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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 여호와 이레
    말씀 2019. 1. 13. 13:01

    여호와 이레의 축복 22 :1- 19

    오늘이나 1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떠오르는 해는 언제나 변함없이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019년을 새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2018년은 다 지나갔고 2019년이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였듯이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워져야 진짜로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2019년이 1년 내내 새해를 맞은 새날이 될 수 있을려면 날마다 새해의 소망과 벅찬 감격이 가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이란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1일 새해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인 11일 아침에 처음 마음 먹었던 그 마음은 새 마음입니다.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그 마음은 언제나 새 마음이기에 날마다 새롭다는 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새롭게 하신 2019년에도 우리의 신앙도 나날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세계가 올해에는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이레라는 말씀으로 창221-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이 일들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들 중의 하나에서 그를 번제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을 때 하나님께서 대단히 어려운 시험문제를 주셨습니다. 재산을 내 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또다시 먼 곳으로 떠나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어떤 시험이었을까요?

    장대한 아브라함 인생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브라함이 받은 세가지 시험중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번제헌물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들 중 첫째는 창12장의 어느 날 갑자기 (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시험입니다. 조상대대로 살아왔으며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고향(갈대아우르, 메소포타미아)을 무조건 떠나 너로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을 믿느냐?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둘째는 창15:4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5) 그를 이끌고 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같으리라에서 자녀를 생산할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네게 후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느냐? 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것 하나 예사 시험이 아니었으나 아브라함은 단순-우직하게 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셋째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앞에 두 시험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시험이었습니다. 앞에 두 시험도 웬 만한 믿음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었으나 셋째 시험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평면적 차원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삼차원적 시험이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시험의 목적이 이삭이었는데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첫째, 둘째 시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브라함은 그 절대 무의미한 믿음까지 믿음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축복은 바로 오늘 날 성도들이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다면 이 땅을 떠난 후 새하늘과 새땅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든지 천국의 보좌가 있는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고자 신앙생활을 합니다.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이시간 아브라함의 시험합격을 듣고 나면 나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고 각오하는 성도만이 새하늘과 새땅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이시간 되어지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셋째 시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하나님이 그냥 이삭이라고 하시지 않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그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 이었으므로 이삭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게는 소중한 아들 정도가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브라함이 자기 생명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번제가 어떤 제사인지 아십니까?

    레위기 1:5-9 숫송아지를 번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 그는 주 앞에서 그 수소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번제 헌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자를 것이요(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은 제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8)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조각들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가지런히 놓으려니와 (9) 그가 그것의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전부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희생물로 곧 불로 태워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헌물로 삼을지니라. 번제를 드릴려면 일단 번제물을 잡아 죽인 다음 번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또 번제물의 가죽은 벗기고, 살은 토막 토막 각을 뜬 다음에는 내장도 꺼내고 다리도 잘라서 씻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남김없이 불로 태우는 것이 번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삭을 이렇게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죽을 병에 걸리면 대신 죽어도 좋다고 기도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 시험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답이 16절에 나옵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곧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즉 아브라함은 이삭을 온전히 번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그가 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워지는지 이시간 아브라함의 믿음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이 시험의 정도가 얼마나 큰 지 우리들이 느끼는 것 하고 시험을 치른 아브라함이 느끼는 것은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은 분명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극단적인 명령을 하셨는지 아브라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이삭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유일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할 수도 없고, 순종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이성과 판단을 믿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생각하니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시므로 내가 이 아들을 번제로 바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이 아들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부활의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답인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한 믿음의 행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던 아브라함.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여 주신 곳으로 갔더라 (4) 그 때에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그 다음날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미적거리며 고민하다가 하루 이틀 보내다 보면 마음 약해져서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번제에 쓸 나무를 싣고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일러주신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사라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이삭이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하고 올것이라 하면서 모리아 산까지 갔는데 집에서 모리아산 까지는 70km 거리였으므로 3일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험은 한 순간의 결단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3일간 모든 의지와 마음을 드리는 시험입니다. 그냥 집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다면 갈등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로 드릴 준비를 하고 70km거리를 걸어서 3일 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겠는가요?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이제 그 산이 멀리 보입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행기 타고 오갈 때 가장 반가운 소식은 목적지를 30분 남겨놓고 나오는 기내방송입니다. 14시간 이상을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이제 30분만 지나면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듣는 것 만큼 반가운 것은 없습니다.

    피곤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도 설레이고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마음은 목적지가 가까울수록 더 괴롭고 더 슬프고 더 아팠을 겁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어갈 때,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 3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죽음의 3일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이삭의 번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아, 네가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나는 안다. 나도 내 아들 예수를 내어줄 때 나도 그랬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도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시면서 '저 곳이 내 아들 예수가 죽을 곳이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마음 알겠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삭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신앙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드디어 모리아 산밑에 도착을 했습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하고는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경배한 후 자기 혼자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고 나와 아이는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고 합니다. 나와 아이 즉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말은 반드시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산에 올라가는데 번제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를 태우는 제사라고 했는데 이삭과 함께 내려올테니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뻔히 듣고 있는데 어떻게 사실대로 말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이삭 때문에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히브리서 11:17-19 말씀입니다.

    (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으니 곧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기의 독생자를 바쳤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에 보증을 주는 말씀이 이사야에 있습니다.

    44:2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종의 말을 확증하며 자기 사자들의 계획을 이행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종들에게 나와 아이가 다시 오리라고 말한 것에 대해 확증을 하여 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삭이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생식 능력이 전혀 불가능한 100세 된 아브라함과 90세가 되어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된 아내 사라가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도 그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었던 믿음의 사람이 아브라함 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설령 번제를 통해 이삭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한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처음 믿었던 대로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만 믿고 어려울 때는 믿지 못한다면 그런 믿음에 무슨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실 때 믿었던 그 첫 믿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시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질문을 합니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여기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번제할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던 말입니다.

    이 질문은 아브라함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8)’고 어떻게 예기치 않았던 질문에 아브라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합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 말을 입에 주신 줄 믿습니다. 드디어 시험의 절정의 때가 왔습니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해 제단 위에 올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삭의 나이는 번제할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갈 정도로 17세 정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00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의 나이는 지금 117세로 늙고 힘없는 노인아니겠어요?

    17세의 혈기왕성한 이삭은 아무리 아버지라도 힘없는 노인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결박하면 그거 하나 뿌리치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든지 제단 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순순히 결박을 당했어요. 순순히 결박을 당한체로 번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게 아니라 이삭이 스스로 결박당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 중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27:42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겠노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의 군인들을 단숨에 제압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모든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결코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면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오늘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류에게 참된 소망과 영원한 생명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두 손과 두 발이 못박히신 채로 마지막 피 한방울을 다 쏟으실 때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고 죽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든지 힘없는 노인이었던 아브라함을 뿌리치고 제단 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아들이 되려고 끝까지 제단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순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제 시험의 하이 크라이 맥스인 절정의 순간이 왔습니다.

    (10)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하더니

    이삭은 눈을 감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마지막 심호흡을 크게 한 아브라함의 손이 큰 궤적을 그리며 일직선으로 내려오려는 순간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립니다.

    (11)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하나님이 급하게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삭의 몸에 손도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소중한 아들까지도 하나님에게 아끼지 않고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이제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세 번째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 아브라함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도 이정도 까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신앙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시간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 마음이든 자식이든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하면 무조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2. 여호와이레로 응답하신 하나님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었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13-14절입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준비되리라) 하느니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까 숫양이 바로 뒤에 수풀에 걸려있었습니다.

    그곳은 모리아산 정상입니다. 양은 본래 들이나 평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산 꼭대기 수풀에 숫양뿔이 걸려 있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곳에 숫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이므로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이레란 "14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준비 되리라)"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이레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는데 여호와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필요한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곳은 어디든여호와이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 여호와이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이레는 수풀에 걸린 양 한 마리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위대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5-18까지는 여호와이레의 후속의 축복입니다.

    (15)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노라 곧 네가 이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17) 내가 네게 을 주고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을 소유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런 엄청난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 뿐입니다. 돌아보면 이삭이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이 했던 대답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대답은 이삭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이 준비하실 줄로 믿었습니다.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믿었더니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정말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런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가 받습니까?

    (18)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순종없이는 받을 수 없는 축복입니다. 순종이 뭐냐고요 내 이성 내 경험 내 지식을 떠나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여호와이레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시험에 합격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돌려주셨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두 번이나 선물로 받은 이삭은 이제 그 누구도 해치거나 대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돌려주신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씨가 대적의 문을 차리하리라는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고 대적을 이기며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후손인 이스라엘이 지금도 세계 강국인 것은 아브라함의 약속때문인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시험이 왔을 때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축복의 자리까지 나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

    여호와이레란 말은 여호와께서 앞서서 준비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이레의 은혜는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앞서서 준비해 주십니까? 저는 말씀을 통해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이레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을 몇 사람만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1)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기도로 응답받은 여호와이레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죽었고 아브라함도 이제 나이가 적어도 140세 정도되는 노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재산은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맡아 돌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종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 손을 내 넓적다리뼈 아래에 넣고 주 앞에서 나에게 약속을 하여라.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여기에 사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구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오겠다는 약속입니다(24:4).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요구한대로 하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약속을 받은 엘리에셀은 낙타 열 마리에 여러 가지 좋은 선물을 싣고 800km나 멀리 떨어진 아브라함의 고향인 나홀의 성으로 갔습니다. 나홀의 성까지 노정은 매우 위험하였지만 맡겨진 일에 순종하면서 갔습니다. 종에게는 다만 순종할 책임만 있습니다. 종은 먼저 여인들이 많이 오는 우물가로 갑니다. 그리고 한 가지 상황을 설정합니다. 만약에 우물가에 물 길러 온 여자에게 물을 부탁하여 그 여자가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준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는 여자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오늘 제가 주인 아들의 아냇감을 순탄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는 지금 우물가에 서 있고 성의 여자들은 물을 길러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 중 한 처녀에게 '그 물동이에 있는 물을 좀 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 때, 만약 그 여자가 '마시세요. 내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여자를 주의 종 이삭의 아냇감으로 알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드디어 리브가가 등장합니다. 리브가가 성에서 나와 우물가로 옵니다. 리브가는 브두엘의 딸입니다.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과 그의 아내인 밀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리브가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이며, 남자와 가까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그 때에 종이 리브가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물동이에 있는 물을 좀 먹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마시세요" 하며 급히 어깨에서 물동이를 내려 종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종이 물을 다 마시자,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제가 물을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리브가는 물동이의 물을 여물통에 쏟아 부은 다음,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길어와 모든 낙타들이 물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외모도 아름답게 보인 리브가는 낯선 남자가 물을 부탁할 때 물을 마시게 하고는 열 필이나 되는 낙타들을 위하여도 물을 길어주는 친절함을 보입니다. 리브가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엘리에셀은 그녀의 집안을 물어봅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브두엘의 딸이라는 것을 듣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선택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숫양을 준비한 것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이렇게 우물가에서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사를 네 앞에 보내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말을 믿었습니다(24:7). 즉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것입니다. 종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을 찾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입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너무 감사하면서 준비해온 선물중에서 리브가에게 반 세겔쯤 나가는 코걸이 하나와 십 세겔쯤 나가는 금팔찌 한 쌍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종이 물었습니다.

    "아가씨 아버지의 집에 우리들이 하룻밤 묵어갈 방이 있겠는지요?" 리브가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낙타에게 먹일 여물도 있고, 여러분이 하룻밤 묵어가실 수 있는 방도 있습니다." 리브가는 그 종을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결혼할 나이가 된 청년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될 사람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우물에 이르러 기도하기를 오 주 곧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만일 주께서 나의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하실진대 내가 우물가에 섰다가 처녀가 물을 길러 오거든 그녀에게 이르기를 나와 저 낙타에게도 물을 먹게 도와 주는 처녀가 있다면 그 처녀가 바로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바로 저 처녀가 우리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온 이 아가씨입니다. 리브가의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우리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군요. ,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리브가를 데려다가 그대의 주인의 아들과 결혼시키세요." 종은 리브가에게 금과 은으로 만든 보물과 옷을 주었습니다. 종은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에게도 값진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날 밤을 그 곳에서 묵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제 주인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가 말했습니다. "리브가를 십일 동안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있다가 떠나게 해 주세요." 하지만 종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제 길을 형통하게 하셨으므로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제 주인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가 리브가를 불러서 직접 물어 봐야겠군요 말하고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지금 이분과 함께 가겠느냐?"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 가겠습니다." 종은 리브가를 낙타에 태우고 길을 떠났습니다.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오던 날 저녁 무렵, 이삭은 묵상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이삭이 눈을 들어 보니 낙타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 이삭을 보더니 낙타에서 내렸습니다. 리브가가 종에게 물었습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보려고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종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주인의 아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리브가는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종이 이삭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종의 말을 들은 이삭은 리브가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는 어머니 사라의 대를 잇겠다는 표시입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하고 이삭의 아내가 되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사십세였습니다(25:20). 이삭은 리브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어머니를 여읜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후 이삭은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은 후(25;26) 180세에 죽었는데(35:28) 중동의 일부다처의 관습 속에서 오직 한 여자와만 평생 함께 하여 아름답고 구별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결혼을 혼잡게 하는 시대이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부부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사자굴에서 건져냄을 받은 다니엘의 여호와이레

    다니엘의 삶도 여호와이레의 삶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짐 받았으나 하나님이 건져내 주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다니엘 6장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였다. 다니엘은 자신이 사자굴에 던져 넣음을 당할 줄 알고서도 그의 기도의 삶은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이렇게 신앙을 지키다가 결국 모함꾼들에게 모함을 받아 사자굴 속에 던짐 받았습니다. 아무리 왕이 총애하는 다니엘이라 하여도 법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말했습니다 “(16)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라고 명령하고 난 뒤 마음이 아파서 금식하고 오락도 금하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고 못하고 날이 새자마자 급히 사자 굴로 달려갔습니다. “(20)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설마 살아있으리라고 믿고서 한말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다니엘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것이 미리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주신 것이 여호와이레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22). 왕은 심히 기뻐서 다니엘을 굴에서 건져 올리게 하고 그리고 다니엘을 모함했던 사악한 모함꾼들을 잡아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었는데 그들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잡아먹고 뼈까지 부스러졌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허물이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다니엘을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서 살려낸 것입니다. 생명을 준비하신 여호와이레의 축복이었습니다.

     

    (3)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여호와이레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시아선교를 꿈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는 꿈에 마게도냐 사람이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꿈을 꾸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고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믿음이 돈독하고 헌신적인 여인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이 유럽 선교를 위해서 준비하신 일꾼이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은 유럽선교의 놀라운 장을 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바울을 위해 하나님은 루디아라는 헌신적인 여인을 준비해 주셨던 것이야 말로 여호와이레는 바로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진정 우리 삶에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산다는 것은 한없는 기쁨이며 행복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다면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4) 거미줄을 통해 목숨을 구한 여호와이레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 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이제 곧 잡히게 될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미를 준비하신 하나님은 그 뱃속의 거미줄로 사랑하는 자를 보호해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를 위해 좋은 것들을 많이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그 입술로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리시며 우리 속의 생각까지도 헤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호와이레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자의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6장에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에게서 쫒겨나 광야를 방황할 때 부대의 물이 떨어지매 그녀는 그 아이를 떨기나무의 밑에 두고 화살이 미치는 곳에 가서 아이를 보며 부르짖기를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목소리 높여서 우니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목마름을 아시고 우물을 준비하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목마름과 괴로움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친히 샘을 준비하시고 위로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은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브엘라 해로이) 으로 불렀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여호와이레의 믿음의 사람들이 계속 나타납니다.

    요셉에게는 총리라는 여호와 이레가 있었습니다. 요셉이 받은 여호와이레가 펼쳐지기까지는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17살의 나이에 먼 타국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누명으로 인한 억울한 감옥 생활도 견뎌야만 합니다. 여호와이레는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기에 요셉은 뼈를 깎는 듯한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자그마치 13년 동안 견딘 후에 애굽의 총리로 등장합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왕으로서의 여호와이레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왕이 되기까지에는 10여년의 세월을 고난과 고통과 때로는 배고픔과 함께 해야만 했습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병사들에게 밤낮없이 추적당하다보니 편히 쉴 날이 없습니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수백명이나 되다보니 먹을 것을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배고픔을 겪어봐야 왕이 된 이후에 백성들의 고달픔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여호와이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이레는 아무리 시간이 길어지고 세월이 흘러도 순종하는가, 헌신하는가, 견디는가, 괴롭고 힘들어도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는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가를 보신 후, ‘패스한 자에게 비로소 여호와이레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서 내일의 여호와이레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의 복을 보면서 하나님은 필요한 때 필요한 은혜를 준비하셨다가 공급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11: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넉넉히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2019년의 삶을 살아갈 때에 때를 따라 모든 은혜를 넉넉히 준비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이나 다니엘이나 요셉의 삶에서 우리는 여호와이레의 놀라운 모습들을 봅니다. 그들의 삶에 주께서 준비하신 그 놀라운 기적들은 그들이 믿음으로 살기를 결단하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고 살았을 때 하나님은 앞서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여호와이레의 축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 준비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앞서서 준비하시고 그를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인생에 어떻게 여호와이레라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앙생활에도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어야 여호와이레가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여호와이레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을 때, 모리아 산 끝까지 올라갈 때, 아들을 번제단 끝까지 올릴 때, 칼을 끝까지 높이 들어 내리칠 때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더불어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통한 여호와이레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 여호와이레가 주는 교훈

    오늘 말씀은 결국 여호와이레의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레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할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들을 시험하시고 단련하시고 연단하십니다 (22:1, 2:6, 17:3, 고전10:13).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도전하시고 시험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문처럼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셨고 모세에게도 바로에게 가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내 백성을 출애굽시키라는 시험을 주셨을 때 모세는 처음에 나는 못간다고 하였지만 결국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여호와이레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엄청난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 갯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립니다.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는 예수님 처절한 기도를 들으신 후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도전하게 하시고 시험하시고 단련하십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험-연단 앞에 우리들이 선다면 아브라함처럼 또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부자 청년처럼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지 말고 나보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이레는 하나님의 시험-연단을 통과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반드시 기쁨-영광-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는 최고의 축복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에게 맡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가요?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것은 여호와이레의 믿음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을 때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자리로 내려가지 않으면 여호와이레의 믿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결정적인 절망의 순간은 죽음입니다. 그 죽음의 순간이 쏜살같이 옵니다. 이 죽음은 마치 아브라함의 칼날이 이삭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을 준비한 것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여호와이레입니다. 이 말씀을 알고 믿는다면 우리가 그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3) 여호와이레를 통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모형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되돌려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제 마지막 날에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신부인 성도들을 영접하여 하늘나라에 데리고 들어가실 것입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간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구원의 계획을 오늘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오래 전에 보여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과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1:3-5).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을 위해선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일 예배 한 시간 나오는 것도 아깝습니다.

    믿음이 좀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취미와 여가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해지면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졌는지 시험할 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는 우리 행복침례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시험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시험을 통하여 신앙적으로 크게 성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시험받았기 때문에 전보다 더 형편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같이 시험을 받아도 이처럼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지요? 시험이 닥쳤을 때 시험의 참 뜻을 알고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호와이레의 축복이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값싼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창세기 22:1절 말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했습니다.

    영어로 구분해 보면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테스트(test), 둘째는 템테이션(temptation)입니다. 테스트(test)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으로서 이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려 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주는 템테이션(temptation)은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시험입니다. 테스트(test)의 시험은 잘 통과하고 합격을 하면 상급이 따르지만 템테이션(temptation)의 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들의 희생과 결단과 헌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아주 귀한 것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며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시험을 잘 통과했습니다. 그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들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는 축복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시니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여 갔습니다. 떠나라 하실 때 떠났고, 바치라 하실 때 바쳤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떠나라 할 때 떠나지 못했습니다. 바치라 할 때 바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받기를 원합니다.

    진정 아브라함의 복을 원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고 결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열매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순종하되 지체치 않고 순종했고 아끼지 아니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 책임져 줄 터이니 너는 순종하기만 해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길은 괴롭고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그 길은 믿음으로 가야 되는 길이기에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돌아보니 우리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앞날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린 모든 것을 돌려주시되 더욱 풍성하게 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인 하나님과 동행하는 풍성하고 놀라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행복침례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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