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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 내부의 지하세계를 다녀온 올렌얀센의 경험담
    시사정보 2018. 6. 13. 22:05

    올렙얀센의 지구내부 문명 이야기
    지구 속에 또 하나의 지구가 있다는 지구공동설은 대부분사람들은 허황된 이야기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2013.12.10 조선일보 재미있는 과학세계에 나온 기사를 보면서 "지구 속에는 또 하나의 지구가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 뜻밖에 지구내부세계에 다녀온 두 사람의 수기가 있어서 관심있게 몇 번 읽어보면서 정말 지구내부의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구나 생각해봤다.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략 800세 수명을 가진 사람들로 키는 3-4m 정도 거인들이 살고  지구 남·북극엔 그곳으로 가는 구멍을 통해서 갔다 왔다고 하는 SF소설 같은 '지구공동설' 아직은 과학적 근거 없는 이야기지만  최근 지구 맨틀 아래에 또 다른 생태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지구공동(空洞)설이란 말 그대로 지구 내부가 텅 비어 있다는 주장이다.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지구는 표면부터 지각·맨틀·외핵·내핵 순서로 구성돼 있다고 배웠는데 이렇게 지구 내부가 꽉 차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다는 지구공동설이 왜 나오는 걸까? 지구공동설은 중세의 철학자 브루노가 주장했고 , '핼리혜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핼리도 지구공동설 주장을 옹호했는데  지구가 도넛모양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스스로 깨질 수밖에 없다는 지구공동설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다며, 지구는 원심력에 의해 무거운 물질들이 바깥쪽으로 밀려나면서 만들어졌으므로 속이 텅 비어 있다고 주장도 했다.  또 북극과 남극에는 지구 내부세계로 통할 수 있는 큰 구멍이 있어서 그곳으로 지구 내부의 빛이 새어 나온다고 했으며 그 빛이 바로 '오로라'라고 주장했지요. 북극의 동물들이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이 아니라 더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지구 내부 세계에 있는 먹이 때문이라고 했지요. 가끔 발견되는 미확인물체(UFO)도 지구 내부에 사는 사람들이 바깥 사정을 살펴보려고 보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1997년 1월 16일(木) 중앙일보를 비롯한 각 일간지에는 AP연합통신 발(發) 기사로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었다. 전문을  간략하게 그대로 소개한다.
    이 기사는 북극바다 밑에 '물굴뚝'이란 타이틀로 지구 속과 밖이 통하는 입구가 실제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실제로 지구 내부 세계를 다녀왔다고 증언하는 것에 의하면 지구 내부의 세계는 어떨까? 육지의 면적이 바다보다 3배 크고 기후도 어느 땅이나 일정하다고 해요. 구름도 있고 비는 적당히 내리고, 중심부에는 태양 역할을 하는 빛나는 구름도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언어도 단 한 종류라 말이 다 통한대요. 다른 동식물들의 크기도 커서 사과는 사람 머리보다 크고, 포도 알은 오렌지 보다 크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볼 때 합리적인 것일까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구공동설을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어요. 만약 남극과 북극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면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미 발견했겠지요? 겨울철에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물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또 그 동물들이 이동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먹이 경쟁이 덜한 장소를 택한 것이라고하고요. 무엇보다 지구는 수많은 천체들의 움직임과 중력, 에너지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지구 내부에 또 하나의 태양과 생명체들이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논리로 이해 하기가 어렵다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하네요.
    이처럼 지구공동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좋을까요?  과학이 무척 발전한 현재에도 아직 지구에 대해 밝혀 내지 못한 것들이 많아요. 지구는 모든 것을 직접 관찰하기엔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저지형과 지구 내부의 모습, 지구의 질량과 태양과의 거리 등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 때문이에요.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시절 40여년간 군사목적으로 수집한 북극해에 관한 비밀정보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는데  미국과 옛소련은 냉전기간 중 북극지역의  기상, 해류, 빙산 등에 관한 정보를 모아 비밀리에 보관해 왔다.
      이보다 앞선 95년 12월에는 미국의 대중주간지「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가 미 우주항공국(NASA) 소식통들의 말을 빌어 지하에 빛과 산소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실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공개했다.
    과학자들은 이 자료에서 특히 북극해의 물이 그린랜드와 노르웨이 북단 사이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이른바 '굴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흥분하고 있다. 이 공개된 정보 가운데 새로운 사실은 굴뚝의 폭이 수km에 불과하고 극구멍이 열려져 있는 지속시간이 매우 짧아 열려져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러시아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확인됐다고 미 과학자들은 말했다.『워싱턴-AP연합』  -중앙일보 97년 1월 16일-
     최근에는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도 미 정부에서 보관 중인 지구공동설에 관한 문건을 폭로했어 다시금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실제 우리 시대에 지구내부를 갔다온 두 사람의 수기를 싣고자 한다.

    첫번째는 지구공동설에 힘을 실어준 사건이 1947년 미국인 리처드 E. 버드 장군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북극 탐험은 북극점을 넘어 2700km, 남극점을 넘어 3700km까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 탐험에서 두 개의 미지의 지역을 발견하였다.
    그는 1947년에 북극 기지를 이륙하여 극점을 넘어 지구의 텅빈 내부로 통하는 얼음이 없는 지역을 7시간에 걸쳐 비행하였다. 그가 도달한 곳은 얼음도 없고 눈도 없었으며 대신 수풀이 우거진 숲과 푸른 산 그리고 그 사이를 노니는 동물들이 있었다. 그는 놀라운 발견을 무전을 통해 즉시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 보고는 정부기관에 의하여 군사상 기밀 사항이라는 이유로 일반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도리어 이에 대한 사실은 금지되고 강력하게 통제되었다. 버드 장군의 두 번째 탐험은 1956년 1월에 있었다. 그는 남극 탐험대를 지휘하여 남극을 넘어 약 3700km거리까지 들어갔다. 그 해 3월 남극 탐험에서 돌아온 버드 장군은 새로운 지역을 개척했다고 말하였다.  지구속 세계 문명을 여행하고 온것에 대해선 지난주에 지구내부에 또하나의 지구가 있다는 제목으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구내부에 다녀온 사람은 리챠드 버드(Richard E. Byrd,1888~1957)미 해군제독 외에  올랍 얀센이 있다.  
    지금부터는 지하 문명세계에 2년 반이나 살았다 온 올랍 얀센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노르웨이사람 올랍 얀센(Olaf Jansen; 1811-1906)은 어부인 그의 아버지 옌스 얀센(Jens Jansen)과 함께 1829년 4월에 스톡홀름을 떠나 북극해를 탐험하다가 우연히 지구 내부로 통하는 북극의 열려진 구멍(굴뚝)으로 들어가 5개월 만에 육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두 부자는 지구 속 땅 속으로 항해하여 들어갔으며, 1829년 8월부터 1831년 초까지 약 2년 반 동안 거인들이 사는 지구 속 문명세계에서 살았으며 나올 때는 남극구멍을 통해 나왔다고 한다. 지구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올랍 얀센만 살아 남고 그의 아버지 옌스 얀센은 대 빙하와 싸우다가 사망하였으며, 올랍 얀센은 스코틀랜드 포경선 “알링턴 호”에 발견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오게 되었다.
     이제 그가 기록한 지구내부의 수기에 대해 읽어보면서 지구내부를 들여다 보자

      

    『지구 속 문명』  - 올랍 얀센 이야기 -

    티모시 그린 베클리 편저
    안 원전 옮김

    제1장 저자 서문


     나는 이제 내가 막 말하려 하는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올랍 얀센(Olaf Jansen)이라는 한 사람이 경험한 그 어느 것에도 비유할 수 없는 진실한 기록이라기보다는, 단지 경이로운 신비를 드러내는 마술적이고도 왜곡된 지성의 결과로만 여겨지게 될까 두렵다.

      사실 올랍 얀센의 영향력 있는 광기는 내 상상력에 영향을 미쳐 분석적인 비판의 모든 생각을 효과적으로 없애 버렸다. 만일 무덤 속에 있는 마르코 폴로1)가 일견 허풍과도 같은 이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티끌만치의 의심도 없이 아주 쉽게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바꿀 것이다.

       내가 올랍 얀센의 이야기를 당연히 기록해야 하는 장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실은 부적절한 일이다. 왜냐하면 올랍 얀센 그의 이름은 이제야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후로 그는 틀림없이 지상의 저명인사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롭게 고백하거니와 그의 진술은 어떠한 이성적인 분석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과 일반 범부들의 주의를 끌어왔던 얼어붙은 북극에 관한 심오한 미스테리와 관련이 있다. 비록 과거의 우주구조론 원고와 많은 부분이 모순되기는 하지만, 이 평범한 진술은 아마 올랍 얀센 자신이 그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기록한 것에 의존한 것이다.
       세상의 지리학이 불완전하다는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올랍 얀센의 놀랄만한 진술이 과연 논증할 수 있는 사실 위에 입각한 것인지,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번 자문을 되풀이 했었다. 독자들은 아마 이런 질문에 대해 자기자신의 만족에 따라 자유롭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하는 편저자는 그런 신념에 도달하는데 독자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어떤 느낌을 갖게 된다.

       게다가 때로는 내가 영리한 미신의 도깨비불에 의해 추상적인 진리로부터 멀리 인도된 것은 아닌지, 또는 지금까지 받아들인 사실들이 결국 한 바퀴 빙 돌려 말한 거짓말은 아닌지 알고 싶어 어쩔줄 몰라 한다. 아마도 아폴로의 진짜 집은 델피신전에 있던 것이 아니고 플라톤이 다음과 같이 말한대로 보다 오래된 지구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 같다.

       “아폴로의 실제 집은 영생의 땅에 있는 하이퍼보레아(Hyperborea: 極北,북방정토)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신화학(神話學: mythology)에 의하면 두 마리의 비둘기가 세계의 양극 땅으로부터 각기 날아와 이 공정한 지역, 아폴로의 집에서 만난다고 한다. 사실 헤카티우스 여신에 따르면, 아폴로의 어머니 레토는 북풍 저 너머 훨씬 멀리 북빙양에 있는 어느 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신들에 대한 신학 이론 또는 이 세상의 우주생명체 기원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단순한 의무는 늙은 노르웨이 사람 올랍 얀센에 의해 보고 묘사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우주의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세상에 밝히는 것이다.

       북극지방의 탐색에 대한 흥미는 국제적이다. 지구의 하나 남은 우주론적 신비를 풀기 위한 위험한 작업에 이미 11개국이 참여하고 있거나 헌신해 왔다. 아주 오래된 옛말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진리는 허구보다도 더 이방적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지난 2주일 동안 그 옛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내가 문에 달린 요란한 벨소리를 듣고 평화로운 잠에서 깨어 일어난 것은 새벽 2시가 막 되는 때였다. 그 불시의 수면 방해자는 올랍 얀센의 이름이 명기된 늙은 노르웨이 사람으로부터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하게 휘갈겨 쓴 메모를 가지고 온 심부름꾼이었다. 힘들게 해독한 뒤 나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내용이 쓰여 있음을 이해했다.
       “위독한 병으로 임종을 맞이하고 있으니 어서 오시오.”
       이 부름은 긴급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요구에 충분히 응하는 준비를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여기에서 아주 최근에 그의 95번째 생일을 축복한 올랍 얀센이란 사나이가 지난 6년 동안 캘리포니아 상업 지구로부터 아주 가까운 글렌데일(Glendale)에서 약간 떨어진 소박한 방갈로에서 혼자 살아왔다는 사실을 설명해도 무방할 듯하다.

       어느 날 오후 밖에 나가 산보하는 동안 올랍 얀센의 집과 그 집의 아늑한 주변 경관에 이끌려, 후일 고대신앙인 오딘(Odin)과 토르(Thor)를 신앙하는 그 집의 소유자이며 거주인인 올랍 얀센을 알게 된 것은 2년이 채 못 되는 일이었다.

       그의 얼굴 만면에는 어떤 상냥함이 있었으며 90년 이상을 살아온 그의 예리하게 경계하는 회색 눈가에는 일말의 친절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나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어떤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는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양손은 뒷짐을 지어 서로 꽉 움켜쥔 채 천천히 앞뒤로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도대체 어떤 특별한 동기가 산보를 멈추게 강요하고 그와의 대화에 끼어들게 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가 그의 방갈로에 대한 매력과 그것을 덮고 있는 잘 손질된 담쟁이 넝쿨, 그 위의 창문과 지붕, 넓은 광장에 만발하게 피어 있는 꽃의 군락들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자 그는 안심이 되는 듯이 보였다. 나는 곧 우연히 알게 된 이 새로운 지인(知人)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고 심오하고 비범할 정도로 지식이 있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그의 오랜 인생역정의 만년에 책 속에 파묻혀 깊이 진리를 탐구하였으며 명상적인 침묵의 권능 속에서 강인하게 변모되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하도록 격려했고 이어서 곧 그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단지 6, 7년만 살았지만 이전에 중동부주에 있는 한 곳에서 12년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노르웨이 바닷가 시절의 어부생할을 은퇴하기 전, 로포튼(Lofoden) 섬 지방에서 그곳으로부터 더 멀리 북방에 있는 스피츠베르겐(Spitzbergen)에 이르는 항해를 했으며 심지어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f)까지 항해했다.

       내가 떠나려 하자 그는 작별하는 것을 주저하는 듯이 보이더니 다시 들러달라고 당부했다.
    비록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작별하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다시 올거죠?? 하고 물어본 그의 독특한 말을 이제 나는 기억한다.

       “그래요, 당신은 조만간에 다시 들를 겁니다. 그러리라 나는 확신해요.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내 도서관을 보여주게 될 것이고 또 일찍이 당신이 한 번도 꿈꿔 보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말해주게 될 겁니다. 그것들은 너무 엄청나서 아마 당신은 나를 믿지 않을지도 몰라요.”

       나는 웃으면서 내가 또다시 방문할 뿐만 아니라 그가 경험한 많은 여행담과 모험담들 중에서 그 어느 것을 골라 나에게 말해준다 해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안심시켰다. 그뒤 다시 만난 이후로 나는 올랍 얀센과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조금씩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너무 경이로와서 우리의 이성과 일반적인 믿음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늙은 노르웨이인은 대단한 열정과 성실성으로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와의 대화에 빠져 들게 됐다.

       그러던 그날 밤, 심부름꾼의 호출이 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뒤에 이미 나는 올랍 얀센의 방갈로에 있었다. 그는 비록 내가 부름을 받은 뒤 즉시 그의 곁으로 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다림으로 매우 안달해 있었다.
       아직 그가 나를 반기기 위해 손을 붙잡고 있는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서둘러야만 해?하고 그는 소리쳤다.
       “내게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많은 해줄 이야기가 있소. 당신 말고는 아무도 믿지 못할 거요. 나는 그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소.” 그는 서두르는 듯이 계속 이어갔다.
       “나는 밤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소. 영면에 드신 나의 아버님 곁으로 함께 할 시간이 마침내 왔소.”
       나는 그가 좀더 편하도록 베개를 권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용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되어 반갑다고 안심시켰다. 괴괴하게 깊어간 시각, 주위의 적막함, 임종을 앞둔 사람과 함께 홀로 남겨진 묘한 감정,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전해주는 신비한 이야기와 결합되어 무어라 꼭 집어 형언할 수 없는 느낌과 함께 나의 심장을 격렬하게 뛰게 했다.

       그날 밤 그 늙은 노르웨이 사람의 침상 곁에서는 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내게는 어떤 이치에 호소하는 확신이라기 보다는 감정이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해 준 이상한 땅, 이상한 나라, 이상한 세상을 믿는 듯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제 보는 듯했고 천 여명의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부르는 힘에 넘치는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는 초인적인 힘을 부여받은 듯 빠르게 말했고 어느 모로 보나 이성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떠한 자료들과 그림들, 그리고 조잡하게 그린 원본지도들을 내 손에 들려주면서 말했다.
       “이것들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전하는 진리를 알게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에 만일 그것들을 세상에 전하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다짐받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오. 그러면 얼어붙은 북극 땅에 관한 모든 신비가 설명되어질 것이기 때문이오. 당신의 운명 안에는 이미 내가 모진 고초를 겪은 그런 고통을 겪을 기회는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족쇄로 채우지도 않을 것이며, 정신병원에 구금시키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 스스로 지어내 한 말이 아니고 내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딘, 토르 신께 감사드리며 나는 무덤 속에서 편히 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자들의 박해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 세상에 있게 될 것입니다.”
       멀리까지 미칠 결과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 약속은 의무가 되어 그 뒤로 내게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다줄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손을 내밀었는데 그것으로 그의 유언을 충실히 실행하기로 한 맹세가 되었다. 태양이 타일로 만든 산 야신토(San Jacinto)의 첨탑 너머로 떠올라 동쪽으로 멀어질 때, 항해자이자 탐험가이며 오딘, 토르의 숭배자이고 또한 이미 말한대로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비유할 데가 없는 색다른 경험과 여행을 한 사나이, 올랍 얀센은 타계했다.

       그리하여 나는 시신과 함께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로포튼 섬 출신인 이 이상한 사람의 마지막 구슬픈 장례의식을 치른 뒤인 지금까지도 ?더 멀리 가세! 북쪽으로?라고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얼어붙은 동토의 용기있는 탐험자, 그는 이미 80년의 인생 역정을 보낸 뒤 만년에 태양의 축복을 받은 캘리포니아에서 평온한 평화의 피난처를 찾은 것이다. 나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한두 가지 묵상에 잠겨야 되겠다.
       “세대는 세대를 뒤따르고 희미한 과거로부터의 전통들은 아비로부터 아들까지 전승된다. 그리고 얼음으로 유폐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희미해지는 세월과 함께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세대가 지날수록 하나의 충동이 베일에 가려진 북극의 최후 거점-침묵의 북극권, 빙하의 땅, 차가운 물의 황무지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온화한 바람이 부는 곳-의 정체를 포착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휘젓는다. 산더미 같은 빙산 속에 있는 명백한 지구의 중력중심-고래들이 그들의 육아실을 갖추고 있는 조수의 요람지, 나침반의 자석 침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곳, 북풍이 휘몰아치고 극광(오로라)이 밤을 비추는 곳-에 대한 관심은 점점 깊어져 모든 세대의 용기있는 정신으로 북극의 위험에 과감히 도전하여 모험을 감행하고 탐험한다. 그리고 그곳에 관해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최근의 가장 훌륭한 작품중의 하나는 윌리엄 와렌(William F. Warren)이 집필한 『발견된 낙원, 혹은 북극에 있는 인류의 요람』이다. 와렌은 그의 조심스레 준비된 책에서 실제 믿어지고 있는 진리에 대항해 기존의 진리로부터 심한 반발을 겪었다. 그러나 만일 늙은 노르웨이 사람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그것은 들어맞는 것이다. 과학자인 오르빌 리빙스턴 리치(Orvill Livingston Leech)박사는 최근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거대한 호수 해안가에서 정동석(geode)을 집어들었을 때 지구 내부에 있는 땅들에 대한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의 관심사로 자리잡았다. 정동석은 하나의 둥근 구 모양이며 명백히 견고한 돌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리면 속이 비어 있으며 수정으로 입혀져 있는 것이 드러난다. 지구는 단지 정동석의 보다 큰 형태이며, 속이 텅 빈 형태로 정동석이 생성되는 법칙은 의심할 바 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지구를 형성해 왔다.” 

       이미 올랍 얀센에 의해 얘기되어졌고 나에게 맡겨진 원고와 지도, 조잡한 그림 등에 의해 보완된 신기한 이야기를 소개함에 있어, 다음 인용문에서 딱 들어맞는 비유를 찾아 볼 수 있다.
       “태초에 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지구는 형체가 없이 텅빈 상태였다.” 
       “신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그 결과 원료적인 것에까지도 인간은 신을 닮았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버지와 유사하게 창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집을 짓는다. 현관이나 베란다는 모두 외부에 있어 부수적인 것이다. 건물은 실제로 그 안의 편의들을 위해서 건축된다. 올랍 얀센은 나를 통해 놀랄만한 발표를 했는데 신은 소박한 정밀기구인 지구를 창조하되 그 내부에 있는 것, 말하자면 지구 내부의 땅과 바다, 수많은 강과 산, 숲과 계곡들 그리고 다른 내부의 편의들을 위해 창조를 했다는 것이다. 지구 표면의 바깥은 그저 베란다나 현관에 해당하는데 그곳에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뿌리내린 산등성이 위의 이끼류와도 같은 것들이, 이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드문드문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달걀 하나를 잡아보라. 그리고 각각의 양쪽 끝에 연필의 끝과 같은 크기로 한 조각씩을 깨뜨려 떼내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올랍 얀센이 말하고 있는 양 끝이 구멍 뚫린 지구와 아주 똑같은 모형을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구 내부의 지각으로부터 지구 바깥의 지각까지의 거리는 약 300마일(480㎞)이다(달걀 껍질의 두께를 비유하여 이해). 중력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껍질의 두께가 300마일이라면, 중력의 중심은 지표 150마일(240㎞)아래에 있는 것이다. 북극 탐험가들의 항해일지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선박이 북쪽 끝의 가장 먼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항해할 때 측정한 지자기의 복각을 말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들 경사도(복각)는 가장자리에 있는 굴곡 부분(만곡부)에 존재한다. 그곳에서 중력은 지질학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전류(electric current)는 실재하지 않는 관념뿐인 북극(North Pole)을 뚫고 들어가 지구 내부에 확산된다. 지금도 여전히 이 동일한 전류는 지구 내부로 다시 급강하하여 지구 지각의 안쪽 지표를 따라 남쪽방향으로 그 진행을 계속한다.
       새바인(Sabine) 선장은 그의 저서에서 다른 위도에서 진자(흔들이)의 가속화를 결론짓는 실험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피어리(Peary)와 새바인 두 사람의 공동의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그는 말한다
     “한 진자를 파리로부터 적도 인근으로 옮기자마자 그것의 진동 시간이 증가했다는 우연한 발견은 지구의 남북극 축이 적도축보다 작다는 사실과 지구 표면에서 중력의 힘은 적도로부터 극지방을 향해 감에 따라 점진적으로 증가한다는 우리의 현재 지식에 그 첫걸음을 제공했다.”

       올랍 얀센에 의하면, 애초에 우리의 이 오래된 세상은 오직 지구 내부 사람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네 개의 거대한 강(江)인 유프라테스(The Euphrates)와 비손(The Pison), 기혼(The Gihon), 힛데겔(The Hiddekel)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강의 동일한 이름들은 지각의 바깥쪽으로 뻗어나간 작은 지류들에 적용되어 태고 이래로 인간의 기억 넘어로 전승되어 남은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 올랍 얀센은 이들 네 개의 강의 수원지 가까이에 있는 높은 산 정상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지구의 실제 배꼽(중앙)을 발견한 바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대한 식물과 동물들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이 경이로운 지구의 내부 세계에서 2년간 공부하고 답사했다고 말한다.
       그곳은 므두셀라와 다른 성서의 인물들이 살고간 이후 사람들의 수명이 수세기 동안 살 수 있는 곳이며, 내부 지각의 1/4은 물이고 3/4은 육지인 곳이다. 큰 대양들과 많은 강과 호수가 있고, 도시의 건축물들은 극치에 이를 정도로 완벽하고 웅혼장려하며, 운송수단의 방식은 마치 우리가 아프리카 주민들보다 진보되어 있다고 큰소리 치는 것처럼 우리들의 운송수단보다 훨씬 향상되어 있는 곳이다.

       지구 내부세계에서 한 지표로부터 다른 지표에 이르는 거리는 이미 인정된 지구 표면의 직경보다 약 600마일(960㎞)이 더 짧다.

       이 거대한 진공의 가운데에는 전기의 중심지가 있는데 이것은 빛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하얗고 온화하며 빛을 내는 반짝이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선명성이 다소 떨어지는 붉은 불의 거대한 공이다. 그것은 한결같은 온난함을 제공하고 있으며 불변의 중력의 법칙에 의해 이 지구 내부공간의 중심에 자신을 매단 채 지탱하고 있다. 이 전기 구름은 지구 내부의 사람들에게 연기의 신(The Smoky God)의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그것을 최고 높은 옥좌로 믿고 있다.
       올랍 얀센은 나에게 오래된 대학시절에 원심력을 이용한 운동의 실험실적인 논증에 관해 어떻게 우리 모두가 정통할 수 있었는지를 회상시켜 주었다. 만일 지구가 고체라면 지구축에 대한 회전속도가 지구를 수천 개의 파편 조각으로 찢어버린다는 것은 이미 명백히 증명되었다.

       그 늙은 노르웨이 사람은 또한 스피츠베르겐 섬 위의 육지와 프란츠 요제프 육지의 가장 먼 지점으로부터 마치 항해자들과 탐험가들이 그들의 항해일지에 적어놓은 기록과 같이 해마다 북쪽을 향해 수많은 무리의 거위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어떠한 과학자도 이들 날개 달린 새들이 그들의 미미한 본능만으로 어떤 땅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만족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올랍 얀센은 우리에게 가장 조리가 서는 설명을 해 주었다.

       북극 지방에 있는 외해(外海: open sea, 公海)의 존재 또한 해명되어진다. 올랍 얀센은 북극에 난 틈새, 물과 공기를 인입하는 부위 또는 구멍은 말하자면 약 1,400마일(2,252.6km)이라고 말했다. 이것과 관련해서 탐험가 난센(Nansen)이 그의 책에 기록한 내용이 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멋있는 항해를 해본 적이 없다. 아주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북쪽을 향하여, 한없이 북쪽으로 증기선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의 범선은 우리를 태우고, 봐도 봐도 망망대해만 펼쳐진 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통과해서 누구든지 거의 ?도대체 이 항해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하고 소리칠 정도로 더욱 깨끗한 얼음만 끊임없이 나타나는 곳으로 데리고 가주었다. 마치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시선은 항상 북쪽을 향해 있고, 또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늘 같은 어두운 하늘이 항상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또 다시 1884년 5월 10일자 판(版)인 영국의 노르우드 리뷰(Norwood Review)를 보자.
       “우리는 극지방에 이르러 한차례 안쪽으로 거대한 얼음 장애물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극지방에 얼음이 있다는 말에 시인할 수 없다. 어떤 새로운 세계가 탐험가에게 갑자기 나타나고 기후는 영국의 그것과 같이 온화하다가 그 뒤에는 그리스 섬의 기후처럼 향기롭다.”

       올랍 얀센은 지구 내부의 몇몇 강들은 흐르는 수량의 관점에서 미시시피 강과 아마존 강들이 합해진 것보다 더 크다고 주장한다. 실로 그들 강의 거대함은 그 길이보다는 폭과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이 지구의 내부 지표를 따라 북쪽과 남쪽으로 흐를 때 거대한 빙산이 발견된다. 이 강들의 일부는 폭이 15 〜 20마일(24 〜 32㎞)정도이고 길이는 40 〜 100마일(64 〜 160㎞)에 이른다.

       신선한 물로 구성되지 않은 북극해와 남극해 어느 쪽에서든 단 한 차례의 빙산도 결코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 과학자들은 결빙이 염분을 제거한다고 주장하지만 올랍 얀센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소멸된 종족의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고대 힌두, 일본과 중국의 기록들은 모두 태양숭배의 관습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올랍 얀센이 폭로한 놀랄만한 빛 안에서 가능하다. 지저세계의 사람들은 북극의 구멍을 통해서든 남극의 구멍을 통해서든 지구 내부의 지각 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전기의 거대한 구름기둥 또는 전기의 모체 구름인 지구 내부 중앙에 있는 태양, 곧 연기의 신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들의 한결같이 온화하고 유쾌한 대기에도 지치게 되어 더 밝은 빛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 중 일부는 마침내 얼음지대 너머로 앞장서 나아갔으며 지구의 바깥 지표 넘어 아시아 유럽 호주 남아메리카 등지로 흩어졌다.

       다음의 인용문은 의미심장하다.
       “모체가 되는 지역에서 유출된 인간에 관한 많은 참작사항들은, 아직 분명치는 않지만 그들이 북쪽에 있었다가 몇몇 방향으로 흩어져 나간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이주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 과학월간지 「M. Le Marquio G. de Saporta」 1883년 8월호, 753쪽

       우리가 적도에 접근할 때 인간의 신장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인들은 아마도 일반적으로 남극으로 지명되는 구멍을 통해 외부로 나온 지구 내부 출신의 유일한 원주민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인족으로 불리운다.
       올랍 얀센은 애당초 세상은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 창조되어서 인간은 일찍이 그 이래로 선택받은 사람들의 주택이 되었던 지구 내부의 지표 위에 살도록 설계되었다고 단언한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역사를 지녀왔다.
       지구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는 우리가 친숙하게 잘 알고 있는 노아와 그 방주의 이야기가 암시하는 설화를 포함하고 있다. 콜롬부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모든 종류의 들짐승들과 날짐승들을 싣고 어떤 항구로부터 출발하여 북쪽 저 멀리 어디쯤에 있다고 들어왔던 이상한 뭍에까지 항해해 나아갔다. 그러나 그 일은 그 후로 결코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엄청나서 상고 시대의 매장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알래스카의 북방 경계선 위에서, 그리고 시베리아 해안 뒤에서는 아직도 자주 어마어마한 분량의 코끼리 상아를 포함하는 묘지(bone yard)가 발견된다.
       올랍 얀센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들은 들과 숲 그리고 지구내부 세계의 수많은 강둑 위에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는 거대한 다산성의 동물생활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 물질들은 대양의 조류 안에 걸려들었거나 바다에 떠 있는 부빙(浮氷)위에 도달하였으며 시베리아 해안 위에 표류하는 나무같이 축적되었다. 이것이 오랜 세월동안 계속 진행된 결과 이러한 신비한 뼈의 무덤이 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윌리엄 와렌은 이미 인용한 바 있는 그의 책 297 〜 298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극의 바위들은 플라톤이 언급한 것보다 한층 더 경이로운 잃어버린 아틀란티스를 웅변한다. 시베리아의 화석화된 상아 무덤은 이 세상에서 같은 종류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 최소한 선신세(鮮新世 3기) 시대로부터 그것은 끊임없이 개발당하고 있는 중이었으며 아직도 그곳은 주요한 공급의 근거지이다.”

       그레이타 캡(Grata cap)이 “시베리아의 북쪽 섬들은 가득한 뼈들로 쌓아올린 듯하다”고 말하듯이 매머드(mammoth: 맘모스)의 화석들은 너무나 풍부해서 새로운 시베리아에 대해서 말하는 또 다른 과학적인 작가는 레나 강 어귀의 북쪽에 대해 이런 말을 전한다.
     “많은 양의 상아가 매년 땅으로부터 파헤쳐진다. 실제로 몇몇 섬들은 단지 표류하는 목재와 매머드의 시체들, 그리고 함께 결빙된 대홍수 이전의 다른 동물들의 축적물이라고 믿어진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러시아인의 시베리아 정복이래 경과했던 수많은 세월 동안 2만 마리보다 더 많은 매머드로부터 유용한 상아 엄니가 모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올랍 얀센의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나는 그가 홀로 원고를 적어놓은 대로-북극탐험에 대한 최근의 작품들로부터 적절한 인용문들을 배치해서 이야기로 꾸며놓은 그대로 -상세히 전한다. 이것들은 그 노르웨이 노인이 자신의 경험들과 동토의 북극을 탐험한 다른 항해자들을 얼마나 신중하게 비교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여 오딘과 토르의 사도는 원고를 작성한 것이다.

    1.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 〜 1324):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의 여행가. 『동방견문록』의 저자
    2. 헤카티우스(Hecateeus): 그리스 신화의 헤카테(Hecate). 천상과 지상, 지하를 다스리는 여신을 말함. Artemis와 동일시 된다. 
    3. 레토(Leto):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Zeus와의 사이에서 Apollo와 Artemis의 두 신을 낳은 여자
    4. 오딘(Odin): 북유럽 신화의 아사 신족(神族,the Aesir)의 지배자. 지식․문화․시가․전쟁의 최고 신
    5. 토르(Thor):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번개, 비, 농사의 신
    6. 복각(dip needle): 지구상의 임의의 지점에 놓은 자침의 방향이 수평면과 이루는 각. 나침반의 자침이 극지방에서는 수평을 이루지 않으므로 생기게 되는 수평면과의 경사를 말한다.
    7. 피어리 (Robert edwin Peary 1856 〜 1920): 미국의 해군 군인, 탐험가. 북극 탐험을 위해 수차례 그린랜드를 조사, 3차에 걸친 북극 탐험에서 1909년 4월 6일 북극에 도달. 2차 탐험대원인 쿡(F.A. Cook)과 서로 최초의 북극 탐험을 주장하여 결국 그의 업적이 인정됨. 저서에 『북극』  『북쪽의 빙하』 등이 있다.
    8. 므두셀라(Methselah): 노아 홍수 전의 족장으로 969세까지 장수
    9. 난센(Fridt jof Nasen 1861 〜 1930): 노르웨이의 북극 탐험가․정치가. 오슬로 태생. 그린랜드 횡단을 시도, 1895년에 썰매로 북위 86。14′지점에 도착. 국제 해양 연구소장 역임. 1922년 노벨 평화상 수상. 저서에 『그린랜드의 초횡단』 『북극』 『북극의 안개 속에서』 등이 있다.
    10. 선신세(鮮新世): 신생대(新生代)의 제 3기를 5개로 구분한 것 중 최후의 지질 시대. 포유동물의 발달이 현저하고, 기후는 중신세까지 이어져 온난하였고 식물군 변화의 지역차가 심했던 시기이다.
    11. 상아엄니: 식육동물의 양 턱에 난 송곳니


    제2장 올랍 얀센의 이야기

       나의 이름은 올랍 얀센이다. 나는 발틱해의 북쪽 포구에 있는 항해를 주업으로 하는 조그만 러시아 마을 울랴보르(Uleaborg)에서 태어났다. 비록 보스니아만의 동부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엄연한 노르웨이인에 속한다. 당시 부모님은 보스니아만에서 고기잡이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고 내가 태어날 때인 1811년 10월 27일 되는 날, 러시아 마을인 이곳 울랴보르에 입항했다.
       나의 아버지 옌스 얀센(Jens Jansen)은 로포튼 섬 가까이의 스칸디나비아 해안에 있는 로드윅(Rodwig)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결혼 후 나의 외갓집 사람들이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관계로 다시 스톡홀름에 정착했다. 그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었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해안을 따라서 고기잡이 여행을 시작했다.
       유년기의 나는 책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아홉 살 되던 해 스톡홀름에 있는 사설학교에 배치되어 그곳에서 14세까지 남겨져 교육을 받았다. 그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모든 고기잡이 항해에 동참하여 정기적인 여행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키가 6피트3(1m 90㎝)으로 체중은 15스톤(95kg)이 초과하는 사람이었으며, 가장 강인한 부류의 전형적인 노르웨이인으로 일찍이 내가 알고 있었던 다른 어떤 남자보다도 더욱 참을성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부드러운 부인의 상냥함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결단력과 의지력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나이 열아홉 살이었을 때 우리는 어부로서의 우리 여행이 마지막임이 판명된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직은 내 인생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세상에 공개하게 될 이상한 이야기에 적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심한 모욕과 구금 그리고 고통을 받을까 두려워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책으로 펴내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아버지와 함께 경험한 놀라운 발견들에 대해 아무 이유 없이 다만 그 진실을 말했다는 것만으로 나를 구조한 포경선의 선장에 의해 족쇄에 채워졌다. 그러나 이것으로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집을 비운 지 4년 8개월 만에 나는 스톡홀름의 집에 도착하였으나 바로 1년 전에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부모님에 의해 남겨진 재산의 소유가 외가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을 단지 알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즉시 내게 소유권이 돌아왔다. 내가 우리 모험에 대한 이야기와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자 모든 것이 한동안은 잘 되어가는 듯했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그 이야기를 상당한 재력가인 구스타프 오스털린드(Gustaf Osterlind)라는 나의 아저씨에게 상세히 털어놓고, 그에게 내가 그 이상한 세계를 향해 또 다른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원정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뒷받침해 달라고 촉구했다. 처음 나는 그가 내 계획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흥미를 느끼는 듯 우리가 경험한 여행담과 발견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했던 것처럼 어떤 관리들 앞에 가서 설명하게끔 나를 초대했다.

       내 설명이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내가 느낀 실망과 공포를 한 번 상상해보라. 어떤 모르는 서류들이 아저씨에 의해 서명되었으며 경고 한마디 없이 나는 체포되어 실망스럽고 두려운 정신병원에 구금되기 위해 급히 내보내졌다. 그곳에서 나는 장장 28년 동안 그 길고도 지루하며 두려운 고통의 세월 속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동안 나는 결코 내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중단해 본 적이 없으며 부당하게 갇힌 것에 대한 항의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1862년 10월17일, 마침내 나는 석방되었다. 나의 아저씨는 죽었고 내 젊은 시절의 친구들은 이제 낯선 이방인이 되었다. 실제로 50살을 훌쩍 넘긴 한 사나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이 단 한명의 친구도 없는 미친놈이라는 기록뿐이었다. 나는 당장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상당한 수의 고기잡이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항구쪽으로 몸을 향했다. 그리고 일주일 안에 나는 얀 한센(Yan Hansen)이라는 어부의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는데 그는 로포튼 섬까지 장기간의 고기잡이 순항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여기에서 내 젊은 시절의 항해훈련이 생계를 꾸리는 데 유용하고 가치 있었던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항해는 단지 다른 여행들의 시작에 불과했으며 근면함과  경제적인 검소함으로 나는 몇 년 내로 내 소유의 고기잡이 범선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 뒤로 27년 동안 나는 어부로 바다를 좇아다녔으며, 5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마지막 22년은 내 자신을 위해 살았다.

       이러한 모든 세월동안 나는 내 업무에 임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서, 책들을 가까이 하는 가장 근면한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나갔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나 자신에 의해 밝혀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미 인생의 말년에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갖가지 기록과 지도들을 어느 누가 보거나 알게 될까봐 늘 두렵다. 지상에서의 나의 인생이 끝날 때, 나는 세상을 밝혀줄 그리고 인류에게 유익하기를 희망하는 갖가지 지도와 기록들을 남기고자 한다. 미칠 것 같은 광기로 가득찼던 내 오랜 구금생활의 기억과 소름끼치는 고뇌, 그리고 수많은 고통들이 너무도 생생해서 내가 그밖의 다른 좋은 기회를 잡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다.

       1889년 나는 내 고기잡이배를 팔아 치우면서 남은 여생을 지켜줄 아주 충분한 양의 돈을 축적했음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6년간 나의 집은 바타비아(Batavia) 인근에 있는 일리노이(Illinois)주에 있었다.
       당시 많은 분량의 책들을 선별해 스톡홀름에서 가져왔음에도  지금 현재 내 사설 도서관에 비치된 대부분의 책들은 그곳에서 다시 모은 것이다. 그후 1901년 3월 4일 이곳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도착했다. 그날은 맥킨리(Mckinley)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날이었으므로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초라한 집 한 채를 샀으며 스스로 직접 기른 덩쿨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나의 일에 관련된 책들에 의해 보호되어지는 이곳 내 거주지의 은퇴생활 속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새로운 세계의 갖가지 지도와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했으며 또한 아버지와 내가 스톡홀름을 떠났을 때로부터 우리가 남극에서 헤어졌던 비극적인 사건 때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히 쓰기로 결심했다.


                     ☆     ☆     ☆     ☆     ☆     ☆


       나는 우리가 1829년 4월 3일 고기잡이 범선(Sloop: 외돛배)을 타고 스톡홀름을 떠나 남쪽으로 항해해간 것과 고틀랜드(Gothland) 섬을 떠나 왼쪽으로, 그리고 욀란드섬에서는 오른쪽으로 항해했던 것을 잘 기억한다. 수일 뒤 우리는 샌드홈마 포인트(Sandhommar Point)를 성공리에 회항하여 스칸디나비아 해안으로부터 덴마크를 가르는 좁은 해협을 통해 순항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크리스찬샌드(Christiansand)라는 마을에 입항했는데 그곳에서 이틀간 휴식을 취했고, 그 다음 로포튼 섬을 향해 서쪽으로 스칸디나비아 해안을 따라 출발했다.

       나의 아버지는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그것은 지난번에 잡은 어획고를 스칸디나비아 해안을 따라 산재한 어촌들에 파는 대신, 스톡홀름 시장에 내다 판 것에 의해 그가 받았던 훌륭하고 만족할 만한 보상 때문이었다.
       그는 특별히 그 이전 해에 있었던 여러 북방 순항 중에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의 서쪽 해안에서 발견했던 약간의 코끼리 상아를 내다 판 것에 만족스러워 했다. 그는 이번에도 운이 좋아 우리가 또다시 대구와 청어, 고등어, 연어 대신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에 상아를 충분히 가득 싣게 될 희망을 나타냈다.

       우리는 위도 71도 40분인 함메르페스트(Hammerfest)에 입항하여 며칠간 휴식을 취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식량과 몇 개의 식수용 물통을 공급받는 상태로 일주일간 체류했다. 그리고 나서 스피츠베르겐을 향해 출항했다.
       처음 며칠은 탁트인 외해를 볼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만났다. 그러고나서 우리는 많은 양의 얼음과 빙산들을 마주쳤다. 우리의 조그마한 외돛배보다 큰 배가 미로 같은 빙산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나아가거나 또는 겨우 열린 수로를 비집고 나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들 괴물 빙산들은 수정궁전들, 거대한 성당과 환상적인 산맥들, 엄하게 보초서는 형상, 높이 치솟은 견고한 바위절벽, 조용히 침묵하고 서 있는 스핑크스, 물결이이는 끊임없는 파도들에 저항하는 모습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많은 구사일생의 탈출들 후에 우리는 6월 23일 스피츠베르겐에 도착하여 위야드(Wijade)항에 잠깐 정박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성공적인 어획고를 올렸다. 그뒤 다시 닻을 올리고 힌로펜(Hinlopen)해협을 통해 출항하여 북동부의 내륙을 따라 연안을 항해했다.

       강한 바람이 남서부로부터 불어왔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이용하여 프란츠 요제프에 도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말했다. 그곳은 바로 전 해에 우연히 스톡홀름의 시장에서 상당한 판매고를 올려 준 상아엄니를 발견했던 곳이다. 또한 앙드레(Andree)가 스피츠베르겐의 북서 해안으로부터 그의 운명적인 기구항해를 출발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결코 그 이전이나 이후로 그렇게까지 많은 해초를 본 적이 없다. 그것들은 너무 수가 많아서 해안가에 있는 바위들을 가리는가 하면 하늘을 어둡게 뒤덮을 정도였다.
       며칠 동안 우리는 프란츠 요제프의 바위 해안선을 따라 항해했다. 마침내 순풍이 불어와 우리가 서부해안으로 항해하는 것은 순탄했다. 그리고 24시간의 항해 뒤에 우리는 한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다. 그곳이 먼 북극 땅이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초목이 자라 푸르렀으며 대기는 따뜻하고 잔잔했다. 또한 멕시코만류2)의 영향이 가장 예리하게 느껴지는 지점에 있는 듯했다.

       동쪽 해안에는 수많은 빙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있는 이곳은 수로가 뚫려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서쪽 멀리에는 거대하게 떠 있는 빙하군(群)들이 있었으며 서쪽으로 더 멀리 가면 빙하가 낮은 언덕의 산맥처럼 보였다. 우리 앞에 그리고 곧 바로 북쪽으로는 탁트인 외해가 놓여 있었다.
       존 배로우 경(Sir John Barrow)은 『북극 지역 내에서의 발견과 조사의 항해』란 제목이 붙여진 그의 작품 57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이치(Mr.Beechey)씨는 자주 발견되어지고 주목되어지곤 했던 스피츠베르겐 서부해안의 온도가 온화함을 언급한다.
      “그곳에는 비록 온도계가 단지 빙점 위 몇 도를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춥다는 기분이 거의 없다. 청명한 날의 눈부시고 생생한 색채 배합, 맑은 하늘에 태양이 곧장 내려 쪼일 때 그것의 푸른 색조는 너무도 강렬해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탈리아의 하늘과도 견줄 수 없다.”

       나의 아버지는 오딘과 토르의 열렬한 신자였다. 그래서 자주 내게 그들은 삭풍(북풍)너머 멀리에서 온 신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통이 있다고 했다.
       훨씬 먼 북쪽 저 넘어에는 죽을 운명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이 일찍이 알고 있었던 그 어느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운 땅이 있으며 그 곳에는 선택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케인(Kane)선장은 12월 26일 월요일 자 「모턴스 저널(Mortons Journal)」 299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기에 통행할 수 있는 수로는, 때때로 부수어진 얼음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과 함께 15마일(24㎞) 또는 그보다 조금 넓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마한 얼음조각이어서 나는 마치 북쪽을 향한 우리의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듯이 북쪽에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배가 항해함에 따라 그것이 안보이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젊은 시절의 상상력은 열정, 열성 그리고 아버지의 종교적인 열렬함으로부터 불당겨졌다. 나는 외쳤다.
       “왜 이 좋은 땅으로 항해 않느냐? 하늘은 맑게 개었고 바람은 순풍이며 바다는 열려 있다.”
       우리는 야곱 그림(Jakob Grimm)이 집필한 『독일의 신화(Deutsche Mythologie)』 778쪽에 있는 다음 글을 인용한다.

       “보올(Bor)의 아들들이 우주의 중앙에 아스가르드(Asgard)라 불리는 도시를 건설했다. 그곳에는 그 신들과 그들의 친족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거주지로부터 지구 위와 그보다 위에 있는 하늘 안에 아주 많은 놀랄 만한 것들을 계획한다. 그 도시 안에는 흘리스크얄프(Hlidskjalf)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오딘이 그곳 그의 높은 옥좌 위에 앉아서 모든 세계를 굽어보며 모든 인간들의 행위를 식별한다.”

       지금까지도 나는 아버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 그의 표정 뒤에 스며 있던 “유쾌한 놀람”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묻기를 “내 아들아, 나와 함께 일찍이 사람들이 모험했던 곳보다 더 멀리 가서 탐험하지 않으련?”   나는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오딘 신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기를…”
       그리고는 재빠르게 돛을 조정하고 나침반을 흘끗 보더니 개방된 수로를 통해 정북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리하여 우리의 항해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홀(Hall)은 288쪽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월 23일에 두 명의 뱃사람을 동반한 두 에스키모인이 캐이프 럽톤(Cape Lupton)에 갔다. 그들은 그들의 눈길이 미칠 수 있는 최대한 멀리까지 펼쳐진, 물길이 열린 바닷길이 있다고 보고했다.”
       마치 아직도 초여름인 것처럼 태양은 수평선 안에 낮게 드리워졌다. 실로 우리는 얼어붙은 밤이 다시 닫히기 전 우리 앞에 도래한 거의 4개월간의 낮 시간대를 가졌다.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배는 마치 우리들 자신이 모험을 열망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36시간 안에 프란츠 요제프 땅의 해안선에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북동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힘찬 조류 속에 놓여 있는 듯했다. 우리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더 먼 곳에는 빙산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조그마한 범선은 내로해협을 밀고 나아갔으며 수로들을 빠져나가 외해로 진입했다. 그곳의 수로는 너무 좁아서 만일 우리가 탄 배가 조금만 더 컸어도 우리는 결코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3일째 되던 날 우리는 어떤 섬에 왔다. 그곳의 해안가는 외해에 씻겨 침식되어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상륙해서 하룻 동안 탐험하기를 결정했다. 이 새로운 땅에는 숲이 없었으나 우리는 북쪽 해안 위에 떠 있는 아주 큰 부목(浮木)의 축적물을 보았다. 몇몇 나무들의 몸체는 길이가 40피트(12m)에 직경이 2피트(60㎝)였다. 그릴리5)(Greely)는 1권 100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사 카널(Connel)과 프레데릭(Frederick)이 최고 한계수위 흔적이 있는 바로 위 해변에서 아주 큰 구과(毬果: 침엽수과)나무를 발견했다. 그것은 둘레가 거의 30인치(76㎝)였으며 길이가 약 30피트(9m)였는데 2년 이내의 조류에 의해 그 지점으로 옮겨졌음이 분명했다. 그것의 일부는 땔감으로 잘려졌으며 그 계곡에서 처음으로, 밝고 명랑한 모닥불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하룻동안 이 섬의 해안선을 탐험한 뒤 우리는 닻을 올리고 뱃머리를 외해에 있는 북쪽으로 돌렸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나 자신 그외 누구도 거의 서른 시간 동안 아무 음식도 맛보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아마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말한, 일찍이 이전에 그 어느 누가 가본 것보다도 더욱 멀리 북쪽 바다로 향한 우리의 이상한 항해에 대한 긴장과 흥분 때문이었다. 활동적인 정신성이 실제적으로 필요한 요구들을 무디게 했었다.
       캐인(Kane) 박사는 그의 작품 379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무엇이 얼음이 되는지 상상할 수 없다. 세찬 조류가 끊임없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내가 해발 500피트(1.000m)보다 더 높은 곳에서 본 것은 좁은 얼음 띠뿐이었다. 단지 10에서 15마일(16 〜 24㎞)폭으로 뚫려진 넓은 공간의 수로와 함께 있는 좁고 긴 얼음만을 보았다. 그러므로 북쪽으로 나 있는 확보된 공간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하거나 아니면 그 얼음을 녹여야만 하든지 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춥기는 했지만 무척 긴장했기 때문에, 약 6주일 전에 노르웨이 북쪽 해안의 함메르페스트에 머물 때보다도 날씨는 실로 더욱 포근하고 쾌적하게 느껴졌다.
       피어리 선장의 두 번째 항해는 결빙되지 않은 외해가 극지방 또는 극지방 가까이 존재한다고 몇몇에 의해 오랫동안 주장되어진 추측을 확인시켜 주는 또 다른 상황을 설명해 준다. 피어리는 말한다.
       “거세어진 바람이 한밤중 전에 온도계를 5도까지 낮추었다. 이에 반해 멜빌(Melville)섬에서 오는 바람은 일반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온도계의 동시적인 상승을 동반한다.”
       그는 묻는다.
       “이것은 아마 바람이 처음 불기 시작한 저멀리 외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아마 극지방이나 극지방 가까이에 외해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확인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둘 다 매우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나는 잘 저장되어 있는 식료품실로부터 즉시 실속 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음식을 남김없이 실컷 먹고 나자, 아주 나른함을 느끼게 됐고 아버지에게 자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좋아, 내가 불침번을 서겠다.”

       나는 얼마나 오래 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범선 안에서의 격렬한 동요에 놀라 깨어났다는 것뿐이다. 놀랍게도 아버지가 푹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힘찬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그는 놀라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일 아버지가 그 순간 배 난간의 가로대를 즉석에서 붙잡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격노한 파도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거센 눈보라가 맹위를 떨쳤다. 바람이 배 위로 직접 불어와 우리의 범선을 놀랄만한 속도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내 우리를 전복시키고자 위협하고 있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돛들을 즉시 내려야만 했다. 우리의 배는 격동 속에서 몸부림쳤다. 우리가 아는 몇 개의 빙하들이 양쪽에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수로는 북쪽으로 곧바로 열려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내내 그래 줄까?
       우리 앞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에워싸고 있는 마치 물의 가장자리에 떠 있는 이집트의 밤처럼 어둠침침한 수평선은 증기가 많이 서린 안개 또는 그보다 좀 옅은 연무였는데, 꼭대기 쪽으로 증기 구름 같은 하얀 것이, 떨어져 내리는 크고 하얀 눈 조각과 섞여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단단해 보이면서도 깨지기 쉬운 얼음을 둘러싸고 있든, 또는 그것이 우리의 조그마한 범선이 돌진해 들어가 우리를 빠져 죽게 만들지 모를 약간의 숨겨진 장애물을 둘러싸고 있든, 그것이 단지 극지방의 안개 현상에 불과했든 아무튼 그것에 대해서 무어라 단정지을 단서가 없었다.
       홀(Hall)은 그의 작품 284쪽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프라비던스(Providence)빙산의 정상으로부터 짙은 안개가 물의 징조를 보이는 북쪽으로 피어올랐다. 오전 10시에 크루거(Kruger), 닌드만(Nindmann), 하비(Hobby) 등 세 사람이 물길이 트인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케이프 루프로(Cape Lupro)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소수의 물길이 열린 공간과 만들어진 지 채 하루도 안돼 그 위에 얼음조각들을 던지면 쉽게 깨질 정도로 가는 아주 엷은 살얼음을 보고했다.”

       도대체 어떤 기적에 의해 우리가 완전한 파괴로 운명지워질 무모한 돌진으로부터 탈출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우리의 작은 범선이 마치 그것의 이음새가 부수어지고 있는 것처럼 심하게 찌걱거리고 삐걱거린 것을 기억한다. 배가 소용돌이 조류 혹은 큰 돌개 물살의 집어삼킬듯한 격류에 의해 몹시 긴장한 채 앞뒤로 흔들거리고 휘청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미리 긴 나사못으로 나침반을 대들보에 고정시켜 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식들은 내동댕이쳐져 나뒹굴어 요리실이 있는 선실의 갑판으로부터 휩쓸려 나갔다. 만일 우리 스스로를 돛대에 단단히 묶는 예방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 심하게 요동치는 바닷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것이 틀림없다. 격노한 파도로 인해 귀청이 터질 듯이 멍멍한 소동 너머로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외쳤다.

       “용기를 가져라, 내 아들아. 오딘은 바다의 신이며 용기있는 사람의 반려자이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마라.”
       나에게 그 말은 마치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탈출할 가능성이 없다는 듯이 들렸다.
    작은 범선은 지금 바닷물을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눈은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빠르게 내리고 있었으며, 파도는 앞뒤 안 가리고 허옇게 분무되는 격노 속에서 우리를 뒤집어 넘어뜨렸다.
       어느 순간에 우리가 표류하는 거대한 빙하군과 충돌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무시무시하게 굽이치는 큰 파도가 산만한 파도의 정상으로 끌어올려지는 듯 싶더니, 마치 우리의 고기잡이 범선이 깨지기 쉬운 선체이기나 한듯이 우리를 곧장 직통으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던져 넣었다.
       실제 벽과 같으며 거대한 하얀 뚜껑을 덮어쓴 파도가 우리의 이물(뱃머리)과 고물(뱃후미)을 무시무시하게 에워쌌다. 시련은 이름 없는 긴장의 공포, 묘사할 수 없는 두려움의 고뇌와 함께 세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우리는 격렬한 속도로 앞으로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마치 그런 광란의 노력들에 대해 싫증이 나기 시작한 듯 바람은 그의 광기를 줄이기 시작하여 점차 소멸되어 사라졌다. 마침내 우리는 완전한 평온을 되찾았다. 연무가 사라졌으며 오른쪽으로 멀리 펼쳐져 있는 몇몇 빙하와 왼쪽으로 간간이 보이는 작은 군도들 사이로 폭이 10 〜 15마일 정도 되는 결빙되지 않은 수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말할 때까지 조용히 남아 있기로 결정하고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주목해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는 허리로부터 로프를 풀고 아무 말없이 다행히도 손상되지 않은 펌프로 그 미치광이 폭풍이 범선 안에 가득 채운 물을 덜어내기 위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기잡이 투망을 던지듯 아주 조용히 범선의 돛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순풍이 불어오면 우리는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와 집요, 불굴의 끈기는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상황을 점검하자 남아있는 양식이 반도 채 안되게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실망할 틈도 없이 우리는 또 배가 격렬하게 내던져지는 동안 소중한 물통이 배 밖으로 휩쓸려 나갔던 것을 발견했다. 두 개의 물통이 주요 은신처에 있었으나 둘 다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아주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었지만 신선한 물은 공급받지 못했다.
       나는 갑자기 우리가 처한 위치에 대한 두려움을 깨달았다. 곧  갈증이 엄습했다. 아버지께서 말했다.
       “정말 고약하구나, 온몸이 흠뻑 젖었으니…. 더러워진 옷을 말려야겠다. 오딘 신을 믿고 희망을 잃지 말자, 내 아들아.”

       그런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북극에 와 있지 않고 어떤 남쪽지방의 위도에 와 있는 것 같이 태양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넘어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태양은 주위에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그것의 궤도는 항상 보였고, 날마다 점점 더 높이 떠올라 자주 안개로 뒤덮였다. 그것은 아직도 항상 신비한 북극의 땅을 지키며 마치 남자의 희롱을 질투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다소 안달해 하는 비운의 눈동자같이 구름으로 된 속이 비치는 레이스 자락을 통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우리의 오른쪽으로 빙하의 프리즘을 장식하는 광선들이 현란하게 빛났다. 그들의 반사광들은 석류석, 다이아몬드, 사파이어의 섬광들로 방사되었다. 셀 수 없는 색깔들과 형상들의 화려한 파노라마, 아래로 녹색 색조의 바다가 보이는 동안 위로는 자줏빛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제3장 북풍을 넘어

       나는 은신처로부터 약간의 음식과 빈 용기들을 꺼내오는데 열중하여 갈증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뱃전 난간 너머에 도착하자 손과 얼굴을 씻기 위해 준비했던 물을 빈 그릇에 채웠다. 놀랍게도 그 물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 조금의 짠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놀란 나머지 꽤 헐떡거렸다.
       “아버지, 우리가 찾던 물이에요. 짜지 않은 담청수!”
       “뭐라고, 올랍!”

       아버지께서 허둥지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확실히 넌 실언한 거야, 여기에 육지는 없어. 넌 지금 미쳐 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물맛 좀 한 번 보세요!” 나는 소리쳤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털끝만큼의 짠맛도 느낄 수 없는 실로 청량하고 완벽한 식수를 발견했다.
    우리는 곧 남아 있는 두 개의 물통에 식수를 가득 채웠다. 아버지는 그것이 오딘과 토르 신의 자비로 인해 하늘이 내린 하사품이라 단정했다. 우리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 우리는 곧 심한 허기를 느껴야 했다. 망망대해에서 청량한 담청수를 발견한 마당에, 일찍이 배가 한 번도 항해해 본 적이 없으며 배에서 물 튀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던 이 이상한 위도에서 사실 우리가 무엇을 기대했겠는가?

       이제 산들바람이 게으른 돛을 팽팽하게 당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굶주림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무심코 나침반을 흘끗 쳐다보았을 때 우리는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 끝이 유리를 심하게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센(Nansen)은 그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물이 괴어 있다는 것은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바래왔던 것 이상으로 그것을 공부할 더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것은 담청수의 한 표면층이 바다의 짠물이 기초하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담청수는 마치 고정된 기초 위에서처럼 배가 보다 무거운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것과 함께 그 밑을 따라 운반된다. 이 경우에 있어 두 층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커서, 우리가 표면 위의 물을 마시고 있는 동안 엔진실 바닥 마개로부터 얻은 물은 훨씬 더 짜서 보일러 기관에서조차 쓸 수 없다.”

       내가 놀라는 것에 대답하여 아버지께서 말했다.
     “전에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소위 ‘복각(지표의 경사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나침반을 느슨하게 풀고 초침이 유리로부터 장애받지 않고 평온한 인력(引力)에 의해 방향을 가리키도록 바다 표면에 맞추어 올바른 각도로 조정했다.
       바늘은 불안하게 이동했으며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방향이 자주 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침내 한 진로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람이 북서풍에 의해서 우리를 북쪽으로 데려다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멋대로인 나침반의 초침과 함께, 만일 우리가 북동풍에 의해 조금씩 북쪽으로 항해 중이었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진로는 언제나 북쪽을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난센은 그의 기록에서 바늘의 경사에 대해 측근 존슨(Johnson)이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느 12월 24일 6시가 조금 지난 뒤 저녁을 들기 위해 존슨이 들어왔다. ‘경침의 경사각이 24도’되는 아주 특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늘의 북쪽 앞 끝이 동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는 꽤나 놀라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또다시 67쪽에 있는 피어리의 항해에서 다음의 내용을 알아본다.

       “그들이 랭카스터(Lancaster)해협으로 들어갔던 순간부터 나침반 바늘의 동작이 매우 둔했으며 그들이 서쪽으로 전진함에 따라 자침과 그 자침의 편차가 증가했는데, 이 입구로 내려가는 동안 내내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관측되었다. 위도 73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그 바늘의 지시하는 힘이 배의 인력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어질 정도로 약하게 된 묘한 현상을 목격했다. 그리하여 그 바늘은 아마 이제 그 배의 북극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다는 거센 삼각파도가 일지 않아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활기있고 상쾌했다. 태양광선이 우리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내리쬐는 동안 평온한 온난함을 제공했다.
       이렇게 매일매일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항해일지에 있는 기록으로부터 우리가 폭풍을 만난 이래 외해에서 11일간 항해한 것을 발견했다. 엄격한 절약으로 음식은 아주 공평하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물통 중의 하나가 고갈되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곧 물통을 다시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물이 마치 노르웨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로포튼 섬 지역에서와 같이 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득이 남은 물통에 몹시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한 욕구가 알려지지 않은 바다에서 항해를 하는 흥분된 경험의 효과였는지, 또는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모험한 흥분 속에 우리를 몰아넣었던 무서운 사건으로부터의 긴장이완 때문이었는지, 혹은 식량 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작은 범선의 벙커(석탄궤) 위에 자주 누웠다. 그리고 하늘의 푸른 반구(둥근 천장) 안으로 멀리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동쪽 멀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뜬 단 하나의 별을 항상 보았다. 며칠간 내가 이 별을 찾았을 때 그것은 늘 우리의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계산에 의하면 때는 8월 초하루쯤이었다. 태양은 하늘 높이 걸려 있었는데 그 빛이 너무나 밝아서 며칠 전부터 내 관심을 끌었던 그 하나의 외로운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했다.

       어느 날 이 시간 무렵 아버지가 멀리 우리 앞, 거의 수평선에 걸려있는 한 신기한 광경에 내 주의를 환기시켜주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외치셨다.
       “저것은 가짜 해야. 전에 그것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바로 반사된 영상 또는 신기루라 불려지는 데 곧 사라져 없어질 거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던 이 어슴푸레한 붉은 가짜 해는 몇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방사하는 어떠한 광선도 감지하지 못하는 동안 아직도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최소한 12시간을 앞에 있는 수평선을 언제고 바라볼 수 있었으며 소위 가짜 해의 조명을 관찰할 시간이 있었다.

       구름과 안개가 때때로 가짜 해의 위치를 부분적으로 숨겼다. 우리가 전진해 나아가자 점차 그것은 확실치 않은 자줏빛 하늘의 수평선에 더욱 높이 올라가는 듯이 보였다.
       태양처럼 둥근 모양과 구름과 안개에 의해 모호하게 되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면 그것이 태양을 닮았다고는 거의 말하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상당히 엄청난 빛을 저 너머에 반사하듯이, 반짝이는 구름처럼 어떤 하얀빛으로 변할, 안개어린 붉은 색조의 청동으로 만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토론에서 중지를 모아 이 안개로 둘러싸인 용광로 색깔의 태양은, 그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의 태양이 반사된 영상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위성인 하나의 실체라는 것에 동의했다.     난센은 그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정오의 한낮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태양을 보았다. 그것은 단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태양의 영상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작렬하는 불이 빙하의 가장 바깥쪽의 모서리 위에 막 불을 밝히는 광경에 의해 아주 독특한 인상이 연출되었다. 많은 북극 여행자들이 보고한 긴 겨울밤 뒤의 이 신의 첫 번째 모습에 관한 정열적인 묘사에 따르면 그 인상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흥분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직 언젠가 그것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나의 감정은 보다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웠는데,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남쪽으로 표류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곧 내가 발견한 것은 태양 그 자체가 아니고 바로 기쁨이었다.

       “그 신기루는 처음에 수평선 위에 붉은 번갯불을 이글거리며 평평하게 펴졌다. 뒤에 그곳에는 두 개의 광선이 있었는데 그 두 광선 사이에 약간의 어두운 공간을 둔 채, 한 광선 위에 다른 광선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큰 돛대의 장루(檣樓)로부터 나는 4개 또는 5개까지의 수평으로 뻗은 광선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러한 수평의 광선은 모두 똑같은 길이로 한 광선 위에 또 하나가 일직선으로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네모진 희미하게 붉은 태양에 수평의 어두운 광선들이 그 태양을 가로질러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 같았다.”  
       가짜 해의 실체에 대해 중지를 모은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극도의 졸음을 느꼈고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버지가 힘있게 내 어깨를 흔들었다.
       “올랍, 깨어나라! 저기에 육지가 보인다.”    나는 즉시 비몽사몽간에 일어났다.

       그러자 세상에!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 그곳, 우리의 행로 곧바로 훨씬 멀리에 아직도 바다 안으로 대담하게 돌출한 그 문제의 육지가 뚜렷이 보였던 것이다. 그 해안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멀리, 우리의 오른쪽에 멀리 뻗어 있었다. 전 해변가를 따라 파도가 거칠게 부서져 밀려와 포말을 만들고 밀려갔다가 또다시 앞으로 밀려왔다. 시종 단조롭게 천둥치는 어조로 장중한 노래를 되풀이해 부르며….

       나는 이러한 발견에 대한 환희에 찬 감정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키 손잡이 위에 손을 얹어 놓은 채 아무런 몸짓하나 없이 앞만을 똑바로 바라본 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오딘과 토르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화물 적재칸에서 찾아낸 그물이 던져졌다. 이어 줄어드는 양식의 재고량에 보탬이 되어줄 물고기를 낚았다.

       우리가 또 다른 폭풍을 두려워해 자리 뒤에 단단히 동여맨 나침반은 아직도 정북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마치 스톡홀름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경침이 아래로 경사져 기우는 것은 멈추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때 꽤 오랜 날 동안의 항해가 확실히 북극을 훨씬 지난 곳까지 우리를 운반해 놓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직 바늘은 북극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남쪽이었으므로 우리는 몹시 당황했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3일간 계속 항해했고 그때 피요르드 또는 거대한 크기의 강어귀에 도달했다. 그것은 거대한 만(灣)에 더 가까운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만의 안쪽으로 고기잡이배를 돌렸다. 방향이 약간 경미하게 남쪽의 북동쪽을 가리켰다.
       우리를 원조하러 온 애타는 바람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정도를 계속 항해해 나아갔다. 그곳은 바로 나중에야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힛데겔 강이라 불리우는 곳의 내지였다.
       피어리의 첫번째 항해는 69, 70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멜빌섬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엄마틴(Byam Martin)경의 섬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관측된 위도는 75°- 09′- 23″이었으며 경도는 103°- 44′- 37″이었다. 자침의 경사도(복각)는 88°- 25′- 58″경도는 서쪽 91°- 48′이었으며 그곳 해안가에서 마지막 관측이 있었는데 그들의 현재 위치에서 동쪽 165°- 50′- 09″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 두 경선 사이에 있는 공간 넘어 자북 방향으로 즉각 횡단했다. 그리고 자침이 180°로 방향을 바꾸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곳, 다른 말로 북극에서 자침이 남쪽을 가리킬 지구상의 그러한 지점의 하나를 의심할 바 없이 가로질러 통과해 버렸다.“

       우리는 그 뒤로 10일 동안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대양의 조수가 더 이상 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담수만 흐르는 멀리 떨어진 내륙에 도달한 것을 발견했다. 남아 있는 식수통이 거의 바닥이 났기 때문에 우리는 지체없이 물통을 다시 채우고 바람이 순풍일 때 더 멀리 강을 거슬러 항해를 계속했다.

       강둑을 따라 수마일 길이의 거대한 숲이 물가를 따라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우리는 해변가에 정박한 뒤 상륙했으며 물가를 걸어서 건넜는데 많은 양의 딱딱한 나무 열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맛이 좋아 굶주림을 채우기에 족했으며 기존의 단조로운 양식으로부터의 즐거운 변화였다.

       우리가 계산하기로는 스톡홀름에서 떠난 이래 다섯 달이 지난 9월 초순경이었다. 갑자기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우리는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깜짝 놀랐다. 곧 바로 우리는 이쪽을 향해 곧장 미끄러져 내려오는 거대한 배를 발견했다.

       그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하나로 입을 모아 굉장한 합창을 하고 있었는데 강에서 강으로 울려퍼지는 것이 마치 진동하는 멜로디로 전 우주를 가득 채우는 천 여명의 목소리같이 장엄하게 들렸다. 반주는 현악기로 연주되었는데 우리의 하프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일찍이 보았던 어느 배보다 훨씬 컸고 우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건조된 배였다.
       『과거의 기록들』이라 불리는 책에서 세이스(Sayce)에 의해 번역된 『아시아의 신화』 240쪽 ‘발견된 낙원’에 보면 최초의 인류를 위해 신들이 창조한 주거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다.
       “주거지 안에서 그들은 위대하게 되었고 인원이 불어났다. 그리고 그것의 위치는 이란 사람, 인디언, 중국인, 그리고 『지구의 중심에서』라고 이름 붙여진 북유럽의 신화 시가집과 아즈텍문학이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 속에 묘사되어 있다.”- 와렌(Warren)
       이 특이한 순간에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배는 바람이 자는 탓에 꼼짝할 수 없었다. 강둑은 키가 수백 미터씩 되는 나무들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었다. 우리는 멀리 내륙으로 뻗어있는 태고의 숲의 가장자리에 와 있다고 믿었다. 그 거대한 배는 멈추었고 순간 보트가 내려졌으며, 엄청나게 키가 큰 거인 6명이 올라타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으로 노저어 왔다.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우리에게 말했으며 그들 중의 한 명은 마치 우리를 보고 꽤나 괴상한 것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거리낌 없이 웃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우리의 나침반을 염탐질했는데 아마 그것이 우리 범선의 어느 다른 부분보다도 더 흥미가 있는 듯했다. 마침내 통솔자 한 사람이 우리에게 배를 기꺼이 떠나 그들의 배에 올라탈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듯한 몸짓을 했다.

       아버지께서 “네게 무어라 말하느냐, 내 아들아.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는 것 아니냐?” 하고 물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는 것 이상 무얼 더 하겠어요? 아마 호의를 갖고 대해줄 듯합니다.”내가 대답했다.
       “비록 끔찍할 정도로 큰 거인들이지만 그들의 거대한 실제 크기를 막 보고 나니, 그들은 그 왕국의 일류급 연대에서 선발된 6명임에 틀림없습니다.”
       “강제로 끌려가느니 순순히 따라가는 게 낫겠다.” 아버지께서 체념한 듯 말씀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테니까.”
       그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동반해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몸짓을 알아차렸다. 수분 내에 우리는 그 배 위에 승선했으며 30분 뒤에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은 이상한 종류의 갈고리와 연장에 의해 송두리째 물로부터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한 진기한 골동품처럼 배 위에 실려졌다. 거대한 이 배 위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승선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배가 “나즈(The Naz)”호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유쾌함” 또는 더욱 적절한 통역을 하자면 “유쾌한 유람선”을 의미했다.

       아버지와 내가 그 배의 점유자들에 의해 호기심거리로 관찰된 만큼 이 이상한 거인족들 역시 우리에게 동일한 만큼의 경이로움을 제공할 것이다. 승선한 사람 중에 12피트(3m60㎝)가 충분히 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 모두는 턱수염을 수북하게 길렀는데 특별히 긴 것은 아니고 짧게 깎은 듯이 보였다.

       그들은 온화하고 아름다운 얼굴들을 지녔으며 불그스레 혈색 좋은 안색으로 아주 피부가 희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머리와 턱수염이 검었고 다른 사람들은 엷은 갈색이었으며 노란색인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그 거대한 배를 명령하는 고위 인사로 짐작한 바 있는 선장은, 다른 동료들보다도 머리 하나는 충분히 더 컸다. 여자들은 평균키가 10 〜 11피트(3 〜 3.3m)였다.

       그들의 용모는 단정하고 세련되고 품위있게 정제되었으며, 안색은 건강미 넘치는 뺨의 홍조에 의해 최고로 섬세하고 고운 색조로 고상하게 되었다.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 우리로서는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다는 표시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특별히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예의범절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엄청난 키에도 불구하고 어색해 보이는 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단지 열 아홉 살의 젊은 소년이었을 때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실제의 “엄지손가락 톰(영국동화 속의 엄지만한 주인공, 난쟁이의 대명사)”으로 존경받았었다. 아버지의 6피트 3의 키로도 이 사람들의 허리선 위로는 머리를 쳐들 수조차 없었다.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에 의하면 남성이 역사단계에 출현한 특정한 시기와 장소는,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그 당시는 북극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던 중신세기의 대륙에서였다. 실제의 에덴동산에서 일부 초기인류들이 대홍수 이후 알려진 그 어느 나라에서도 필적할 수 없을 정도의 키와 장수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과학적으로 믿지 못할 일이 아니다.”  - 와렌 『발견된 낙원(paradise Found)』 p.284

       이곳 사람들은 마치 서로 경쟁을 하듯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친절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모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진심을 드러내듯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들이 아버지와 내가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었던 일을 잘 기억한다. 그 사람들의 옷차림은 매우 독특하고 풍요로왔으며 아주 매력적이었다. 핸섬하게 수놓아진 실크로 짠 튜닉(고대 로마시대 원로원들이 입었던 가운같은 느슨한 블라우스)과 새틴(공단)을 차려 입었으며 허리에는 벨트를 메고 있었다.
       그들은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밀착된 칠부바지를 입었으며 좋은 소재의 직물로 만들어진 스타킹을 신었다. 또한 그들은 금바클로 장식된 샌들을 신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는 금이 가장 평범하게 알려진 금속의 하나라는 사실을 일찍 발견했으며, 그것이 장식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나는 우리들의 안전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있을 곳에 왔다.”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해주신 전통의 이행이며 우리 자손의 많은 세대들을 위한 뒷받침이다. 여기는 확실히 북풍 넘어의 땅이다.”

       우리는 파티에서 그들의 언어를 교육받을 목적으로 특별히 그 사람들 중의 하나인 쥴리어스 갈데아(Jules Galdea)와 그의 아내에게 맡겨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는 그들이 가르치고자 하는 만큼 아주 열심히 배웠다. 선장의 명령에 의해 그 배는 솜씨 좋게 강 주변 사이를 오락가락했으며 강 위쪽의 경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동력기관은 소리가 없음에도 매우 강력했다. 강둑과 양편 모두의 나무들이 맹렬하게 돌진해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때때로 그 배의 속도는 심지어 이곳 미국에서 내가 일찍이 타본 어느 철도기차보다도 빨랐다. 그것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태양광선의 모습을 잃어버렸으나 대신에 진작부터 우리의 관심을 끌어왔었던 희뿌연 붉은 태양에서 반사되는 광채를 발견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앞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구름층으로부터 흰 빛을 발산하는 듯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것은 두 개의 보름달이 휘영청 비친 방보다 더 밝은 빛을 골고루 내뿜고 있었다. 12시간이 지나자 이 흰 구름은 마치 일식으로 소멸된 듯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밤에 해당되는 12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일찍이 이들 이상한 사람들이 다 훌륭한 “밤의 구름”의 숭배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부 세계의 “연기의 신(The Smoky God)”이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현대의 전기라고 추정되는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그 배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또는 우리 도시들의 거리와 가정집 그리고 사무실들을 밝혀주는 현재의 조명방법의 목적과 똑같은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불빛을 유지하는 동력원이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기계역학적으로 이해할 만큼 충분히 숙련된 조예가 없었다.

       우리가 글을 쓴 시간은 1829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한다. 지구 표면의 외부에 사는 우리는 말하자면 그때 전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전기학상으로 과도하게 충전된 상태의 대기는 불변의 동력원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구 안쪽의 세계에 체류했던 2년보다 더 나은 시절을 결코 느껴보지 못했다.
       내가 겪은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다시 시작하면, 우리가 타고 항해하고 있었던 그 배는 승선한 이후 이틀 동안 멈추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스스로의 예지로 이렇게 판단하셨다.
       “우리는 지금 스톡홀름이나 런던의 바로 아래에 있다.”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항구도시의 마을을 의미하는 예후(Jehu)라는 지명으로 불리웠다. 집들은 크고 아름답게 건축되었으며 외형이 동일한 형태였으나, 그럼에도 완전히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사람들의 주요한 산업은 농업인 듯했다. 산허리는 포도밭으로 덮여 있었으며 계곡에는 풍성한 곡물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결코 그렇게 금이 많이 진열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각종 문틀은 모두 상감세공으로 무늬를 박아 넣은 금이었고, 합판으로 된 식탁들의 겉판은 금판으로 겉치장되어 있었다. 공공건물의 둥근 돔들도 모두 금이었다.

       내가 본 포도송이들은 길이가 4 〜 5피트(122 〜 152㎝)였고 각각의 포도알은 오렌지만큼 컸으며 지구 내부 세계에서 모든 것들의 경이로운 성장을 대표하는 사과는 사람의 머리보다 더 컸다. 모든 방향으로 각각 수마일로 뻗어있는 거대한 숲 속의 나무들에 비교하면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아메리카 삼나무들은 단지 키작은 덤불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
       강 위에서 우리가 여행한 마지막날 동안 산기슭을 따라 사방에서 거대한 무리의 소떼가 보였다. 우리는 “에덴”이라고 불리는 도시에 대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1년 내내 예후에 갇혀 있었다. 그 시기의 끝에 우리는 이 이상한 사람들의 언어를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의 교사들인 쥴리어스 갈데아와 그의 아내는 실로 칭찬할 만한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 에덴의 지배자가 파견한 사신이 우리를 보러왔다. 이틀간에 걸쳐 꼬박 아버지와 나는 일련의 놀라운 질문에 시달렸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외부세계에 살고 있으며, 어떤 신을 신앙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종교적인 신념들과 생활방식, 그 외에도 천 여 가지의 다른 것들을 알고싶어 했다.

       우리가 가지고 간 나침반은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비록 우리가 지구 구멍 안쪽의 굴곡진 곳 또는 지구 구멍의 변두리 너머 지구 안쪽으로 항해해 왔으며 우리가 지구지각의 안쪽 위에서 남쪽을 따라 멀리 와 있다는 사실을 지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침반이 아직도 북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들끼리 서로 설명하며 논평했다.

       아버지와 나의 추정에 따르면, 지각은 안쪽에서 바깥쪽 표면까지의 두께가 약 300마일(480㎞)이다. 상대적으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달걀껍질보다 두껍지 않다. 따라서 거의 지구 밖의 지표면적 만큼이나 많은 지표를 지구 내부에도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의 아침과 저녁에 비추어주는 일한 힘으로 당기거나 밀어내는 알려진 힘 때문이라고 여긴다.거대한 빛나는 구름이며 또는 불같이 붉은 희뿌연한 불, 그리고 낮 동안에는 아름다운 흰 광선을 내뿜어 비추어주는 연기의 신은 지구 내부의 거대한 진공의 중앙에 매달려 있는 듯했으며, 불변의 중력법칙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반발하는 대기의 힘에 의해 그곳을 고수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것이 모든 방향으로 동

       신들의 자리인 이 전기구름 또는 중앙발광체의 기반은 셀 수 없이 많은 조그마한 틈구멍을 제외하면 어둡고 불투명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한 받침의 밑바닥 혹은 그 위에 안개의 신이 휴식하고 있는 신의 제단 밑바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들은 이들 많은 틈 구멍을 통해 그들의 모든 광휘를 뽐내며 반짝인다. 그리고 그들이 보다 크게 나타나는 것만 제외하면 우리가 스톡홀름의 우리 집에서 보았던 빛나는 별들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별들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지구의 매일의 자전과 마찬가지로 연기의 신은 지표 바깥 세계에 떠 있는 우리의 태양과 똑같이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실제로 지구 내부에 사는 사람들은 연기의 신이 그들의 여호와(Jehovah)의 왕좌이며 고정되어 변화가 없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므로 밤과 낮의 효과는 지구가 매일 자전하는 것에 의해 생성되었다.
       나는 일찍이 지구 내부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산스크리트어1)와 많이 닮은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내부대륙의 중앙정부의 자리로부터 파견된 사신에게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한 후,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요청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미숙한 방식으로, 육지와 물의 구획들, 각 대륙들과 큰 섬들 그리고 대양들의 이름을 보여주는 지도들을 그렸다.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타본 어느 것 하고도 다른 수송기관을 타고 육로로 에덴의 도시로 보내졌다. 이 차량은 의심할 바 없는 전기 고안품이었다. 그것은 소음이 없었고 완전한 균형 속에서 외길로 된 철로 위를 달렸다. 우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여행했다. 우리는 많은 언덕 위로 끌어올려졌다가 구릉지대의 넓은 골짜기 아래로 끌어내려졌으며 또다시 깎아지른 산허리를 따라 달렸다. 그들은 우리가 선로를 평평하게 만든 것처럼 평평하게 하려는 어떠한 명백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차의 좌석들은 거대하게 컸으나 그럼에도 안락한 것이었으며 그 차의 바닥으로부터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각 차량의 꼭대기에는 고속으로 나는 바퀴들이 그들의 양쪽 위에 있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잘 조정되어서 그 차의 속도가 증가할 때 이들 다른 바퀴들의 높은 속도가 지질학적으로 증가되었다. 줄리어스 갈데아는 그 차의 꼭대기 위에 있는 이들 송풍기처럼 생긴 회전하는 바퀴들이 대기압력 또는 일반적으로 중력으로 이해되는 것을 제거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같이 제거되었거나 균형으로 조정된 힘으로 인해 그 차는 마치 그것이 진공 속에 있는 것처럼 그 외길 선로로부터 이쪽이나 저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진행한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그 나는 바퀴들은, 소위 중력의 힘 또는 대기 압력의 힘 혹은 떠받치고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이 지표 위나 가장 가까운 저항점에 떨어져 내리려 하는 원인들 같은 어떤 강력한 작용일지라도 제거한다.
       드넓은 홀의 왕의 장엄함 속에 있었을 때 아버지와 나의 놀라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침내 그 모든 땅의 지배자인 대 고위사제 앞에 불려갔다. 그는 풍요로운 복장으로 차려입었고 주위 사람들보다 키가 훨씬 컸으며 14 〜 15피트(4 〜 5m)보다 더 작아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접견받은 그 광대한 방은 놀랄만큼 눈부신 보석으로 빽빽히 장식 못을 단 순금으로 된 널판지로 된 듯했다.

       에덴의 도시는 아름다운 계곡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그 주위 나라의 어느 부분보다도 수천 피트나 더 높은, 지구 내부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위 고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보았던 다른 어떤 곳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높은 정원 안에는 많은 종류의 과실, 포도나무, 키 작은 관목, 나무, 꽃들이 떠들썩하게 풍부했다.

       이 정원 안에는 네 개의 강의 수원지인 한 강력한 분수우물(自噴井)이 있다. 그들은 갈라져서 네 방향으로 흐른다. 이곳은 거주자들에 의해 “지구의 배꼽”또는 시작인 “인류의 요람”이라고 불리운다. 그 강들의 이름은 창세기2장에 에덴에 있었던 강의 이름과 같은 유프라테스, 비손, 기혼, 힛데겔이다.
    강에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첮째의 이름은 비손 둘째 강의 이름은 기흔 셋째 강의 이름은 헷데겔 넷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러다(창2:10-)
       그런데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을 발견하게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1년도 더 되기 전에 강에서 우리를 발견했던 사람들에 의해 그들 배에 끌어올려졌던 바로 그날, 금방 물로부터 가져다 놓은 것처럼 완전한 모습으로 그 높은 고위 사제 앞에 가져다 놓여졌다.

       우리는 이 위대한 고위 성직자에게 인도되어 2시간이 넘게 알현, 접견했는데 그는 예의바르고 이해심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하고 그의 사신들이 채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에 관해서도 변함없이 질문을 하여 자신의 간절한 흥미를 몸소 보여주었다.
       접견의 결말에 그는 우리가 만족하는지 물어보았으며 우리가 그의 나라에 남아있기를 원하는지 또는 우리가 만일 지구의 북극, 남극의 구멍 모두를 에워싼 빙하띠의 장애물을 가로질러 건너 성공적인 귀환여행을 할 수 있다면 바깥세계로 되돌아가기를 더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와 내 아들이 당신의 나라를 방문하고 당신네 사람을 만나고 대학교들, 음악과 예술의 궁전들, 거대한 들판들, 수목이 울창한 멋진 숲들을 보게 된다면 기쁘기 한량없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특권을 누린 뒤, 지구의 외부세계에 있는 우리 집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애는 저의 독자입니다. 무엇보다도 제 아내가 우리의 생환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최고위 사제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결코 귀환하지 못할까봐 두렵소. 왜냐하면 귀환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호위해 줄 줄리어스 갈데아와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호의와 친절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귀환여행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면 언제든지, 여기 전시되어 있는 당신의 배를 힛데겔 강의 어귀 물가에 대기시켜줄 것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번영하심으로 귀환 도중의 안전을 빌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최고사제이자 그 대륙의 지배자와의 유일했던 우리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제4장 지하세계에서

       우리는 그들이 75 〜 100세에 이르기 전에는 남자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으며 여성이 결혼하는 나이는 단지 조금 더 어릴 뿐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는 보통 6백 〜  8백 세를 사는데 일부는 더 오래 살기도 한다.
       요세퍼스(Josephus)는 말한다.

       “신은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인류 조상들의 수명을 길게 늘렸는데, 이는 그들의 미덕과 그들에게 그 자신이 비밀을 밝혀낸 기하학과 천문학을 완벽하게 할 기회를 주기 위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인류 조상들이 600년을 살지 못했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600년이라는 기간이 지난 후에야 기하학과 천문학을 완벽하게 이루는 위대한 해(year)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 훌라마리온(Flammarion) 『천문학적 신화들』 파리 p.26

      그 이듬해 동안 우리는 많은 마을과 도시들을 방문했는데 그들 중 두드러진 도시는 니기(Nigi), 델프트(Delft), 헥티아(Hectea) 시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지구의 바깥 세계에 있는 땅과 물의 구획 등을 처음 작성했던 개략적인 스케치로부터 만들어진 지도들을 되풀이 설명해 주기 위해 무려 여섯 번이나 부탁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연기의 신의 땅에 사는 거인족의 사람들이 스톡홀름에 있는 보통의 대학교수가 이해하고 있는 것만큼 지구 외부세계의 지리에 대해 거의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진술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여행 중에 우리는 델프트 시 가까이 있는 거대한 나무숲에 왔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곳에는 300피트(90m)가 넘게 하늘높이 치솟은 나무들이 있는데 에덴동산에서 자라는 직경이 30피트인 나무들보다 더 굵다.

       인거르솔(Ingersolls), 톰 페인(Tom paines), 볼테르(Voltaires)는 이 진술이 의심할 여지없이 신화라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캘리포니아 세쿼이어1) 거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원시 캘리포니아의 거목들은 지구 내부 대륙에서 발견된 골리앗 숲(the foreast goliaths)에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곳에는 800 〜 100피트(240 〜 30m)높이에 100 〜 120피트 직경에 이르는 육중한 나무들이 울창한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바다 뒤로 수백 마일에 걸쳐 뻗어 있다.

       그 사람들은 매우 음악적이고 예술과 과학, 특히 기하학과 천문학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도시들은 방대한 음악 궁전들을 잘 갖추어 놓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종종 2만5천 명이나 되는 이들 거인족의 원기 좋은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장엄한 교향악들의 힘 있는 합창이 울려 퍼진다.

       아이들은 20세가 되기 전에는 교육기관에 다니게 되어 있지 않다. 20세가 되면 학교생활이 시작되는데 30년 동안 계속된다. 그 기간의 10년은 남녀 모두 한결 같이 음악 공부로 할애한다.
       그들의 주요한 직업은 건축업, 농업, 원예업, 방대한 가축 떼를 기르는 목축업, 육로와 수로로 여행하기 위한 그 나라의 독특한 수송, 빌딩업 등이다.

       나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몇몇 장치에 의해 그들은 공중에 쏘아 올린 전류로 그들 나라의 가장 먼 곳과도 서로 통화가 유지되었다.
       모든 빌딩들은 강도나 내구성, 아름다움, 대칭성, 그리고 내가 보아왔던 그 어느 것보다 더욱더 시선을 끄는 설계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지표 내부 세계의 약 3/4은 육지이며 약 1/4은 물이다. 그곳에는 무시무시하게 큰 수많은 강들이 있는데, 일부는 북쪽 방향으로부터 흐르고 있으며 다른 것들은 남쪽 방향으로부터 흐른다. 이들 강들은 폭이 30마일 정도로 지표 안쪽의 북쪽 끝과 남쪽 끝 부분에 있는 이들 방대한 수로들로부터 발원해 있다.

       낮은 온도로 체감되는 곳에서 담청수 빙하가 형성된다. 그때 그들은 매년 두번씩 그들 앞에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난폭한 대양의 비정상적인 홍수에 의해 마치 거대한 얼음 혀처럼 널름거리며 바다로 떠밀려 나간다.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의 숲 속에서 마주친 것들보다 더 크지 않은 수많은 실물 크기의 새(鳥) 표본들을 보았다. 지난 수년 동안 새들의 모든 종들이 지구를 떠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 작가는 최근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주지 밖으로 떠나 사라지고 있는 새의 전체 종은 지구 내부 세계 안에서 어떤 은신처를 찾는 것이 아닐까?”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에서건 해안가를 따라서건 우리는 새끼를 많이 낳은 살아있는 모습의 새를 발견했다. 새들이 거대한 날개를 펴자 몇몇 새들은 양 날개 길이가 30피트(9m)정도로 보여진다.

       그들은 매우 다양하며 형형색색이다. 우리는 바위 끝 언저리 위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알들이 들어 있는 한 둥지를 조사했다. 그 둥지에는 5개의 알이 있었는데 그것들 각자는 길이가 최소한 2피트(60㎝)였으며 반경이 15인치(38㎝)였다.

       거의 매년마다 한 종 또는 그 이상의 종들이 최후로 멸종되어가는 것을 본다. 세인트 토마스(St. Thomas)의 서인도 섬 뒤에서 14종의 다양한 새들이 발견된 이래 많은 새들이 멸종되어 사라져 버리는 가운데 지금은 8종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헥티아 시에서 약 1주일 정도 머문 뒤, 갈데아 교수의 인도로 지구 북극의 입구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래 해변을 따라 수천 마리의 민물 거북이들(tortoises: 남생이)을 보았다. 나는 이들 거대한 생물들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들은 25 〜 30피트(7.62m 〜 9.14m)의 길이, 15 〜 20피트(4 〜 6m)폭, 꽉 찬 7피트(2.13m)높이였는데 그들 중의 하나가 머리를 쳐들자 다소 소름끼치는 바다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 내부의 이상한 환경은 무성한 풀들의 방대한 초원들, 거목의 숲들, 모든 종류의 채소들의 성장을 위한 적절한 조건이었고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우리는 한 굉장한 무리의 코끼리 떼를 보았다.
       그곳에는 육중한 몸을 끊임없이 흔드는 500마리 정도의 천둥소리를 내는 괴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거대한 나뭇가지를 휘감아 찢어내고 있었으며 그보다 작게 성장한 나무들을 짓밟아 마치 개암나무 덤불처럼 잔가지 덤불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의 평균 몸둘레 길이는 100피트(30m), 키는 75 〜 85피트(23 〜 26m)가 족히 넘어보였다.
       이들 놀랄만한 거대 코끼리떼들을 바라보자 나는 중신세2)(中新世)시대의 경이로움들을 배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스톡홀름에 있는 공공도서관 안에서 또다시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아버지는 경악으로 아예 입을 다무셨다. 그는 금방이라도 두려운 불상사가 곧 우리를 덮치기라도 한다는 듯이 보호의 손길로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는 이 거대한 숲 속에서 두 개의 티끌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마치 양떼들이 그러하듯 한 마리의 지도자를 따라 이곳 저곳으로 방황하며 이동해 다니는 거대한 코끼리떼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동해 다닐 때 마주치는 잘 자란 목초들의 연한 잎을 훑어 먹었으며 때때로 그들이 우는 장중한 울음은 하늘을 흔들 정도였다.

       "더욱이 그곳 섬에는 많은 수의 코끼리들이 있었으며 동물들을 위한 모든 종류의 양식이 있었다. 또한 향기로운 것들은 무엇이든 그곳 지구 안에 있었다. 근채류(根菜類)초목, 또는 목초, 나무들, 뚝뚝 떨어지는 꽃과 과일들은 모두 그 땅에서 무성히 번성했다."
    - 플라톤 『크라띨류오(The Cratyluo of Plato)』

       그곳에는 매일 저녁마다 육지로부터 피어오르는 엷은 아지랑이 안개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24시간에 한 번씩 변함없이 비가 내렸다. 이 충분한 수분과 기운을 솟게 하는 전기 빛과 온난함은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줄 것이다. 또한 고도로 충전된 전류 자기장의 대기와 쭉 고른 기후 조건들은 아마 모든 살아 있는 동물들의 거대 성장화와 장수에 상당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계곡들은 평평하게 다진 장소들의 모든 방향으로 수마일씩 뻗어나갔다. 선명한 백광 속에 있는 연기의 신은 평온하게 보였다.
       전기가 과도하게 충전된 대기는 마치 갑자기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휘파람같이 부드러워져 뺨에 솔솔 불어 오는데 그 안에는 어떤 흥분이 드리워져 있다. 꽃봉오리와 꽃의 향내음으로 숨결이 감미로운 바람의 어렴풋한 중얼거림 속에서 자연은 자장가를 불렀다.

       우리는 지구 내부 세계의 많은 도시 중 몇개 도시와 그 사이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는데 1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후 우리가 강 위에서 그 거대한 유람선에 의해 실려온 후로 2년이 넘게 경과했을 때였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바다 위에 한번 더 던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구 바깥 세계의 지표를 다시 얻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우리의 원하는 바를 알렸다. 그들은 주저했으나 신속히 우리 뜻에 응해 주었다. 우리의 주인들은 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지구 내부 세계의 모든 도시, 대양, 바다, 강, 만, 항구 등 모든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도들을 그에게 선물했다.

       그들은 또한 우리에게 금으로 된 귀금속 덩어리들이 담긴 모든 가방들을 선심쓰듯 주었는데 어떤 것들은 거위의 알만큼 컸다.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예후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범선을 수리하고 정밀 검사하는데 한 달을 보냈다.
       모든 것이 준비된 뒤, 원래 우리를 발견했던 똑같은 배 나즈 호에 몸을 싣고 힛데겔 강가의 어귀로 항해했다. 거인족 형제들은 우리의 작은 배를 진수시킨 뒤, 이러한 헤어짐에 대해 진심으로 무척 서운해했으며 무사하게 귀항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주었다.
     
       아버지께서는 1년 혹은 2년 내에 반드시 되돌아가 그들을 다시 찾겠다고 오딘과 토르 신에게 맹세했다. 이렇게 우리는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돛을 끌어올렸다. 주위는 산들바람만이 조금 불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거인족 친구들이 그들의 주거지로 귀환 여행길을 출발하여 떠난 뒤에도 한 시간 동안이나 꼼짝 못하고 있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남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의 북극 구멍으로부터 우리가 남쪽이라고 알고 있는 곳을 향해 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나침반이 지적하는 방향에 따르면 바람은 북쪽으로 직접 불고 있는 것이었다. 3일 동안 우리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려 노력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아버지께서 말했다.

       "내 아들아, 일년 중 이 시간대에 우리가 왔었던 똑같은 경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왜 전에 이 생각을 못해 보았는지 모르겠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지도 거의 2년 반이 지났다. 지금은 지구의 남극 구멍에 태양이 비추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깊고 차가운 밤이 스피츠베르겐 지방에 엄습해 있는 중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죠?"     내가 물었다.      "방법이 한가지 있다."
       아버지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는 배를 빙 돌려서 돛을 팽팽히 압축시켰다. 그리고 사실은 남쪽이지만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으로 곧바로 항해했다. 바람은 강했으며 우리는 우레와 같은 방향으로 놀랄 만큼 신속하게 흐르는 조류에 맞서 항해했다.

       정확히 40일 만에 우리는 델프트 시에 도착했다. 그 도시는 기혼 강 어귀 근처에 있는 도시로 우리를 안내해 준 쥴리어스 갈데아가 그의 아내와 함께 방문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틀간 머물렀는데 지난 방문 때 우리를 환대해 준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한번 극진하게 대접받았다. 우리는 약간의 양식들을 더 준비해 정북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을 따라서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우리가 밖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자 곧 두 개의 커다란 땅덩이 사이를 가르는 수역(水域)인 듯한 좁은 운하를 만났다. 오른쪽으로는 한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닻을 내리고 외부 세계로 향하는 위험한 일을 계속하기 전에 하룻 동안 묵을 그 해안으로 건너갔다.
      우리는 불을 피웠으며 약간의 마른 나무토막을 던져 넣었다. 아버지께서 해변을 거니는 동안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재료로 식욕을 돋구는 식사를 준비했다.
       그곳에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구의 남극 구멍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비추어 주는 태양빛으로부터 야기된 온화하고 밝은 빛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푹 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마치 스톡홀름에 있는 우리 자신들의 침대에 있었던 것처럼 상쾌하게 깨어났다.

       아침식사 후, 우리는 탐색을 위한 내지여행에 착수했다. 그러나 우리는 멀리 가지 않아 펭귄과에 속하는 몇 마리의 새들을 찾아냈다. 그들은 날지 못하는 새들이지만 뛰어난 수영 선수들 같았으며 흰 가슴, 짧은 날개들, 검은 머리, 그리고 뾰족한 부리들과 함께 크기가 굉장했다. 그들은 선 키가 꼬박 9피트(2.7m)였다. 그들은 약간 놀란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걷는다기보다는 뒤뚱걸음으로 물가를 향해 북쪽에 위치한 방향으로 헤엄쳐 나아갔다.

       그후 100일 정도가 지났을까? 거의 막막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는 툭 터진 외해에 있었는데 얼음은 없었다. 우리가 계산하기로 그때는 대략 11월 또는 12월이었고 소위 남극이 해바라기 시간대로 변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연기신의 지구 내부 전기빛과 그것의 온화한 온기로부터 밖으로 빠져나갈 때, 우리는 지구의 남극 구멍을 통해 지구 내부로 비추어지는 태양의 빛과 온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실수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들에서와 같이 극지방에서의 밤들은 결코 그렇게 어둡지 않다. 왜냐하면 달과 별들이 두 배로 많은 빛과 광채를 가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그곳에는 지속적인 빛과 변화하는 그늘들과 자연의 아주 이상한 현상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가 있다."
                                   - 람브로손(Rambrosson)의 『천문학』

       "극지방의 오로라 현상이 주는 가장 큰 중요한 사실은 지구 스스로 빛나는 발광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위성으로서 지구는 그 빛을 지구 중심체로부터 받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빛나는 과정을 유지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 훔볼트(Humboldt)3)

       마치 화살처럼 바람은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바다로부터 내쏘아져 일방적으로 우리의 조그마한 범선을 끌고 다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실로 만일 우리가 숨겨진 바위와 갑자기 맞부닥쳤더라면 우리의 조그마한 배는 산산조각 나서 불쏘시개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확실히 대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멀리 왼쪽으로 빙하가 발견되었다.

       아버지께서 주장하신 대로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돛을 채운 바람은 지구 내부의 따뜻한 기후로부터 온 것이며 일년 중 지금 이때는 확실히 우리가 지구 바깥 세계를 향해 돌진해 나아가는데 가장 상서로울 때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그마한 고기잡이 범선이 남극 지역들로 둘러싸인 빙하 지역의 물길이 열린 운하들을 통해 강한 뒷바람을 받고 달리는 것을 시도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우리는 곧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대 빙하군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배가 어떻게 그 좁은 수로들을 통과했으며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남쪽 커브를, 혹은 지구 껍질 부분의 가장자리를 지날 때 산호초의 수로는 우리가 북쪽 입구를 향해 항해해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꼭 술취한 듯 믿지 못할 형태로 행동했다. 그 산호초 수로는 소용돌이쳤다가 급강하하기도 하고 꼭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새바인 선장은 『극지방에서의 항해』 105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향의 지리학적인 발견과 지구 표면의 다른 지점에 있는 자기력의 강도는 특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지구의 다른 부분에서 편차, 경사와 자기력의 강도, 그리고 그들의 주기적이고 세속적인 변화들, 상호 관계들과 의존들은 마땅히 고정된 자기(磁氣)관측소들에서 조사되어질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깨끗한 물 속으로 범선의 측면을 대충 훑어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외쳤다.
       "모든 것을 일거에 조각내 쓸어버리는 파쇄기가 앞에 나타났다!"
       쳐다보자마자 희미하게 걷히는 안개를 통해 우리의 진로를 완전히 봉쇄한 수백 피트 높이로 치솟아 오른 흰 물체가 보였다.
       우리는 즉각 돛을 낮추었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잠깐 사이에 우리는 괴물 같은 두 개의 빙하 사이에 끼어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을 알아챘다.

       우리는 각자 속도를 내기 위해 돛을 전부 펴서 바람을 받도록 했으며 두개 중 한쪽 얼음산을 갈아 분쇄했다. 그들은 서로 패권을 다투는 2명의 전쟁의 신들 같았다. 우리는 상당히 놀랐다. 실로 우리는 큰 전투 선상 사이에 있었다. 얼음을 파쇄시키느라 울려퍼지는 천둥소리가 마치 지속적인 대포의 일제 사격음 같았다.

       집 한 채보다 더 큰 얼음 덩어리가 측면에서 받는 압력의 막강한 힘에 의해 자주 백 피트 위로 들려졌다. 그들은 수초 동안 몸서리치며 떨었고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서 귀청이 터질 것 같은 함성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바닷 속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두 시간 이상 거대한 얼음들의 경쟁이 계속되었다.

       마치 끝이 온 듯했다. 얼음의 압력은 끔찍했다. 우리가 그 위험한 얼음 틈바구니 사이에서 옴짝도 못하고 잡혀 있는 동안 얼음은 여기저기서 수중 속 깊이 풍덩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지금도 여전히 수 톤의 얼음이 끌어올려지고 부수어지는 굉음이 떨리는 두려움으로 우리를 채우곤 한다.

       결국 다행스럽게도 몇 시간 내에 거대한 그 얼음덩이는 천천히 갈라졌고 우리는 그것을 갈아내는 일을 멈췄다. 마치 이 모든 행위가 미리 준비되기라도 했던 양 우리 앞에 열려진 수로가 몸을 드러냈다. 과연 우리의 조그마한 배로 길이 열린 이 수로 속으로 뛰어들어 모험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만일 압력이 또다시 닥친다면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작은 범선은 산산조각으로 부수어져 아무 쓸모도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회를 잡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순풍을 받기 위해 돛을 올렸다. 이윽고 망망대해의 이 알려지지 않은 좁은 해협에서, 호된 시련을 겪을 경주용 말과도 같이 출발해 나갔다.


    제5장 떠 있는 빙하군 한가운데

       우리는 그 다음의 40일간의 날들을 빙하들을 피하고 배가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수로를 찾아내는데 할애했다. 실로 만일 우리가 남으로 부는 강한 순풍과 작은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가 일찍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인지 의문이다.

       마침내 아침이 밝았을 때 아버지께서 말하셨다.
       “내 아들아, 우리는 이제 집을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우리는 빙하지대를 거의 벗어났다. 봐라! 빙하가 없는 외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곳, 우리 앞 양쪽 수마일 뻗어 있는 외해 북쪽 멀리에는 아직도 둥둥 떠다니는 약간의 빙하들이 있었다. 우리의 바로 앞에는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아간 나침반에 의해 곧바로 정북 방향으로 뻥 뚫린 망망대해가 있었다.
       “스톡홀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얼마나 신기해 할까!”

       아버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계속 말씀하셨다.
       “그리고 용기 안에 넣어둔 금덩어리들을 생각해봐라!”
       나는 아버지께 그의 강인함과 인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발견자로서의 용기와 대담성 그리고 이제 성공적인 마무리를 약속하고 있는 항해를 해온데 대해 친절한 찬사의 말들을 했다. 나 역시 그가 집으로 가져가고 있는 다량의 금을 거둬들인 것을 감사해 마지않았다.

       양식과 물을 훌륭히 공급한데 대해 자축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탈출했던 위험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얼마못가 우리는 거대한 얼음산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끔찍한 폭발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1천 개의 대포들이 일시에 발사되는 것 같은 귀청이 터질 만한 파괴음이었다. 우리는 그때 굉장한 속도로 항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 괴물같이 생긴 빙하 가까이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의 전체의 외양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섬처럼 확고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빙산은 틈이 벌어져서 뿔뿔이 부서질 듯이 보였다. 잠시 후에 그 괴물은 균형이 깨지면서 항해 중인 우리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그것이 일으킬 무서운 사태의 가능성들을 깨닫기 전에 재빨리 그 위험을 예견했다. 그 빙하의 손길은 물 속 깊이 수백 피트까지 뻗쳤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어 엎으면서 물 밖으로 갑자기 뛰쳐나온 물살이 지레 받침대 위에 놓인 지레처럼 우리의 고기잡이배를 덮쳤다. 그리고는 그것을 마치 축구공이라도 되는 양 공중으로 던져 버렸다.

       우리 배는 바로 옆에 있던 측면이 꼭대기로 둔갑한 빙하 위 뒤쪽에 떨어졌다. 내가 대략 20피트(6m) 정도 멀리 나가 떨어져 있는 동안, 아버지는 아직도 배안에서 삭구(배의 온갖 장비)들에 뒤엉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민첩하게 일어선 채 기어올라 아버지에게 외쳤다. 그는 대답했다.
       “모든 게 괜찮아!”

       바로 그때, 나는 주변의 실정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포, 공포!
       피가 내 혈관 안에서 얼어붙었다. 빙하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으며 쓰러넘어지는 그 거대한 무게와 힘은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면이 온통 물세상인 가운데에서 큰 소용돌이가 빨아들이는 것이 결국 어떠한 상황을 초래할 지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인간 먹이를 갈망하여 서로 엉켜 싸우는 흰 늑대들처럼 그들의 모든 격노 속에서 깊이 함몰된 소용돌이 눈 속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 정신적 고통의 극치의 순간에 나는 옆으로 누워 있는 우리의 배를 흘끗 쳐다보고 그것이 혹시 아무 이상이 없지나 않을까, 아버지가 탈출할 수나 있을까 궁금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이 우리의 투쟁과 모험의 끝인가? 이것이 죽음인가?

       이러한 모든 의문들이 순식간에 섬광처럼 내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생사의 투쟁에 바빠 여념이 없었다. 육중한 얼음 기둥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며 몹시 차가운 물이 잔뜩 화가 나서 격분한 채 내 주위에서 쿨쿨거리며 소리를 냈다.

       나는 물들이 모든 방향에서 몰려드는 수면이 움푹한 곳에 있었다. 잠깐 동안 나는 의식을 잃었다. 내가 일부 의식을 회복하여 반 익사 상태의 졸도로부터 깨어났을 때, 나는 내 자신이 흠뻑 젖어 뻣뻣하게 동태가 되었으며 거의 얼어붙은 채 빙하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우리의 조그마한 범선이나 아버지에게서는 살아있다는 어떠한 기미도 없었다. 그 괴물 빙하는 균형을 되찾았으며 다시 파도 위 약 50피트 높이로 머리를 쳐들었다. 이 얼음산의 정상은 약 1/2에이커(2천㎡) 넓이의 평평한 고원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몹시 사랑했으며 그가 죽은 사실에 대한 두려움과 비탄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양 깊숙이 잠들게 하지 못한 운명에게 욕을 해댔다. 나는 발을 딛고 올라서서 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위에는 둥근 자줏빛 하늘이, 바로 밑에는 해안이 없는 녹색 대양과 단지 이따금씩 식별할 수 있는 빙하가 있었다. 내 심장은 아무 희망도 없이 절망 속에서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감히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만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한줄기 희망의 서광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내 핏줄 속에 있는 피를 따뜻하게 해 주었으며 그 피는 마치 다소 진기한 흥분제처럼 온몸과 온 마음을 통해 흘러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빙하의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측면 가까이 기어갔으며 간절히 희망하면서 멀리 아래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빙산을 한바퀴 돌면서 그 길의 모든 언저리를 샅샅이 조사했다. 계속해서 그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나의 뇌의 한쪽 부분은 확실히 광적으로 되어 가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 부분은 오늘날까지 그렇게 믿고 있지만, 완전히 이성적이었다.

       나는 열두 번 순회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성 안에서 희망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약간의 이상하고 매력적인 정신이상이 요술을 걸어와 내게 기대감으로 끊임없이 기만당하기를 강요했다.
       내 뇌의 다른 부분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만일 내가 그 순회를 멈춘다면, 한 번이라도 멈춘다면, 그것은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 될 것이고 내가 순례를 계속한다면 미쳐가는 것이라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이런 생각에 한 시간씩 한 시간씩 서서 쉬는 것을 두려워하며 주변을 살피며 돌고 또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지속하기에는 육체적으로 힘이 없었다. 먹을 음식과 마실 것 하나 없이 이 드넓은 망망 대양에 내던져진 오! 공포의 공포! 그리고 주어진 것이라곤 단지 머물기 위한 장소로는 전혀 의지가 안되는 빙하라니…. 내 심장은 안에서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희망들이 어두컴컴한 절망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구조자의 손길이 뻗쳤다. 그리고 신속하게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가는 죽음 같은 고독의 정적이 갑자기 경보 총이 발사되는 것에 의해 깨졌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그때 반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포경선이 돛을 모두 올린 채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빙하 위에서 지속된 나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위를 끌었음에 틀림없다.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그들은 배 한척을 꺼내 물가에 조심스럽게 내렸다.

       나는 구조되었으며 조금 뒤에는 포경선 위에 들어 올려져 승선되었다. 나는 그 배가 스코틀랜드 포경선 알링턴 호(The Arlington)임을 발견했다. 그 배는 9월에 던디(Dundee)항을 출발하여 곧바로 고래들을 찾기 위해 남극으로 출발했던 배였다. 선장인 앤거스 맥퍼슨(Angus Macpherson)은 처음엔 나를 친절히 대해 줄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윽고 알게 된 것은 그는 규율을 잡는 일에 있어서 강철 같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지구의 내부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말하려 시도했을 때 그 선장과 동료들은 서로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는 그 배의 내과 의사의 엄격한 감시 하에 지하 벙커 속에 나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영양 부족으로 허약해졌고 수많은 시간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쉰 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내과 의사나 그 밖에 어느 누구의 허락도 받지않은 채 옷을 차려입고 그들에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선장이 나를 찾는다고 전해 왔으며 또다시 내게 어느 곳에 있다 왔으며 어떻게 해서 남극해에서 멀리 떨어진 빙하 위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지에 관해 질문했다. 나는 지구의 내부 세계에서 지금 막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에게 나의 아버지와 내 자신이 어떻게 스피츠베르겐을 지나 지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남극지방을 경유해 나오게 되었는지 말했다. 그 때문에 나는 족쇄에 채워졌다. 나는 그뒤에 그 선장이 그의 동료들에게 내가 미쳤으며, 내가 자신에 대한 전말을 충분히 밝힐 수 있게 이성적일 때까지 구금된 상태로 남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마침내 수많은 탄원과 많은 약속을 한 뒤에 나는 족쇄들로부터 풀려났다.

       나는 그때 거기서 그 선장을 만족시킬 약간의 이야기를 날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안전할 때까지 연기의 신의 땅을 여행한 것을 결코 다시는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주일 안에, 나는 밖으로 나 다니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뱃사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얼마 뒤, 그 선장은 내게 설명을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경험이 너무 끔찍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매우 두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기까지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게 허락해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상당히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정상이 아니오.”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할당해 주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만일 그것이 당신에게 충분히 보상이 안 된다면,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푼돈까지 털어서 갚겠소."

       이같이 하여 그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마침내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이미 설명했듯이 나는 나의 어머니가 일 년도 더 되기 전에 천국으로 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또한 뒤에 어떻게 내가 한 변절한 친척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는 입장에 빠지게 되었는지 말한 바 있다.

       그곳에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갇혀 있었다. 그리고 훨씬 뒤에 나의 석방 후 어떻게 내가 어부생활로 되돌아갔으며 그 다음에 27년간 부지런히 일해서 그뒤 어떻게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독자들에게 흥미가 있을 리 없다. 실로 그것은 내게 경이로운 여행들의 정점인 듯했다. 그리고 이상한 모험들은 내가 남빙양의 빙하 위로부터 그 스코틀랜드 포경선에 의해 구조되었을 때 그 목적을 이루었다.


    제6장 결 론

       이번에 내가 경험한 모험들의 역사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지구의 우주론에 관해 과학은 아직도 유치한 유아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확고히 믿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이 수용하고 있는 오늘날의 지식에 의해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연기의 신의 땅이 우리의 지리학자들에 의해 알려지고 인정될 때까지 항상 그렇게 불가사의한 신비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구 지각의 북극 가장자리 훨씬 너머에 있는 외해에서,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던 거대한 히말라야 삼목의 통나무들이 흘러온 근원지이며 또한 시베리아 해안에 있는 방대한 화석무덤에서 발견된 매머드 몸체의 뼈가 있게 된 근원지이다.

       북극탐험가들은 많은 일을 했다. 존 후랭클린 경(Sir John Franklin), 드 하벤 그리넬(De Haven Grinell), 존 머레이 경(Sir John Murray), 케인(Kane), 멜빌(Melville), 홀(Hall), 난센(Nansen), 쉬와트카(Schwatka), 그릴리(Greely), 피어리(Peary), 로스(Ross), 걸라쉬(Gerlache), 버나치(Bernacchi), 앙드레(Andree), 암스덴(Amsden), 아문젠(Amundsen)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 얼어붙은 신비의 요새인 폭풍과 분투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앙드레와 그의 두 용감한 친구들인 스트린드베르그(Strindberg)와 후렌켈(Fraenckell)이 1897년 7월 11일 일요일 오후, 스피츠베르겐의 북서해안으로부터 오레온(Oreon)호라고 명명된 풍선기구를 타고 바다 위를 날아 항해해 지금은 지구의 내부 세계에 있으며, 나의 아버지와 내 자신이 지구 내부의 아틀란티스대륙에 거주하는 친절한 마음씨의 거인족에 의해 환대받은 것처럼, 그들도 의심할 바 없이 그들에 의해 환대받고 있다고 단호히 믿는다.

       나는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들 문제들에 수년간 헌신해 왔기 때문에 자침의 인력의 원인과 마찬가지로 중력에 대해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정의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자침이 지구를 완전히 싸고 있는 옷과 같은 전류들에 의해서만 오로지 영향을 받는다는 나의 확고한 믿음을 기꺼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구의 원통형 틈구멍의 남쪽 끝으로부터 끝없이 통행하는 회로 안에 있는 이들 전류들은 지구 외부의 모든 곳에 자신을 발산하여 퍼뜨리며 북극을 향한 그들의 회로 안으로 맹렬하게 회전한다.

       그리고 이들 전류들은 표면상 지구의 만곡부(커브진 곳),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공간 속으로 돌진하는 동안 지구 안쪽 표면 쪽에서는 속도가 뚝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남극의 구멍을 향해 지구의 껍질 안쪽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흐르게 된다. 중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과를 떨어지게 하는 대기 압력인지 또는 그것을 잡아당기는 다소 강력한 천연자석의 인력이 존재하는 지표 아래의 150마일(240㎞) 지점에 존재하는 힘인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과가 나뭇가지를 떠날 때 무언가에 의해 끌어당겨지는 것인지, 아니면 저항점의 가장 가까운 부분까지 강제로 아래로 밀어붙여지는 것인지는 물리학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렘스트론(Lemstron) 씨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즉 오직 분광기에 의해서만 보여지는 전기 방출은 그를 둘러싼 모든 장(ground)의 표면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멀리로부터 그것은 희미한 오로라(Aurora)의 전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가끔 스피츠베르겐의 산 정상 위에 보이는 희미하고 불꽃같이 타오르는 빛의 현상들이다.”
                              - 『북극편람(The Arctic Manual)』 739쪽

       제임스 로스 경(James Ross)은 약 위도 74°정도에서 자극(磁極)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자극은 정확히 지각 두께의 1/2을 꿰뚫는 거리다. 그것은 내가 추정한 거리지만 이같이 만일 지구의 껍질이 두께 300마일(480㎞)이라면, 자극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표 아래 150마일이다. 어디에서 실험이 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표 아래 150마일에 있는 이 특별한 점에서 중력은 멈춰서 중화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표 내부를 향하여 그 점을 넘어 통과할 때, 다른 150마일의 거리를 가로질러 횡단할 때까지 힘에 있어 반전된 인력이 증가한다.
       만일 런던, 파리, 뉴욕, 시카고 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300마일 거리로 지구껍질을 관통하는 하나의 구멍을 꿰뚫어 판다면 지표의 안과 밖 두 면이 연결될 것이다. 바깥 지표로부터 안쪽 지표로 떨어져 내리는 어떤 무게의 관성과 운동량이 자극 중심을 훨씬 지나쳐 옮겨지는 동안, 안쪽 지표에 도달하기 전에 그것은 속도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중앙선 지점을 통과한 후에는 마침내 정지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자극 중심 또는 바깥 지표와 안쪽 지표 사이 거리의 정확히 절반이 되는 그 특별한 점에서 최종적으로 멈추어 설 때까지 관성과 운동량은 힘이 제거된 채 진자(흔들이)의 흔들림처럼 즉각 외부 지표를 향해 다시 후퇴한다.
       매 시간 1천마일(1600㎞) 또는 1초에 약 17마일(27㎞)보다 더 엄청난 속도로, 나선형 회전으로 매일매일 주위에 소용돌이치며 돌고 있는 지구의 자전은 그것을 거대한 기계인 방대한 전기 생산체와 인간이 만든 미약한 발전기의 - 그것은 기껏해야 단지 자연의 근원의 한 미약한 모방이다 - 한 강력한 원형으로 만들었다.

       북극에서도 더 상류에 있는 바다에 접경한 지구 내부의 아틀란티스 대륙의 계곡들에는 가장 화려하고 장려한 꽃들이 한창 뒤덮여 있다.
       수백, 수천이 아니라 수백만 평방미터로부터 꽃가루 또는 꽃들이 지구의 나선형 자전과 거기서부터 기인한 바람의 교반작용에 의해 거의 모든 방향으로 멀리 운반된다. 그리고 그렇게도 북극탐험가들의 눈을 현혹시켜 신비화시킨 북극지방의 빛깔 있는 눈(the colored snows)들은 바로 이들 지구 내부의 방대한 초원들로부터 기인하는 꽃들과 꽃가루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이들 지구 내부의 새로운 땅은 인류의 집이요 요람이며, 우리에 의해 발견된 관점으로 고려하면 지구 내부의 땅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고대의 모든 물리학과 고생물학, 고고학, 문헌학 그리고 신화학적인 이론에 대해 매우 중요한 연결을 갖고 있다.

       케인(Kane)은 1권 44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8월 5일 오전에 존 로스(John Ross)경의 크림슨(Crimson)절벽을 통과했다. 이 절벽의 이름을 유래하게 한 붉은 눈의 파편들이 그 해안으로부터 10마일(16㎞) 멀리에서 뚜렷하게 보였다.”
       앙드레(Andree)의 풍선기구 탐험의 기술에 있는 『방(La Chambere)』 144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섬 위, 상당히 먼 거리에서 눈이 엷은 붉은 색조로 배합되었다. 그것은 사실상 어떤 특색을 나타낸다. 그것은 매우 작은 위성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명한 고래잡이 스코어비(Scoreby)는 이미 이것에 대해 논평한 바 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통들뿐만 아니라 좀더 최근의 폼페이의 발굴들로부터 얻어진 역사적인 기록들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 역사적인 마네토1)(Manetho)의 파편들로부터 제신과, 영웅들, 그리고 인간들이 살았던 초기의 이집트 전통들 속에서, 인류의 기원으로 - 바로 그 시작으로 - 신비의 땅으로 되돌아가려는 동일한 생각이 발견되었다.

       지금은 한밤중이 지난 1시이다. 1908년의 새해가 밝았다. 오늘은 새로운 해가 시작된 지 벌써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어하는 나의 이상한 여행들과 모험들의 기록을 마침내 끝낸 날이다. 나는 인생의 시련들과 영고성쇠를 지나 마침내 평화스러운 휴식을 취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더 열망하고 있다.
       나는 오래 살아 이미 늙었으며 많은 모험과 슬픔들로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올바르고 정직한 삶으로 인도하는 나의 투쟁들 속에서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과 함께 아직도 나는 윤택하다. 마치 한 권의 소설같이 나의 모험담은 거의 다 이야기되었고, 이제 나의 생명은 서서히 쇠퇴해 가고 있다.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때까지 살지 못하리라는 육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리하여 나는 나의 메시지를 결론짓는다.


    글 : 올랍 얀센(Olaf J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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