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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2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지옥의 고통
    말씀 2019. 10. 13. 15:55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고통 16:19-31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면서 바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끝나게 되는데 누구나 한번쯤을 인생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뭔가 착한일도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확언하건데 인류역사상 죽음을 이겼던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는 없다. 그가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죽은지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를 믿는 우리들도 부활할 소망을 갖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생들은 죽음을 이긴 주 예수그리스도를 알면서 부터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바른 정체성과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고자 오늘도 묵상을 하면서 말씀을 생각해 본다.

     

    1.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성경은 많은 민족의 샘플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이미 성경을 통해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브라함을 통해 선택된 이스라엘 자손들은(15: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집트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선택된 자로서 이미 구원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이를 모른 채 아무런 꿈도 비전도 없이 애굽에서 멸시를 받으며 살았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입니다(1:4).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속에서 운행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도 믿지도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하여 약속된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홍해바다를 건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였으며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받았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도록 인도하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만 당하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잊어버리고서 절망가운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천국을 향해 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여 주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로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옛날 이스라엘백성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도 함께 하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건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낙심과 절망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땅을 직접 보여주시고자 각지파의 대표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민수13:26-27 26에는 그들이 바란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과 온 회중에게 말을 전하고 그 땅의 열매를 보여 주며 27 모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우리가 간즉 참으로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열매이니이다. 그들의 증언함과 그들이 가져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겉으로 들어난 견고한 성과 장대같이 큰 아낙자손들의 이야기만 듣고서 다시 그들은 부정적 자아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의 어려운 상황과 우리들의 부족함만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 약속된 축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의심하다보면 언제가는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속에서 행복을 잃고 갈등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는 법으로도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행복추구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말 행복이 무엇일까? 정말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가?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그 느낌이 정말 행복이라 말 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행복해 보이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복이 곧 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세상사는 그런 것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보면서 불행해 빠지기도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불행과 실패의 늪에 빠져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도면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없으며 행복해 질 수 도 없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일시적으로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영원하고 진정한 행복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고 관계로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소유나 지위나 우열에 두지 않고 사랑의 관계에 있도록 디자인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과 이웃과의 성숙한 사랑의 관계 속에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얻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을 느끼면 사랑을 줄 때 비로소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성령님이 내 속에 계시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느끼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을 믿는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이 땅의 것으로만 으로는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까지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 대해 히브리서 927절에서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였는데 인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것이며 그 심판이란 다른 말로 말한다면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 언제 오는가? 누구에게나 죽음은 예상치 못하게 오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앞에 가는 큰 화물차에서 갑자기 줄이 끊어지면서 장대같은 나무들이 당신의 차 유리창을 깨면서 날아 들어와 운전하는 당신을 가하였다고 하면 당신의 생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였을 것이며 실제로 죽음은 이처럼 예기치 않게 갑자기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끔찍한 예가 아니더라도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사망한 원인이 둘 중 한 명은 암이나 심장·뇌혈관 질환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사망한 한국인 둘 중 한 명은 암, 심장·뇌혈관 등인데 사망원인으로는 암이 가장 많았으며 육류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대장암 사망률이 위암을 앞질렀다. 그리고 남성의 암 사망률은 여성보다 1.6배 높았다. 사망원인 부동의 1위인 암을 세부적으로 보면 암 사망률은 폐암(35.1), 간암(21.5), 대장암(16.5), 위암(16.2), 췌장암(11.0) 순으로 높았다. 작년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4천명으로 하루 평균 38명 정도가 자신의 목숨을 살해한다. 위의 이야기는 당신이 오늘 죽을 수 있는 수천가지 경우 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특히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도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 오는 죽음에 대한 준비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장 두렵고 무서운 고통일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을 피해 숨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죽음이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가 너무 많으므로 인간은 늘 불안합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죽어야 복된 죽음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0년 전에 국제심장질환의 전문가인 모리스롤링스 박사가 지은 책 죽음의 문 저편이라는 책이 발간되어서 세상사람들에게 사후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롤링스 박사는 임상학적으로 죽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켰던 심장전문의사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롤링스박사는 평소 생각이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없는 소멸이라고 생각했으나 1977년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에게 온 환자 중 한명이 지옥 불꽃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쳤던 한 남자를 소생시켰던 일을 기억한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는 지옥에 있었다면서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자신에게 간청했는데 그는 지옥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지옥공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을 썼는데 죽음의 문 저편이라는 곳은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을 말하는 곳이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경고는 162번이나 기록되었으며 이중에서 70번은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보기로 하자.

     

    (13:42) 그들을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23:33)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 겠느냐?

    (25:41)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9:48)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16:24)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14:11)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이상의 말씀은 지옥을 온전히 알고 계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으며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지옥 가게 되었을 때는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로 지옥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려주는 곳이 민16:32-33에서는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인 고라 단 아비람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들은 모세를 대적하다가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이 산채로 스올(구렁)로 내려가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불이 나오더니 그들이 그 불속에 빠져들면서 다시 갈라진 땅이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고 한 것은 그들이 산채로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가는 인생들 누구나 심사숙고해야 할 것은 당신이 천국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이땅에서 사는 동안 깊이 상고해야 한다. 만약 아무 대책도 없이 살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져 대성통곡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지 않을 기회는 살아있을 때만 딱~한번 뿐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곧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죄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겐 엄중한 지옥심판이 있을 뿐이다. 지옥은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영원히 타는 유황 불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장소이다.

    살아있을 때는 어떤 큰 죄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나 죽은 후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만이 그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가 있다. 설마하지 마라. 천국과 지옥은 진짜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구원받지 못한 수백만의 영혼들이 지옥불속에서 고통가운데 울부짖고 있다. 그들이 부르짖는 지옥의 고통과 비교할 만한 것이 지구상에는 전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지옥고통을 알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지옥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받는 곳이라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는 어떤 악몽도 지옥의 고통과는 견줄 수 없다. 어떤 공포영화도 지옥의 두려움을 그려낼 수 없다. 시뻘건 선지피가 뒤범벅이 된 끔찍한 범죄현장도 지옥의 공포에는 비교될 수 없다.

    이런 지옥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경고를 하셨다.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지옥으로 향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다. 70억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에는 매일 매일 240,000명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신도 곧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오늘 지옥으로 보내시지는 않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이 당신에게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는 당신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오늘 죽어도 될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전원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무서운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당신의 탐욕적인 육체는 세상에서 한 순간 살지만 지옥에서 당신이 받는 고통은 영원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쾌락을 다 즐긴들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이세상의 삶은 1초 보다도 짧은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죽음에 대한 주님의 엄중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서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 따라 다니고 사람의 칭찬을 듣기 좋아하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세속적 태도로는 하나님앞에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볼 수 없는 그곳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지옥에 온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는 장소이며 사람들은 그 고통을 면하고자 죽고 싶어 하지만 죽을 수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1. 누가 지옥에 가는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진리를 경멸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은 불신자라면 누구도 지옥의 신음과 고통 소리에 예외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살아있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인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며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27)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이 있으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하신 손에 빠져드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세속적인 삶과 죄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의 육적인 즐거움에 빠졌다가 영원한 지옥에 갈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정말 어리석은 자이면 처절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들 앞에 높이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물질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 인정을 받았어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한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요즘말로 번역하면 어느 부자는 최고의 값비싼 자주색 패션의 옷과 예날 임금들이 입었던 아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이 부자처럼 비싸고 좋은 옷 입고 날마다 잘 먹고 지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런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자는 재물이 많고 인정도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사후에 대한 소망 없이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나 쾌락적인 일에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처럼 어리석은 인생이고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부자와 그 집 문간에서 거지로 살아가는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나사로라는 말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을 가지 이름이니 그 이름에서 보았듯이 그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 믿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그 부자집 문간에서라도 그 부자집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어느날 원치 않은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거지도 부자도 다 죽음이 저들을 이 세상에서 갈라 놓았습니다.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이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이처럼 사후의 세계는 살았을 때와 전혀 다르게 존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계속하여 부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엄청난 괴로움을 받고 있는데 그 고통속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24.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하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과연 도움이 허락될까요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한마디로 부자는 자신을 위해서 호위호식한 것 밖에는 내세에 대하여 준비한 것이 없으니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과 지옥사이는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손가락에 찍어서 물 한방울도 허락이 안되었지만 두 번째 요청을 하는데 세상에 남아 있는 5형제들에게 제발 누군가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라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러나 두 번째 요청도 거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각자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정말 지옥을 얘기하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1.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진리중의 진리는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는 말입니다. 죽음에는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에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아도 사망이 보통 때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도 않다가 어떤 때는 사망이 보일 듯 말듯 하다가 또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바깥마당까지 와 있다가 그 다음에는 안마당 가까이 와서 어슬렁거리다 어느날은 창문에서 앉아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목숨 앞에 서서 목을 조이며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사이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간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지고 참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돌아오지만 그 장례식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나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먼저 가고 조금 나중 갈 뿐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죽는 데는 예수를 믿던 안믿던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정말 공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관련하여 사람들이 지나치는 몇 가지 있습니다.

     

    (1) 사람은 떠날 시간을 모른다.

    사람들은 백년도 살기 어려운데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때로는 싸우고 미워하고 욕심 부리며 치열하게 다툽니다. 이는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땅뺏기 놀이를 하면서 서로 땅을 많이 뺏기 위해 다투다가 해가 지고 부모가 얘들아 집에 돌아가자 하면 그 많이 빼앗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을 잊고서 인간은 이처럼 조금이라도 더 차지 할려고 이웃과 형제들과 치열하게 다투고 싸우고 있습니다. 왜내하면 아직 떠날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러나 만일 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밖에 생명을 유지할 시간이 없다는 사망경고를 들었다면 그런 사람은 이제 이웃이나 형제들과 다투던 것들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남은 삶을 깨긋이 정리하기 위해 누구에게 빚진 것이 있나? 화해하지 못한 것이 있나? 누구를 힘들게 하지 않은 것이 있나 등을 생각한 후에는 정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죽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준비하고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움켜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 갑자기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 사망에 대한 초정장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2) 죽음 이후 신자와 불신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

    16:22-24 이 땅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의 삶도 극과 극처럼 달랐지만 죽어서도 너무나 극과 극처럼 차이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었을 때 나사로는 부자집 대문에서 거지로서 먹는 것이나 잘 곳도 마땅치 않았을 뿐더 몸도 피부에 진물이 날 정도로 헐어서 개들이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면서도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고 지냈던 나사로는 어느새 일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 되니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얼마 안있다가 사망권세가 부자에게도 찾아왔습니다. 평소 매일 친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고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냈지만 사망은 그를 빗겨가지 않았고 친지들이나 가족들로부터 그를 갈라놓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퍼했는지 모두가 애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평이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해선 별 관심 없었습니다. 그는 현세의 먹고 마시는 일엔 관심이 있었지 내세의 삶에는 전혀 신경써 본 적이 없었다. 이 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속에 아주 엄숙하게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고 그가 묻힌 무덤도 양지바른 명당이라는 곳에 묻혔지만 정말 그의 사후의 세계는 어떻한가 봅시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나라로 갔는데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다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천사들에 이끌려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부자는 어디로 갔는냐 하면 그가 간 곳은 음부라고 하였습니다. 음부는 불신자들이 가는 곳으로 낙원과 대조되는 말로 지옥을 말합니다. 캄캄한 음부,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지옥에 간 부자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봅시다.

    부자가 있는 음부는 어떤 곳이냐 하면 뜨거운 불꽃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 불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3:49) 49 천사들이 와서 의인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불(영원한 멸망의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음부가 불꽃으로 가득찬 곳인데 그 불꽃이 풀무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풀무풀은 철을 녹일 수 있는 아주 뜨거운 용광로의 불과 같은 불입니다. 이 불에 대하여 막 9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지만 그 불에 무엇이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닌 영원히 불타는 곳으로 고통만을 주는 뜨거운 지옥불입니다.

    (9:48-49)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그런 뜨거운 불타는 지옥에서는 누구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이런 지옥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옥불꽃 속에서 고통받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 부자는 물한방울 만이라도 손 끝에 찍어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절망적입니다. 한마디로 지옥은 자비와 긍휼이라는 것은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절망 그자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모든 사람은 죽은 후 천국과 지옥 중 어는 한 곳으로 간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인 완충지대나 중립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연옥이라 하여 죽은 자를 위해 살아 있는 가족이 선을 행하면 지옥에서 연옥이라는 곳으로 옮겨 간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고 안 믿고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다. 이제 부자가 이처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옥의 실상을 알아보겠습니다.

     

    2. 지옥의 실상

    (1) 지옥은 불타는 곳이다.

    인간이 참기 어려운 고통중 하나가 살이 불에 태웠을 때 느끼는 화상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난 부자는 지금 불꽃가운데서 있다고 하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 내가 이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3:49) 49 천사들이 와서 의인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불(영원한 멸망의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지옥불은 계21:8에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라고 밝혔는데 지진이 일어나는 지대는 유황가스가 분출하기도 합니다. 유황가스는 조금만 마셔도 불쾌하고 우리 목숨을 끊는 무서운 독가스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유황가스가 계속 타는 불못이라는 것이니 뜨겁기도 하겠지만 불쾌한 유황가스를 맡는 곳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지옥불은 꺼지지 않는 뜨거운 형벌의 불이라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울면 소리치는데 그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했을 걸 하는 후회하는 소리만이 애처롭게 들려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으로 가는 가롯유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지옥갈 인간을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보내고자 오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만나야만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3. 둘째 사망을 당한 영혼들이 지옥에 간다

    지옥을 가는 자들의 리스트가 계시록에 나옵니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부자가 왜 지옥에 갔는지 잘 보여 준다. 지옥에 간다는 것은 두 번째 사망을 당한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1)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두 번 사망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이땅에서 한번 사망하고 그 영혼이 지옥 간다면 그는 두 번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한번 사망하면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는 자들인데 그들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살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말라 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제일의 자살국가로 떠올랐습니다.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고 톱스타들이 자살하니 그들을 따랐던 일반사람들이 자살을 모방하다보니 세계 제일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자살한다고 문제가 덮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자살할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살인한 사람이 어찌 천국에 가겠습니까? 자살은 이유가 어떻든 모두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살을 미화시켜서는 안됩니다. 살인자를 비롯해 행음자들, 우상숭배자들, 술객들, 거짓말하는 자들이 음부로 가는 것입니다.

     

    (2)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

    물질이 많은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물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물질로 인생을 연락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거나 향락에 빠져 하나님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로 부자는 지옥에 간 것입니다. 소유한 물질이 많으면 오늘 본문의 부자처럼 세상일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관을 갖고 있으면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믿는데 전혀 방해가 안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이 없고 내가 물질의 주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섬길 시간도 없거니와 결국 물질에 노예가 되어 지옥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이나 물질이나 그 어느 것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줄 압니다.

    지옥에 간 사람치고 사실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모든 수단을 써서 지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자도 사후에 세계에 있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직 오늘만을 위해 쾌락을 즐기고 향락에 빠지면서 인생을 즐긴 자였다. 부자는 죽은 후 절망만이 가득한 어두움 속에서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 이를 갉고 후회하면서 영원히 영원히 불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프면 때로는 병원에 가서 수술도 하지만 수술 고통이 아무리 커도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에 고통을 참으면서 수술도 하지만 지옥의 고통은 참아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곳이므로 오직 절망만이 있는 곳이다.

     

    3. 지옥에서도 의식이 있다.

    병원에 중환자실에 가보면 몇 년 째 식물인간으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는 맥박만 뛰다 뿐이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오직 영양주사로 연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아무 의식이 없다. 주사를 찔러도 전혀 아픈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눈 한번 깜작이지 않는다. 이처럼 식물인간은 의식이 없으니 살아있지만 고통을 못느끼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지옥은 의식을 못느끼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느끼는 곳이다. 유황불 못에 던져서 있으므로 지독한 유황냄새도 맡는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 뜨거운 열기며 갈증이며 모든 고통을 느끼며 쉬고 싶다고 느껴도 쉴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가족들까지 생각을 할 정도로 이세상에 살았던 기억을 할 수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여기 부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있는 자기의 5형제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자기처럼 이 지옥에 오면 어쩌나 하고 근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애원하는데

    27 가로되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때도 아브라함은 부자의 애원하는 청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그러나 부자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부탁을 드립니다.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분명히 말합니다.

    부자는 지옥에 오지 않는 길은 회개하는 것을 이제야 압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하신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회개는 세상으로 향하여 살던 방향을 예수 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말씀중심으로 사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회개하면서 만일 죽은 자가 저희에게 가서 지옥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빨리 회개하고 이곳에 오면 안된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는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것도 아브라함의 대답은 냉정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중에서 살아서 가서 전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지옥에 오지 않는 것이지 혹시 죽었던 자가 살아 나가서 지옥의 이야기를 열 번 백번 한다 하여도 불신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옥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가는 문과 길은 넓어서 많은 사람이 그리고 간다 영생으로 가는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적은 수가 영생으로 가고 대다수는 지옥으로 갑니다.

     

    실제로 역사는 구원받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노아시절 물로 지구를 멸망시켰을 때 전 인류 중에 8명만 구원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을 때 그 성내에서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롯의 두 딸 모두 네 사람만 구원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래의 리스트에 있는 죄를 짓고 있다면 지옥에 가기로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을 영접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그 때는 너무 늦습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주님께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천사들과 사탄을 위해 지옥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 곳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분노와 고통과 고난이 있는 곳으로 만드신 곳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는 곳입니다. 지옥에 대한 이런 깨달음은 여러분들이 지옥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개념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의 주님이 상상치도 못할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

    주님의 진노가 불경건한 자들과 죄인들을 향해 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대해 거듭 경고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창녀나 술중독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참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을 두려하라.

    예수님이 구원받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에 관한 가장 공포스러운 사실은 그곳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장 끔찍한 사실입니다. 성경은 지옥의 형벌이 1001000년이 아니라 영원하고 영원한 형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 말은 분명히 성경적인 진리를 함축하는 말이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을 지옥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교리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법적으로 타당한 교리인지를 설명드려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나,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갈라디아서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첫 번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사실은 죄를 진 내가 못박혔였어야 하는데 죄 없는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금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에게 오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나에게 주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들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 대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으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 값을 치룰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전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내가 치뤄야 할 지옥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전가 되었다고 믿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야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나인데, 예수님께서 나 대신에 저기에 달리셨구나!"를 아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망은 죄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유효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이 인류의 죄 값을 갚지 못하셨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5:17-19)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 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하나님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그럼에도 거룩하심으로 죄의 삯을 완벽히 치루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유일한 길은 나의 죄 값을 치뤄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 뿐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교리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얼마나 논리적인지를 이해하셨는지요?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내 죄에 대한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인데 이를 대속의 은혜라고 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의 작은 소원도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시지만 지옥에 간 불신자들의 기도는 어는 것 하나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이땅에 있는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이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지금 이 시간 육신이 건강하고 정신이 온전할 때 주님의 자녀로 사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진정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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