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My story
    나의 이야기 2018. 5. 2. 12:01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인생여정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 초 중고 학창 시절

    나는  충북 음성 금왕 쌍봉이라는 산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36세 까지 농사를 짓다가  6.25전쟁끝난 후에는 동네 있는 쌍봉초등학교 교사로 다니시며 독학하여 건국대학교 야간대학에 들어가셨다. 초등학교도 안나오신 분이 지금으로 치면 임용고사 합격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다가 대학검정고시 합격하여 건국대학교 야간대학에 다니시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문전에도 못가신 분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은 보통 의지와 노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학비는 책 외판원으로 숙식은 학교 숙직실에서 신세를 지고 밥3끼 먹는 것은 특별한 날 아니고는 굶는 것이 다반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님 모시고 살다보니 아버지 건국대 졸업앨범도  내가 보관하고  어머니로 부터 아버지에 대해 조금은 들었다. 건국대학 졸업후 요즘으로 말하면 교사임용고사 시험에 합격하여서 처음으로 근무한 학교가  청주고 그리고 청주여고 음성고 음성여고를 거쳐 서울 대신중학교에서 사회과목 교사로 근무하셨다가 정년퇴임하셨다 . 과목이 역사 세계사 과목이다보니 예수님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니  기본적인 것은 알지만 전통과 제사를  중요시하다 보니  기독교  그리고 예수님과는 비호감을 넘어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오르는 것이 보통이였다. 우리 집은 다른  문제 가지고는 큰소리 날 것이 없는데 단지 제사문제로 집안이 시끄럽고 불안하였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선 아버지 하고 대화가 불가능하였다.  

     예수님에 관한 말만 나오거나  말대답하였다간  그  때는  분노 감정 조절을 할 수 없는 지경 까지 가시는 분이시다.  그 중심에는 바로 나 때문이다. 다른 아들들은 다 제사지내는데 나만 불참하니 아버지의 분노내시는 것은 그럴만도 한 것이다. 

    우리집은 장손집안이라 일년이면 제사가 20회이니 매달 1-2번 있으며 구정과 추석때 또 10월 시제 등 아버지는 여기에 전념하시는데 아버지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된 내가  아버지말을 안듣고 불효를 하니 아버지의 분노는  부모로서 그럴만 하였다.


      2. 신앙 생활 

    나는 중학교 1학년 10월에 때 누구의 전도도 받지  않고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를  갔다.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직접  부르셨는가 생각한다. 교회는 내가 다니는 중학교  부근에 있는 무극 장로교였다. 우리집은 산속에 있는 외딴 집인데 나는 중학교 2학년 되면서 저녁먹은 후에는  집부근  바위에 가서 기도를 하였는데 기도 제목은 하나님 제가 고입검정고시 보겠으니 합격시켜주세요 하는 기도였다. 그리고  서울교육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집으로 검정고시 원서가 도착하였다. 나는 작성하여 보내고 서울와서 검정고시 시험을 치른후 다시 시골와서 학교를 다녔다.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 농업중학교 2학년 학생인데 이런 지혜가 떠올라서 혼자서 준비하여 시험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는 달리 말할 수 없다.  서울에는 아버지와 형 누나가 있었다. 시험은 5월에 봤는데 7월에 서울에 있는 형이 합격통지서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여름방학까지 무극중학교를 다니고 방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 하였지만  고등학교는 불합격하여 협성고등공민학교 3학년을 마쳤다.

    협성고등공민학교 후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3수하여 서울사대를 입학하였다.

     대학교 입학후 군복무를 3년 마치고  집에서 대학을 다니다보니 또 제사문제로 아버지와 불화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입주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니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였고  아버지와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었다. 결혼하고 자녀키우면서는  아버지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13살 부터 예수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아버지 처럼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고함과 분노며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는 것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럴수록 나의   믿음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예수골수분자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생활은 주일날 헌금주면서 교회 가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나처럼 아버지가 지독하게 반대할 수록 나는  점점 아버지와는 멀어졌지만 예수님과는 가까와 진것만은 사실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나 때문에 그렇게 예수님과는 평생 원수로 지내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천국가시기 1년전 중풍으로 쓰러지셨는데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마음뿐 자식된 내가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친 후 쇼파에 앉아서 잠시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던 중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네가 목사이면 뭐하나? 네 아버지는 지옥가는데 하는 마음을 주셔서 즉시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갔다. 걸어가도 10분이면 갈 거리를  택시타고 가서 병상에 애처롭게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버지 손붙잡고  처음으로 눈물흘리며 기도 하였다. 그날 병상에서 내가 한 기도는 지옥에서 끌어내어 달라는  몸부림치는 간구였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누가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도 듣고만 계시지 전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정말 마음이 변한 것만은 사실이다. 얼마 안가서 기적처럼 중풍에서 회복이 되어서 1달 만에 퇴원하셨는데 예수님은 인정하시면서도 교회는 안나가셨다. 그런데 퇴원하시고 정상으르 활동하시던 아버지가 퇴원 3개월 후 천국가시기 8개월전 다시 한번 죽음의 경지까지 가는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아버지집에 가보니 밤 10시부터 새벽 4시 까지 누워서 헛소리만 하고 식구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밤 12시가 되니 흩어졌던 자식들  다 모여서 간절한 기도와  찬송을 불렀다. 새벽 4시가 되었는데  6시간 정도 누워서 헛소리만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정신이 들더니 일어나 앉으시길래 내가 아버지께 '아버님 예수님 믿으셔야 합니다' 하니 믿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A4용지와 볼펜을 가져다가 드리면서 '그러면  제가 불러주는 대로 쓰세요' 하니 아버지가 나는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겠다고 자필로 쓰셨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것이다. 제사지내던 통장 일체 모두를 형님에게 인계하고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시고 성경만 읽으시면서 아침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리시면서 6개월간 주님 섬기시다가 천국에 가셨다. 확실히 말하지만  내인생을 살아오면서 본 사람 중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나는 우리 아버지 처럼 불신자도 본 적이 없었고 우리 아버지 처럼 이렇게 예수님을 순수하게 잘 믿는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우리집은 초상집이라기 보다는 잔치집 같은 분위기였다.  지옥갈 사람이 천국으로 갔으니 정말 잔치집 이상이였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네가  아버지룰 구원시키는데 큰 일 했다고  이야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잠시 이전 으로 돌아가자.

    나는 내가 대학교입학을 위해 재수하던  어느날 아 중학교 2학년때 고입검정고시 합격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선 의심한 적이 없었다. 기도가 다 응답은 안되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도 사실이었다. 예로서 내가 교감  교장되어서 잠시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행로를  뒤돌아 봤다. 용산고등학교에서 서울사대 30명 정도 입학하였고 서울사대 지구과학과

    30명이 졸업하였는데 서울에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0년 2월 28일  서울에 있는 효문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면서 공직 30년  동안 단 하루도 결근한적 없이 공직을 무사히 그리고 명예롭게 마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다시한번 생각하였다. 물론 여기까지 오면서 형통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내가 39세에는 아들 셋중 가운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수업마치고  집에 오다가 횡다보도에서 길 걷는중에 교통사고로 즉사 하였다. 정말 앞이 캄캄하였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4살이던 셋째가  둘째가 죽은지 3흘 째 되는날  경귀로 쓰러지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감당히 안되었다. 하루 2시간 간격으로 거품물고 눈 뒤집어 지면서 입술과 눈가는 푸르게 변하면서 쓰러진다는 것을 보는 내 마음은  이 아이만은 살리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로서  셋째 살리기 위해 병원 한방 기도 안해본 것이 어디 있으랴? 마지막은 아이 데리고 집사람과 산속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었다.  7월28일 갔다가 10월3일 나왔다. 경귀시작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더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 후 2년 동안 딱 3번하고   이후로는 전혀 없었다. 그 아이가 지금 미국에서 주립대학교 졸업하고 카나다에서 침례교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다. 자녀들로 인한 슬픔과 회복이 있은 후 44세에는 결혼하여 14년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당뇨인데 원래 내가 미련하여서 당뇨합병증으로 먼저 간 것을 후회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은 내가 아주 건강하지만 20대 결혼 전에는  치질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혼초에는 양쪽 발고락에 무좀으로 2년 고생하였고 40대 초에는 장복통으로 2년 동안  너무 힘든 시간보냈고 또 딸국질 10개월을  밤낮으로 그것도 5분 간격으로 나오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 모든 육체적 아픔과 시련을  나는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 극복하였다.


    3. 두번째 교회개척을 하다

    신학교 졸업후 1988년 부터 1996년 까지 양재역부근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그런대로 목회는 재미있었다 물론 나는 직장다니고 아내는 목회에 많은 협조를  하면서 시작하였지만 1991년 아내 사별과  몇가정들 이민, 지방이주로 교인수는 급격히 줄어들어서 1996년 교회를 정리하였다. 마음속에는 목회 실패자라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던중 2010년 2월 정년퇴임을 한 후 30년 공직생활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10일간 금식기도 하였다. 5일 정도 지나니 15년 전 목회하였을 당시 교회 가족들이 다 떠오른다.  이전에 목회실패하였기 때문에   나는 목회하리라고는  마음에 없었고 선교 다니면서 하고 싶은것 하면서 좀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였는데 옛날 양재침례교회식구들이 다 떠오르는 것을 보고 10일간 금식후에는  하나님의 인도라고 생각하고 현재 자리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집은 광나루인데 교회는 태릉입구역이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나의 마지막 본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짐이 무겁다.

     위치는  6호선, 7호선  태릉입구역 2번 출구--  공릉초등학교 --삼익아파트 상가에   행복침례 교회를 개척하여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교회개척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양재교회하였을 때에는 새벽에도 수요저녁예배에도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다.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몇몇 성도들을 보내주셔서 지금  5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고  오후 2시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실버처치예배도 드리고 있으며 2018년 1월부터 인터넷 Daum에  행복침례교회 카페와 블로그를 만들어서 교회소식과 성경말씀 그리고 주일 설교를 올려놓고 있다.  정말 이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서 영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지금까지 저의 인생여정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은혜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인생관은 오직 성경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정말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후의 세계를 100%  확신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당신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 인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이며 비밀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 안 갈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만약 지옥이 있다면 거기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서 마지막 종착지는 불타는 지옥이라고 하셨으며  아주 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좁은 길 좁은 문을 통해 천국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구원받은 숫자가 성경에 나옵니다. 노아홍수때 8명이 구원받았고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받을 때 3명이 구원받았고 장정60만명이 출애굽을 하였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2명뿐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시대에는 144000 정도가  휴거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읍니다. 저의 역할은 천국 가이드입니다.

     내가 천국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돈버는것, 자식 키우는 것, 직장다니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온세상을 다 소유한다 할지라도 천국을 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천국가는 가이드로 충성을 한다면 행복침례교회성도들도 저와 함께 가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행복침례교회 양무리중에서  제일 앞서가는  양으로서 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양무리는 언제나 맨앞서 가는 양에 의해 초장으로 물가로 우리로 이동하는 가축입니다. 한번  와서 만나보세요. 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 mail : gw0226@hanmail.net

       Tel : 010-5468-0180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와 인간  (0) 2018.09.06
    living or dyng, It is problem  (0) 2018.05.0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