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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 자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임합니다.말씀 2020. 7. 26. 15:00
자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임합니다 눅4:18, 6:38
지난 주일까지만 하여도 언론이나 유트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런 죽음을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사람은 그가 죽어봐야 그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됩니다. 지난 22일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이 1994년 5월 박원순이 변호를 맏았던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을 판결하였던 이은경 변호사를 만나 그 때의 성폭력재판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이은경변호사는 약 30여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에서 재판부의 판사 3인 중에서 당시 유일한 여성 판사였다. 우조교를 성희롱한 것으로 제소된 신 교수에게 성희롱 사건을 판결한 이은경(56)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는 그 때의 상황을 훤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박원순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즉 자신들이 판결한 사건이었다. 사건은 92년 5월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 취업한 우 조교는 신 교수가 기기 교육을 이유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계속한다며 불쾌감과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가 이듬해 6월 재임용에서 탈락한 우 조교가 대자보를 붙여 억울함을 호소하자 신 교수는 우 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되면서 성희롱 사건의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99년 6월 신 교수에게 500만원 배상 판결로 마무리 진 것이다. 이 성희롱사건의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 박원순은 성희롱 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당시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국내 최초의 소송을 맡은 6인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 그 소송의 승소로 여성권익 신장 공로를 인정받아 98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으며 스타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20여년 뒤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것이 밝혀지기도 전에 불과 하루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 너무 충격적이란 것이다. 시민운동가이자 '여성 인권 대변자'에서 그의 마지막 이력은' 성추행 혐의자로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된 것에 대해 이은경변호사는 최초의 성희롱 소송을 이끈 변호사가 성추행으로 피소되었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전에 죽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떠났지만,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고, 변호인에 대한 신상털기와 공격이 폭력에 가깝다. 피해자가 서울지방경찰청에 가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진술하던 바로 그 시간(8일 밤)에 서울시장 공관에서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것은 고소 내용을 미리 입수해 말맞추기를 했다면 반칙이고 특권이다. 박원순 성폭력사건을 그가 죽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끝낼 사안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20년전 박원순 변호사가 성폭력 소송을 변호했을 때 당시 이 사건을 판결한 이은경 판사의 생각이다. 누구나 삶에 공과가 있다. 다만 죽음으로 과오를 덮으려 하고, 극단적 선택을 동정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 부검 없이 바로 장례를 치렀지만, 자살에 대한 ‘심리 부검’을 반드시 하면 좋겠다.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누구든지 죽음으로 과오를 덮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 이은경 법관의 사고이다.
26년전 박원순을 스타로 만든 여판사 일침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같은 날 신문의 한 지면에는 기부한 어느 여성 기업인에 대한 신선한 소식을 전하는 면이 있어서 기사를 읽는 사람마다 매우 기뻤을 것이다.
1. 한국의 빌게이츠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국내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며 676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다는 80대 여성 사업가의 사진과 함께 그분의 프로필이 소개되었다. 기부금을 한 이수영(83) 광원산업 회장은 23일 오후 KAIST 대전 본원에서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기부를 약정했다. 이 금액은 KAIST개교 이래 최대 액수인데 이런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일이다. 이번 이 회장의 기부는 지난 2012년 미국의 80억여 원 상당의 부동산과 2016년 또 한 차례에 걸쳐 10억여 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유증한 것에 이은 세 번째 기부다. 총 기부액은 KAIST 개교 이래 최고액인 766억 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은 오랫동안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결과 KAIST는 우리나라 발전은 물론 인류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기부 배경을 밝혔다. 이 회장은 KAIST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영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ˮ고 기부 소감을 밝히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나라를 위하는 뜻을 가진 분들이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이 동참해주기를 바란다ˮ고 당부했다. KAIST에는 그간 이수영 이사장을 포함해 대한민국 1호 한의학박사인 故 류근철 박사(578억 원), 정문술 前 미래산업 회장(515억 원), 김병호 前 서전농업 회장(350억 원), 故 김영한 여사(340억 원) 등의 기부자들이 KAIST에 고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이 회장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거액의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한국의 빌 게이츠들'을 정리해봤다.
1조원을 기부한 이종환 삼역화학 그룹회장은 대표적인 '한국의 기부왕'이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자신의 기부 철학을 밝혔다. 그는 1959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세운 뒤 2000년 1조원의 사재를 털어 관정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에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다.
4400억을 기부한 한샘 창업자이신 조창걸 명예회장은 2015년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절반인 260만주(당시 종가 기준 약 4400억원)를 한샘드뷰재단에 내놓기로 약속하고 조 명예회장은 2015년 60만주, 2017년 100만주를 기부했으며 나머지 주식의 재단 증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2000억을 기부한 이준용 대림산업의 명예회장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의 통일나눔펀드에 개인자산 전액인 약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이 명예회장은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20억), 2017년 경북 포항 지진(10억원), 2020년 코로나19 지원 (20억)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에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다.
전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연예계에서 기부를 한 분들은 누구인가?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고 말하는 연예계 기부 천사들
원로배우 신영균씨는 2010년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쾌척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된다"며 앞으로 남은 재산도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장나라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9년에 130억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대부분의 광고 수익을 기부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는 가족 생활 신조로 선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천사'로 유명한 가수 션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와 아내 정혜영과 각종 재단에 개인으로 기부한 금액은 55억원이 넘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들 1000명 정도 후원을 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이밖에 가수 하춘화도 45년 간 200억원이 넘는 기부를 했으며, 가수 조용필도 매년 수억원씩 기부하며 201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영웅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아름다운 소식을 접할 때 마다 정말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국의 빌게이츠들이 우리주변에 있다는 것에 정말 마음이 상쾌함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사랑은 말로만 하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내가 갖고 있는 범위내에서 이웃을 섬기면 된다. 탈무드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하나님에게 채권을 약속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천국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있을 때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될 줄로 믿는다. 물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가 귀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인데 하나님을 대신하여 내가 나눠준다면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런 선한자에게 빚지신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니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후하게 갚아 주시리라고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함께 흔들고 넘치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품에 안겨주리라는 말씀은 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을 약속했다.
성경에는 부자들의 탐욕이야기도 있지만 선한 이야기도 있다. 부자 탐욕하면 <나봇 이야기>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았던 아합과 이세벨의 탐욕을 지적했다면, <토빗기>는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부자들의 이자 놀음에 대해 경고합니다. 실제로 토빗은 외경에 있기 때문에 개신교인들에게는 낯선 인물입니다. 외경에 기록된 토빗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7-8세기 경입니다.
2. 진리와 선행의 길을 살았던 토빗
토빗은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대하여 선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했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안나와 결혼하여 아들 토비야를 낳습니다. 어느 날 포로가 되어 앗수르 니느웨로 끌려갑니다. 그곳에서 임금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성실한 삶은 임금의 물품 구입 담당자로 살면서 출세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메디아의 가바엘에게 은 열 달란트를 맡겨 놓습니다. 살만에셀 이후 산헤립이 앗수르 왕이 됩니다. 산헤립은 시체 매장 금지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매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토빗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이들을 묻어 주었고, 결국 들통나 도피하게 되고,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하게 됩니다. 어느 날 마당에서 자는 동안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을 잃게 됩니다. 메디아에 사는 친족 라구엘의 외동 딸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악귀가 남편들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와 토빗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라파엘을 보내십니다. 토빗은 아들 토비야에게 20년 전 메디아의 가바엘에게 맡긴 은 열 달란트를 찾아오라고 명합니다. 토비야는 메디아로 가는 길에 동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사람으로 위장한 천사 라파엘이었습니다. 라파엘은 토비야와 사라에게 결혼할 것을 종용하고, 그들은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둘은 여행 중에 잡은 물고기의 간과 염통을 향불에 태워 마귀를 물리친 뒤 기도를 올립니다. 토비야는 사라와 함께 어머니 안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토비야는 물고기 쓸개를 아버지의 눈에 발라 시력을 되찾아 줍니다. 토빗은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을 라파엘에게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때 라파엘은 자신이 천사임을 밝히고 하나님께 올라가게 됩니다. 토빗은 시력을 되찾은 뒤에도 선행을 하다 112살에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죽기 전 아들 토비야를 불러 메디아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자 토비야는 아내와 함께 메디아로 돌아가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살다가 117에 생명을 마칩니다.
구약 외경에 속한 토빗기는 개신교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경이 공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토빗기는 정경처럼 교회 안에서 인정되었고, 교부들은 즐겨 설교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토빗기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몇 구절을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토빗기가 왜 이렇게 초대교회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 이제 <토빗 이야기>로 직접 들어가 보겠습니다. 토빗 이야기는 모두 14장으로 된 설교 형식의 글입니다. 자선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경고와 책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에서는 토빗의 삶을 간추립니다.
(1) 토빗의 삶
토빗기는 파란만장한 몇몇 인간의 생애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아주 재미있는 성경입니다. 토빗의 인간 됨됨이는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이 불행한 꼴을 결코 못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의인이었던지는 본인 스스로가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토빗1:3)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토빗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게 충실했다. 비록 유배지 생활이었지만 토빗은 가산이 넉넉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얼마나 인정이 많았던지 잔치를 벌일 때 식솔들끼리만 즐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던 종족들 가운데 제일 가난한 사람들을 늘 잔치 상에 앉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불행을 늘 자신의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율법까지 어겨가면서 타향에서 객사한 동포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묻지 말라는 반포령에도 목숨을 걸고 장사를 치렀던 의인 토빗이었지만 그에게도 불행의 그림자가 덮쳤습니다. 오순절 밤, 죽은 동포를 매장하고 나서 피곤에 지친 그가 마당에서 잠을 자던 중 뜨거운 참새 똥이 그의 두 눈에 명중하면서 그는 시력을 잃고 4년여 동안 암흑 속에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내 안나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품팔이, 남의 집 가사일, 허드렛일 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앞 못 보는 남편을 봉양했습니다. 그런 토빗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크게 비웃었다. “하나님께 충실해도 뭐 특별한 것 없구먼! 그렇게 자선을 베풀었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저 모양이군!” 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성인군자, 안에서는 무능한 남편인 토빗을 향해 아내 안나도 드디어 분노가 폭발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당시 토빗이 느꼈을 참담했던 심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빗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삶이 힘겹다고 절대로 부정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만 생각하며 정도를 걸어갔습니다. 토빗기에서는 눈이 먼 토빗과 토빗의 아들 토비야, 그리고 7번이나 결혼했지만 첫날밤에 남편과 사별해야 했던 사라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의인들이 겪어야하는 고통을 주님께서는 적당한 순간에 개입하시어, 그들의 노고에 대한 응답으로 풍성한 축복을 내리신다는 것이 토빗기의 주제입니다.
불행을 겪을수록 토빗과 사라는 더욱 주님께 의지하고 간청했던 그들의 기도를 그분께서 나 몰라라하지 않으셨습니다. 라파엘 천사를 보내시어 기적적으로 토빗의 아들 토비야와 사라의 결혼을 성사시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눈먼 토빗에게는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 토빗은 의로운 삶 때문에 고통을 당했지만 마침내 하나님께서 토빗에게 백배, 천배로 갚아주셨습니다.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고, 대대손손 큰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이러한 토빗의 삶은 초대교회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2) 토빗의 유언 : 토빗기 4장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 아내로 부터 한바탕 막말을 들었던 눈 먼 토빗은 하나님께 죽음을 간청하였다. 그리고 죽기 전에 아들 토비야를 불러 유언을 한다.
1 그날 토빗은 전에 메디아의 라게스에 사는 가바엘에게 맡겨 둔 돈이 생각나서, 2 '자, 내가 죽음을 간청하였으니, 죽기 전에 내아들 토비야를 불러 이 돈 이야기를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3 그리하여 자기 아들 토비야를 불렀다. 그가 오자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잘 묻어 다오. 그리고 네 어머니를 공경하고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네 어머니가 좋아하는 일을 해 드리고 무슨 일로든 어머니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는 것은 비슷하다 우리 조상도 유언장을 써서 자식에게 전하고 죽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 말로 유언을 여러 자식에게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토빗은 또 다음과 같은 유언을 한다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살아라. 죄를 짓거나 주님의 계명을 어기려는 뜻을 품지 마라.
평생토록 선행을 하고 불의한 길을 걷지 마라. 진리를 실천하고 의롭게 살아라. 네가 가진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어떤 간음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누가 네 일을 해주었든지 그의 품삯을 미루지 마라.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취한 채 길을 걷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끝으로 20 얘야, 이제 내가 전에 메디아의 라게스에 사는 가브리의 아들 가바엘에게 은 열 탈란트를 맡겨 둔 일이 있음을 알려 준다. 21 그러니 얘야, 우리가 가난하게 되었다고 해서 두려운 생각을 품지 마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죄악을 피하며 주 너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면, 큰 재산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가난하게 되었다고 해서 두려운 생각은 품지 마라 하는 것으로 토빗의 유언은 끝나지만 참으로 우리에게도 유익한 유언이다.
그리고 토빗기 5장은 아들 토비야가 메디아의 라게스에 사는 가브리의 아들 가바엘에게 은 열 탈란트를 찾으러 가기 위해 아들에게 찾아오라고 부탁하는데 내가 그 돈을 맡겨 둔 지가 벌써 스무 해나 되었다. 그러니 이제 얘야, 믿을 만한 사람을 하나 구해서 같이 가서 그에게 돈을 받아 오너라" 4 그리하여 토비야는 자기와 함께 메디아로 갈 사람, 길을 익히 아는 사람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토비야는 바로 자기 앞에 서 있는 라파엘 천사를 발견 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천사인 줄은 알지 못하였다. 토빗이 라파엘에게 "내 아들 토비야가 메디아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면서 그를 인도해 줄 수 있겠소? 형제여, 품삯은 물론 주겠소." 하자, 라파엘이 대답하였다.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길을 모두 잘 압니다. 메디아에 많이 가 보았고 그곳의 온 평야 지대를 가로질러 다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산악 지방과 길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비야는 천사 라파엘과 함께 메디야로 향해 떠났다.
(3) 토빗이 받은 복
가던 중 티그리스강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쓸개와 염통과 간을 빼어 잘 간수하라고 했다. 천사는 그 물고기의 염통과 간은 태우면 효험이 있고 쓸개는 눈에 바르면 눈에 효험이 있다고 했다. 천사는 메디아에 들어서서 에바타나에 이르렀을 때 오늘 밤은 라구엘의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데 그집은 그대의 친족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무남 독녀 딸 사라가 있는데 신부로 맞이하라고 한다. 토비야는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이미 일곱남자와 혼인했는데 신방에서 다 죽었다는 것이다. 마귀가 그들을 죽였다는 말도 들였소 했다. 그런데 천사 라파엘은 내 말을 듣고 마귀는 걱정하지 말고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이다. 물고기의 염통과 간을 꺼내 불을 부치면 마귀가 물러간다는 말을 했다. 말하기를 그녀는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그대의 아내로 정해졌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동침하기전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 후 그들은 라구엘의 집에 들어갔다.라구엘은 토빗의 친족이다. 인사를 하고 나니 매우 가까운 친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날 밤 토비야와 사라는 결혼을 하고 라파엘이 시키는 대로 물고기 염통과 간을 꺼내 불을 부쳐 연기를 내고 하나님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사라의 아버지 라구엘은 만일의 경우를 위해 사람을 묻을 땅을 밤에 팠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너무 기뻤다. 온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그 잔치에는 라게스에 사는 돈을 빌려준 가바엘도 참석했는데 그는 낙타에 봉인된 돈까지 실었다. 이렇게 라구엘의 친족집에서 토비야는 사라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부탁한 20년전 맡겼던 돈도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토비야는 아버지 토빗의 눈에 천사가 시키는 대로 물고기 쓸개를 부쳤더니 눈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시력을 회복하게 되어 토비야의 아내 며느리를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말도 못할 정도였다.
주님께서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간절한 기도를 절대로 그냥 흘려듣지 않으시고, 고달픈 인생 여정에 늘 가까이 동행해 주신다는 것이니 언젠가 실현될 귀향의 날을 희망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서 의롭게 살고, 자선을 베풀며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고 토빗기는 외치고 있다.
(4)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채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환경에 맞게 빚을 지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빚을 져야 한다면 온갖 힘을 다해 빚을 갚고 그 올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면서 구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확실하게 상급을 쌓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입니다.
“지상에서 주면, 천상에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자를 포기하면, 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돈놀이를 그만두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상속자들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위로의 이야기를 토빗기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채무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이웃에게,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품삯을 후하게 주고, 가난한 자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영혼이 굶주린 자들에게 말씀의 떡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사랑의 채무자이기 때문입니다. ‘토빗기’에 나오는 정의와 자비와 환대의 삶을 산 토빗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은 이타적 삶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경건한 삶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고향을 떠나 온 나그네입니다. 고향은 영혼의 안식처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아가고 싶어 한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의 인생은 외롭고 고단하다. 육신의 고향도 이러한데 하물며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의 인생은 어떠하겠는가?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의 마지막 노래는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깨어진 기왓장 위에 한 수의 시조를 적는다.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 서산을 넘어 저물어 가는구나! 아 황천길에는 여관이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가.’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은 죽어서도 편히 쉴 곳이 없다.
인생길은 영원한 아버지의 품속을 찾아 가는 나그네 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고향을 찾아 나선 거룩한 나그네들이다. 자신이 거룩한 나그네임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다르다. 나그네는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삶이란 한 술 밥과 한 평의 잠잘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묘한 교훈을 얻는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에는 주먹을 꽉 쥔다. 그런데 떠나는 날에는 손을 쭉 편다. 땅 위에 쌓아 놓는 것은 하늘로 가지고 갈 수가 없다. 떠나야 할 나그네들은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이웃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과 시간을 바치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땅에서는 흔적이 남지 않지만, 하늘나라에는 보화로 쌓이는 것들이다. 나그네는 고향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다. 나그네는 고향에 가는 것이 소망이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곳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천국 고향에 가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 연연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
여러분 천국은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천국들어 가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10절을 보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자들인지 ?
3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10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것이기 때문이라. 천국 가기를 원하면 심령이 가난하여야 하고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데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을 전하신 사람들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하시는 데 과연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이론적으로, 또 학문적으로만 알면 믿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알면 지식적인 갈망이 어느 정도는 채워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지적인 욕구가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후 부터는 자기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는 무슨 일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왠지 마음이 텅비어 있는 것 같고, 허전하고, 공허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예수님으로 인해 생기를 얻고 영혼이 살아나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삶의 가치가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고 예수님을 마음에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이 때 천국이 임하게 되어 이것이 바로 천국을 얻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제일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에게는 천국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그는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연 인간 세상에서 그 영혼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 한 사람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를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에 온 인류가 다 실상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난한 것을 아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난한 것을 알고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혼이 가난할 뿐 아니라 텅텅비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도록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항상 탐욕을 통해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고 믿게 하면서 눈앞에 그 얻으려는 것이 곧 잡힐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과 파멸이 기다리는 것도 모른채 눈앞에 있는 마귀가 쳐놓은 덫에 이끌려 달려갑니다. 그것은 참으로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우며 그것을 얻는 날에는 하나님도 부럽지 않는 삶을 살 것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미혹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미혹된 사람은 자기 심령의 가난을 보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미끼를 쫓아가다가 미끼를 덥썩무는 그 날이 강태공에게 잡혀 죽는 날인 것처럼 사람이 마귀가 눈앞에 보여주는 비전이라는 이름의 미끼를 행해 달려가다가 그것을 덥썩 잡는 그날이 바로 그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을 밝혀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은 파멸의 날까지도 자기가 미혹을 당하는지 조차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심령이 가난한 지조차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미혹된 인류는 인간의 심령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부유함에 더 집중합니다. 그것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교인들 모두다 눈이 멀어 자기들이 가난한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22절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입니다. 17절을 보면 라오디게아교인들의 영적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것이 만물의 창조자이신 예수님의 진단결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볼 때 자기들은 부자처럼 보입니다.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는 그들의 심령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여 곤고합니다. 돌봄을 받지 못해 가련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함 속에 있습니다. 눈도 멀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영적인 거룩함과 의의 옷을 아무것도 입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파산한 상태입니다. 수치스러운 상태입니다. 죽음직전까지 갔는데도 아무 것도 모릅니다. 부자인줄 압니다. 풍요로운 줄 압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전혀 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파산을 앞둔 사람이 자기 회사가 아직도 잘 돌아가는 줄 알고 착각하면서 좋아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육신의 눈은 열렸는데 영의 눈은 멀어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복이 영의 복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가운데 이런 착각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자기 영혼의 곤고함과 가난함과 가련함을 알지 못해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외치지를 않습니다. 그저 가진 것을 앞세우며 큰 소리를 칩니다.
그런 가난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말씀하신 해결책이 오늘날 눈이 멀어 심령이 가난함을 모르고 있는 착각 속에 빠진 교회에 내미신 해결책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을 보면 이렇게 예수님은 눈멀고 가난한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불로 연단한 금이 있으며, 예수님에게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줄 흰 옷이 있으며, 예수님에게 밝히 볼 수 있도록 치료해주는 안약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에게서 사야 합니다.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 구하는 대가는 예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눈먼 두 소경은 자신들이 눈먼 것을 알아서 예수님에게 소리쳤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태복음 20장 29-34절을 보면 두 명의 아주 가난한 맹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함을 들었습니다. 자기들 바로 옆으로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큰 소리로 외쳐서 긍휼을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조그맣게 하면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예수님이 못 들으실 지도 모르니까 있는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 소리가 얼마나 컸든지 주변사람들이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두 맹인에게는 그들의 소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소리는 예수님의 말씀이지 사람들의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지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이들이 말합니다. “주여 우리의 눈을 뜨기를 원하나이다” 성경은 이들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뜨게 해달라는 두 맹인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눈에 맨 먼저 보인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먹기 위해 구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자신들의 생애를 내어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눈이 열려 가난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그들은 눈만 고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천국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소경들의 천국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천국복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천국복음도 역시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고침을 받아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21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침을 받아 예수님과 함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살게 되면 믿음의 승리자가 되고 그 이후에는 영원한 천국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으신 것처럼 이긴 승리자 역시도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눈먼 것과 비천한 것과 가난함을 알고 예수님께 구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천국의 복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자기의 영적인 가난을 알아채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아예 보이지 않던 눈이 어느 날 슬그머니 어둠을 뚫고 빛이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자기 눈 앞에 예수님이 천국복음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었던 이 사람 앞에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그러자 영적인 소경이었던 이 사람의 눈에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눈이 떠지고 눈 앞에 사람이 보입니다. 그 사람이 처음 보는 그 사람, 자기에게 “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그 분을 제일 먼저 보게 되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셔서 어두움에서 건져내시고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를 만나 눈이 떠진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계시로 영적인 눈이 열려 자기의 가난함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래서 영원히 부요케 하시는 분,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풍요를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들의 인생을 다 내어드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진정 그들에게 가치있는 것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서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날마다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왕으로 살았으면서도 가난한 마음을 언제나 가졌던 다윗은 하나님께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구했습니다. 그 이전 왕인 사울왕은 자기의 권세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데 쓰임 받았던 모세도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시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고 또 가나안 정복을 끝낸 후에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주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의 고백입니다.
그들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가난을 아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절대로 잃어서는 안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십니다. 그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영원한 고백이며 그들에게 주어진 복은 바로 자신 안에 임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평안한 삶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주어지는 천국 이것이 바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일 세상의 것을 구하시려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줄만한 사람에게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실 것은 세상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것입니다. 세상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천국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성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날마다 예수님에게서 영적인 것들을 공급받아 영적인 풍요로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가난함으로 알고 예수님에게 구한 자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 복을 사모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십시오. 그러면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심령의 가난함을 깨닫게 하시고, 그로 인해 긍휼을 구하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 자신과 함께 천국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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