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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1 마지막 추수 때 알곡과 가라지는 구분된다
    말씀 2019. 10. 6. 14:32

    마지막 추수 때 알곡과 가라지는 구분된다 13:24-30, 36-43

     

    요즘 우리사회에서 조국으로 인하여 편가르기가 본격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원인은 범법자로 의혹이 있는 자를 법을 다루는 법무장관에 임명하는 것으로 인하여 대학생들 일반인들 주부들 농부들 직장인들 가리지 않고 조국 사퇴를 부르짖고 있다. 그가 저지른 불법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융동학원비리로부터 시작하여 금융비리 자녀들의 스펙을 위한 상장위조 등등 보통사람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이 눈덩이처럼 그와 관련된 의혹들이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그를 파면시키겠다는 세력들과 또 다른 쪽에서는 그를 지키겠다는 지지자들도 만만찮다. 이러한 조국문제를 좀더 깊이 파고 든다면 70년간 지탱한 대한민국의 나라를 허무는 세력들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세력들로 압축될 수 있다. 이미 문재인정부는 간첩들을 색출하는 국정원해체와 수도기무사해체를 비롯하여 12부대를 해체하면서 장성 200명 정도의 별을 떼어 전역시켰으며 군복무단축과 더불어 군인정신을 해체하고자 스마트폰사용을 허가하여 군인들로 하여금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각종 음란사이트나 도박사이트에 몰두시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군인정신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일반사람들은 반일운동하는 것이 마치 애국인양 착각을 하고 나라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식으로 연방제 통일되는 것을 마치 평화통일로 착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같은 작은 교회를 하는 사람도 나라가 무너지면 교회문닫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니 나라살리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편가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라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가슴치고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찌하여 이렇게 이 땅위에 세워진 나라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데도 그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 그저 슬프다. 이런 위기에서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앞에 회개하는 한가지 일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니느웨 성이 심판받는다는 소리를 외쳤을 때 니느웨성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여 심판을 면했던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나라의 교회들은 현 상태로는 회개를 하기에는 너무 중병이 걸렸다. 한국의 대형교회치고 오늘의 국가적인 위기를 눈치보지 않고 외치며 목숨걸고 싸울 목사들이 어디있나? 대형교회마다 각종 비리로 언론과 법기관에 얽혀매여 있는데 떴떴하게 나라의 위기를 외치고 회개를 외칠 만한 교회가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교회가 핍박의 1순위인데도 전혀 남의 나라의 일로만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이처럼 어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찬반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며 이들 배후에는 하나님과 마귀의 세력들이 서로 싸우고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는 공의를 사랑하는 자들이 고난당하고 패배당하는 것 같지만 최후의 승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울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이 대한민국을 위하여 진짜 백성이고 가짜 백성인지 시간이 흐르면 알 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짜도 있지만 실은 가짜가 너무 많다. 마귀가 할 수 없는 것은 진실을 빼고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마귀에게는 진리가 없으므로 마귀는 진리 진실만은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을 빼고서는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자체이다. 인간이 마귀의 영을 받느냐 하나님의 영을 받느냐는 오늘 우리 사회의 편가르에 어느편에 서느냐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나는 죽는 날 까지 예수님안에서 진리만을 진실만을 추구하고 싶다. 거짓과 위선은 모양이라고 보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도 누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느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알곡같은 신자만 들어간다고 하셨고 그물에 걸린 고기 중 천국그릇에 담긴 고기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시다. 이 말씀이 무슨 이야기인지 좀 더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봅시다.

     

    잘 아시다시피 꿀의 종류에는 진짜 꿀인 꽃 꿀과 가짜 꿀인 사양 꿀이 있다. 진짜 꿀인 꽃 꿀은 꽃의 종류에 따라 아카시아 꽃에서 나온 아카시아꿀. 밤꽃에서 나온 밤꿀, 유채꽃에서 나온 유채꿀 등으로 꽃에 따라 꿀이 다양하게 분류됩니다. 그러나 가짜 꿀인 사양 꿀은 벌에게 설탕물을 주어 생산된 꿀이고 보니 이 가짜 꿀 속에는 벌의 날개나 다리 등을 넣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진짜(꽃꿀) 꿀과 가짜 꿀(사양꿀) 여부는 육안으로는 판별하기 어렵고 성분분석을 통해서만 구분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세상 살다보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좋아 보일 수가 있어서 사람들이 속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짜를 샀다가 나중에는 후회를 하고 손해를 보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에 속았다고 목숨을 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만약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자신이 가짜 신앙에 속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가짜 신앙인지 아닌지는 죽을 때 까지는 알 수가 없다.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개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천국가는 것도 아니다. 교회나가 예수님을 알고 배우고 잘 믿고자 나가는 것인데 예수님을 천국갈 정도로 가르칠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될 까? 한 번 교회에 나가면 인간관계에 얽히고 사업에 얽히고 조직에 얽히다 보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여도 귀밖으로 흘려 보낸다.

    꿀이야 모르고 속지만 종교에 속은 것만큼 불행한 것을 없을 것이다. 평생동안 물질바치고 시간바치고 일생을 바쳐 믿었는데 만약 천국을 못가고 지옥 갔다면 이보다 후회스러운 일을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짜 신앙과 진짜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특별히 어느 것을 강조하는 주제로 꽉 채워진 말씀의 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는 사랑장’, 고린도전서 15장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거두는 부활장’,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라는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장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 보셨나요? 실제로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을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씨뿌리는 비유(1-23), 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31-32), 누룩 비유(33), 밭에 감추인 보화비유(44), 비싼 진주비유(45-46),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47-52) 등이 나오는데 이 모두는 그 주제가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관한 비유이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천국 비유중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천국에 갔느냐 아니면 지옥에 갔느냐예 관한 것으로 신앙생활의 결과를 말씀해 주시는 비유이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 알곡이 되어 천국 곳간에 가는지 누가 천국그릇에 담아 천국에 가는지 누가 가라지가 되어 용광로처럼 불타는 지옥에 가는지 누가 그물에 걸렸지만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버림을 받는지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서 두 번째 말씀하신 천국 비유가 알곡과 가라지라는 비유인데 이 천국비유에서는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의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24)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밤중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25). 처음에는 몰랐으나 싹이 나고 이삭이 날 즈음에 이르러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음을 보고(26) 종들이 주인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27) 우리가 가서 가라지들을 뽑기를 원하시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렇게 한 것이 원수의 소행이라고 밝히는 한편(28), 가라지를 뽑기를 구하는 종들에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것이 염려되니(29)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두라고 하였다.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들을 시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서 불사를 것이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곳간에 넣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30). 나중에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은 가버리고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들에게 가라지의 비유를 밝히 말씀하여 달라고(36) 하니 예수님은 이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요(37) .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자손들이고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수확하는 때는 세상 끝이요 거두는 자는 천사들이다(39) 그리고 가라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이시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하나님이요, 예수님이 좋은 씨에 해당하는 성도들을 세상 밭에 뿌렸다는 것인데 추수할 때 보니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었다는 말씀이시다. 여기서 알곡은 믿음의 신자요, 쭉정이는 불신자이거나 형식적인 신자들을 비유하신 말씀이신데 농부가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들여서 가꾸는 이유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이듯이 하나님께서도 알곡같은 성도들을 얻고자 이 세상에 교회라는 밭을 만들어 놓아 교인들을 목사를 통해 잘 관리하시다가 때가 되면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천국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태우시리라는 말씀처럼 교회에 다녀도 진실로 믿은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고 말씀대로 믿지 못했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이십니다. 교회다니면서도 신앙결과에 따라 알곡과 쭉정이가 나오는데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1) 알곡과 가라지

    알곡은 말 그대로 곡식의 알곡인데 가라지는 말 그대로 모양은 곡식같으나 알맹이가 없는 가짜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조밭에 나는 강아지풀과 조는 모양이 너무나도 흡사하고 비슷해서 다 자라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가라지를 벼농사로 비유해 본다면 논에 나는 피와 같은 잡초이다. 벼와 피도 처음에는 구분이 안가지만 다 자라야만 논에서 피를 뽑아 낼 수 있다. 이처럼 가라지라는 것은 어렸을 때 모습은 너무 비슷하나 다 자라고 나면 곡식에 비해 크고 생명력이 강해 뽑아도 뽑아도 다시금 살아나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가서 봉사 할 때 가라지를 뽑으라고 하면 많은 청년들이 곡식을 뽑아버리곤 한다. 그 이유는 가라지가 곡식보다 키도 더 크고 아주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상사람들이 더 훌륭해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알곡과 가라지 비유 속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는 가라지를 분간해 내는 것이다. 가라지와 보리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피와 벼 정도가 아니다. 너무도 흡사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가라지는 보리의 뿌리를 부둥켜 안고 있기 때문에 뽑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라지를 뽑다가 보리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추수 때까지 뽑지 않고 나두라고 한다(30). 이 가라지를 뽑아야 하는 이유는 가라지가 밥에 한 알만 들어가도 독성이 있고 쓰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이 가라지를 골라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콩나물을 기를 때 썩은 콩을 골라 내는 것과 같다.

    문제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안에도 가라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통해, 참 진리의 백성과 거짓 교리로 위장한 사단의 정체를 깨닫게 해 주셨다. 마태복음 7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노니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교회내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위선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추수일 때 구분되는 알곡과 가라지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는 뭐일까? 처음에는 잘 몰라도 농부가 곡식은 거름 주고, 김을 매고, 물 주고 돌보지 않으면 죽거나 병들거나 수확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라지는 사람의 손이 안가도 잘 자라는 것이고 생명력이 강한 것을 농부 또한 잘 알고 있다. 추수 때 벼를 베고 뿌리가 남는 것은 알곡이고 가라지의 씨를 말리기 위해 뿌리채 뽑히는 것은 가라지이다. 알아야 될 것은 알곡 때문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지 가라지 때문에 알곡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곡은 농부의 한 평생 꿈이요, 가라지는 농부의 한 평생 근심거리이다. 사실 알곡은 유익된 것이지만 가라지는 백해무익한 것이다. 그럼에도 알곡이 있는 곳에는 가라지도 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알곡이 있는 곳에 마귀들이 밤에 가라지 씨앗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교회안에도 알곡성도가 있는가 하면 가라지같은 교인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곡식은 가라지의 그늘에 눌려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비록 연약하고 세상적인 권세나 명예가 없고 보잘 것 없어도 하늘 곳간으로 들림 받을 존재는 알곡으로 비유된 진리의 백성이지 결코 불법을 행하는 악인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라지와 같이 외형적인 모습은 크고 명성도 있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는 거짓 교회도 있고 이단들이 모이는 교회도 있지만 그날에는 예수님께서 도무지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니 결국은 파멸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3)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예수님은 천국을 말씀하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많이 있다. 비유란 어떤 감추어진 실체를 알기 쉽게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은 밭에 나는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이다. 어렸을 때는 가라지나 곡식이 너무 비슷하여 구별이 안 되는데 자라면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를 보게 된다. 예수님은 가라지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그 비유 속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해석해 주셨다.

    (26) 잎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그냥 두었다가 나중에 추수할 때에 가라지는 먼저 뿌리채 뽑아 불태워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은 자들은 지옥불에 던져 태워버린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그 씨가 마귀의 자손들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로되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수확하는 때는 세상 끝이요.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것 같이 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비유의 핵심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은데(24)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37).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땅에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므로 세상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다시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두시는 구원의 열매들(알곡)이다.

     

    둘째, 가라지는 사악한 자의 자손들들이며(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 곧 사단과 악한 영들이다(39). 오늘날도 예수이름으로 모이는 이단들이나 다른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우후죽순이다. 이런 교회의 교인들은 악한 영 곧 마귀의 자손들이라서 믿는 것 같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거나 실족하게 하는 불법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알곡과 가라지는 세상이라는 밭에 뿌려지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공존하느냐 하면 추수할 때 까지 그대로 두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가라지는 알곡에 비해서 생명력이 질기고 때로는 자신의 뿌리로 곡식의 뿌리까지 휘감고 있기 때문에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히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인 하나님은 아무런 쓸모 없는 가라지가 다음해에는 자라나지 못하도록 먼저 가라지를 뿌리채 뽑아서 불태워 버린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추수 때에 곧 주님의 재림 때 천국 백성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확실하게 심판으로 구분하실 것이다. 주님의 재림 때 천사들이 가라지인 악한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질 때까지 신자와 불신자는 이 세상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금은 가라지를 뽑을 때가 아니듯이 아직 심판의 때가 아니다.

    세상 끝날 곧 추수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이 땅에 보내어서 불법을 행하며 천국 백성을 넘어지게 하던 가라지들을 모아서 이들을 풀무불같은 지옥불에 던져 넣어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42). 이것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가라지(불신자)로 있다가 지옥불로 떨어질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맞이한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영생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가라지들로서 지옥불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천국 백성과 불신자들과의 관계로서 알곡이 가라지로부터 방해를 받듯이 이 땅에서는 천국백성이 불신 세력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2. 알곡과 가라지에 관한 심층 비교

    (1) 알곡과 가라지는 한 곳에 있습니다.

    땀 흘려 씨 뿌린 씨앗들이 무르익어 황금물결로 넘치는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니 저절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올해도 태풍이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년이 와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쌓아 둘 곳이 없다고 하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아무튼 지구촌 일각에서는 아직도 양식이 부족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일들입니다.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의 말씀인 알곡과 가라지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가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거짓>이 더 위세를 떨치고 알곡들을 괴롭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를 비교하면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를 가나 알곡과 가라지는 있게 마련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나라, 어떤 조직, 어떤 직장, 어떤 교회에도 알곡과 가라지는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알곡을 진()이라면, 가라지는 위()인 것입니다. <참됨><거짓>은 항상 상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곳에든지 명암이 있게 마련이란 말입니다.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함께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러한 갈등을 느꼈기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 내랴"고 탄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에서 낙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듯이 알곡과 가라지는 교회내에서도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곳에 따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함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기록한대로 우리 마음 속에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투쟁합니다(7: 23내 지체들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요셉과 다윗같은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아간같이 사특하고 가룟유다같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에 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알곡은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다.

    알곡이나 쭉정이는 외관상으로 보면 똑같이 보여도 알곡에는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많은 씨앗을 논밭에 뿌려도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그대로 썩어버리고 싹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알곡은 싹을 낼 수가 있다. 알곡은 살아 있고 쭉정이는 죽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로 인하여 죽은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살아서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영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알곡 믿음을 가진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예수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쭉정이가 되지 않고 알곡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쭉정이는 고개를 듭니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 가보면 알곡일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쭉정이는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곡 신자일수록 겸손해지고 쭉정이 일수록 교만하다는 것을 교훈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을 아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은 자요,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쭉정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원하십니다. 쭉정이 신자는 되지 못하고도 된 줄로 착각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알곡 신자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자기 탓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논리나 말이 아니고 겸손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지 못하면 교만해 집니다. 교회에 대하여도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찾으시는 성도는 겸손한 알곡 신자입니다.

     

    (4) 바람에 날리지 않으면 알곡이요, 날아가면 쭉정이입니다.

    곡식이 익으면 추수를 합니다. 알곡도 거두고 쭉정이도 거두어 들입니다. 농부는 창고에 보관하게 전에 키질을 합니다. 알곡은 앞으로 모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키질하기 전제는 알곡이나 쭉정이나 차이가 나지 않으나 바람에 날려보면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 버리지만 알곡은 남게 됩니다.

    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쭉정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의 바람이 불어오고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알곡 신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만 쭉정이는 환란의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도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알곡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알곡은 알곡대로 골라내어 천국 창고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골라내어 풀무불이 타는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알곡 된 성도들만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쭉정이가 가는 곳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타는 지옥임(42)을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나 추수의 때가 오면 반드시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부르신다고 할지라도 천국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알곡같은 믿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5) 가라지에 대해 경고는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태복음 1341~4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 지옥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43)

    예수님은 마지막 지옥불에 던져질 가라지의 정체를 밝혀주실 때에 먼저 마귀가 뿌려 놓은 가라지를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어서 불에 태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가라지의 마지막 결과를 말씀하신 것인데 가라지는 곧 풀무불에 던짐을 받을 불법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노라고 거짓 행하는 사람들 또는 그들 단체인 거짓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자칫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다가 실수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사숙고할지라도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가라지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신자의 영적 미숙함이나 인간적인 약점을 보고 그를 가라지 신자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그 때문에 그 어린 신자와 주님의 몸된 교회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가라지 신자가 악행을 하더라도 무관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거짓된 신자로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 교회는 그 사람에 대하여 경계하고(딤후 2:25,26), 때로는 교회의 출석을 금할 필요도 있습니다(고전 5:13). 단지 어떠한 경우라도 가라지 신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은 주님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의 관심은 오로지 알곡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은총은 가라지에게도 똑같이 내려집니다. 마치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처럼 그의 은총은 알곡과 가라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나 사랑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도 다치게 할까봐 추수때까지 기다리는 알곡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진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시거나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악인을 통해 의인을 보호하고 돕기 위함이며 가라지의 때가 추수할 때까지인 것처럼 그들의 때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이기 때문입니다.

     

    3.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

    마태복음 13장은 천국비유에 대해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물 비유는 과정보다 결과 또는 심판과 추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찾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 여기서 바다는 세상이며 각종 물고기는 각각 구원받을 영혼으로, 모는 그물은 교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으로 교회를 통해 잃어버린 영혼을 건지시고 구원하기 위해 그물을 치고 계십니다. 지금도 한 영혼을 애타게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마태복음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나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당신의 자녀를 찾고자 외치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구원의 길은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때문입니다. 구원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주님의 그물에 잡혀 교회 나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둘째, 구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 버리느니라.”(13:48)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십니다.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 중 좋은 것만 그분의 그릇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그릇에 담기고 싶다고 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통치권이 그릇에 담는 기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13:49~50)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에 죽음이 반드시 있는 것처럼, 죽음 이후에 심판도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선 인생이 성공을 한다면 다 이루었고 행복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축복보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영혼 구원이 더 중요합니다. 온 세상을 얻는다 하더라도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인생 실패자이며 차라리 이세상에 태어낳지 않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그릇에 담기지 못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그릇에 담기어서 천국에 갔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고전 15:41~42) 분명히 주님은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영광이 다르다고 계속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상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심판받는 사람도 있음을 기억하고,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십자가의 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천국비유말씀의 핵심은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운다는 것입니다.

    오늘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추수 때에 주인이 추수꾼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고 명합니다. 그러면 추수꾼들은 그 동안 곡식의 영양분을 빼앗아 잘 자라난 가라지를 한 곳에 모아 뜨거운 불 속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에도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세상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들과 교회는 다녔으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살던 거짓 신자들과 마귀의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던 자들이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치 곡식 이삭이 여러 달에 걸쳐 혹독한 더위와 가뭄과 병충해를 견뎌낸 후 추수 날에 거두어지고 탈곡되어 창고에 들여지듯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믿음으로 견뎌낸 알곡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같이 모든 알곡 신자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친히 뵙고 영광과 찬송을 돌릴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바친 모든 수고와 흘린 땀에 대하여 영광스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날의 기쁨에 대해 주님을 위해 고난받은 성도들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8:18).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충실한 알곡 신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 마지막 추수때는 의인과 악인이 구별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그 때가 되면 의인과 악인을 반드시 구별됩니다. 예수님의 좌우에 갈라선 양과 염소 같이 갈라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역사가가 그 때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그때에는 주인이 알곡은 모아 천국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는 것과 같이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영벌로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의인을 구별하시되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를 위해 방주라는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시고 롯을 위해 천사의 방문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처럼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신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의 궁극적인 차이입니다. 주님은 악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시지만 의인의 고통은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어떠한 여건하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천명이 네 곁에서 만명이 네 오른쪽에서 쓰런질 터이나 그것이(역병, 멸망 두려움)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91:7) 아멘.

    마지막 추수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땅에 재림하시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모든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 부활의 몸으로 변할 것이고 살아 남은 자들도 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담에 의해 저주 받은 이 땅과 하늘은 온데 간데 없이 없어지고 다시는 멸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면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 성경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음씨앗을 뿌리셨으며 이천년동안 알곡이 성장하는 동안 가라지도 세력을 확장하며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우리 스스로 알곡이 될 수도 없으며 우리들을 알곡 되게 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라지 불신자들이 핍박과 시험을 통해 우리들을 넘어지게 하고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주님 오실 때까지 잘 참고 견뎌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말한 소위 밭의 가라지 비유의 깊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라지 씨앗을 뿌린 마귀는 대단한 전략가입니다. 그 마귀전략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4세기경 복음이 로마카톨릭에 정착되면서 마귀는 2000년 동안 카톨릭이라는 마귀의 전략적인 교회를 만들어 복음을 부패시키기 하였습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에 지키던 부활절을 폐지시켰고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신격화시키면서 달의 여신 이스터축제를 부활절로 대체하였고 354년에는 태양신의 탄생일인 그날을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성탄절을 제도화 시켰고 5세기 경에는 십계명까지도 변경시켜 카톨릭 성경의 십계명중 2계명은 삭제시키므로서 오늘날 양쪽의 십계명은 판이하게 다르게 되었으며 12세기 경에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도록 하는 전략을 세워서 이와같은 불법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이런한 불법전통을 지키지 않는 교회들이 이단처럼 보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은 마귀의 전략무기이므로 불법을 추종하는 것은 곧 마귀의 자녀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7: 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하셨고, 불법을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이적과 기사와 권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와 불법이 성행하고 그로 인한 고통이 있듯이, 지상의 교회에도 가라지 신자로 인한 고통이 생겨납니다. 주님은 이러한 형편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라지 신자로 인해 고통이 다가 올지라도 낙심치 말고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끝까지 알곡 신자답게 주의 일에 더욱 힘써서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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