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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5-3 요한복음에서 짐승표를 받은 무리들
    말씀 2020. 5. 17. 15:29

    요한복음에서 짐승표를 받은 무리들 6:27-66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채워져 있는 복음서이다. 예수님의 근본부터 기록한 책이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분이시며 모든 만물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되어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많은 기적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졌으며 수많은 사람이 경험한 표적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일 것이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 몸과 피를 내어주실 일에 대한 사전 예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이적을 통해서 가리키는 메시지는 예수님은 살아있는 떡이 다는 사실을 제시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이적을 행하신 주님의 의도를 잘 알지 못하는 무리들은 그저 육신의 떡을 주시는 그분을 보고 그 육신의 떡을 구하고자 계속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무리에게 자신은 하나님께서 보낸 자이므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였을 때 그들은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자기들에게 또 다른 표적 보여주기를 청한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군중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또 표적을 보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아마 이들이 요구하는 표적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던 표적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백성들을 향하여 주님은 백성들이 표적들을 헛되이 받았다고 하시며 그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인 표적은 사실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1) 오병이어의 표적

    예수님께서 활동의 중심지인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신 많은 사역을 하신 후 한번은 가버나움을 출발하시어서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그곳은 눅9:10에 따르면 베드레와 안드레 그리고 빌립의 고향인 벳새다이었다. 한편 큰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기 위해 육로를 이용해 예수님을 쫓아갔다. 한편 이 시기는 예수님의 죽음을 1년 남겨둔 유월절이였다(4).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시어 앉아계시니 큰 무리들이 예수님앞에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기를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무리들을 먹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것은 빌립을 시험코자 함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이에 대한 빌립의 대답은 각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씩 먹게 하더라도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무리의 수를 대충 세어보고 그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있어도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이백데나리온이란 장정이 이백일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액수로서 이렇게 많은 돈이 있어도 부족할 것이란 대답이었다. 이것은 믿음이 결여된 인간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빌립은 그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수없이 목격하고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으니 빌립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여기 한 소년의 한끼 식사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있는데 그것이 이 많은 무리들에게 얼마나 되겠느냐고하면서 예수님에게 갖다 드렸다. 이에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 이 무리들에게 나눠주시니 그들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떡들이 12바구니에 찼다라는 것입니다. 이날 오병이어의 표적때에 떡과 물고기를 먹은 이가 성인 남자들만 약 5천 명에 달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임을 계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표적을 경험한 군중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14에 보니 무리들은 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곧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백성들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단순히 자신들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선지자로 여기고 임금으로 삼을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무리들은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참된 메시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물질적인 메시야로 여겼으므로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왕으로 삼을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떡을 먹었던 무리들은 육신적인 눈으로만 예수님을 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셔도 육신적인 기준으로만 보이고 자신들이 아는 것만으로 예수님과 복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육신적인 눈만 있으면 예수님을 올바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곁을 떠나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산으로 향하셨습니다.

     

    (2) 물위를 걸으신 표적

    예수께서 자신을 강제로 왕 삼으려는 군중들을 떠나 산으로 올라 가셨을 때 제자들은 갈릴리 저편으로 건너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다. 날은 저물어 이미 어두웠고 갑자기 일어나는 큰 바람과 파도로 인해 배는 심하게 흔들리며 파손될 것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었던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위험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마침 저편에서 예수님이 심한 바람과 큰 파도를 뚫고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두려움에 빠졌다. 예수께서는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향해 내니 두려워말라 하시면서 위로하시고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목적지로 가셨다.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에 이어 행해진 표적이다. 예수께서 출렁거리는 갈릴리바다위를 걸으신 표적은 다른 표적들과는 달리 오직 제자들에게만 보여준 표적이었다. 제자들도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계시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제자들 역시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할 때 은근히 그렇게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제자들역시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원하는 것처럼 이 세상나라의 왕이 아니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우주적인 왕이시며 메시야이신 것이었다. 제자들은 파도와 자연을 통제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바라보게 되었다.

     

    2. 생명의 떡이신 메시야

    오병이어와 물 위로 걸어가신 표적이 행해진 다음날 무리들은 밤새 흩어졌다가 가버나움으로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발견했다. 무리들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고 제자들이 배를 타고 떠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리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언제 어떻게 여기 오셨나이까? 예수께서는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실체 즉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신 메시야로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1)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라는 의미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들이 배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잘못된 인식을 책망하신 후 그들로 하여금 표적들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권면하셨다. 권면의 말씀은 27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이 예수님의 권면의 말씀을 듣고 다시 질문합니다. 28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29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니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메시야 되신 예수를 믿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기 전 까지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율법을 지켜야만 영생을 얻는 다고 생각하였는데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온전히 할 수도 없거니와 별다른 의미가 없는 도덕 생활에 불과한 것이고 이제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일인 율법준수를 벗어나서 구원의 유일한 방도인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2) 진정한 표적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선언하셨을 때 군중들은 예수님께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야 주셨다. 오병이어의 표적이전에도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그럼에도 군중들은 예수를 믿기 위한 또 다른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한다. 앞서 경험한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그들이 안 것은 표적을 통해 드러나는 계시가 아니라 그들은 배를 채운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전히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30). 그러나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이 표적도 그들에게는 진정한 표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세의 만나와 같은 육체적 필요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실상 모세 시대의 만나는 참된 표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먹은 모든 이스라엘 조상들은 죽었기 때문이다(32,49). 진정한 표적은 곧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였던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자신을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세시대의 하늘에서 내린 만나가 참 떡이 아니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임을 주장하셨다.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이었다. 그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삶을 주시는 진정한 생명의 떡이심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40에 보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군중들과 예수님은 동일하게 생명의 떡을 이야기 하고 있었으나 생각하고 있는 것은 동상이몽과 같은 것이었다. 군중들이 생각하는 생명의 떡은 자신들의 육체적 필요와 배를 채우는 것이 생명의 떡이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떡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니 이것이 군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표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만 구속받을 수 있는 길이기에 영생의 떡인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대해 군중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족관계를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목수인 요셉의 아들에 불과했다. 이것은 아직도 군중들에게 있어서는 물질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아직도 영적인 메시야를 바라볼 믿음을 막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불신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군중들을 향해서 더욱 혼란스러운 선언을 하신다.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52 사람이 이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53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자신을 산 떡으로 주장하며 자신의 살과 피를 먹도록 촉구하는 예수님의 선언은 군중들을 심한 혼란에 빠지게 하였고 급기야 예수를 떠나도록 만들었다. 사실 물질적인 메시야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자신의 살과 피가 양식이라고 하는 말은 도저히 이해되지도 않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유일한 영생을 얻는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친히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망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속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시다. 실제로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류구원을 위해 성취하신 완전한 구속행위였다. 구속을 위해서는 이길 외에 다른 어떤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 대속적 죽음을 지셨다는 것을 믿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으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지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영생을 얻는 자는 마지막 날에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인데 그 길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의지하는 것 뿐이다. 생명의 떡에 대한 결론은 누구든지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다.

     

    4. 요한복음에서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자 여기에 대한 음모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야기인즉 빌 게이츠는 2015년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인류 최악의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에볼라보다 더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라고 말해 바이러스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 이상황에서 빌 게이츠는 5년 전 바이러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예견했던 사실이 재주목 받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15년 세계적인 지식 콘퍼런스인 테드(TED) 강연에서 만일 향후 몇십년 내 1000만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핵전쟁이 아니라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한 바 있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그간 에볼라 등의 퇴치를 위해 기부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 퇴치를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코로나 사태를 6-10주 안에 끝낼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철저한 검사셧다운조치를 내세웠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이 분야에 가장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사실도 소름 돋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가 철저한 검사셧다운조치를 통해 전 세계에 통제 사회(New Word Order)를 구축하는 역할에 대한민국이 앞서간다는 것 자체가 세로운 세계질서의 일환으로 루시퍼(일루미나티)에게 쓰임 받는 나라는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성경에는 역병이야 말로 세상 끝날에 나타나는 징조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또 종말의 징조중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짐승표의 환란인데 미국은 짐승의 표 환란을 위해서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각주에 FEMA(미연방재난관리청)포로수용소를 짓고 있다. 버지니아 주에 있는 비밀기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FEMA는 음모론이 아니고 이에 대한 많은 뉴스들이 있다. FEMA캠프가 각 지역마다 활발히 진행중인데 희한하게도 캠프를 두른 철조망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는 것은 그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시신을 보관할 플라스틱 관들을 찍어 내고 있는데 마치 유대인들 학살을 연상시키듯이 그러한 수용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FEMA캠프안에서 단두대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단두대가 있을까요? FEMA에서는 사람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연습까지 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왜 그런 훈련을 하고 있을까요?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거부하는 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무시무시한 장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성경에는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13:15)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자들은 다시말해 666을 받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인다고 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다가오는 짐승표의 환란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염려마십시오. 우리들은 짐승의 표 오기전에 다 들림받을 것이니까 우리와는 상관 없습니다. 환란전에 휴거될 것이기 때문에 순교는 우리에게는 해당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들림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아직 환란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렇게들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에 기만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때를 따라 나눠줄 양식을 잘 공급하는 교회가 깨어 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9.11 이후에 제정된 애국법은 영장없이 체포하고 재판없이 감금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 법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포괄하는 사실상 계엄령에 준비하는 그런 법이다.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단일종교를 반대하는 그런 잠재적인 테러리스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경제가 붕괴되거나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면 모든 언론과 자유가 박탈되고 그런 통제가 되는 빅부라더시대가 오는 무서운 법입니다. 여러분 사실 지금은 이미 빅브라더시대입니다. 영국의 조지오웰(1903-1950)1984이라는 소설에서 인용된 용어가 빅브라더입니다. 빅브라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거 빅브라더의 실체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소설속의 그것과 흡사한 감시체계가 현대에 이르러 실제 사회에서도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국방부의 규모와 맞먹는 국토안보부가 설치되고 이들의 감시행동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애국법이 통과된 것이다. 여러분 두산백과사전에조차 이 빅브라더에 대해 위에서 처럼 정의를 내리고 있어요. 어떤 단일 세력이 이미 세계를 통제하고 있지요. 얼마전 미 국가안보부가 야후계정을 가진 5억명을 감시한 사실이 밝여져서 굉장한 이슈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야후뿐만 아니라 구글의 지메일도 그런일로 들어난 적이 있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주 이태원클럽방문자들에 의해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클럽방문자들이 연락도 안되고 또 자진검사를 받지 않자 정부는 통신사로 하여금 그시간대에 이태원에서 통화한 내역명단을 질병관리본부에 넘기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사회가 어느덧 빅브라더의 체제에 근접해 있다는 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받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니 벌서부터 개인이 이 사회 어디에도 숨어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이런 새로운 세계질서는 이 시대의 마지막이 심히 가까워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지막 시대인 말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역사를 곧 끝나게 될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 여러분 요한복음에도 짐승의 표가 나오는 것을 아십니까?

     

    (1) 예수님을 떠나는 무리들

    요한복음61절부터 보겠습니다.

    (6:2) 2. 큰 무리가 그 분을 따르니 이는 그분께서 병든 자들에게 행하신 기적들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더라.

    여기 보니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아주 많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아주 큰 무리가 따르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들을 보니 많을 사람들이 왔다는 것입니다.

    14. 그 때에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기적을 보고 이르되 이분은 진실로 세상에 오실 그 대언자시로다 하더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데려다가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자 여기까지 보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성공적으로 일하시는 그런 장면이예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그런 장면입니다. 요즘말로 여론지지율 90%이상으로 민심이 전부 예수님께로 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에 5천명에게 빵과 고기로 배고픈 군중들을 먹여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요즘말로 경제성장을 이룩하신 것입니다. 이제 출사표만 던지면 아마 역대 선거에서 가장 압도적인 표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순간입니다. 이제 청와대까지 고속도로가 짝 뚫려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그 상황을 아시고 너무 슬퍼하시면서 혼자 산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 왕은 준비가 되었는데 백성들이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드리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예수님께서 만드실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이 만들고자 하는 로마로부터 독립된 나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은 준비가 되었는데 백성이 준비되지 못했어요. 은혜의 왕국은 준비되어있는데 그 속에 살 백성들이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아는 것 같지만 전부다 자기 기만속에 다 빠져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역사를 되풀이 하는가? 열심히 회당다니고 열심히 율법을 준수하면서 살았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오늘날 교회가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다면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좀 특별하게 일을 하면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침례요한이 왔을 때도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추궁했습니까? 이 사람들은 메시야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기다리던 그런 백성들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잘 몰랐기 때문에 기만당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 같은데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었고요 교회를 다니는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구경하는 큰 군중들처럼 그저 따르고 있다는 것 뿐이요.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니까 놀랍고 따라다니면서 떡도 얻어 먹으니까 재미있고 마치 동네 써커스 구경하듯 따라다니는 것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클럽에 안가도 현란한 조명에 맞춰서 춤추고 박수치고 목이 터지라 노래하고 각종 문화생활, 사회생활, 연예인도 부르고 가수도 불러서 교회안에서 잔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왕국의 진리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그들은 알 수 없어서 예수님을 임금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삼으려 할 때 예수님께서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의 성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 왕국을 세우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60. 그러므로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이것을 듣고 이르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으리요? 하매 무리들도 주님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요. 자 지금 우리들이 장관되는 구나 총리는 누가 될까 베드로 야고보 지금 여론 상승률을 보고 미래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예수님이 다 물리치시고 혼자서 산으로 들어가셨으니 아니 우리 선생님이 이렇게 정치적인 감각이 없어서 되겠느냐고 하면서 굴러들어온 복을 그냥 차버리다니 지금 제자들은 마음이 불편해요.

    61.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이 그것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스스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이 너희를 실족하게 하느냐?

    62. 그러면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65.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여러분 가만히 세상을 보고 교회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진리 때문에 삽니까? 진리 때문에 살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당시에 살았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때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였고 예수님이 주셨던 떡을 먹고도 그 떡이 소화도 되기 전에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제사장들이 두려워서 함께 욕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을 때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때문에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히 택함받은 사람들인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었는데 평생 메시야를 기다려왔던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던 것처럼 많은 기독교인들이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성령의 역사를 거절할 것입니다. 왜요?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 매일 매일 먹고 성령의 음성이 매일 심령속으로 들어와서 자기의 성품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말씀의 사람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는 가득하나 말씀은 많이 아는데 말씀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 성령의 음성에 매일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국가가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고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마지막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기 전에 정말 구원하실 백성들을 고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을 이렇게 내려다 보시면서 정말 이제 때가 다 되었구나 재림의 시간이 다가 왔는데 내 백성들이 정말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보시니까 아직 열매가 없어요 그래서 좀더 더 뜨거운 햇볕과 바람을 준비해서 열매가 익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하늘 성품으로 변화 될 수 있겠습니까? 위기와 고난과 흔들림을 통해 하늘에 데려갈 성품을 갖춰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1800년대 영적 대부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재림할 것이라는 기대와 간절함이 너무 가득차서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까지 정해놓고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말씀을 믿고 회개하고 개혁을 하였던 그 신실한 성도들이 당시 미국에서만 20만명의 사람들이 초대교회 이후 종교개혁이후 다시 찾아 보기 힘든 영적 대부흥이었어요. 그런데 대 실망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재림운동에 속한 수만명의 사람들가운데서 쭉정이를 다 날려버리시고 정말 알곡만 남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수만명이 정말 나가버렸어요 아니 대형교회 만들어서 좀 더 조직적으로 선교도 하고 교회도 확장하셨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초대교회때 하셨고요 종교개혁때 하셨고요. 1800년 때 재림운동 때 하셨고요. 지금도 주님께서 또 하실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66절 보면

    66.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여기 요한복음666절에 기독교인을 위한 짐승의 표가 보입니까? 주님과 아주 친밀한 제자들 중 많을 사람들이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다 구원의 길에서 멸망의 길로 갔다는 말이니 짐승표를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기독교인을 위한 짐승의 표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현재 열심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 받게 될 짐승의 표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고 진리를 위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진리를 위해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받게 될 짐승표가 요한복음 666. 666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말은 그들이 짐승표를 받았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얼마나 슬픈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다 물러가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어요. 왜요. 아니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하고 배도 불렀는데 왜 떠냤냐고요? 여러분이 보시다 시피 기적이 우리의 믿음을 든든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한번만 들어주시면 내가 하나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100번을 들어주셔도 안따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우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왜 떠났느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허영심이 많고 자존심이 세고 독선적이어서 주님과 동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쭉정이가 알곡과 분류되어서 다 나가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에도 우리가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진리가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리 생애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마음에 궤휼한 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에 악함과 분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런데도 기꺼이 회개하지 않아요. 오히려 죄가 드러나면 변명하고 화를 냅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야 이것까지 무너뜨릴 순 없어. 하나님께서 이정도는 허락해 주실 거야. 성령께서 죄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실 때 진리에 등을 돌리고 더이상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가요? 예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성령을 거역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거절할 수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이 말씀이 오늘도 짐승의 표를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구원해 줍니까? 교단이 구원해 줍니까? 영생의 말씀에 따라서 성령에 의해 성품이 준비되지 않으면 다 말씀에 흔들려 나간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철저히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간혹 시험이 오고 유혹에 넘어질 수 있지만 즉시 돌이켜야 하고 더 깊은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혹시 이기심 교만 자존 비방과 술수와 당짓는 일과 편가르기와 참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즉각적으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기만속에 빠져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과 진리로 매일 무장하고 진리의 반석위에 우리 자신을 두지 않게 되면 다 쭉정이 같이 흔들리는 상태라는 그말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나를 온전히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 떠나버렸어요. 예수님의 마음이 참 슬퍼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67. 예수님께서 열둘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68.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느 교회 어느 교단에 속해 있던지 영생의 말씀인 예수그리스도를 매일 먹고 마시는 경험을 개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대로 순종하면서 한발 한발 걷지 않는 사람은 이미 진리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로 즉 짐승표를 받은 상태입니다.

     

    5. 알곡신자만이 구원에 이른다

    예수께서 아무리 군중들에게 생명의 떡에 대해 설명할지라도 쇠귀에 경읽기였다. 군중들은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는 생명의 떡에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살과 피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선언한 것과 같았습니다.

    (고전1:22-24)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람들이란 육적인 것만을 생각한 나머지 살리는 영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대한 죽음을 오해하여 결국 대다수의 제자들은 예수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예수께서 누리던 인기는 급속하게 하락하게 되고 대신 유대인들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비난과 핍박은 더욱 노골적으로 되어가고 예수님의 12제자중 한사람인 가롯유다는 예수를 배반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팔아 넘기게 된다(70-71).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이 생명의 떡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났지만 12제자는 달랐다. 예수께서 떠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67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고백이 필요하다.

    폭풍우속에서도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연을 통치하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오병이어의 생명에 관한 말씀을 듣는 중에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영적인 메시야를 바라보게 되어서 예수님에게만 영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대다수의 제자들이 예수 곁을 떠났을 지라도 예수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깨달은 극소수의 제자들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알곡이라는 것입니다. 알곡같은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보다 더 좋은 약속이 어디 있겠는가!

    요한이 말하는 마지막 날(40,44,54)3회나 기록되어 있는데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고자 하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영생의 복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한가지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영생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모든 것을 알 때 그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만 해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12제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배부른 사실에만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만나고 나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시각은 바뀌었습니다(15-21) 그래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떠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있기에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68). 예수를 직접 체험하여 깨달은 제자들이 예수를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온전히 이해하고 영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러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을 잘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요 5:46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진리에서 멀어진채로 열심히 믿은 것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 앞에 얼마나 자주 무릎을 꿇는가? 그 말씀을 먹고 사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지식이 아니고 그 말씀이 자기의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세상에 대한 소망이 없고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하늘이 너무 그립고 예수님이 너무 좋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기 위해 정말 말씀을 사모하는 그런 소원이 우리 마음가운데 넘치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사람들이 인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언제 역사하십니까? 진심으로 회개할 때 역사하지 않습니까? 마음속의 모든 죄악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하나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온 교회는 서로의 차이를 다 없애는 그런 교리로 연합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너무 편만해서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깨어있어야지 잠들어 있으면 안됩니다. 지금은 성경에 마지막 때 예언된 것이 모두 성취되어지는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가 염려하지 말아라 잠에서 깨어나지 말아라 그렇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통과해야 할 환란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견디고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만이 생명책에서 지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기는 자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배신할 것이며 떨어져나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나눈 누구인가 염려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비록 어제까지 쭉정이라도 오늘 알곡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가만이 앉아 있는데 알곡이 됩니까? 마지막에 핍박이 몰려올 때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올바로 나타나기 위한 알곡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위기와 고난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흔들림이 있습니까? 우리 마음가운데 영적인 흔들림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깊이 사로잡혀 진리의 토대위에 굳건히 서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흔들려 나갈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기뻐하다가 흔들려 나갈 것입니다. 그 진리가 내 속에서 역사하는 그 개인적인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죽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지금 은혜의 시간에 주님께 부르짖기를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너무나 악한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보게 될 그 때 평안이 있고 그 때 안식이 있습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죽어야만 할 죄인이라는 것이 내 영혼에서 터져 나올 때 그게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면 남들이 내게 잘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나지 않고 시비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버려요. 내가 죄인인데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낫게 보이는거요. 내가 주님앞에 너무나 악한 죄인이기 때문에 여러분 어떤 문제에 대해 마음에 고통이 있습니까? 억울하고 분하고 괘씸하고 또 어떤 의로운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것을 입버릇처럼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늘상 그런말 했기 때문에 실감이 안날지 모르나 그러나 그런거 말고 정말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이라는 이 가슴 절절한 고백과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정말 내 인식속에서 살아 요동쳐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위기를 보내 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리스도를 더 깊이 보라고 고난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 때 비난과 원망을 남들에게서 찾지 말고 그 때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 있습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여서 그날의 기쁨에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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