, 죽음에 대해서는 "죽었다(died)"라는 낱말이 명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에녹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죽었다(died)"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t; for God took him)" (창세기 5:24, KJV). 전통적으로, 이 진술은 에녹이 아담의 다른 자손들과는 달리 죽음을 겪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에녹은 믿음으로 하늘로 옮겨져서 죽음을 맛보지 않았습니다(By faith Enoch was translated that he should not see death)"라고 말하고 있다(히브리서 11:5, KJV).

    히브리 성경과 구약 성경에 기술된 에녹에 대한 진술이 아주 짧음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기원전 1000년 동안의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취급되었는데, 특히 《에녹 1서》·《에녹 2서》·《에녹 3서》의 에녹서들의 중심 인물이다. 에녹은 일부 기독교 교파들에서 중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Armenian Catholic Church)에서 에녹은 이들 교회의 교회력(Calendar of Saints)에서 축일이 7월 30일로 등재된 성인(聖人 · Holy Forefather)이다. 또한 에녹은 후기성도 운동(Latter Day Saint movement)의 전통들에서, 이들 중 특히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전통에서 중요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은 에녹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히 11:6)고 말합니다. 에녹이란 이름의 뜻은 “시작하는 자, 봉헌된 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아담의 7대 손이었으며(유 1:14), 셋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 야렛이 162세에 낳은 아들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에녹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성경에는 또 하나님과 동행(同行)한 사람이라 할 때 오직 두 사람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는데, 한 사람은 노아요(창 6:9), 또 한 사람은 바로 에녹이다(창 5:24).

    성경은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나서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한다(창 5:22). 이것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럼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에녹에게 어떤 계기가 된 것일까요?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 아마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던 것 같다(유 1:14-15).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969세까지 장수한 므두셀라는 그 이름의 뜻이 “그가 죽으면 보낸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을 보내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969세까지 가장 장수하였던 므두셀라가 노아 홍수가 일어나던 그 해에 죽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므두셀라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계시하셨던 홍수의 심판이 왔던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노아 홍수 이전이라서 사람들이 극도로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자기 쾌락대로 살았다. 그래서 죽기 전에 실컷 놀고 먹고 즐기고 누리자고 생각하여 방탕하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에녹은 그들과 같이 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라고 말합니다. 즉 두 사람이라도 함께 동행하려면 서로 생각과 뜻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살아도 서로 생각과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동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나의 뜻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또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의식하며 사는 임마누엘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부흥사로 알려진 이성봉 목사의 영성은 한마디로 “임마누엘의 영성”이었다. 그분의 좌우명은 “순간 순간 주(Lord)로 호흡, 일보 일보 주(Lord)와 동행”이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는 훈련을 했는데, 한순간도 예수님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다녔다고 하고, 또 물을 마실 때에도 성부, 성자, 성령을 기억하며 세 모금씩을 마셨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장소는 교회 안뿐 아니라 일상 생활 가운데에도 이루어져야 한다. 에녹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준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21-22).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육적인 생활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영적인 생활이다. 자녀를 많이 낳은 에녹이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는가? 자녀를 보고 손주를 보고 증손주를 보고 그들을 돌보고 양육하며 신경쓸 일이 많았을 것이다. 에녹은 당시 죄악이 만연한 시대에 집안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며 바쁘고 할 일이 많았지만, 일상의 평범한 상황에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의 대단한 업적은 성경에 없지만, 그는 가정에 충실하며 일상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저와 여러분도 에녹처럼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며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다는 에녹서를 영감된 것으로 믿었는가?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4ㅡ15절)

    유다는 외경 에녹1서에서 14-15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책은 제1세기 교회에서 폭 넓게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원래는 아람어로 회람되었으나 아마 히브리어로도 회람되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사해 사본 가운데 아람어로 기록된 본서의 단편들을 발견하였다. 학자들은 유다가 에녹1서의 아람어 사본을 참고해서 그가 이 서신을 위해 필요한 구절을 헬라어로 번역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유다는 왜 정경서가 아닌 에녹일서에서 인용하고 있는가?

    유다는 그와 그의 독자들이 잘 알고 존경했던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썼으며 그것은 기독교 진리의 전달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에 현존하는 것이다.

    이런 외경의 문서들은 신약의 많은 말과 사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크게 받은 것들이다. 특별히 에녹1서에서는 마태, 누가, 로마서,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과 사상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들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다는 에녹일서에서 인용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에녹일서는 영감 된 책인가?

    리크(Reicke)는 에녹서는 공식적으로 유대인이나 크리스천들에 의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유다가 이 책을 영감 된 것으로 간주한 것은 분명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은 성령께서 저자를 충만케 하시고 그에게 성경을 쓰도록 지시하셨을 때 발생하였다(벧후 1:21). 성령은 빌어온 말들로 영감시키시며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부분이 되게 하시는데 자유로우시다(예, 행 17:28). 따라서 여기 유다가 에녹서에서 빌어온 말들에도 성령께서 영감하셨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에녹일서 자체가 영감되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성경 저자들은 그들이 어떤 자료의 원천에서는 인용하려고 할 때 그 부분이 영감 된 것이 아니라도 진리일 때는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성령의 간섭과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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