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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시사정보 2018. 5. 30. 10:08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기독교인이라면 이스라엘 성지순례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성지순례여행이라는 것이 평생에 한 두 번 가는 것이라 그렇게 맘먹을 때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적대관계이므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불안한 것만도 사실이다. 올해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기 때문에 어느 때 보다도 적잖은 신경도 쓰이게 되고 또 여행경비도 만만치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또 그렇게 힘들게 다녀 와도 과연 볼 것을 제대로 봤는지 효휼성을 따져본다면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을 위해서는 미리 여행에 대한 많은 정보 특히 그나라의 지리나 도시나 자연 환경등을 미리 알고 갔다면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은 그래도 영상을 통해서 해설과 함께 테마여행이 있으므로 그런 것을 본다면 가보지 않고도 비용도 절약되기도 하고 그런 영상을 보거나 여행기행문을 읽게 되면 마치 갔다온 사람처럼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나는 아직 이스라엘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영상이나 글을 통해 반복하다 보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곳인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 많이 있다. 아쉬운 것은  조금 단조로울지 모르지만 여행기행문을 읽다보면 여행을 앞둔 사람들에게도 또는 여러 여건상 여행을 꿈꿀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스라엘 북에서부터 남쪽까지 여행을 출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여행 제목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했다, 우리나라 말로 해석한다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라고 할까. 우리나라 북쪽에 백두산이 있듯이 이스라엘 북쪽에는 시편에도 나오는 헤르몬 산이 있다.  헤르몬산 높이는 2814m이니 백두산 보다 더 높다. 헤르몬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정말 힘이들지만 이곳에 오르면 이스라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헤르몬의 이슬과 시온의 산들에 내린 이슬과도 같도다. 주께서 거기서 복을 명령하셨으니 곧 영원한 생명이로다(시133:3)

    이스라엘에서 이슬은 풍요의 상징이다.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비와 이슬은 농작물 재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헤르몬의 이슬이 남쪽에 위치한 시온까지 내려온 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풍요해진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슬과도 같은 영생의 복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헤르몬산 정상에 와 있다. 약속의 땅 가장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온 백성들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온 이스라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것 같다. 저는 이번 여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최북단의 도시 단에서부터 최남단의 도시 네게브사막에 있는 브엘세바 까지 곳곳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역사의 숨길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은 헤르몬의 이슬이 온 땅을 적시듯 이스라엘에 명하신 하나님의 축복 역시 이곳 단에서 시작해서 브엘세바까지 온 땅에 흐르기 시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즉 이스라엘은 영토의 60%가 사막인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땅이지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이 땅 곳곳에 스며있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허락하신 진정한 축복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서쪽 끝 지중해의 동남부연안을 따라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경은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까지가 이스라엘 영토라고 이야기 해왔다. 이스라엘이 한눈에 담기는 헤르몬산을 내려와 소박한 꽃들과 인사나누며 이스라엘의 북쪽 끝 단으로 가는 중 길가에서 암소들을 만났다. 이 헤르몬산에 암소들이 다 있네 이거 진짜 바산의 암소들이잖아! 성경에 나오는 바산의 암소란 기름진 땅에 펼쳐진 암소들로 사마리아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너희는 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짓밟으며 그들의 주인들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가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암4:1).

    아모스선시자 시대에 상류층여자들은 남편의 지위와 권력을 남용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학대 하였다. 오늘날 골란지역을 성경에서 바산지역이라 하는데 바로 이 바산지역이 비옥하기 때문에 살찐 암소들이 지금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해가지고 사치 하는 사마리아 여인들을 향해서 아모스 선지자는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외쳤는데 때마침 비옥한 바산지역에서 만난 암소들을 생각하며 성경말씀을 생각한다. 우리 삶이 풍요로와지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며 행복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바산의 암소들은 풍요로움만이 절대적인 축복은 아닐거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소떼를 지나 계속해서 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보면 저 멀리 고대 성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헤르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길이 300m 넓이 90㎡의 니므룻 요새이다. 이 요새는 십자군 전쟁때 이곳을 차지한 이슬람군에 의해 지어졌는데 그들은 그들이 차지한 땅을 다시 십자군에 의해 정복당할까 두려워 이 요새를 지었는데 노아의 증손이자 용맹한 사냥군이었던 니므룻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 요새는 요새를 지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지은 이요새를 바라보며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스스로를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을 텁텁하게 했다. 산길을 내려와 걸음을 재촉하며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인 단으로 향했다. 단은 이스라엘의 12지파중 남쪽에 거주하던 단 지파가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부쳐진 이름이다.

    이스라엘 남부에 펼져진 사막과 달리 이곳은 마치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듯 우거진 숲과 풍부한 물 그리고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이 바로 이스라엘의 최북단 도시 텔 단이다. 단지파가 남쪽의 블레셋지역에 살고 있다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어딘가 해서 정탐군을 보내서 찾은 곳이 이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늘날도 헤르몬산에서 눈 녹은 엄청난 물의 양이 지하에서 솟아 나오고 그 물로 인해서 숲이 우거진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요르단강의 단이 이곳의 지명을 의미하듯 단에서 흐르는 풍요로운 물줄기는 갈릴리 바다로 흘러가 이스라엘 전역에 생명수가 된다. 이스라엘의 황량한 사막을 잊게 할 정도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내리는 이 곳 단에서는 풍요로움과 함께 이스라엘의 어두웠던 단면도 볼 수 있었다.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벧엘과 이 곳 단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예배할 수 있는 산당을 지었다. 당시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호4:13) 당시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리었는데 이를 본 여로보암은 자신의 백성들이 남유다를 왕래하다 자신을 떠나게 될까 두려워 이러한 악행을 범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큰 상수리나무 밑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그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인도해 낸 하나님이라 여기며 그것을 섬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두려움으로 시작된 죄의 결과였다. 여로보암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분리가 되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는데 그것을 못막았다. 그러다보니 북쪽의 여로보암왕은 민심이 자꾸 남쪽으로 가니까 이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해 낸것이 바로 이 단에다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예루살렘까지 내려갈 필요가 있느냐? 단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여도 좋지 않으냐 한 것이다. 그래서 단하면 우상숭배를 했던 장소가 단이죠. 헤르몬산의 눈녹은 물이 땅에 스며들어 단에서 발원되고 그 물줄기는 단에서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 빌립보가이사랴까지 와서 그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이곳은 이방신전과 로마황제신전이 있는 우상숭배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었다. 헤롯은 이곳에 신전을 세워 로마황제에게 바쳤고 그 후 헤롯대왕의 아들 빌립이 이곳을 수도로 삼으며 가이사랴와 자신의 이름을 합해 빌립보가이사랴고했다. 빌립보가이사랴하면 베드로 신앙고백이 생각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베드로는  이곳에서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는데 그의 고백은 결코 쉬운 말 한마디가 아닌 목숨을 건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이방신의 신전과 로마황제의 신전이 있는 곳에서 목숨을 건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장차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헤르몬에서 단까지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북쪽의 엄청난 물줄기인 바니아스 폭포와 사알폭포가 요단강의 시작이 되어 이땅을 적시듯 이곳에서 시작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축복의 물줄기가 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여행가이드는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이스라엘 곳곳을 더 둘러보기 위해 차가 아닌 자전거로 여행을 시작 했다.

    이스라엘은 집단공동체인 기브츠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농사중심의 키브츠가 대부분이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숙박을 담당하는 키브츠뿐 아니라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키브츠도 있는데 이곳 키브츠다프나가 바로 그곳이다. 우리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차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이스라엘을 둘려보려 한다. 예수님이 걸었던 길, 예수님이 느꼈을 정취,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천천히 우리는 여유롭게 굴러가는 소박한 자전거 위에서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며 천천히 폐달을 밟았다. 빨리 달리면 쉽게 놓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다녔던 숲길을 느끼면서 크리스챤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갈릴리 호수를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던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예루살렘도 자건거를 타고 돌 수 있다는 것이다. 차로 이동했으면 돌아보지 못했을 좁은 길 가에 속삭이는 새들과 스치는 나뭇잎 그 미세한 숨결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길에서 만난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온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화가 있는데 기독교 문화뿐만 아니라 유대인 문화도 예수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 다니면서 관람도 하였다.

    예수님이 실제 걸닐었을 이 길 위에서 그저 보았던 하늘 땅 바람결에 몸을 맡긴다.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덧 바다처럼 큰 갈릴리 호수를 만나게 된다. 둘레 60㎞ 호수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커서 바다라고 불리는 이 곳 갈릴리 호수를 구약성경에서는 깃네렛호수 신약성경에서는 게넷사렛호수라고 묘사되곤 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숫가 그 옆 도로위에는 자건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많은 국적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인생을 여행에 비유했다면 우리는 때로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우곤 한다. 나그네처럼 길을 떠나고 때론 머물며 서로의 목마름을 채우기도 하고 고단할 길을 함께 동행하며 웃음짓기도 하는 행복덕분에 멈출 수가 없는 모양이다. 헤르몬산의 눈녹은 물이 땅에 스며든 뒤 단과 바니아스폭포에서 큰 물줄기를 이루어 이곳으로 흘러 갈릴리를 채운다. 풍부한 물줄기와 우거진 숲 그 풍요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흔적들을 지나오면서 죄와 실패로 반복되는 인생의 나약한 실체속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떠 올랐다.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곳이며 공생애 기간중 가장 많은 사역을 하셨던 곳이다. 이런 갈릴리에서 처음 들린 곳이 오병이어교회.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자신을 따르는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셨던 이곳 오병이어교회는 그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였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명이나 되었더라(마14:19-21). 오천명이란 수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수라고 하니 실제로는 그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신 이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 만이 굶주린 영혼들을 먹이고 살리는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오병이어교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시고 우리는 세상의 떡보다는 생명의 떡을 더 갈구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생명의 떡,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예수님을 표현하는 이런 단어들이 주는 의미는 어쩌면 그분만이 그 어떤 풍요로움보다 우리를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온전한 축복이란 뜻이 아닐까 한다. 오병이어교회를 나와 조금 가다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곳에 그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베드로 수위권교회가 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절망에 빠져있던 베드로에게 따뜻한 조반을 먹여 주시고는 주저앉은 그의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요21:15).  예수그리스도는 주린 자를 먹이시고 무너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오병이어의 기적과도 같고 마치 그 따뜻했던 조반과도 같은 영원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 축복과 마주 앉은 베드로는 이제 이곳에서 다시 일어나 온전한 축복을 전하는 사도로 세상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리우는 가버나움이 나온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가난한자 약한자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 흑암중에 거하던 자신의 백성들에게 큰 빛으로 임하셨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라.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경계의 해안에 있는 가버나움에 와서 거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마4:13-14).

    어둠 속에 다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 곧 그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사9:2).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위치한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 20000명이 살았던 곳이라고 추정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교역과 상업이 번창했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의 회당은 갈릴리지역에서 가장 큰 갈릴리회당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곳이기도 했다 또한 이곳 가버나움에는 베드로의 집터가 남이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 들더라 (마8:14-15). 예수님은 이곳 베드로의 집에서 열병에 걸린 그의 장모를 고쳐주셨다. 풍요속 빈곤의 도시 가버나움, 예수님은 빛이 없는 이곳에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셨고 수많은 병자 귀신들린자들을 고치셨으며 모든 묶임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허락해 주셨다.

    예수님의 흔적을 둘러보다 어느덧 허기를 느껴 들린 곳 티베리아스에 위치한 유명한 햄버거 가게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특별한 음식문화와 만났다.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 코샤규정이 있어 치즈는 안된다는 것이다. 치즈버거를 먹으려고 했는데 코샤라서 치즈버거가 없다고 그렇네요 코샤란 유대인들은 유대율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지 않는 음식을 구별하는 음식법을 코샤라한다. 코샤는 유대인에 모든 음식에서 식재료 사용시 식생활 전체에 사용되고 있다. 유대율법에 보면 새끼 염소의 고기를 어미의 젖으로 삼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출 23:19). 그래서 치즈는 우유로 만든 것이라서 고기와 함께 같이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치즈버거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치즈없는 버거를 먹어야 하니 이스라엘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향했다. 게네사렛 디베랴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넓은 호수는 예수님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15명 정도 타는 배를 타고 이동하셨는데 지금 그런배는 어선밖에 없어서 여행객들이 타는 배를 탔다. 호수 위 흐르는 물살 마치 예수님이 곁에 선것 처럼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예수님께서는 이 호수의 연안에서 네명의 어부를 제자로 삼았고 호수의 거센 폭풍을 잠재우셨으며 풍랑위나 수면위를 걷기도 하셨다.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이 갈릴리 바다에 오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소명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예수님이 머물던 갈릴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호수 바람 그리고 해가 지면서 하나 둘 밝혀지는 마을의 불빛 그 모든 것 속에 예수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월은 2천년이나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예수님 그분이 있었다. 이스라엘 여정에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The Gospel Trail을 자전거도 배도 아닌 발로 걷는다. 이 길을 따라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가셨구나.

    갈릴리에서 나사렛까지 당시 예수님이 사역을 위해 이동하셨던 길을 이스라엘정부가 고고학적 고증을 통해 복원한 길을 The Gospel Trail이라한다. 갈릴리 호수 한바퀴(60km정도)를 거창하게 돌고 나서 나사렛으로 향했다. 나사렛...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이는 곳...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 붙는 그 이름.... 그곳은 어떤 곳이 되어 있을까?

    이 길을 가는 중 예수님이 직접 디디었을 땅과 이정표가 되어주었을 우뚝 솟은 산 그분의 땀을 닦아주었을 시원한 바람과 꽃 그리고 그의 걸음에 작은 힘이 되어주었을 나무 그늘. 예수님이 육신의 다리를 딛고 걸어갔던 그 길을 내가 걸어보니까 예수님의 숨결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와 닿는다. 2000년 전에 이길을 걸으셨고 지금도 함께 걷고 계시는 주님 그 분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어쩌면 저 푸른 하늘을 자주 올려다 봤을지도 모른다. 그가 걸었던 길은 저 높은 곳을 바라봐야만 걸을 수 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늘 저 높은 곳을 향해 한결같은 시선을 두고 걸었던 그분의 걸음을 따라 우리도 그가 보고 걸으며 느꼈을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담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길을 따라 예수님이 걸으셨던 것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갈릴리 서쪽 작은 마을 나사렛을 만난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자라나셨던 것이다. 가서 보기 전까지 갈릴리호수와 나사렛이 옆집인줄 알았는데 티베리아스에서 나사렛까지는 35km 정도되는 거리로 산을 3개쯤 넘어야 한다. 지금도 차로 40분을 달려야 하며 언덕보다는 훨씬 높은 마을을 3개나 지나야 나사렛에 도착할 수 있다. 나사렛은 끝에서 끝까지 걷는데 30분이면 충분한 작은 도시였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자를 택하신 것이 그냥 온 김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예수님께서 자라셨던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30세 무렵까지 아버지를 도와 목수일을 하며 평범하게 사셨던 그 집터위에 세워진 요셉교회.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마2:21).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2:23).

    요셉은 그의 평범한 일상속에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는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전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아버지가 되는 부르심 그 감당치 못할 소명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요셉 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 소명 감당못할 부르심은 그의 아내 마리아에게도 동일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천사를 통해 처음으로 수태를 고지받았다는 마리아 수태 고지 교회. 평범했던 그녀의 삶과는 달리 당시 처녀였던 마리아에게서 그 부르심은 생명을 건 결국 평범하지 않은 믿음의 요구였다. 그 당시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하신 말씀에 순종 하고 요셉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받아 들이는 결단을 보면서 신앙의 진실은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될 때에 들어나는 것 같았다. 요셉과 마리아 그들은 그리스도를 잉태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산것은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했고 지극히 소박했지만 그런 그들의 삶에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옴으로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작은 마을 나사렛이 예수님으로 인해 특별해진 것처럼 말이다. 이곳 나사렛은 유대인 아랍인이 대부분인 이스라엘에서 유독 크리스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곳 나사렛의 한 고등학교인데 프란체스코수도회 고등학교 한 쪽 벽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의 학생들은 아랍인임에도 희잡을 쓰지 않았는데 이들은 나사렛에 사는 크리스챤 아랍인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2000년전 예수그리스도의 숨결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작은 아랍인 마을에 빛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인 크리스챤으로 태어나 예수님을 따르며 이곳 나사렛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 안녕하세요란 짧은 인사와 함께 그들의 일상에 잠시 들려보았다. 여러분 다 크리스챤입니까? 크리스챤도 있고 무슬림도 있다. 5명중에 4명이 크리스챤이군요? 크리스챤이라고 망설임없는 그들의 대답이었다. 언제부터 기독교인이 되었습니까? 우리들은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지요. 2천년전부터 나사렛에서 기독교인들이 살아왔습니까? 네 제가 알기에는 그렇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곳 나사렛에서 말이다.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행복합니다. 이들은 잠간의 고민도 없이 이곳에서 삶을 행복이라 이야기 했다. 나사렛에서 와서 귀한 분들을 만났다.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지금 여기서 놀이 하는 분들이 다 기독교인이고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란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고 간다.

    아랍인 마을에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유일한 사람들 고단한 법도 한 그들의 신앙삶이었건만 그들은 아낌없이 미소지었고 그 미소에는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 담겨져 있었다. 예수님으로 인한 행복이 그들의 입가에 그들의 일상에 담겨져 있었다.

    나사렛에서 떠나 예수님 시대의 생활상이 있는 엔돌에 들려보기로 했다. 나라 전체가 고대 박물관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스라엘이지만 이곳에 있는 엔돌박물관의 유물들을 보고 있으면 성경속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주 성경과 관계되는 귀한 유물들이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한 등불이 나오는데 예수님 당시 로마시대 등잔이 엔돌박물관에 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과 기름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처녀는 등잔만 준비해서 결국에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그 등잔이 여기 있다. 여기 이게 바늘이다. 바늘에 구멍이 나있는데 상아로 만들었는데 이걸 보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했을때 바늘귀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 각종 도구와 생활집기들 하나하나 둘러볼수록 말씀이 실제처럼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 했다. 또 여기 말씀에 들었던 또하나의 유물이 있었다. 이것은 두사람이 함께 가는 맷돌이다.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는다는 그 맷돌이다. 맷돌이 있는데 내가 한번 갈아봤다. 곡식을 넣고 같이 돌려보기도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역사는 우리의 일상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 엔돌과 나사렛은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맷돌을 갈던 두 여인처럼 우리의 부르심은 해가 뜨고 지는 평범한 하루하루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 이스라엘에서 하루 하루도 소중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또 한명의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방향을 갈멜산으로 향했다. 엔돌에서 푸른 지중해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곳에 갈멜산이 있다. 이스라엘 서쪽 해안도시 하이파에서부터 동남쪽으로 3km거리에 위치한 산악지대 전체를 통칭하는 것이다. 갈멜산이란 지명은 히브리어로 포도밭을 의미하는 캐론에서 유래되었는데 하나님의 포도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아가서에서 솔로몬왕이 술라미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포도원 이야기의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갈멜산에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갈멜산으로 오르는 길. 하나님을 향해 홀로 한 길을 걸었던 엘리야 대언자처럼 한적한 산길을 말없이 걸어 올랐다. 갈멜산에 오르니 하늘의 축복과 맞닿은 듯. 푸른 하늘에 넓게 펼쳐진 이스르엘 평야가 한눈에 담겨진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의 최대 곡창지대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선지자들을 죽였던 기손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시내로 데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18:40).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선지자였던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길 때 믿음으로 바알선지자들과 겨루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곳 갈멜산 정상에 있는 무흐라카 엘리야 기념교회가 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겨루어 영적 승리를 이루어 낸 곳이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가서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의견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만일 주께서 하나님이면 그분을 따르려니와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그에게 한마디도 응답하지 아니하매(왕상18:21). 이 성경말씀이 나무판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던 바알신과 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머뭇거림은 지금 세상의 풍요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좇으며 그것과 하나님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고민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 속에 확고한 믿음으로 서있던 한 사람 엘리야 선지자. 이곳이 바로 엘리야 한명과 바알선지자 450명과 싸웠던 갈멜산 정상이다. 그 싸움은 하나님과 이방신 바알과의 싸움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인생가운데서도 바로 악과 싸우기 보다는 타협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들어낼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상실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엘리야 선지자는 거짓된 허상에 의지하는 어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그의 간구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셨고 백성은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엘리야와 바알선지들의 싸움은 아련한 옛날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들의 삶속에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시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크리스챤이 해야 하는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신 것을 선포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의 믿음이 그 자체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룩한 제단이 되었듯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림이 아닌 우리 속에 엘리야를 깨워야한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일하실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보인 엘리야 역시

    우리와 성정이 같았던 작은 한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엘리야가 자신을 죽이려는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몸을 숨긴곳에 세워진 스텔라마리스 동굴교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할 때 이곳 갈멜산에 있는 몇 개의 동굴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를 기념하여 17세기에 세워진 셀라 마리스 바다의 별이란 뜻의 동굴교회이다. 교회 곳곳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데 엘리야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이 동굴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믿음으로 강하게 승리할 때가 있는 반면 때로는 이렇게 도망하는 나약한 믿음의 모습에 처할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엘리야를 시내산까지 오게 하셔서 새힘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의 승리를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곳에서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통해 발휘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약함 속에 그분의 강함은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엘리야가 승리를 경험했던 무흐라카 보다 이곳이 더 빛나고 있는 이유는 엘리야의 약함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이 바다의 별처럼 더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굴교회를 나와 잠시 우거진 숲사이로 걸음을 옮기다보니 그 길가에 있던 쥐염나무가 따뜻한 햇살을 한모금 머금고 지친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엘리야가 도망간 곳에 쥐염나무와 열매도 있네. 아마 엘리야도 도망가다가 이 쥐엄나무열매를 먹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가난한 자에게 양식이 되어주고 소금을 또한 달게 했다던 쥐염나무 열매 이 길 이 열매가 도망하는 엘리야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산길을 지나 푸른 바다 앞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하고 작게 싱그럽게 웅크리고 있는 하얀 돔이 보인다. 예수님께서 이집트에서 피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과 가족들이 머물렀다는 장소에 세워진 조그만예배당이네. 바다와 만나는 갈멜산 한편 이곳에도 예수님의 흔적 그 숨결이 남아있는 작은 교회를 나와 조금 더 걷다보면 왜 이곳이 바다의 별이라 불리웠는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저 푸른 바다 지중해가 그 이유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세 개의 대륙에 둘러싸여 있는 지중해,  고대부터 중세 말까지 유럽문명의 중심무대가 되었고 바울사도가 선교여행을 했던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세상이 감당못할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품에 안고 이 넓은 바다에 기대어 함께 빛나고 있었다.

    축복의 땅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을 머금고 작은 꽃처럼 피어난 이스라엘.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곳곳에 담긴 축복의 흔적과 의미를 찾아온 여행길, 위대한 아버지 품안에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었던 예수님처럼 이스라엘에도 그분의 숨결이 간직한채 커다란 바다의 품안에서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길 이 여정에서 우리는 이 땅에 숨어 있던 진정한 축복의 의미를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북쪽 끝 헤르몬산에서부터 물길을 따라 축복의 의미를 찾아 내려온 이스라엘의 여정 그 길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이야기들. 갈릴리 호수를 채우던 단의 풍부한 물줄기는 요단강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사해로 걸음을 재촉하고 그 길목에는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풍경속에 지나간 계절의 역사들 그리고 성경에 배경이 되는 생생한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처럼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걸어갔던 한 사람 그 진정한 축복의 의미인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러 간다.

    이스라엘의 여행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때로는 광야 한복판을 달리는 것처럼 고단하다가도 일상의 소란스러움을 떠나 드넓은 자연과 풍광을 바라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만나고 그렇게 새로운 것과 새로운 추억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여행이라면 그것이 나그네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며 나그네 인생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축복이 아닐까. 북쪽 단에서 남쪽 브엘세바로 이어지는 우리의 여정, 성경을 읽으면서 만나는 것들을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직접 담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이 여행이 더욱 의미가 있다. 구약시대부터 예수님이 태어나 자라고 사역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그 모든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땅, 기독교의 성지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해서 복음 전도의 마지막 땅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하나님의 약속말씀으로 시작된 이곳 이스라엘에서 그 약속의 의미를 찾아 다시금 길을 나섰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이번 여정은 갈릴리호수를 출발해 요르단강을 거쳐 사해로 가는 여정이다. 걷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하늘과 바람 금빛 세상이 만들어 내는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계절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스라엘을 북에서 남으로 쓸어내리듯 잔잔히 흘러가는 요르단강 그곳을 향해 가던 중 양떼를 만났다. 시력이 나빠 쉽게 길을 잃고 다리가 약해 자주 넘어지며 넘어진 뒤에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양들. 목자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보니 이 수많은 양들을 이끌고 있는 그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런 양들에게 목자가 필요하듯 그 양들과 닮아 있는 우리에게도 목자가 필요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선한 목자로 찾아오셨다. 요르단강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이 되는 이 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믿음으로 건너왔던 곳이자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과 예수님이 자신의 삶과 생명을 믿음으로 내려놓았던 이곳에는 인간의 죄로 인한 처참한 결과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요르단강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다. 이 두나라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 줄곧 극단적 대결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후 1948년 5월 이들의 갈등은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이후 더욱 깊어 졌으며 결국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곳 요르단강 주변에는 그때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국경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 이 분쟁의 흔적들이 이렇게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가지고 그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제멋대로 움지이는 목자없는 양들처럼 예수님이 없는 나약한 인간들도 자기를 위한 이기심으로 서로 상처입히며 살아가고 있었다. 갈릴리 호수를 지나 첫 번째로 들른 곳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던 요르단강 침례터이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이길을 따라 모든 상처를 싸매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이땅에 오셨다. 국경지대인 만큼 경비가 삼엄했지만 그 곁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이 옅은 웃음을 짓게 했다. 세상에서는 작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큰 강 요르단강은 이스라엘 북쪽에서 발원해 갈릴리 호수를 지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사해로 흘러 들어간다. 요르단강 침례터 주변 이곳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들어오기 위해 요르단강을 건넜던 지점이기도 하다. 침례가 죄에 대해 죽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이 이 요르단을 건넜던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죽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나타나는 사건이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3:16)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는 경계이자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시작점이 된 이 요르단강에서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이 물결위에 자신의 몸을 낮추고 침례를 받으셨다.

    여긴 정말 은혜가 넘치는 곳이며 인류역사 그 자체임을 알게되니 매우 감격스럽다. 침례는 그저 몸을 물에 적시는 행위가 아닌 자신의 이전 존재를 씻어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안에서 새로운 존재됨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모두에게 열리게 되었고 그렇게 그분의 자녀가 된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우리는 이곳에서 에리트레아에서 온 난민들을 만났다. 이들은 기독교인으로 에리트레아에서 종교적 탄압을 피해 이스라엘로 왔다. 아프리카 동북부 홍해에 인접한 국가 인구 6백만명 에리트레아 정교와 이슬람교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 죽을 각오로 국경을 넘어온 이들의 얼굴에는 고향을 떠난 슬픔과 고단함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한 환희로 가득찼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행복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온전한 축복을 온몸에 새기고 있었다. 이곳에 침례를 받기 위해 왔어요 여기는 거룩한 곳이예요 이곳에 왔다는 게 영광이고 너무 행복해요 하면서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요르단강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담그며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와 만나는 이곳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나라를 떠나온 난민들에게도 예수는 친구였고 구원자였다. 그의 사랑을 받은 자는 곧 모든 것을 가진 자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찬양하며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요르단강을 따라 사해로 향한다. 요르단강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땅에 오셔서 가장 낮고 낮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처럼 마치 그가 걸었던 그 길처럼 요르단강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곳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사해에는 소금이 엉겨 붙어 가지고 겨울에 나무에 눈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소금이다. 요르단강의 물이 유입되나 유출부가 없어 그 수량만큼 다 증발되는 그래서 높은 염도로 인해 거의 생물이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 사해,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이 죽은 바다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겔47:9)  죽은 바다도 다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거룩한 물줄기 곧 예수그리스도는 그 거룩한 생명력으로 죽은 바다와 같은 자신의 백성들을 다시 살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지금이 사해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여겨질 만큼 여행객들의 활기로 가득하다. 해수욕을 하거나 머드를 온몸에 바른 사람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 사해의 새로운 생명력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사해 진흙이 피부에 좋기 때문에 질병과 아픈 곳이 치유되는 곳이다. 클레오 파트라도 애용했다는 진흙과 누구나 물에 뜰 수 있는 신비는 많은 사람들이 사해를 찾는 이유가 되어 왔다. 그래서 우리도 직접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주여 제가 뜹니다. 사해는 더 이상 죽은 바다가 아니다. 해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바다를 가득 채운 다양한 광물질들은 사해가 만들어 내는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사해는 유대광야와 맞닿아 있는데 사해의 서쪽 중앙 유대광야에 위치한 엔게디에는 또 다른 생명력이 자라고 있었다. 삶이란 뜻의 엔, 새끼 염소란 뜻의 게디 즉 새끼 염소의 삶이란 뜻으로 유대광야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엔게디 지역.

    그리고 이곳에 위치한 엔게디 키부츠식물원. 사막에 식물원이라니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곳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식물들이 모여 있었다. 파파야 물이 나오네, 이것이 우리나라의  로션같이 얼굴에 바르는 것이야. 이 열매는 케냐 소말리아 에디오피아에서 나오는데 이 열매는 독약이예요 이게 독약이란 말에 괜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곳에서는 성경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식물도 볼 수 있었다 들무화과나무는 누가복음 19장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위해 올라갔던 나무이다. 요나에게 그늘이 되어주었던 박 넝쿨,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앴던 몰약나무.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세가지 예물중에서 이 몰약을 가지고 왔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포도주에 몰약을 탄 것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시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진통제를 거절하고 고통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을 예수님과 처음과 끝을 함께 했던 몰약나무는  말없는 식물이지만 어쩌면 이 나무도 예수님에 대해 알 그날의 신비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곳에는 또 하나의 나무 이스라엘의 풍요와 번성을 나타내는 종려나무가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은 양들이 먹을 풍성한 초장을 의미하고 꿀은 대추 종려나무 열매의 꿀을 의미한다. 여기 엔게디에는 2000년이 넘은 대추야자나무가 있다. 잘 보면 나무에 대추야자가 달려있다. 세계에서 최고급의 대추야자예요. 사막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있는 나무이자 어린아이 손에 들려져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반겼든 부활과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였다. 사막에서 만난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한 푸른 엔게디 식물원, 사막과 같은 인생속에 흔들림없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저 나무들 처럼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조용히 읖조렸다.

    우리는 이제 엔게디를 지나 네게브사막으로 간다. 광야 이스라엘 국토의 60%이상을 차지하는 척박한 땅, 우리는 때로 우리의 인생을 광야에 비유하곤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함과 스스로 생명을 이어가기에는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곳.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의 인생과도 닮은 여기 네게브사막이다. 이스라엘 북쪽에서 강줄기를 따라 내려와 브엘세바로 가기 전 우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방향을 돌려 먼저 광야로 간다. 이곳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시내산을 떠나 바른 광야를 지나 도착한 신광야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에게 광야를 먼저 허락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들을 괴롭게 하시는 일이라 원망했지만 사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철저히 바라볼 수 있는 축복의 땅의 시작이었다. 뜨거운 태양 빛이 고스란히 내려쬐이는 그늘한점 찾을 수 없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잡고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분만을 의지하고 그 약속만을 소망한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그저 걸어야만 했다. 이 길에서 바라볼 것은 하늘 뿐이었다. 원망할 것도 간구할 것도 없는 오직 하늘 뿐이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냥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하나님이 그냥 마시게 하시면 마실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광야와 같은 오늘 우리의 삶속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되는 그런 굳건한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만을 의지해 주길 믿어 주길 광야에서도 그늘이 되고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길 간절히 바라셨다. 하늘과 맞닿은 곳이 그분의 품 광야였다. 이제 광야를 돌아 약속의 땅 남쪽 브엘세바로 간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을 북에서 남쪽까지 이어온 우리의 여정. 그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그 걸음을 따라 네게브를 지나 축복의 땅으로 향한다. 히브리어로 일곱개의 우물이란 뜻의 아브라함 이전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도시 브엘세바 이곳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이 있는데 사막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물을 깊이 파야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곳 우물들은 대부분 그 깊이가 깊다. 여기 블레세바 우물이 70m이다. 얼마나 깊은지 한번 돌을 우물에 던지니 5-6초 후에 소리가 들린다. 브엘이란 우물이란 뜻이고 세바는 일곱 개이니까 일곱 개의 우물이란 뜻이다. 그만큼 브엘세바는 물이 많고 우물이 많은 뜻이라서 예부터 사람들이 이찌기 살았던 곳이고 또 아브라함도 이곳에서 우물을 팠고 이삭때도 우물을 팠던 그런 곳이 브엘세바이다. 당시 우물을 파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들어가 흙을 퍼 올렸다고 하니 아브라함도 이삭도 이 사막에서 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눈에 선했다. 그리고 당시 큰 성읍이었던 이곳에는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사용되었던 물 저장고가 있었는데 그 깊이가 상당히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네게브사막에 위치한 이 곳에서 물은 생명과도 같고 귀했는데 그럼에도 이삭은 우물을 팔 때 마다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고대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였던 제단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제단 각 모서리에 있는 뿔에 기름을 바르고 뿔을 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을 예배했고 하나님은 이 황량한 사막에서도 그들은 지키셨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곳에 에셀나무를 심었다. 사계절 푸르른 이 나무앞에서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했다. 아브라함은 이 브엘세바에서 영생하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런 에셀나무를 말년에 심었던 것이다. 그 말년에 본인이 사용할 수 도 없는 그러한 에셀나무를 미래를 위해서 나그네의 그늘을 위해서 심었던 것이다. 또한 이곳 브엘세바에는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온 엘리야가 그 아래서 죽기를 간구하였던 로뎀나무가 있다. 하나님은 이 로뎀나무의 그늘아래에서 그를 먹이시고 새 소망을 부어주셨다. 축복의 땅 이스라엘은 물이 풍족했던 북쪽지역뿐 아니라 이곳 브엘세바까지를 포함하는데 이 황량한 사막 역시 축복의 땅이 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이곳 우물과 나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기스로 간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마치 성경을 그대로 펼쳐놓은 듯 말씀이 역사적 사실이자 진리라는 것을 증거해 주는 다양한 유적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곳 라기스에서도 성경말씀을 뒷받침해주는 몇가지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저명한 성서고고학박사인 요세프교수를 만났다. 이스라엘 남방 방어선의 요충지였던 이 곳 라기스는 1930년대 처음 발굴이 시작되었고 초기 발굴당시 거대한 궁전터와 그 주변을 에워싼 성벽이 언덕 전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성경에 기록된 라기스성의 묘사와 일치하고 있다. 일일 뒤에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자기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었으나(자기는 직접 자기의 온 병력과 함께 라기스를 에워싸고 있었더라) 그가 유다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던 온 유다에게 이르기를(대하32:9)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대하32:5). 성경의 기록처럼 이곳에는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라기스를 공격했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또한 이 역사적 흔적은 지난 1846년 이라크 리누와에서 발견된 산헤립 부조회도 그대로 보존되었다. 기원전 701년에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유다로 와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성경 3권(열왕기 이사야 역대상하)에 묘사되고 있다. 이쪽에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전투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현재 대영박물관에 라기스 포위작전에 대한 그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가 남유다 라기스를 공격했던 역사가 고스란이 기록되어 있는 산헤립부조(대영박물관)와 이렇게 라기스의 유적 그리고 이 산헤립부조의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이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근거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성경의 근거가 되는 또하나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경에 대한 다른 증거는 이스라엘 곳곳에서 발견되었던 반면 다윗왕의 실증에 대한 역사적 고증은 최근까지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놀랍게도 하사엘의 다윗왕의 이름이 언급된 아시리아왕 하시리 기념비가 발견되었다. 아시리아왕 하사엘에 의해 새겨진 기념비가 북이스라엘 텔단에서 발견되었다. 이 석비에서 왕이 말하길 나는 이스라엘 왕을 죽였고 다윗의 집의 왕을 죽였다고 쓰여져 있다. 다윗의 집은 다윗의 시대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왕이 실존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다윗의 실존 여부에 대해 더 이상 논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비문에도 기록된 것 처럼 기원전 9세기 경 아시리아의 왕이었던 하사엘이 이스라엘르 여러차례 침략한 사실은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때에 아람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왕하9:15) 요세프교수의 말처럼 하사엘왕의 비문에는 기원전 835년경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 전쟁에서 승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아람어로 다윗의 집을 공격했다고 쓰여져 있었다. 다윗의 집은 곧 다윗왕조를 뜻하는 것으로 성경속 다윗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말씀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사실로 증명되고 있었다. 더 이상 허구라고 주장될 수 없는 분명한 진리로서 말이다.

    이스라엘 최북단 헤르몬산에서부터 갈릴리 호수를 지나 요단강 줄기 아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사해를 거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 네게브사막을 돌아 브엘세바로 향한 이 여행의 끝자락 이제는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으로 간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되어

    광야를 지나 예수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축복의 걸음 그 마지막 걸음이 닿는 곳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약 삼천년전 이스라엘 왕 다윗은 이곳을 수도로 정했고 그후 다윗의 후손들은 이곳에 궁전과 성전을 짓고 살았지만 곧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지만 7세기 경에는 이슬람교 세력이 이지역을 점령하였고 그 뒤로 약 400년 동안 아랍왕조의 지배가 이루어졌다. 그 후 십자군들은 이 땅을 무슬림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이 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8년 전세계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여 다시 이곳에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었다. 현재 예루살렘의 옛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은 16세기 오스만 통치자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세워진 성의 위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 오스만 통치자였던 술탄 슐레이만은 옛시가 주변에 새로운 성벽을 쌓는데 이따금 솔로몬왕때 건축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성벽의 자리와 맞물린다.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예루살렘 성의 크기와 규모도 계속해서 변화왔는데 약 3000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파괴로 무너지고 또 다시 세워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단순히 적으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세워졌던 성이지만 지금은 유대인 유대교와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들이 집합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대의 보고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성에는 8개의 문이 있는데 동에서부터 황금문 사자문 헤롯문 다메섹문 새문 욥바문 남쪽에 시온문 분문인데 그중 5개가 오스만 트르키의 것으로 욥바 다메 사자 분문 시온문이 있다.

    이스라엘 서쪽 욥바를 향해 있는 욥바문, 북쪽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를 향해 있는 다메섹문, 스데반 집사가 이 근처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사자문,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문은 황금문이라 불리는 동쪽 문으로 로마인들이 6세기에 건축한 것인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가 이문을 통해 들어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때문인지 오스만제국의 슐레이만 1세는 황금문을 봉인해 버렸고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다. 한변의 길이가 1km즘 되는 이 좁은 예루살렘성안에는 다양한 종교로 인해 항상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유엔의 중재하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아르메니아정교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유대인들 구역에는 통곡의 벽이  있고 기독교인들 구역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다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이며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자리 그곳에 들어서면 이슬람의 황금돔사원이 있다. 이곳엔 마호멧이 승천했다는 바위가 있고 이는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3대성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황금돔 사원이 이슬람의 영역이라면 여기 이곳 유대인들의 자리가 있는 18m 높이의 예루살렘 서쪽 벽, 솔로몬 성전이후 헤롯왕이 성전을 지었지만 AD70년 예루살렘을 파괴한 로마 군대가 자신들의 위험을 과시하기 위해 이 곳 서쪽 성벽만 남겨놓았다. 그 후 성전을 잃고 나라를 빼앗긴 유대인들이 성벽에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로마인들의 지배이후에 주님의 집에서 남은 것이 이 벽 뿐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곳 중에 저희에게 남겨진 곳은 여기 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에 대해 배우기는 하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에 연관성은 있으나 서로 다릅니다. 이 좁은 예루살렘 성벽안에는 기독교를 포함해 이슬람 유대교등 진리를 안다고 믿는 다양한 종교사람들과 그들의 믿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믿는 대로 살고 있었고 또 믿음은 그들이 삶을 지배해 주는 무언의 힘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가 진정으로 따라야 할 온전한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사람들은 말한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결국 모든 길이 정상을 향해 뻗어 있다면 절대적 진리는 없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는 말한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이 길만이 생명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소란스러움 외침뒤에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으로 고요하게 채워져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들린 이곳 감람산 높이 800m의 올리브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예수님의 숨결이 그대로 있는 눈물교회는 예수님의 숨결이 그대로 배여 있는 듯 했다. 힌놈꼴짜기-벳바개 네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많은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이산 겟세마네동산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이 시작되었고 이산 정상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생을 마감하며 보좌로 승천하셨다. 예수승천교회 예수님의 사역 그 처음과 끝이 되었던 감람산, 예수님은 이곳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는데 그런 이곳에 주기도문교회가 세워져 있다.

    라틴어로 우리 아버지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교회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친 것을 기념해서 세워졌다. 교회입구에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뿐아니라 약 100여개의 다양한 언어로 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도란 단순한 주문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소통 대화 즉 친밀한 관계의 통로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셨고 직접 그 방법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만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심지어 광야 한 복판에서도 유일한 생명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이토록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수 있던 이유는 누구보다 그가 기도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전 이 곳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가지 깊은 고뇌속에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것을 기념하기 세워진 겟세마네교회.

    비잔틴 시대 처음으로 세워진 이 교회는 몇 차례에 걸쳐 파괴되었다가 16개국의 성금으로 다시 세워져 지금은 만국교회라고도 불린다.

    이 교회 중앙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바위의 일부가 철제가시관으로 둘러싸여 보존되고 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죄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자신안에 가득 채우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누구도 대신 해 줄수 없었던 지극히 극한 그 고통속에 그는 죄의 길 죽음의 길로 걸어가셨다. 죄인이 걸어야 했을 그 길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향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군에게 체포된 예수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에 올라 십자가에서 처형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고스란이 담겨진 십자가의 길. 라틴어로는 슬픔의 길이란 뜻의 비아들로랴로 불리는데 금요일 오후가 되면 이곳에는 전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이 모여 예수님이 걸었던 그길에서 그를 기억하고 그의 소명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린다. 약 1.6km로 이루어진 이 길은 14세기 프란체스코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되었는데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14개의 지점으로 이는 18세기에 확정되었고 이중 일부는 19세기 일부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십자가의 길은 제일지점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시작되며 로마군사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제2지점으로 이어진다. 제3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가다 처음으로 쓰러진 곳이며 제4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가다 마리아와 재회한 장소이고 제 5지점에는 십자가를 지고가다 예수가 잠시 휴식하기 위해 손을 짚었다는 벽이있고 이곳에서 구례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지고 갔다. 한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제6지점과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졌다는 제7지점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제 8지점을 지나면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졌다는 현재 콥틱교회가 있는 제 9지점이 나온다.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는 지금의 성묘교회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성묘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교회로 무덤교회 라고도 불린다 이곳에는 로마군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박은 자리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은 뒤 그분의 시신을 내려놓은 곳이 있고 아리마대요셉이 예수님의 장사지내는 무덤까지 내놓은 아리마대요셉무덤이 있다 예수님은 이곳에 안장된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또한 이곳에는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하기 위해 예수의 시신을 염한 장소인 제 13지점. 이곳엔 기름부은 돌이 있고 2000년이 지난 후 지금도 찾아온 많은 순례객들은 이곳에 기름을 바르고 여전히 살아계신 그분과 마주한다.

    십자가의 길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은 감히 어느 누구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를 위한 생명의 길이었다. 예수그리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만이 젖과 꿀 그보다 더 위대한 축복이 그렇게 그는 사람이 받아야 할 죄의 고통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야 했다. 죄로 인해 벌어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 온전한 화평을 이루기 위해 이 길을 가야만 했다. 축복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그 자체라면 죄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영적 죽음 곧 그분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람사이 그의 피묻은 걸음은 곧 길이 되었고 그 벌어진 틈사이를 있는 다리가 되었다. 그분의 걸음은 깨어진 약속을 회복시키는 걸음이었고 조각난 관계를 회복시키는 걸음이었고 무너져버린 소망을 새롭게 하는 걸음이었다. 스스로 길을 안다는 수많은 인파속에서 예루살렘의 한줄기 빛 예수그리스도는 그렇게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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