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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네 문둥이가 전해준 기쁜 소식말씀 2019. 5. 12. 23:07
네 문둥이가 전해준 기쁜 소식 왕하7 : 1-20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는 뜻을 가진 엘리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았을 때 그는 아벨므홀라인에 사는 사밧의 아들로 소 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때 엘리야가 지나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고 부르니 농구를 불살라 소 한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다(왕상 19:16-21). 그로부터 8년 후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려 할 때에 길갈, 벧엘, 요단에서 세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여도 끝까지 따르매 "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물은즉 당신이 받았던 영감을 배나 구하였는데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였는데 그가 요구한 대로 어느 선지자들 보다도 많은 이적과 예언을 한 대언자이었다. 엘리사가 활동했던 시대는 B.C 9세기경 이스라엘 북왕국 초기이며 이스라엘의 제9대 왕 여호람에서부터 예후, 여호아하스를 거쳐 제12대 요아스왕까지 무려 50여 년 간 영적 지도자로 활동했다(왕상 19:16, 21). 구약의 여러명의 선지자들이 나오지만 엘리사만큼 기적과 이적과 예언을 한 선지자는 없다고 본다. 아모스 3장 7절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다고 하셨는데 엘리사가 행한 예언을 살펴보면, 열왕기하 2장부터 13장까지는 수많은 예언들과 기적들이 나오는데 엘리사가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치니 물이 갈라지면서 요단강을 건넌 일(왕하 2:13-15)을 시작으로
물이 나빠 열매 맺지 못했던 물에 소금을 넣어 고친 일(왕하 2:19-22)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압에 승리할 것(왕하3:16-20)
비 없이도 시내에 물이 가득하게 한 일(왕하 3:16-20)
적군의 판단오류로 이스라엘 진영에 와서 도망한 일(왕하 3:21-23)
가난한 과부에게 기름 1병을 갖고 풍족하게 한 일(왕하 4:1-7)
수넴여인의 불임을 고친 일(왕하 4:12-17)
수넴여인의 죽었던 아이를 되살린 일(왕하 4:32-37)
국의 독기운을 제거하고 먹을 수 있게 한 일(왕하 4:28-41)
4명정도 먹을 부족한 음식으로 100명이 먹고 남긴 일(왕하 4:42-44)
아람 나라의 장군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왕하 5:1-27)
도끼를 물에서 떠오르게 한 일(왕하 6:1-7)
시리아 왕이 한 말을 이스라엘 왕에게 정보를 주어 시리아왕이 매번 괴로워하게 한 일(왕하 6:8-12)
아람 군대를 물리친 일(왕하 6:13-23; 7:6-8)
수넴여인이 살던 곳에 7년동안 기근이 임할 것을 예언 (왕하8:1-3)
아람왕 벤하닷의 죽음(왕하8:7-10)
하사엘의 왕위 계승(왕하8:13-15)
요아스의 승리(왕하13:14-19)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가 회생하는 기적(왕하 13:20-21)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람나라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치료한 것과 아람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자 사마리아를 포위하여서 사마리아에 큰 기근이 일어나 나중에는 아이들을 잡아 먹을 정도로 참담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네 문둥이들을 통해 아람군대가 물러가고 사마리아성에는 양식이 풍족해진 사건들을 들 수 있다. 4명의 문둥이에 의해 굶어 죽어가는 사마리아성안에 사람들에게 전해준 복된 소식을 들어보기로 하자. 열왕기하 7장 1-2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1.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하다
북이스라엘 여호아하스왕이 통치하였을 때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읍을 포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6:24-7:2).
전에도 이스라엘과 북쪽에 있는 아람 사이에는 전쟁이 있었지만 늘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왕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주므로 굴욕을 당했던 아람 왕은 소규모 습격으로는 이스라엘을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아람 나라 왕 벤하닷이 자기의 전 병력을 동원해서 전면전을 펼쳤는데 북쪽에서부터 군대가 밀고 오니까 이스라엘 군대는 계속 밀려서 마지막에는 수도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게 되어 아람 군대는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했는데 아람군대가 성안에까지 공격할 수도 있지만 공격하면 많은 사상자가 날 것을 우려해 성주위를 포위하고 이스라엘 왕이 항복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람왕 벤하닷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사마리아를 짓밟으려고 사마리아성에 옥쇄작전을 펴니 모든 도로와 교량은 봉쇄되고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못하게 사방이 포위되어 있었다. 사실 아람군대에 비하면 너무나 허약한 사마리아 군대는 대항 한 번 못하고 성안에서 숨 죽인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이 겹겹이 둘러싸인 채로 몇 달이 지나자 성중은 치명적인 기아상황에 이르렀다. 식료품과 생활필수품들은 이미 바닥 난지 오래이며 심지어 왕궁에 있는 비상식량마저도 거덜 나버렸다. 왕궁에 있던 말들마저 잡아 먹고 이제 남은 것은 겨우 말 다섯 필밖에 안남았다. 그러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굶주림이 지속되자 평소에 먹지 않던 나귀머리하나가 은 여든개에 팔릴정도이며 아이들까지 잡아 먹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졌다. 엄마들이 모여 제비를 뽑아 이번에는 내 집 아이, 다음에는 네 집 아이를 잡아먹는 천륜과 인륜을 논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일로 인하여 왕에게 나아간 두 여인은 오늘은 내아들 내일은 저 아들을 잡아먹기로 했는데 저 엄마가 아이를 숨겨놓고 내놓지 않아 이런 문제로 왕에게 왔다는 것이다. 왕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결국 자기 아들까지 잡아먹게 된 것이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어서 일어난 것이라는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저렇게까지 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다. 심지어 아합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람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였다(왕하6:31-33). 요람의 군대장관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엘리사를 불신하며 조롱하였다(왕하7:2). 그러나 엘리사는 왕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이 굶어 죽어가면서 이제는 자기 아들까지 잡아먹고 있는 이 백성들을 제발 도와주세요. 하나님만이 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분이시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데 대언자 엘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예언했습니다.
“내일 이맘때가 되면 이곳에 양식이 넘쳐날 것이며, 사람들은 배부름을 얻게 될 것이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는 엄청난 기쁨의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고통의 강도가 더 심해지고 해결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수 개월간 성안에 갇혀있던 왕을 모시는 한 장관은 오히려 이렇게 반박하였다. “주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7:2)” 진정 이 장관의 말처럼 사마리아성의 절망적인 상황은 하늘의 도움 없인 살길이 없고, 배부름의 날을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불신에 빠진 그들은 하나님도 해결할 수 없을 만치 완전히 절망적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장관의 말도 이해가 되는 것은 아람군대가 사마리아를 완전히 포위하니 보급로가 끊어졌기 때문에 성안의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삶아 먹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6:28-29). 성경에 보면 평상시 식량으로 생각지 않던 나귀머리나 비둘기 똥 같은 것들이 아주 비싼 값에 거래가 되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연명을 하면서 그 나마도 식량이 떨어지게 된 상태로 굶주린 사람들이 태반인데 이 와중에 성안 사람들이 주는 음식으로 연명했던 성문어귀에 있는 문둥이들의 비참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6.25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시의 전쟁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니(왕하6:24) 사마리아에 큰 기근이 있더라. 마침내 나귀머리 하나가 은 여든개에 팔리고 우리가 오늘은 네 아들을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으리라(7:1).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예언하기를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 정문에서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세겔에 팔리고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리라, 하니 (7:2)그 때에 왕을 부축하는 자가 이르되 보라 주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매 그가 이르되 보라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먹지는 못하니라. 하니라.
구약시대에 예수님처럼 기적과 이적과 예언을 한 선지자가 바로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선지자의 생도가 죽어서 과부인 아내가 생활비로 인하여 빚을 많이 져서 자식까지 종으로 보낼 뻔 했을 때 기름한병으로 수십병의 기름을 만들어 그 가난을 벗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도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이 치료해준 하나님의 종인데 그가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 정문에서는 밀가루와 보리값이 전쟁을 하지 않을 때처럼 정상적인 거래가 된다고 예언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의 말에 책임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내일 이맘 때 어떻게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겠는가?
(1)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네 문둥이들
(7: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가 어찌하여 죽을 때 까지 여기 앉아 있으랴?
(7:4) 우리가 성에 들어가리라. 우리가 거기서 죽으리로다. 우리가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에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우리가 살려니와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니라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들어가니 그곳에 한 사람도 없더라.
전쟁중에는 모두 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에 그 중에 더욱 비참한 사람들이 바로 성 어귀에서 성안사람들이 주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는 문둥이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문둥병이라고 하지 않고 나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병은 무서운 전염병이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을 육지로부터 뚝 떨어져 있는 소록도같은 섬에 격리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리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사회적으로 말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일자리도 구할 수 없으니 거지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문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회 전체가 비참한 상황 가운데에 떨어지게 되니까 그 가운데에서도 소외되고 힘도 없고 연약하고 돈 없는 사람들이 더욱 희생을 당할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이 바로 문둥이 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성 외벽 어느 그늘진 곳에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문둥병으로 네 사람이 격리된 채,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으로 겨우 연명하며 살았는데 전쟁으로 인한 고난과 절망은 이 네 문둥이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재산도 있고 건강도 있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특권층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나병환자들의 처지를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성문에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면 이렇게 앉아 있어도 죽고, 성 안에 들어가도 누가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어차피 죽을 바에야 아람 적진에 가서 항복하고 그 사람들이 살려주면 감사한 일이고 죽이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왕 죽을 목숨이니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거기에 가서 항복하고 혹시 살길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했다. 이 상황을 한 번 재구성을 해 보았습니다.
그들 문둥이 4인방이 머리를 맞대고 한자리에 모여서 긴급 대책 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첫째 사람이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죽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아무리 문둥이라지만 생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 문둥이가 된 것만도 비참한데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않고 굶어죽기를 기다린다는 건 분명 잘못이다. 우리가 문둥이나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둘째 사람이 잇달아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으니 무엇이든 한 번 해보자.”
셋째 사람이 제안합니다.
“죽기를 불사하고 아람군대에 한 번 가보자. 문둥이가 된 우리들을 적(敵)이라 하고 죽이기야 하겠는가? 군인들이 하찮은 문둥이들과 싸우려고 하겠는가? 정 안 통하면 이 썩어가는 일그러진 손을 들고 항복하면 되지 뭐!”
이에, 넷째 사람이 결단을 선포했습니다.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일어나 가보자. 지금 황혼녘이니 늦어지면 어두워서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되니 일어나 나가자! 나는 시력이 없으나 너는 눈이 있고, 자네는 한쪽 다리가 없으나 성한 양팔이 있다. 또 자네는 성한 팔이 없으나 성한 다리가 있으니 우리 서로가 조금씩 도우면 우리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넷이서 회의를 마치고 결단이 서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로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몸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몸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과 목표와 방향이 하나로 모아져야 합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을 모았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오직 하나 되자!” 구호도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최악의 장애인이 된 각자의 몸과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 적진을 향해 한걸음씩 한발자국씩 내딛었다. 때로 한사람이 비틀면서 넘어지면 모두가 다 넘어지기도 하였지만 다시 일어서서 전진하였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들을 하나로 모은 터라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끙끙 하기도 했습니다. 땀과 눈물과 한숨이 어우러져 “아이쿠!” “잘한다!” “할 수 있다!”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부축해가며 전진하다 보니, 벌써 아람나라 군대의 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괴물같이 일그러진 얼굴에 목소리도 온전치 못해 그들이 지르는 괴상한 음색과 시끄러운 목소리는 언뜻보면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렇게 시끄럽기 짝이 없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주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적이 나타난 줄 알고, 전부 다 매복해 버렸는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대혼란을 겪은 듯 사방이 마구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방패며, 투구며, 칼들, 은금보화와 양식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채 나둥그러져 있습니다. 사마리아성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걸인 문둥이 4명을 그 시간에 쓰신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기도응답으로 ‘쓰실 자’를 찾아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겁 없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결심으로 나아가는 거지 문둥이들이었습니다. 칼 한자루도 들 수 없고 말도 탈 수 없는 사람이요, 물맷돌 하나 못 던질 문둥이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이구!” 탄식소리, “어디한번 어떻게라도 해보자!”라는 구호소리, “할 수 있다!”라는 격려소리, 그리고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비틀거리며 내는 발자국 소리, “꿍!”하면서 넘어지는 소리조차 쓰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네 명의 문둥들 소리가 아람적들을 물리치다
아람군인들이 물러간 상황을 열왕기하 7장 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로 하여금 병거소리와 말소리 곧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보라 이스라엘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족속의 왕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왕들을 고용하여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그들이 무조건 도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에서 나타난 소리들을 큰 군대의 말발굽 소리, 함성 소리, 전차 소리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소리를 하늘의 군대 소리로 바꾸어 마치 천지가 진동을 하는 것 같은 소리로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 문둥이들과 하나님께서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그 거칠고 시끄러운 소리, 비틀거리는 발자국소리, 턱에 닿는 다급히 몰아쉬는 숨소리, 서로 발걸음을 맞추고자 외치는 구호소리가 거대한 군대의 함성 소리로 굉음을 울리는 병거와 수만명들이 외치는 병마의 포효소리로 들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약함, 우리의 탄식, 우리의 절규, 우리의 작은 함성도 우레와 같은 하늘권능의 소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믿음으로 그들이 성에 들어갈 때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함께 하니 그들의 걸음소리가 큰 군대 소리, 병거 소리로, 말굽 소리로 들리게 되니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여 그들은 무조건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보통 같으면 척후병을 내보내서 상황을 살펴 볼 텐데, 그럴 겨를이 없었고 너무나도 갑자기 귀에 큰 소리가 들려오니까, 너도 나도 그냥 다 내버려 두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성경에 보면 말과 나귀가 매어있는 그대로, 천막을 쳐둔 그대로, 모든 물건을 둔 그대로 몸만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그들이 말 타고 달려가지도 못하고, 그냥 말도 그대로 묶어둔 채 모든 것 다 내버려두고 도망 쳤을가?
사실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나병 환자 네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네 명의 나병환자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연약한 것 같아도 믿음으로 걸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모든 군병들이 물러갔으니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적을 물리치시는데, 칼 한번 안쓰고 피 한방울 안흘리고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소리, 군대의 소리, 병거의 소리를 들려줌으로 인해서 아람사람들 마음에 극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서 그들을 다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한 적들을 다 물리쳐 버리고 구원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해질 녘에 문둥이 4명이 아람 진에 도착하여 그들이 조심스럽게 천막안에 들어가니까 천막 안에는 금방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지 따끈따끈하게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며칠동안 굶주림으로 배고팠던 문둥이들은 실컷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이 실컷 배를 불리우고 나니 이젠 물질에 욕심이 생겨 천막마다 돌아다니면서 금, 은 보물, 옷가지들을 챙겨서 숨겨 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거지들은 굶주림으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정말 이 거지들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구원 받게 된 것은 저들의 노력이나 인간의 행위가 하나도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자리에서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2. 기쁜 소식을 전한 네 문둥이들 (3-11)
이 거지들이 들어가서 실컷 먹고 마시고 배가 부르고 이젠 물질까지 챙기고 나니까 갑자기 정신이 들었습니다. 성 안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백성들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왕하7: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선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우리 동포를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선치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전까지는 굶주린 배를 채우느라 생각지 못했는데, 배가 부르고 정신이 들고 보니까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여러분, 돌이켜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 거지들은 거지문둥병이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멸시천대받고 사람대접을 못 받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구걸했을 때에 제대로 먹을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고 짖밟힌 사람들이고 사람대접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해서 한이 많은 사람들이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동포이지만 평상시에 잘 먹고 잘 사는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에 대해서 한이 맺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감사한 마음이라든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거지들이지만 그러나 지금 이순간 자기들 먹을 것을 얻고 생명을 구원 받은 후에 성안에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람이 굶어 죽어 가고 있을 때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가서 구원하도록 다른 사람에게 알리든지, 자기가 구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든지 어쨌든 죽어가는 사람을 구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그들 혼자만 살고, 성안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릴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아름다운 소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잠잠히 있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잠잠히 있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언젠가는 아람 군대가 다 도망가고 먹을 것이 풍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텐데 자기들이 알리지 않고 소문에 의해 알려졌을 때에 왕에게 벌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고,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천벌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했습니다.
그래서 왕궁으로 달려가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3. 살아난 사마리아성 사람들 (10-20)
네 문둥이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자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오늘같이 좋은 날에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될 것이라. 그래서 이 거지문둥이들이 밤중에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서 자신들이 아람 군대가 있는 진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그들이 다 물러가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모든 보물들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성문지기에게 전했습니다(열하7:9).
그들이 성문지기에게 이야기하고 성문지기가 왕에게 보고하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확인하여 보니 아람 군대가 도망 갔고, 모든 것을 남겨 놓아서 모든 성읍 사람들이 달려 나와 음식을 먹고 그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명했습니다. 성안의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람 진에 가서 먹을 것을 얻게 되었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왕하7: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세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에 팔리니 이에 주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둥이들이 전한 기쁜소식으로 사마리아 성에 있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말씀을 전했는데 그대로 응해지게 된 것입니다.
D. T. Niles 라는 선교학자가 있습니다. 그 선교학자는 전도에 대해서 재미있게 정의를 했습니다. 전도란 ‘거지 한 사람이 다른 거지에게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굶주려 있는 거지가 먹을 것을 얻게 된다면 다른 굶주린 거지에게 먹을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당연한 마음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서 생명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생명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생명구원을 받았습니다. 생명구원을 받고 천국에서 영생한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나 혼자만 누리고 영생을 모르고 죽어 가는 자들이 있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으면 우리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혼자 예수님을 믿으면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기쁜 소식은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할렐루야. 여러분, 가장 기쁜 소식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다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놔 두면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심판 받고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죄인까지도 사랑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은 생명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행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생명을 구원 받은 자들인데, 이 아름다운 소식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혼자서만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 구원할 소식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이 아름다운 사실을 감사하고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 거지들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을 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거지들이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니까 자기들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복된 소식을 받아서 다 생명구원 받게 되었고,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바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의 근원을 삼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만 복된 소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때에 다른 사람들도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구원받아서 생명구원 받은 아름다운 소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가진 우리주위에 아름다운 소식을 듣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가족 가운데 아니면 친구들 중에, 직장동료 중에 그런 분들이 없습니까?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의 대상을 정한 다음에 할 일은 그 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기도 하고, 사랑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서 그 분이 겪고 있는 육신적, 정신적 문제를 듣고 사랑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의 믿음을 담는 그릇이어서 하나님의 믿음을 받게 되면(막11:22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모습마저 닮게 되고 방향도 걸음걸이의 보폭도 같아져서 그야말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창5:24)
왜냐하면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천군천사도 땅 위의 성도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은 (마6:10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처럼 위대하고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자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곤고할 뿐입니다.
사마리아를 봉쇄하고 있던 아람군대는 며칠만 지나면 곧 승리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항복하면 수많은 전리품을 얻게된다면 아람왕이 하사하게 될 은금보화로 엄청난 부자가 될 꿈에 아람군대는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며 온천지를 진동시키는 어마어마한 굉음을 듣게 되자 혼비백산 했습니다.
일찍이 천지가 그렇게 요동하는 것을 들은 바도 본 바도 없었습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눈앞이 아득한데 무릎은 떨리고 뼈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방향도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사마리아성이 보이지 않은 곳으로만 멀~리 더 멀리 도망쳐야 살 수 있다는 단 한가지의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모든 것들을 다 내버려두고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육까지 먹던 그 처참한 사마리아에 “하늘에 창을 낸들 구원이 있겠는가?”하고 절망했던 그들에게 걸인 문둥이 넷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렇게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면 예상외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모세도 나이 80세 할아버지 때, 아브라함도 무려 75세 이후에 부름 받고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쓰임받게 될 날이 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성 안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문둥이들 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시다가 오죽 없어서 걸인 문둥이들을 쓰셨겠는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걸인 문둥이들이 쓰임 받게 된 구체적인 이유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 몸은 문둥병으로 처참하게 약해졌지만 마음만은 희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냥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전진하였던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아람군대의 진영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절망 가운데 처했든지 절망 중에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시편 46편 1절에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아멘.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우리들을 언제나 건져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게 채워 주시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붙잡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꿈과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여리고가 무너진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임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에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쓰신 사람들을 보면, 종종 예상외의 인물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율법사들이 쓰임 받음직한데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예상외의 인물들인 어부, 세리, 창녀들도 크게 쓰임을 받은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문둥이들은 생각했습니다. 성한 사람들도 다 굶어 죽어 가는데 짐승 같은 우리에게 이러한 풍성한 축복을 주셨다는 것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주셨는데 잠잠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은혜를 깨닫고 회개에 이르게 됩니다(왕하 7:9). 하나님의 은혜와 동반하는 축복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행 2:37-38).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나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면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만히 있으면 죽고 움직일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왕하 7:3). 믿음은 행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믿음이 온전해 집니다. 행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전도하러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막16:20).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버릴 때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십자가 정신입니다(왕하 7:4).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왕에게 나아가니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자신도 살게 됩니다(에 4:16).
문둥병자들은 시간의 긴박성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밤을 넘기면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시간의 긴박성을 가지고 일을 한 것입니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룬 것이 아닙니다(왕하 7:9). 우리가 전도할 때도 우리의 가족 중 불신자가 있다면 내가 오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사고로 전도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딤후 4:2). 지금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시간의 긴급성을 가지고 불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자기 집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11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그럼 비가 오는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는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눠준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이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시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나이 많은 여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께 이 전도지를 전해드리러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 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나이 많은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하늘의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후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생기발랄한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감동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4) 엘리사가 예언한 복된 소식을 불신했던 장관 운명은? (20절)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그처럼 쓸모없는 사람들로 보였던 문둥이들을 통하여 전하여졌던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시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고전1:26-29). 그러나 엘리사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장관은 성문을 지키다가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17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복음을 배척하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을 보여줍니다. 문둥이들을 통하여 구원의 큰 소식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핑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 부담을 갖는 것은 전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그리스도안에서 구원 받을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택한 영혼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셨으면 내가 전도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선택한 영혼이기에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대로 만나라면 만나고, 무엇을 가져다주라면 가져다주고,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 입니다. 그것은 전도의 주체가 성령이심을 알게 되었고, 전도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심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 하나님과 연합하여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씨를 뿌리는 자, 물을 주는 자, 추수하는 자로 분류되어 있지만 전도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파된다. 나병환자들이 아름다운 소식을 가장 먼저 친구들과 나눈다(9절) 그리고는 즉시 왕궁으로 가서 성읍 문지기에게 전한다(10절). 그 문지기는 즉시로 다른 문지기들을 또 불러 전한다, 그리고 왕궁에 있는 자들에게 그 아름다운 소식이 전달 된다(11절). 마침내 그 소식은 밤중에 잠자고 있던 왕에게까지 전달된다(12절). 복음은 늘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달된다. 때로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을 통해 전해짐으로 복음이 확장된다.
예수님을 통해 열두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또 그들과 사도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었듯이 아름다운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통해 전파된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복된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산을 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선포했다(사 52:7). 과연 우리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복음인 기쁜 소식은 이미 선지자 엘리사에 의해 예언되었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엘리사가 복된 소식을 전한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세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세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7:1)”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식이었다. 성 밖에는 여전히 아람군대가 둘러싸고 있고, 기근은 하루 아침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걸 옆에서 들은 왕의 측근인 한 장관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늘에 창들이 뚫어지지 않는 한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7:2) 엘리사는 그 반응에 당신은 그걸 볼 수는 있지만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7:2). 그리고 실제로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 장관은 성문에서 그 책무를 하다가 식량을 얻기 위해 급히 성문을 빠져 나가는 백성들에 의해 밟혀 죽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유대땅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위에서 죽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죽음이었고, 그가 부활했던 것도 나를 위한 부활이라고 외치면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지 모르나 그것이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만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결국 영원한 멸망이 있을 뿐이다.
가장 비참한 나병환자들이 아름다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했고, 가장 먼저 알렸다. 오늘날에도 죄로 인한 비참함을 아는 자들이 가장 복된 소식의 최고의 수혜자요.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고 있다. 우리는 죄요어 받은 사람인 것을 잊지 말자.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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