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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5 세월을 되찾으라
    말씀 2019. 12. 29. 13:47

    세월을 되찾으라 5:15-21

    벌써 마지막 주일을 앞두고 아 한해가 다갔구나 하는 마음이 떠오르면서 웬지 섭한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이 나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월 가는데 아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왜냐하면 한번 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더욱 더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하면서 어느새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한해를 보낸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때에 이런 아쉬워하는 마음을 달래보고자 잊지 않는 것이 바로 송년모임이다. 연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회식이 바로 송년회 또는 망년회이란 회식이지요. 이 망년회란 세월을 잊고, 나이를 잊는다는 의미로 아예 금년에 좋지 않았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자는 것인데 이말의 유래는 2300년전 춘추전국시대 장자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던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1400여 년전 일본에 건너 가 망년회 풍습이 생겼으며 이 망년 풍습은 일제시대를 거쳐 이 땅에 들어와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연말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특히 망년회속에는 한해를 보내면서 마음속에 힘들었던 것들을 모두 털어버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송년회 문화는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있는데 해마다 1228일이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연례송년이벤트로 제대로 털어버리는 날(Good Riddance Day)’ 굿 리던스 데이가 열립니다. 미국의 굿리던스데이는 버리고 싶은 것을 종이에 적어서 대기하고 있는 종이분쇄기트럭에다 집어넣으면 기계가 그 종이들을 썰어 박살내어주는 행사이다. 무슨 종이를 박살낼까 하면 물론 한해의 나쁜 기억들이나 잊고 싶은 기억들인데 예를 들면 군인 남편의 분쟁지역의 출정명령서, 바람난 남편의 사진, 헤어진 남자친구와 함께 본 연극 팸플릿, 휴지조각이 된 주식 등을 종이분쇄트럭에 버리면 그 분쇄기가 썰어버리는 이벤트인데 정말 잊어야 할 것은 잊고서 한 해를 맞이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서 한다면 어떤 종이들이 분쇄트럭에 집어던져질까? 아마도 더 심해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양극화로 인한 이념갈등, 빈부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정치권의 갈등처럼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적은 종이들이 제일 많이 버려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2019년도처럼 전국민이 이념에 의한 정치공방에 참여한 적이 처음일 것이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조국해임과 문재인 하야운동으로 100만명 이상이 모였던 집회가 우리 사회에 처음있는 일이라서 이념과 정치와 아파트로 인한 양극화같은 불만의 글들을 써서 종이분쇄기에 넣는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도 뉴욕못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 할 것 같으므로 타임스퀘어 못지않게 성황을 이룰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연말을 맞으면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아본다는 말이다. 금년 한해에도 자연재해와 사건사고는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다 헤아릴 수 없는데 무엇보다도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잠시 보내는 한해를 생각하면 누구나 나름대로 희로애락의 삶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하지만 세월이 가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대중가요에도 세월을 노래할 때 고장난 벽시계는 멈춰있는데 어찌 저 세월은 고장도 나지 않는냐고 세월의 아쉬움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한해의 마지막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그 흐름은 사람에 의해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의식하든 않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밤이고 낮이고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누구도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세월을 강물이라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강둑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지만 만약 나를 향해 밀려오는 강물을 본다면 어떻게 여유 있게 가만히 앉아서 그 강물을 구경만 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이치입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간은 기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기회가 바로 2020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기회를 잡을 것인지, 그냥 지나가도록 놔둘 것인지는 오직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시간에 대해 엄밀히 말한다면 지나간 시간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돌아오는 건 우리가 시간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이하는 이 시간, 지금의 내 모습은 지나간 시간의 결과입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라서 마음이 아픈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2020년 이라는 선물을 다시한번 주십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입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해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515-16절 말씀입니다.

    (5:15-16) 15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걸어 16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개역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번역되었는데 KJV에서는 시간을 되찾으라고 하였는데 의미는 둘 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영어로 Seize the day! 그냥 강물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시간을 붙잡으라고 하는 말이지요. 오늘은 1365일 중에 단지 하루에 불과하니까 그냥 의미 없이 보내도 되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는 나에게 오직 한 번 밖에 없는 아주 소중한 날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가 바로 그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과거로 흘러가는 날이 아니라 미래에서 지금의 나에게 다가오는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사도 바울을 통해 세월을 되찾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종말적인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는 교회로부터 배도가 일어나고 사회의 가치관들이 혼동되므로 죄를 지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말 악하다는 말밖에 달리 다른 말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이며 주님이 다시 오실 날도 점점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풍조를 따라가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며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인생에 대하여 모세가 쓴 시 한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90:12)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우리가 지혜에 이르도록 우리의 마음을 쓰게 하소서.

    내가 살아가야 할 날을 센다는 것은 인생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정말 짧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짧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된 시간이며 그 시간은 refill되지도 않고 한번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았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 살 더 먹는다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서글퍼 합니다. 왜 나이먹는 것이 서글픈가를 어느 음악회를 보고 온 사람의 후기를 읽어보면 금방 알 것 같습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아름답던 몸매를 지녔던 흑인가수 휘트니휴스턴이 불러서 히트한 I will always love you를 듣고 쓴 후기인데 무대가 짜~안 열리면서 그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모습은 그때 그 사람인데 이젠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한동안 마약 중독에 이어 이혼의 긴 슬럼프를 겪고 돌아온 그녀를 팬들은 따뜻이 맞이하였는데 이미 사십대 후반의 나이여서 몸매도 옛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옷으로 어떻게 가릴 수는 있다지만 노래는 더 이상 전성기 때의 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때 거침없이 올라가던 그 목소리 대신 이젠 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되돌아오고 공연도중 몇차례 숨이 가빠오면 잠시 노래 중단하고 고갤 푹 숙이고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듯 안타까움에 잠시 눈물도 흘렸다는 느낌입니다. 한때는 온 세계를 쥐락펴락 했던 그녀의 자존심도 이제는 가버렸고 한때는 그녀의 아름다움도 인기도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되돌아 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들이 그 휘트니휴스턴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거울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고 흰머리카락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가는 것을 아쉬워 하지만 어쩔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는데 그 날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찌 인생을 짤막하게 그리 잘 표현했는지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오늘이 한해 마지막 주일예배말씀을 에베소서 516절 세월을 되찾으라는 제목으로 운을 띄운 것입니다. 우선 세월이란 헬라어로 카이로스(kailos) 즉 정해진 때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인간에게 주신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간을 저축할 수도 없으며 시편에서 말했듯이 날아간다고 했듯이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기회를 위해 내 몸 값을 치르고 시간을 되찾았으니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은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 속에 우리의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할 때 마다 아일런드 작가 버나드쇼가 자기 묘비에 남긴 글이 기억납니다. ‘우물 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도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싫어 꾸물거리다 뒤늦게 후회한 것 같습니다.

    삶이 유한한 인간에게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줄 알면서도 우물쭈물하다 보면 어느새 다 써버린다는 말입니다. 다 써렸다는 것은 인생을 헛된 곳에 낭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을 되찾으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라는 뜻인데 어떻게 사용해야 세월을 되찾는 것인가? 베드로전서 58절은 깨어 있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즉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빼앗으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귀는 인생들에게서 시간을 빼앗기 위해 술에 취하게 하고 쾌락에 빠지게 하고 재물과 정욕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그런 곳에 빠지면 시간을 다 잃어버리기까지는 마귀가 그렇게 빼앗아 버렸다는 것을 모르고서 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세월이 좀먹느냐고 속삭이는데 이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월을 되찾으라는 말은 이처럼 마귀의 속삭임속에 쾌락이나 정욕이나 재물이나 이세상에 빼앗겨진 시간을 되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을 마감한 후에야 아 마귀에게 속아서 살았구나를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세월입니다.

     

    1. 왜 세월을 되찾아야 하는가?

    (1) 세월이 빨리 가기 때문입니다.

    실러에 의하면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지 않고 서 있다는 말처럼 정말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시편 9010절에도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 인생이 물흐르듯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간다고 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세월은 가속도가 붙을 정도로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세월의 빠르기를 세대별로 이렇게 말을 했는데 정말 공감이 갑니다. 20대에는 세월이 20km/h속도로 달리고 있고 70-80대는 70-80km/h속도로 세월이 달린다고 하는데 정말 일리가 있습니다. 세월은 나이만큼 빨리 달린다더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50km로 달렸는데, 이제는 70km로 달리고 앞으로 몇 년 후면 지나면 80km/h로 더 빨리 갈 것 같습니다. 한 주가 지나가는 것이 마치 기차를 타면 나무들이 후딱 후딱 지나가듯이 지나갑니다.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인생의 후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참 찬송가 528장이 어찌 그리 은혜스러운지요.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세월은 참으로 화살같이 너무 빨리 흘러가기 때문에 이런 찬송만 불러도 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2) 세월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물은 발전기를 통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고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감아서 되돌려 볼 수 있고 추억의 앨범도 다시 들쳐 볼 수 있고 잊어버린 재산은 열심히 노력하면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세월은 그 누구도 다시 되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오늘 이 시간, 2019 12 29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합니다. 이말은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시간을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있는 돈을 몽땅 투자해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정한 세월 이외에는 단 1초도 살 수 없고 더 늘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다는 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카이로스입니다. 만일 인생이 이생, 삼생이라고 한다면 한번은 warming up을 하면서 연습으로 살아보면서 시행착오도 해보고 두 번째 삶은 정말 잘 살아보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인생은 딱 한번 뿐인 일생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 하였듯이 땅에서의 삶은 딱 한번뿐인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세월은 너무 악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에베소 교회가 세속화될 것임을 걱정하여 이 편지를 보냈는데 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때가 악하다고 했을까? 에베소는 로마 제국에 속한 터키 서부에 있던 항구도시로서 동서양을 잇는 중요 거점이었습니다. 항구도시는 배를 타고 온갖 퇴폐문화가 실려 오는 곳입니다. 온갖 이방신들의 문화가 잡다하게 퍼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복음이 이곳으로 퍼지자 은으로 만든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상의 매출이 줄었으므로 소요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온갖 성적인 타락과 우상 숭배가 극심하였던 곳입니다. 당시 사람들중 한 부류들은 어떻게 하면 쾌락을 좀 더 누리고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삶의 시간들을 온통 쾌락지향적인 삶으로 채우고 있었고 다른 한 부류는 이방신전에서 은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절을 하며 한쪽에서는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물질만능주의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의 문화가 쾌락적으로 세속주의로 흐르고 있어 이런 우상문화 속에서 쾌락을 맘껏 누리면서 사는 것이 당시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오늘의 우리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는 지구가 창조된 이래 육신의 쾌락을 이처럼 자극하는 시대가 없으며 놀랄만한 사건사고가 날마다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크로 작은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악한 시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절에서 미련하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라고 권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자요, 미련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냥 되는데로 쾌락과 방종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바울에게는 바로 이런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너무도 소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숭배적이고 성적으로 퇴폐한 헬라 문화의 물결에서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죄악의 악한 문화가 에베소 교인들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선용하면서 깨끗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에베소교회에 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2. 시간의 중요성

    (1) 세월의 빠르기

    세월을 되찾으라는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세월이 빨리가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세월의 빠르기를 세대별로 이렇게 말을 하는데 정말 공감이 갑니다. 50대에는 세월이 50km/h속도로 달리고 있고 70-80대는 70-80km/h속도로 세월이 달린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세월은 나이만큼 상대적으로 빨리 달린다더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50km로 달렸는데, 이제는 70km로 달리고 앞으로 몇 년 후면 지나면 80km/h로 더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빠른 세월의 속도가 과연 얼마나 빠른지 속도를 계산했습니다. 제가 지구과학을 전공했으므로 세월의 빠르기를 계산해보니 금방 수식으로 (지구둘레=37,680km 나누기 24시간 이것을 3600초로 나누면 속도는 430m/s, 1570km/h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느냐 하면? 지구가 자전 한 바퀴돌면, 우리 인생의 하루가 가는 것이기에 그러니까 지구자전속도가 1초에 430m가 바로 우리 인생의 세월의 속도입니다. 이 속도를 더욱 실감있게 말해본다면 자동차는 1초에 30m 달리고 ktx1초에 80m 달리며 지구는 1430m 달려간다고 보면 이해가 되나요? 우리의 세월의 속도는 쌩쌩달리는 자동차의 14, Ktx보다 5배가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시간은 이처럼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니 정말로 빠른 세월을 어떻게 쓰느냐가 귀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렇게 빨리가는 세월은 리필이 안되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금 같이 정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2) 돈으로 환산된 세월

    이번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시간의 소중함이 정말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갑자기 86400원이 어디서 나왔나고요? 하루는 24시간이고 초로 환산하면 86400초인데 초를 원으로 바꾸면 86400원이 나오는 것 알겠지요. 그러나 매일아침 입금된 그 계좌는 매일 저녁 당신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저절로 소멸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날 모두 사용하고 싶겠지요.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아침 86,400원을 우리는 공짜로 받고, 매일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 버릴 뿐이죠. 나머지 금액의 저축은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요. 그래도 다음날 어김없이 매일 아침 은행은 당신에게 새로운 돈을 입금시켜주죠. 그날 남은 돈은 다음날이 오기 전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그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당신이 보게 되는 거죠. 이처럼 인생이란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뽑아 쓰십시오!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합니다. 정말 시간의 소중함을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이시간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똑같은 시간도 사람에 따라 그 소중함이 정말 다르게 느낄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일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재수생에게 물어보세요.

    한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세요.

    한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지 편집장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일품을 팔아 다섯자녀를 먹여야 하는 일용 노동자에게 물어보라오.

    한 시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물어보던지 또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할 연인들에게 물어보세요.

    일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면 ktx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고

    일초가 얼마나 소중한가의 가치는 아찔한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1초보다 훨씬 작은 천분의 일초의 소중함을 누구에게 물어보냐고요?

    올림픽에서 100m 결승에서 아깝게 은메달을 탄 선수에게 물어보던지 아니면 100m 스피드스케이트에서 역시 은메달 딴 선수에게 물어보세요.

    여하튼 어느 시간하나 버릴 만한 시간이란 없다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바울사도는 에베소서 51절에 성도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이어서 성도 각자의 사생활과 관련한 교훈으로, 죄많은 세상에서 세월을 되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이며.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므로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도 부릅니다.

     

    3. 시간을 되찾는 방법

    잃어버린 시간이든 흘러간 시간이든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시간을 되찾으라는 말은 그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위해 우리들이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시간을 되찾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믿고 영생을 얻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섬기는 자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지만 시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데 이 선물로 무엇을 사야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기에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고후6:2)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정말 가장 소중한 시간에 반드시 취해야 할 진리입니다. 인생중 가장 중요한 일은 영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당신의 생애에서 이런 기회가 오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성공여부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을 모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혜있는 자는 시간을 아껴서 잃어버린 시간이나 죄짓는 일에 소모하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합니다. 꽃이 피고 지듯 인생도 피고 지는 것입니다. 달이차면 기울듯이 인생도 차면 기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모처럼 되지 않을 듯 하지만 우리도 부모님 처럼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누구도 이 세월을 피하여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이 세상에서 성공여부에 달렸다는 말은 세월을 붙잡아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가치있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살 수도 없으며 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늘릴 수도 없지만 오직 시간을 아끼고 잘 관리하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주신 선물이 바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똑같이 주신 시간이라는 선물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그의 고등학교 친구 가쿠카와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20091월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때, 차가운 지하철역 한 구석에서 신문을 이불 삼아 자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바마 얼굴이 대문짝 만하게 나와 있는 신문을 가슴을 안고 자다가 그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후회의 눈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오바마의 이름을 외치며 좋아하던 그 밤, 가슴을 치며 울던 사람은 오바마의 고등학교 단짝 친구 일본계 혼혈아 가쿠카와였습니다. 1979년 어느 날 저녁, 하와이 호놀룰루 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장 옆에 두 명의 고등학생이 앉아 있었습니다. 두 학생 다 혼혈아였습니다. 한 학생은 흑인 혼혈아인 오바마였고, 다른 학생은 일본계 혼혈아인 가쿠카와였습니다. 둘 다 희망이 없이 앉아 자신들을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붓고 술을 마셔 댔습니다. 그 둘은 마약도 입에 댔습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온 노숙자였습니다. 오바마의 친구 가쿠카와는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여자를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간한 죄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두 사람의 인생이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 다 멸시와 조롱 받던 혼혈아였지만 오바마는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로 사용했고, 가쿠가와는 불평과 원망만 하면서 주어진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쿠가와는 시간에 대해 소극적이었습니다. 가쿠가와에게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시간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오바마는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바마는 그 시간을 대통령이 되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나에게 주어진 기회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낼지는 우리가 선택할 몫입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있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 살다보니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것은 마치 여름에는 상록수가 다른 나무들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으나 겨울이 오면 상록수는 늘 푸르게 남아 있지마는 다른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그 가지가 벌거숭이가 되듯이 예수님 믿고 영원한 생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정말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사람들과 그리스도인과 구별이 안되지만 그날에는 분명히 세월을 되찾은 자들에게 기쁜 시간이 올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시간의 중요성을 말한 것인데 그렇게 중요한 시간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시간을 관리하여야 하는가? 다음의 이야기를 계속하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주일성수입니다.

    옛날에 두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며 나무를 베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1시간을 일하고 10분간 쉬고, 1시간 일하고 10분간 쉬고, 이렇게 계속해서 일하면서 쉬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 마치고 보니,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도 1시간 일하고 10분 쉬었던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하루 종일 일을 한 나무꾼이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나보다 휠씬 더 많이 쉬면서, 어떻게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베었는가?’ 그러자 1시간 일하고 10분 쉬면서 일한 그 나무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가 계속해서 일만할 때, 10분씩 쉬면서 무뎌진 도끼날을 갈았다네그렇습니다. 무조건 일만 열심히 한다고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쉬어가면서 뭔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일주일 내내 일한다고 주일도 잊어가면서 일한들 부자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주님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때가 악함으로 세월을 되찾으라고 말씀하는데 주어진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시간을 잘 조정하여 어느 것에 사용하여야 할까 입니다. 주일 성수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이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한 주간의 첫날을 주일성수 하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곳에 시간을 사용하는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삶은 바로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이다. 나무꾼은 1시간 일하고 10분 쉬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산 인생들이 마지막 결승점에서 천국문으로 골인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루의 첫시간도 예배로 시작하자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시간을 잘 사용하려면 잠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먼저 성경말씀 한 절이라도 읽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인생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일하다 잠시 쉴 때에 염려 걱정하지 말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첫 단추부터 잘 꿰면 마무리가 잘되듯이 하루의 첫 시간부터 잘 시작하면 그가 하는 일들이 때가 되면 3060100배의 능률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으로 너희를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3) 오늘이 나에겐 최고의 날이다.

    지혜로운 나뭇꾼처럼 여러분들도 10분의 시간을 건강을 위해 투자하여야 합니다. 인생이란 건강을 읽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 진리입니다. 우리 각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만약에 병들어, 병원에 입원해 보세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그 값진 시간을 허비하는 것 아닙니까? 일만 죽을둥, 살둥 하는 것보다 시간을 잘 조정해서 건강을 위해서도 자신의 시간을 귀하게 쓰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자가 그 받은 것을 잘 장사하여 많은 이를 남기는 이도 있고 묻어 놓은 이들도 있듯이 시간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한 시간, 한번 뿐인 인생을 잘 관리하여 나의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소중하게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현재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왜 내일과 모레의 일에 대하여 태산과 같은 근심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왜 서로 말다툼하며 화를 내고 있습니까? 왜 무의미한 분주함 속에서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결코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는 길은 free way가 아닙니다. 계속 그대가 가야만 할 때 그 빠른 속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모든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날이란 오늘입니다. 그대가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 이외의 다른 날이란 없습니다. 내일의 걱정과 근심으로 그대의 영혼을 어둡게 색칠하지 마십시오. 어제의 온갖 고난으로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어제 있었던 좋은 일에 대하여 그대가 기분좋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다가올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일에 대해서도 꿈꾸어 보십시오. 그러나 어제나 내일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잃지 마십시오. 어제는 사라지고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유일한 날입니다. 오늘을 그대의 제일 좋은 날로 만드십시오.

     

    (4) 주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사랑하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간곡한 어조로 17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권합니다.

    악한 때를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아무렇게나 적당히 살고 있을 때가 아니라 더욱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벌써 1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끼다라는 동사의 원래의 뜻은 구속하다/ 속량하여 다시 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노예를 사서 해방시키듯이 돈을 주고 시간을 사서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단도직입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구속해내라는 뜻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악한 방법으로 사는 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드러난 뜻대로 살지 않는 한,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결국 시간을 구속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을 무엇으로부터 구속해내야 합니까?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속해내야 합니다. 그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성도는 악한 일에 사용하던 시간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돈을 들여서라서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악한 세상으로부터 시간을 구속해내어서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고, 둘째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자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시간을 구속해내는 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좀 더 범위를 좁혀서 묻는다면, 여러분의 세월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자가 세월을 되찾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시간은 허송세월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시간을 값지게 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고장 났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A/S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잘못되고, 고집스럽고, 죄악된 것을 고쳐 주시어서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주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의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언제라도 찾아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각자가 세월을 사용한 것에 대한 계산하시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실만한 무엇인가를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5)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18절에서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취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술 취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술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 의해 조종 받아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불행을 줍니다. 술이 주는 유익이 조금 있다면 술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피해는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기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알콜을 말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호인모임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친구가 많아서 어떤 사람은 이런저런 것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이런 것을 가리켜 술 취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은 비슷합니다. 술 취하게 되면 술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듯이 성령 충만도 성령님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마음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술 먹는다고 지옥가는 것은 아니지만 술이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술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술취함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는데 잠23:31에는 술은 쳐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18 성령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의지로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이신데 그분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 영혼이 가장 안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입어야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충만함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에 이어서 이는 방탕한 것이니했는데 여기서 방탕함이란 세월을 아끼지 않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세상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분별하고도 그 뜻대로 살지 못하면 나중에 주님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혜로운 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12:45) 지혜있는 자는 주인이 오셨을 때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깨어 있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주님의 은혜로 직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 뜻을 분별하려고 하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19-21절을 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먼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합니다. 악한 때에 이런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성도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서로 화답하는 것은 마음을 같이하여 주님을 찬송하는 것도 신앙의 용기를 북돋기에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찬송하라고 권합니다. 20절에서는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의 인도하시는 방법을 이해한다면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존귀하신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악한 때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충만함을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정말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누리는 것들도 다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는 한 우리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내가 영생을 소유한 존재가 되었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감사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범사에 감사하고 건강해도 감사하고, 건강하지 못해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세월을 되찾는 삶입니다.

    끝으로 2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고 권합니다. 때가 악할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다투지 말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서로 하나 되기를 원하신 그분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한 말을 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과 마귀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찢어놓고 하나님의 백성을 갈라놓으려고 온갖 궤계를 동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바른 믿음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진정으로 한 몸 이루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90:12절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 깨닫게 해 주소서 하는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이라 했습니다. 하루 살면 남은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는 것입니다. 한해를 더 살면 한해가 더 짧아지게 됩니다. 나의 남은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때는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원래 우리나라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는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가 되면서 서방세계로부터 폭력과 쾌락 황금만능 자본주의 등의 물결이 넘치도록 밀려와서 사람들의 심성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은 그 내면을 뜯어보자면 당시 에베소보다도 훨씬 더 악한 문화로 덧칠해져 있습니다. 영화와 TV연속극은 성적인 타락과 불륜과 폭력으로 색칠해져 있으며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도 영화와 TV드라마를 능가하여 폭력과 섹스와 부도덕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의 우상에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려하지 않고 냉대합니다. 우리는 오늘 21세기를 살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다시금 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분명 오늘 바울 사도가 이곳에 온다 하더라도 세월을 되찾으라 때가 악하니라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주님께 바쳐지는 시간은 우리는 잊어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11초도 다 아시고 하늘의 계수기에 담아 놓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원리를 생각하면 우리가 재물을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고가 비우지지 않도록 재물 복을 주시고 우리의 몸을 바치면 우리의 생명을 축복하여 주시고 시간을 바치면 우리의 삶을 영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날 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들이 하나님앞에 선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진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너를 많을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너는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25:21)‘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이 땅에서 주님을 잘 섬김으로써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잘했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시간보다 더 중요한 선물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천사는 우리가 사용한 시간에 대한 명세서를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시간 명세서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선물로 준 시간을 너는 어떻게 사용하였느냐 물으실 때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용한 시간들에 대해서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다시 비추이는 대형 멀티비젼이 있고 천사가 리모콘으로 누르는 대형 챠트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걸 보게 하시면서 물어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천년만년일 것같이 살지만 실은 우리의 생은 눈깜작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여러분은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할 수만 있으면 가치있고 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간들로 채워 넣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또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사는 생활들은 빠짐없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시간의 계수기에 다 보관해 놓으실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인간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된다는 사실은 공리 중에 공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중 가장 먼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주신 기회입니다. 사람마다 허락된 시간은 다 다를지라도 그 시간안에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죽음을 맞아 하나님을 심판자로 만나지 않고 우리의 구속자로 만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이 다가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자는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세월을 되찾으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돈만큼 소중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은 시간은 아주 많은데 돈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을 돈으로 좀 바꾸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을 사용할 시간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인데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공짜로 받는다고 착각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생기고, 또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생기니까 시간은 공짜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시간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되신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의 종되었던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좋은 기회들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야 말로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아온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우리들에게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행복한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2019년의 마지막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새해에도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영원하시기를 기원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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