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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호밥의 눈이 되자
    말씀 2019. 9. 1. 16:09

    호밥의 눈이 되자 10 : 29-32

    오늘날 정치를 보면 여당과 야당이 있는데 그들의 정치적 사상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예를 들면 지금 조국이라는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 여야가 대립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극과 극이다. 조국이라는 사람은 그동안 가난하여도 정직히 일하면 희망이 보인다고 해서 서민들의 편이 되어서 젊은이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었는데 그가 그동안 권력과 돈으로 그가 저지른 비리를 보게 되면 특히 20대 젊은이들이나 학생을 둔 40대들로부터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데도 여당은 여전히 그를 비호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인간이란 어느 한쪽에만 유익이 되어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양쪽에 다 유익을 주어야 본인도 살고 사회도 정의롭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선은 나에게 유익한 일을 하여야 하며 또 그것이 남에게도 유익한 일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삶을 살수만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가 부탁한 호밥이라는 사람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그가 받은 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0:29)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그것을 주리라 하신 곳으로 우리가 이동하나니 우리와 함께 가소서. 우리가 당신을 선대하리라 주께서 이스라엘에 관하여 선하게 말씀하셨나이다,하매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에게 눈을 대신하리이다

    32 당신이 우리와 함께 가면 참으로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선한 일을 행하시든지 우리도 당신에게 바로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호밥의 눈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일년이 지나는 동안 시내산에서 계명과 율법을 받고 하나님께서 알려준 대로 증거궤와 성막과 제사에 필요한 기구나 의복 등을 다 준비하였으며 그리고 시내광야에서 두 번째 유월절도 지켰고 이제 주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광야에서 바란광야로 이동하였을 때는 유다자손이 제일 앞섰고 다른 지파들이 뒤를 따랐다. 이 때 모세가 호밥에게 당신도 우리와 함께 갑시다. 당신은 이 지형을 잘 아니 우리로 하여금 진칠 곳을 잘 알기 때문이라 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까닭을 잠시 묵상해 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서투른 초행길이었으나 호밥은 광야길이 밝아 어디에 어떻게 진 칠 곳과 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31). 그래서 우리와 동행하면 선대하리라(29)는 모세의 제안에 호밥은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떠나가지 말라고 우리에게 눈이 되어 달라고 재차 청하는 모습을 봅니다(31).

    이드로는 모세 장인인데 그가 모세를 찾아와 여러가지 조언을 하며 모세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호밥은 정말 모세의 처남일까? 아니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다른 이름일까?

    저는 호밥을 이드로와 같은 동일인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이드로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십보라를 비롯한 딸 들이 다른 목자들의 무시를 당하면서 양떼를 쳐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드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당시엔 한 사람이 두가지 이름을 갖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렇다면 호밥은 이드로의 다른이름이며 모세의 장인인 것이 성경 문맥에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본문에서는 호밥이 모세의 동행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는지 수락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일에 호밥의 후손이 선민으로 계수된 것으로 보아 결국 모세의 청을 수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16) 모세의 장인 겐 족속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도시에서 올라가 아랏의 남쪽에 있는 유다 광야에 이르러 그 백성 가운데 거하니라.

    하나님은 구름기둥이 위로 올라갈 때와 정지할 때를 이용해 행진할 때나 진칠 때를 지시하여 주셨고 대략적인 방향도 일러주셨는데, 과연 호밥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문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지 못한 모세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어 주시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삶에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은 포기하고 그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말씀과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말씀과 기도를 강조합니다. 물론 기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방법은 인간의 활동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할 때는 하나님의 동행과 우리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도하면 다음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11:10)는 말씀처럼 오늘도 저는 주여, 이 광야에 저 홀로 설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저의 인생길에 함께 하여 달라고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께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누구를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줄 믿는 것입니다.

    마치 민수기 10:30에 나오는 호밥의 이야기처럼 호밥은 모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고 하였건만 31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데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어달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호밥으로 하여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움이 되어 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호밥이 받은 축복은 미디안의 겐족속이면서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는 모세의 청도 들어주었고 호밥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전도할 때 전도자는 그 이름이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 하였고 또 전도받은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경우와 흡사합니다.

     

    2. 사는 길과 죽는 길

    인생앞에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호밥이 그들에게 눈이 되어 주는 것은 사는 길이지만 그가 고향으로 자기 친족에게 가는 길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에서 빗나가는 길이므로 사는 길이 아닙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창조되었을 때부터 인생앞에는 두가지 길이 예비되어 있는데 선택은 인간자신이 하고 선택에 대한 결과도 인간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1) 창세기 2:16-17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과 먹는 것

    16 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으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앞에는 두가지 길이 있었다. 먹지 말라고 명한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하는 길이 열려 있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멸망하는 두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2) 신명기 30:15,19 생명과 사망의 두가지 길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이스라엘 백성앞에는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화를 그들 앞에 두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의 말씀을 다 전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라고 부탁합니다.

    신명기 3015,16절을 보십시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화를 그들 앞에 두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들에게는 복과 생명이 임할 것이지만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 저주와 화가 임할 것입니다.

    신명기 3017,18절을 보십시오.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저주를 앞에 놓으시고 그들에게 이를 선택하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로 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은 이스라엘백성이 하는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9-20절을 보십시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모세는 하늘과 땅을 불러 증거를 삼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저주를 앞에 두었은즉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의지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사망과 생명과 축복과 저주를 두셨고 이스라엘로 생명을 택하도록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해가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멸망의 길을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고 침례를 받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과 복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생명을 선택하고 복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믿고,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 천국이 여러분의 앞에 오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생명과 복을 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3) (2:10) 우리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고후5:9-10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자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성경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사실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땅에 사는 동안 입는 육신의 몸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서 입을 영의 몸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우리는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실 영원한 몸이 있음을 믿습니까? 이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었던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고후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육신의 장막을 입고 살아가면서 사도 바울과 같은 탄식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입혀 주실 영원한 몸을 얼마나 사모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곧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천국 곧 부활과 영생에 대해 확실히 알았고 믿었던 사도 바울의 이어지는 고백입니다. ‘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에게 천국과 부활과 영생에 관한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의 원하는 바가 사도 바울과 같이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입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 간에 우리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 이유는 아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든 인생의 마지막 심판의 결과는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한 자는 천국에서 영생할 것이며 심판의 부활을 한 자는 지옥에서 영생할 것임을 성경은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인생들이 영생의 부활을 하려면 이땅에서 할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후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6:3-5 부활한 자는 새생명을 얻는 자이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3. 선한 율법을 행하는 자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들

    우리들이 어떻한 사람들인가는 성경에 이렇게 나옵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태어난 자들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는데 그럼 무엇이 선한 것인가?

    딤모데전저 19-10절을 행치 않는 자이며 출애굽기 24:12처럼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자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고린도전서 101-12에 세부적으로 다시 말씀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행하는 자가 선한자라고 할 수 있다.

    (1) 딤전 1:9-10을 행치 않는 자가 선한자이다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와

    10 음행을 일삼는 자와 남자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는 자와 사람을 납치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위중하는 자와 그밖에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해 만들어 졌느니라

     

    (2) 24:12 십계명을 지키는 자가 선한자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내게 주리라

    (3) 고전 10:1-12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부활할 자들이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라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4) 1:10-11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는 없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자가 되느니라

     

    (5) 7:13-23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가 선한자이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율법은 선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누구도 온전히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께서는 인간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죄값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고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들은 선한 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류구원을 만천하에 이루어주셨는데 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면 인간이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이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캄캄한 흑암인 지옥형벌 뿐이라는 것이다.

     

    4. 캄캄한 흑암

    캄캄한 지옥에 간 사람들을 가리켜 멸망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곳에 간 사람들의 유형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이 지옥형벌을 받고 지옥에 갔는지 한번 봅시다.

     

    (1) 유다서 1:11-13 캄캄한 흑암에 갇힌 자들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 길을 잘못들면 다시 길안내를 하므로 바른 길로 돌아 올 수 있지만 우리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은 성경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 당신들은 죄가 없다구요? 윤리 도덕적으로 죄를 짓지않았으니 죄가 없는 줄 알았을지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이며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는 대표적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았던 죄인 세 사람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가인의 길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였습니다. 최초의 살인죄를 범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타인이 가인을 죽일 때 벌을 칠 배나 받게 될 거라는 표를 그에게 주심으로써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면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보호를 해 주셨는데도 가인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었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힘들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한 주관적인 정당성을 앞세우는데 급급했습니다(4:14-15). 오늘날도 자신이 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감사가 없으면 가인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에 대한 감사없이 불만이 늘어만 간다면 가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주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2) 발람의 어그러진 길(22-24)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25:1-3)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주앞에 범죄케 하여 주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31:16)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다 와서 죄를 범하게 된 것은 발람이 불의의 삯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음하도록 주 앞에 범죄케 한 거짓 선지자의 역할이 작지 않다. 발람이 이렇게 되기 까지 발락은 바람을 돈으로 매수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도록 여러번 요구했다.

    (22:17) 내가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모압 나라의 왕 발락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점을 치는 술사 발람의 귀에 솔깃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시켰습니다.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어주니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23:11) 삯을 받기 위하여 발락의 편에 들어오긴 했지만, 발람은 웬만한 목사님들보다 더 현명했고 웬만한 지식인들 보다 더 냉철한 판단력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저 곳이 광야 교회로서 하나님의 뜻안에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복을 받은 자들이라서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고 손가락질 하고 꾸짖다가 다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저주는 할 수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신에게 드리는 축제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하여 모압여자들과 음행을 하고 그들의 제물을 먹고 그들의 신앞에 절하게 하므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죄를 짓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겠다는 생각이였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한 것은 발람이 돈에 매수되어 어그러진 길로 갔기 때문이다. 발람과 같이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이 갈 곳은 흑암의 지옥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유다사도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1:3)라고 한다. 성도라는 말은 교회나오면 자주 듣는 말이 되었고 발람처럼 기도하면 응답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적이 있어도, 하나님에 대하여 맹숭맹숭한 마음으로도, 성도라는 호칭을 달고 천성을 향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성도는 마음에 죄가 없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늘아래 땅에 발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거룩하다는 말에 자신있는 자가 있다면 거짓말하는 사람이겠지만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도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얻은 구원, 죄 사함, 거룩함을 마음에서 내다 버리지 않기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유다서는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곳곳에는 발락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발람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야곱의 허물을 드러내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직시하게 해서 마음을 영원한 속죄의 말씀에서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성경의 권면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내 죄와 내 허물을 없애신 것을 믿고 예수님 내 죄 씻어 주신것 감사해요 내 육신의 허물을 전부 씻어 주신 것 감사해요. 저는 예수님 때문에 죄도 없고 허물도 없다는 마음을 굳히면 하나님도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신실히 지키실 것입니다.

     

    3) 모세를 반역한 고라의 패역한 길(16)

    출애굽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들 때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애굽에서 급하게 나온 그들은 광야 생활에 철저히 준비하지 못하였다. 노비와 가축들은 있었지만 광야는 먹을 물과 식량이 부족할 때마다 그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샘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어 먹게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에 도착한 것은 출애굽 2220일 이었다(14:11). 그들은 그곳에서 가나안땅으로 정탐꾼을 보내었다가 낙심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절망가운데 빠졌다. 그들이 가나안땅을 정탐한 날 수 사십일을 일 년으로 계산해서 사십년을 광야에 머물게 하시고, 홍해 길로 되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하여 다시 북쪽으로 쳐들어갔다가 아말렉족들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족속에게 쫓기어 패하였다(14:40). 이런 상황에서 모세와 아론에 대한 집단적인 반역이 일어났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16:1-2). 그중에서 반역의 중심인물은 고라였다. 고라는 레위지파로 성막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가진 자였다. 반역의 명분은 아론과 모세가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월권을 행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는 아론의 제사징직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주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16:9-10)”

    모세는 이 일에 인간적인 마음을 자제하고 즉각 하나님께 엎드렸다. 그리고 고라에게 하나님께서 물어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고 하였다(16:5). 이에 모세와 아론은 향로에 불을 담아 들고 회막 앞에 섰고, 고라와 그를 따르는 자들 이백오십명도 제각기 향로에 불을 담아 들고 회막 앞으로 나아왔다. 이때 주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다(16:19). 주께서 백성들에게 명하여 고라 무리를 떠나게 하신 후 고라 무리가 선 땅이 갈라져서 고라에게 속한 무리와 집들이 모두 땅 속으로 들어가 멸망 되였으며, 나머지 향로를 든 이백오십명도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패역한 백성들에게 염병을 내려서 고라 자손 외에 죽은 자가 사천 칠백 명이었다(16:49).

    신약에 이르러 유다서에는 고라자손의 반역을 가인의 길이며,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11). 성도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세상에서 받는 영광스런 훈장도, 자랑도 아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그 직분 가진 자를 더 사랑한다는 증표도 될 수 없다.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우월감을 가진자의 도덕적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아니다. 신앙에서 직분은 더 좁은 길로 가는 길이며 무거운 짐을 진 자가 되는 길이다. 그러기에 직분은 세상의 지식과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믿음으로만 성취되는 것이다. 고라자손은 그 직분을 세상의 영예로 생각한 자요, 자신의 귄위로 다른 사람을 압제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 자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탐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하찮게 여기거나, 불만족과 탐심에 빠져 그 부르심을 거역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의 시종 바룩의 정곡을 찔렀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주의 말씀이니라'(45: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며 영생에 이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인의 길을 걷지 않게 되고, 발람의 실수와 고라의 반역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2) 마태복음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태복음 22:13-14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내쫓김을 당한 악한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지라도 그곳은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캄캄한 흑암으로 갇혀진 곳인 지옥이라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청함을 받고도 거절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5. 율법의 완성 (1)

    (1) 5:17-22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 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27-28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누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율법을 실천하신 분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우리들이 믿으면 우리도 의롭게 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고 불신이면 지옥이다.

     

    (2) 고린도전서 3: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 우리자신들이 주님이 거하시는 몸이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끗한 것인지 알고 죄를 멀리해야 하겠다.

     

    6. 율법의 완성 (2)

    출애굽기 34:28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요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4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마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계명은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지켜야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이다.

     

    7. 옛 계명 :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1) 마가복음 12:28-31

    28 서기관들중에 한 사람이 그들이 함께 논쟁하는 것을 듣고는 그분께서 그들에게 잘 대답하신 줄 알고 나아와 그분께 여쭙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무엇이니이까? 하매

    29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30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31 둘째 계명은 곧 이것과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명령은 없느니라, 하시매

     

    8. 새 계명 : 서로사랑하라

    (1) 요한복음 13:34-35

    34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9.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

    (1) 요한일서 4:7-8 <사랑의 대상>, (2) 에베소서 1:4-6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위해>, (3) 예배 출애굽기 8:1<내백성이 나를 섬기게 하기 위해> (4) 에베소서 2:10 <선한 일을 하고자>

    호밥의 눈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영적 길입니다. 비행기도 공중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니는 항로가 있고, 바다위의 배들도 다니는 해로가 있으며 심지어 물속의 물고기들도 그들이 다니는 어로가 있습니다. ,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수년을 살다가 나중엔 귀소본능에 의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영적인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땅위의 지표면을 보는 것이라면, 설교는 그 어느 특정한 지표면 속에 감춰진 지하자원을 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호밥의 눈은 자원을 캐는 영적방향을 보는 눈입니다.

     

    사람이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갈 때, 길을 모르면 늘 긴장감이 끊이지 않고, 혹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고생도 많이 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한 경우에는 사망의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 음악을 들으면서 바깥세상도 구경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먹을 것도 먹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늘 편안한 마음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는냐”(6:39) 저는 예수 믿고 나서 소경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천국과 지옥도 있음을 그리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밥의 눈이 열린 후 저는 제 자신이 소경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글을 보게 되면 인도라는 단어를 보게 됩니다. , 다른 말로 말하면 영적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이 삼손을 포로로 잡은 후에 그에게 제일 먼저 가했던 것이 두 눈을 뽑아 버렸던 것입니다. 눈만 빼버리면 그가 하나님께 받았던 모든 능력들이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마지막 때에 마귀의 전략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눈만 어둡게 하면, 호밥의 눈을 볼 수 없게만 하면 마귀 앞의 우리의 존재는 두려워 할 대상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10. 호밥의 눈을 통한 한국교회의 외침

    호밥의 눈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행기도 항로가 있고 배도 해로, 물고기도 어로, 자동차들도 차도, 사람은 인도라는 길이 있듯 영적 인도자들인 목회자가 영적인 길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있어야 하는데 영적 소경 상태로는 목회도 힘들고 끝내 실패하고 망하는 것이다. 바른 길을 보지 못하고 열심만 가지고 우왕좌왕하며, 심지어 성도가 많이 모이고 교회 크기가 목회 성공의 잣대로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호밥의 눈은소경된 인도자영적 길을 바로 보는 인도자로 말씀을 통해 영적 눈을 뜨게 하는 체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정립시켜주는 말씀인 것이다. 호밥의 눈을 통해 한국의 모든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목회자와 성도들이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기를 외쳐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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