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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경은 어느 본문으로 부터 번역된 성경인가?성경 2018. 7. 4. 14:26
내가 보는 성경은 어느 본문을 갖고 번역한 셩경인가?
기독교인들이라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필원본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 생각 하고 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역시도 일년전까지만 하여도 하나님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성경 무오류원칙을 따랐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내려온 성경을 살펴보니 한국교회가 100여년 동안이나 하나님말씀으로 읽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담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와 우리 행복침례교회는 2018년 1.1부터 KJV로 다 교체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이거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난 누구보다도 성경기원부터 어떻게 해서 지금 내 손에 들어와 있는가 늘 연구하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의 거룩한 사람들이 직접 쓴 자필 원본으로 성경을 주셨다.
20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21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오늘날 성경책 종류만도 수십가지가 된다. 크게 나누면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경과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으로 나눌 수 있지만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도 개역성경 표준번역성경 KJV성경, 이외에도 현대인 성경 공동번역 성경등 여러 종류가 있다.
대언자에 의해 처음 기록한 성경말씀을 자필원본이라고 하며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 자필 원본을 필사하여 사본들을 만들었으며 처음의 자필 원본과 그 후의 많은 사본들은 수명을 다한 뒤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경을 번역하려면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이 필요한데 이 땅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단어들)을 담은 사본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누군가가 현존하는 사본들을 편집해서 ‘본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본문’을 가지고 실제로 성경을 번역하려다 보면 본문이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누가 어떤 본문을 선택해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성경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음의 표는 본문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례들 중의 일부를 보여 준다.
<내용이 전혀 다른 성경 구절들>
구절
킹제임스 흠정역(KJB)
개역, NIV, NASB 등
시10:4-5
그(사악한 자)의 길들은 항상 고통을 주고
그(악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잠26:22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들은 상처들과 같아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전1:14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사9:3
주께서…기쁨을 더하지는 아니하셨으나
주께서…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호10:1
이스라엘은 텅 빈 포도나무요
이스라엘은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암4:4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막9:44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없음
롬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없음
골2:18
그런 사람은 자기가 보지 아니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1. 다수사본 과 소수사본
사본은 처음의 자필원본을 필사하여 전해내려오는 사본을 말한다. 기독교 2000년 동안 전해오는 사본들을 분류하면 사본의 99%는 같고 나머지 1%는 다르다.
99%가 같다는 것은 어디서 언제 사용되었든 각 사본끼리 비교하면 모두가 같다는 것이다. 이런 사본들을 다수 사본 또은 공인된 사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주교 소수 사본이 좋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2017년 10월 31일은 종교 개혁 500주년 되는 날입니다. 정확히 500년 전에 마르틴 루터는 천주교의 부패를 온 천하에 알리며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루터가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천주교 소수 본문을 버리고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다수 본문에 근거하여 보통 사람들을 위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그 이후에 틴데일 성경, 제네바 성경, 킹제임스 성경, 올리베땅 성경, 디오다티 성경 등 유럽 모든 국가의 성경이 다수 본문에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쳐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주교 사본이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역사적/사본학적 사실을 보지 않으려고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다.
오늘은 천주교 소수 사본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소수 사본 지지자들이 추앙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자기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이것을 더 알고자 위키 백과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 두 사본은 사복음서에서만 무려 3,036개나 서로 다릅니다(마태복음 656개, 마가복음 57개, 누가복음 791개, 요한복음 1022개). 물론 이것 역시 이미 사본 학계에 공공연하게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니 소수 사본 중 어떤 것이 맞는지 도대체 어떤 사본을 신뢰해야 한단 말입니까? 또한 시내 사본은 특히 여러 곳에서 조작된 부분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반면에 40여 개의 소수 본문을 제외한 99%의 안디옥 계열 사본들(다수 사본, 종교개혁 사본, 보편적 사본, 비잔틴 사본, 전통 사본)은 어느 것을 보아도 본문이 일정합니다. 바로 이런 다수사본으로부터 킹제임스 성경과 루터 성경 등이 나왔고 이러한 다수 사본 성경들이 전 세계의 신학과 교리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을 통해 진리의 빛을 온 세상에 보내 주신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119:13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따라 우리 손에 완전히 보존된 성경을 주셨습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완전히 보존된 성경을 주신 이 성경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음은 리건 박사가 지은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의 결론입니다.
https://www.biblebelievers.com/Reagan_myth-early.html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을 통해 본래 하나님께서 주셨던 성경을 보통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마귀의 개입
사본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구약성경 본문이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 바로 마귀의 개입이 있었다. 첫 사람 아담을 속여 사람을 죄 가운데로 몰아넣은 마귀는 사람의 구원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그냥 둘 리가 만무하다. 분명히 처음에 하나님은 순수한 말씀들을 주셨으나 마귀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인본주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개시켜 왔으며 그 결과 두 종류의 본문이 존재하게 되었다. 마귀가 늘 하나님을 모방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일이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사14:12-14; 고후11:13-15).
(1)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마16:18)는 유대교의 요람에서 탄생되어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성도들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말씀들을 지켜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복음의 초기에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에서 나온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이 하나님 말씀을 변개시켰고 드디어 313년에는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소위 ‘기독교 공인’이라는 역사를 통해 마귀개입이 본격화 되었다. 이교주의와 성경말씀이 혼합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주님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이교도들의 각종 거짓 교리를 도입하여 순수한 기독교를 변개시켰다. 그래서 20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로이즈 존스는 천주교를 가리켜 ‘마귀의 걸작품’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천주교회가 1000년 이상 온 세상을 암흑 속에 가두었으나 마침내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은 종교 개혁을 통해 천주교회에 대항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이 세상에 세우시고 그들이 기독교로 복귀하게 하셨다.
이때에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그때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켜 온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 심히 부패되었다는 사실과 바른 복음 선포를 위해 바른 성경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 이외의 순수한 성도들이 전 유럽과 아프리카와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등의 지역에서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공인 본문을 이용하여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렇게 바른 본문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인쇄술에 힘입어 온 세상을 휩쓸었고 로마 카톨릭주의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던 일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성경의 번역과 보급을 그토록 반대하던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일반 성도들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려고 목숨까지 내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서로 다른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 마디로 성경 본문들과 거기서 나온 역본들의 차이는 천주교와 기독교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같이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므로 성경의 변개가 어떻게 교리를 바꾸어 천주교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줄 것이다.
(2) 구약성경본문
20세기 초까만 하여도 구약성경의 경우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전통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 거의 모든 성경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유대인 마소라들이 심혈을 기울여 본문을 보존했기 때문에 이 본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루돌프 키텔(R. Kittel)이 편찬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는 전통 마소라 본문을 수정한 본문이고, 이것을 그가 죽은 뒤인 1937년 독일 위템베르크 성서 공회가 페이지마다 평균 15-20 군데씩 수정하여 3판을 편찬했는데 이 본문은 후에 1967/1977년판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로 개정 출간되었다. 영국개역성경, 신국제역(NIV), 신미국표준역(NASB) 등 모든 현대 역본의 구약은 이 BHS를 기초로 하여 번역되었으므로 그 안에는 이러한 개정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20세기 까지 만하여도 변함없던 구약 마소라 본문에도 수정된 본문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마소라 본문을 대본으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3) 신약성경본문
신약성경의 경우 로마 카톨릭 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약 교회가 지난 1900 년간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을 보편적으로 수용해 와서 수용본문이라고 하고 또 이 본문은 다수사본에 근거했기 때문에 ‘다수본문’이라고도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천주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동방)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
한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소수본문’만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 ‘소수본문’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전체 사본의 1% 정도이다.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전시용으로 보존되어 온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산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시내 사본’이 있는데 사실 이것들은 변질된 내용 때문에 대다수 성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1881년에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두 사본이 가장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인본문을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 그리스어 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변개한 단어는 무려 9,970 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본문에 나오는 140,521 개 단어의 7%나 되는 양이다. 1881년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에 1898년에는 네슬레가 티센도르프의 8판과 위마우스의 3판과 함께 신약성경 본문을 편집하여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라는 본문을 만들었다.
(4) 비평본문으로 유명해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성경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하려면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이 필요하다. 아무리 번역자들과 번역 기법이 우수해도 대본이 나쁘면 거기서 번역된 역본 역시 나쁠 수밖에 없다. NIV, NASB, 개역성경(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등의 모든 현대역본들은 기본적으로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tcott, 1825-1903년)와 호르트(Fenton John Anthony Hort, 1828-1892년)의 그리스어 ‘비평본문’을 사용한다. 한국성서공회회가 번역한 성경이 이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번역본 속에는 번역자의 사상이 배어 있다. 이 장에서는 이 중요한 두 사람의 행적을 통해 이들의 부패된 사상을 살펴보고 그런 사상이 그들의 그리스어 본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신약성경과 관련해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만큼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은 없을 것이다.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그리스어 본문 연구에 지대한 발전을 이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선전해 왔으나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단, 불신앙, 배교 등의 여러 죄목으로 이들을 고소했으며 참으로 이들이야말로 성경의 참 본문에 극심한 손상을 입힌 배도자임에 틀림없다.
근거 없이 어떤 사람을 중상모략 하거나 혹은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사람들과 또 성경 본문에 대한 그들의 이론들에 대해 알려진 바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웨스트코트의 아들이 지은 「웨스트코트의 삶과 서신들」과 호르트의 아들이 지은 「호르트의 삶과 서신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자료는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 책들로부터 직접 인용한 것들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본문 비평학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라 하지만 이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보편적 본문’을 이집트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국지적 본문’으로 대체시켜 버렸다. 또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킹제임스 성경과 그것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어 공인본문’이 지닌 우월성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들은 속임수에 넘어가 로마 카톨릭 산물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가장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사본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호르트가 ‘안디옥 본문’ 의 연대가 그 사본들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카톨릭 사본들을 신뢰했다.
‘보편적 본문’이 로마 카톨릭 사본들만큼이나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성경 역사에서 안디옥 본문이 차지한 높은 권위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애를 많이 썼으며 종종 호르트는 자기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는 그 야비한 공인본문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그리스어 성경을 거의 읽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본문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전적으로 후대 사본들에 기초를 둔 그 비열한 공인본문을 생각하면 그런 초기의 것들 [ 로마 카톨릭 사본들] 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복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왜곡된 로마 카톨릭 사본들은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자기들의 본문을 만들 때 이미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이 성경의 주요 교리들을 희석시키고 공정한 역사를 지닌 사본 계열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은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성경을 대하면서 성경을 역사가나 철학자의 글과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성경과 고문서의 평가 방법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호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번 베껴 쓴 모든 산문에서 거의 발견되는 것처럼 신약성경 본문 안에도 생략에 의한 본문의 부패보다 삽입에 의한 부패가 훨씬 더 많다.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책이 셰익스피어나 플라톤의 글과 비교하여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사용하시겠는가? 성경이 여느 사람들의 글과 다르다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인가? 사실 날이 갈수록 그들의 의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결과적으로 이 두 사람은 성경의 진리를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신앙에 있어서 너무도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근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서 시작을 한 것이다.
(5) 호르트의 문제점
호르트는 에덴동산의 실재와 성경의 무오류를 부인한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에덴동산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한 아담의 타락도 영국의 시인 코울릿지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 성경에 오류가 없음을 믿지 않은 호르트의 불신앙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당신의 협조를 얻기 위해 신약성경의 절대 무오류성을 믿어야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호르트의 생각이다. 심지어 그는 한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이 성경의 절대 무오류성을 지지하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소.
호르트는 비록 그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감명을 받지 않았지만 비성경적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에 대해서는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동료인 웨스트코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다윈에 대해 읽어 봤소? 그 이론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소. 어찌 됐든 그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오. 그리고 친구목사인 엘러톤(J. Ellerton)에게는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그러나 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끈 책은 다윈의 것이요. 비록 그것에 대해 남들이 뭐라 할지는 몰라도 그 책은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책이오. 만일 그렇다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오. 이럴 때 보면 호르트는 완전히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 예로서 근본적인 성경 진리에 대한 그의 관점은 아주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적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만일 마귀가 있다면 그는 단순히 부패되고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사악해야만 하며 또한 그의 이름과 그의 에너지와 행동이 다 사악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것을 지지한다면 말씀의 거룩한 특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호르트 목사는 또한 글자 그대로의 지옥을 믿지 않았다.
비록 고등 교육을 받은 호르트의 마음속에 글자 그대로의 마귀와 지옥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연옥에 대한 거짓 교리는 그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그는 1854년 엘러톤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나는 모리스가 연옥을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의 세 가지 주요한 논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1) 영원한 기간과는 상관없다; (2) 회개의 힘은 현생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3)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회개하든지 회개하지 않든지 영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현 시대 사람들이 이 중 두 번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즉 연옥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신학을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젊은 학생을 지도하는 동안 그는 아래와 같이 편지했다.
나는 불로 깨끗하게 되는 연옥에서의 정화라는 개념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벌과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래의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의 성격도 역시 변해야만 한다는 이 교리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그 저주받은 연옥 교리가 크고 중요한 진리를 믿는 카톨릭 믿음을 유지시켜 주었으므로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조항에 모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호르트 박사의 의견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르트 는 자신의 글이 보여 주듯이 그는 몇몇 다른 기본적 진리에 있어서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거부했다.
나는 각 사람이 자기의 죄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호르트는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가르침을 이단으로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기까지 고통 당하셨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로 호르트는 하나님보다는 사탄이 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값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에게 속죄 값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불했다고 믿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탄에게 지불한 속죄 값이라는 그 원시적 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혐오하지도 않는다. 또한 그것 말고는 속죄 값에 대한 교리를 조리 있게 변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호르트 박사는 또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즉 유아세례에 의해 거듭난다는 가르침이 복음주의자들의 가르침보다 옳다고 믿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유아세례를 통한 중생’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지킨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몸의 일원으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자임을 보장해 준다. 호르트는 자기의 맏아들 아더에게 그가 유아세례로 인해 구원받았음을 확신시켰다.
너는 단지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 왕국의 크리스천 부모에게 태어났다. 하나님은 네가 아직 유아였을 때 세례를 통해서 너를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위대한 성회의 ‘무의식적인 한 일원’으로 만들어 주셨다. 너는 크리스천 영향권 내에서 자라났다. 즉 눈을 들어 네 자신의 아버지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보도록 교육을 받았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에게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일원으로서의 놀라운 감격을 느끼도록 교육을 받았다.
호르트는 사실 공산주의와의 접촉을 통해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대략 1850년경 그와 엘러톤 목사와의 계속적인 편지 왕래에서 잘 드러난다.
내가 여기서 앞으로 3, 4년간 공산주의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꽤 잘한 일입니다.
내 자신이 공산주의를 연구한 것은 바로 정치 분야를 통해서였습니다.
또한 호르트는 그의 좋은 친구였던 웨스트코트와 또 소위 유령 길드(Ghostly Guild)라는 단체에 속한 다른 이들과 같이 초자연적인 것에 깊이 몰두했다.
웨스트코트, 고햄, 스코트, 벤슨, 브래드쇼우, 루아드 등과 나는 유령과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과 그 결과들이 정말로 존재하며 또한 그것들이 속임수나 단순한 주관적 망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는 실제로 진리를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얻게 되어 행복해 할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질문들의 목록을 짜고 있다. 코우프는 우리를 암탉과 수소 클럽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이 그룹의 이름을 잠정적으로 유령 길드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정도로 비성경적이며 무신론적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설교자나 전문가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를 그런 사람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호르트 박사가 뛰어난 그리스어 학자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지식인이라 해도 스스로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그는 절대로 성경의 권위자가 될 수 없다(고전2:14). 위대한 심성이나 능력을 소유한 것이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는 보증 수표는 아닌 것이다. 비록 호르트 박사가 뛰어난 학자였지만 그의 뛰어난 학식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 관한 그의 이론을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의 어느 목사가 호르트의 신앙관이 매우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를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그리스어 학자’로 옹호하며 자기가 믿는 킹제임스 성경을 그에게 건네주어 악의에 찬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절개하고 내던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물론 이런 과정 속에서 호르트는 한때 성경이 차지했던 권위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목사들의 무분별한 신앙 때문이며 또한 신학교 시절의 인본주의 교육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영국을 다시 한 번 로마 카톨릭화하려는 예수회의 운동 아래 두 사람 즉 호르트와 웨스트코트의 권위를 단순하게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윌켄슨은 실제로 호르트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호르트 박사는 본문 비평학의 아버지인 천주교도 시몬의 글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공인본문과 같은 계열에 속한 사본들과 및 성경들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 즉 한국성서 공회가 발간한 개역성경은 호르트와 웨스트코트에 의해 수정된 본문을 갖고 번역한 성경이 영국의 개역성경이 되었고 이 성경이 미국의 표준성경이 되었고 이 성경이 한국의 개역성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개역성경이 아무리 문장이 수려하고 간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고 하여도 실은 너무나 잘못된 오류가 넘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연 내가 보는 성경은 어떤 본문에 의해 번역된 것인가? 로마카톨릭에 의해 번역된 본문으로부터 번역된 것인지 본래 하나님의 주신 성경으로부터 번역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직 하나님말씀을 온전히 담고 있는 사본은 KJV밖에는 없는 것이다.나머지 성경들은 비평본문에 의해 번역된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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