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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 목베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구출되다
    말씀 2019. 5. 5. 10:27

    목베임을 두려워하지 않은 베드로가 구출되다 12:1-19

     

    오늘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요한복음141절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안드레의 형이며(6:14) 빌립 안드레 베드로는 모두 벳세다에 사는 어부였는데 베드로는 안드레로부터 예수님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불러 주셨다. 그리고 누가복음 51-10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택함을 받았던 것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게네사렛호수에 오셨을 때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허탕을 치던 날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를 타시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후 예수님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으나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던지니 심히 많은 고기가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 이 때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앞에 엎드려 이르되 오 주여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 내게서 떠나소서 하였던 사람이 베드로이다(5:3-8) 이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살아왔던 어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사람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였던 제자들로서 기도하러 높은산에 올라갔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변하신 모습과 이미 죽은지 오래된 모세와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를 볼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도 하였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때는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을 때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16:13-18)고 베드로를 향해 네 이름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놀라운 말씀을 들었던 제자가 베드로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물으실적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말했을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먹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50일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였을 때 위로부터 성령님이 임하셔서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은 후 교회는 이 땅에 처음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성령충만을 받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는데 그 때 전했던 베드로의 설교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져 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하였던 설교를 오순절 설교라고 하는데 한번 보겠습니다.

     

    1.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2:4-42)

    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혀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오전 9시이며 이때는 유대인의 기도시간) 너희 생각과 같이 이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렸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질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를 밝힌 것)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주의 날은 불신자에게는 최후심판의 날이고 성도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적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시편16:8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을 조상이라고 한 것은 다윗이 그리스도 가계의 머리라는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오른손은 강한 능력및 권능을 상징)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시편110:1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 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있으라 하셨도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이 고난, 죽음, 부활 승천 등을 통해 메시아 직분이 온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주와 그리스도라는 칭호의 참된 의의가 밝혀진 셈이다. 주는 이방세계의 예수님의 호칭이고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부르는 유대인들의 호칭이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를 못박는 일에 직접 가담했거나 동조했던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들도 이제 예수를 부할하신 주로서 시인하고 메시야로 받아들이며 깊이 뉘우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들의 마음이야말로 죄책감으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던 가난한 세리의 심령 그 이상인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무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진정 메시야였다면 그가 재림하실 때에 범죄한 백성들에게 진노를 퍼부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애통해하면서 사도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한 세대는 하나님 심판을 받았으나 이제는 예수를 죽이는 데 동참한 자라도 구원받을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 복음을 믿는 것)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3000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베드로의 설교 내용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시면 교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불러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1) 최초로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다

    1) 예수님의 언약 위에 세워진 교회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기간 교회에 관해 유일하게 언급하신 본문이 마태복음 1618절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주십니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받은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 강림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를 놓고 간절히 기도한다.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리고 성령 강림을 대망하며 기도했던 그들 가운데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불의 혀처럼 갈리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이고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진 후 사도행전 2장으로 넘어와 성령 받은 베드로가 요엘서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한 것이 오순절 설교이다.

    성령 강림은 이미 오래 전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이고 그 예언된 말씀이 오늘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나오는데, 그 메시야가 바로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밖은 예수라고 선포합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회개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그 날의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교회의 창립 조건 첫 번째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에 있었다.

     

    2) 언약의 성취를 열망하며 기도로 세워진 교회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기 전까지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말라는 언약을 받은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오순절날에 응답됩니다. 오순절 이후 교회는 자연스럽게 세워지게 되는데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와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가 최초로 세워졌는데 교회는 인간이 조직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고예수님의 언약의 성취이고, 예수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이 세운 그 어떠한 공동체와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교회는 누구의 교회가 아닌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것이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이것은 결국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주어진 성경 66권 안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이 오늘 내가 속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결국은 기도가 응답되심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

    말씀과 기도 위에 세워진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공동 소유) 것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누가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음에도 서로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그로 인해 서로의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45절에 보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간 나의 필요만 채우기 급급했는데성령이 임하시니까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실제적인 나눔과 섬김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라는 것이다.

    통용과 나눔이라는 이 두 단어는 '코이노니아'라는 헬라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성도의 교제라는 단어가 코이노니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으로 말하면 성도의 교제는 같이 식사하고 차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옆에 있는 지체의 부족과 모자람을 내가 가진 것으로 채워주는 일종의 여러 행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이 성령이 임하고 난 뒤 너를 위해 사는 인생으로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물질의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46절에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두 가지 모임이 함께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과 가정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예배 후에는 받았던 은혜에 대한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을 기반으로 한 애찬을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 함께 모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며 자신들 또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매일의 가정 모임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나눔과 섬김과 베품을 경험한 그들의 입술에서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이전에 받거나 누리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니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이런 영광된 모습을 본 주변인들이 교회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아직까지 교회가 외부인들에게 전도를 한 상태도 아닌데 그저 성령에 이끌려 세상이 하지 못한 사랑을 실천했을 뿐인데, 밖에 있는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고 놀라면서 아름답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원하여 예루살렘교회에 등록한 것입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7). 나도 이런 공동체에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소망을 품은 이들이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 사역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오순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유대인 들은 제자들의 방언을 듣고 새 술이 취했다고 사도들을 향하여 조롱을 하였습니다(2:13).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와 이적으로 나타난 방언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담대하게 그들 앞에 서서 두 번째 설교를 하였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의 9개의 설교(1:16~22; 2:14~41; 3:12~26; 4: 8~12; 5:29~32; 8:20~25; 10:34~43; 11:5~17; 15:7~11)가 있는데 행214-41의 설교가 오순절 설교인 것입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그렇듯이 당시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말씀인 욜2: 28-32절을 인용하여 오순절 설교의 진의를 설명하였던 것입니다성령 강림의 역사는 말세, 메시야 시대에 일어나는 징조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메시야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이 참 메시야가 되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베드로는 이 설교의 핵심을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에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느니라 하니라(36). 

    바로 이 말씀은 이 설교의 핵심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는 시편(16:8-11; 110:1)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 후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의 왕위에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시편(89:4; 132:11)에서 메시야의 부활을 예언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으므로 예수는 곧 메시야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4) 오순절 설교의 결과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는 단번에 3천명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성령강림 후 일어나는 최초의 회개운동으로서 성령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베드로의 설교 핵심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햐셨다는 것인데 이 설교에 감화된 성도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그들을 회개하게 하였고, 침례를 받게 하였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을 받게 하여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약속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3천명을 회개케 한 베드로의 설교는 성령 안에서 모든 담이 헐리고 하나가 됨으로서 모두가 하나님나라의 시민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2. 교회성장과 더불어 찾아온 핍박

    이 때 베드로가 나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였더니 하루에도 삼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교회가 날마다 성장하게 되어가던 때에 헤롯왕에 의해 야고보라는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하다가 칼에 목베임을 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야고보가 죽고 나니까 이제는 그들이 베드로, 베드로. 죽여라! 베드로를 잡아라! 이렇게 핍박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께서 살아계시니까 내가 잡히는 것도 주의 뜻이고 그러면 나는 잡힐 뿐이고, 죽으면 천국 가면 되니까, 나는 전할 걸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다가 잡혔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사도행전 12장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12:1-19)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고 할새 때는 무교절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한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어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너무 기뻐서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본문의 헤롯 왕은 아기 예수를 살해하라고 명령한 헤롯대왕이 아니라, 그의 손자인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는 로마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권을 받아 다스렸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 유대교적인 정책을 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였는데 그 와중에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칼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12제자들 중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로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세 명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과 요한을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를 부탁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급해서 주님이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본문의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나 예수님의 친 동생 야고보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제 공권력에 의한 헤롯왕의 박해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베드로를 죽이고자 옥에 가두었는데 그때가 무교절 즉 파스카라는 절기가 끝난 후에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어 죽이고자 하였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 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의 손에서 벗어지더라(12:6-7). 옥에 갇힌 베드로는 감히 탈출을 엄두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탈옥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인데 한 마디로 베드로는 도저히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인데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깊은 잠을 자는 베드로를 깨웠다는 것이였다. 베드로를 깨웠던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사람처럼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천사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천사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성경의 모든 기록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도 하나님도 부인해야 합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싸울 싸움은 악한 영적 세력들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을 돕는 존재가 천사들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천사가 없는 영적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하여 싸우는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그런 권능이 우리 안에 있으며 보이지 않는 능력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잠재되어 있는 권능을 수면 위로 띄우게 하는 것이 전적인 주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천사의 도움입니다. 천사를 부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아예 탈출할 꿈도 못꾼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밤중 갑작스럽게 조용히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고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의 손에서 벗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하여 베드로는 따라갔습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쇠문이 이르니 그 쇠문이 저절로 열려 베드로가 한 거리를 지나니 그 천사는 곧 떠나 갔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정신이 들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구출하여 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가니 밤늦도록 사도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리자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문열려고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뻐 미처 문을 열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박에 서 있다고 말하였으나 그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옥에서 나오게 하여 주셨음을 말하고 이 일을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수많은 박해와 핍박, 흩어짐과 뿌려짐, 질시와 소외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 박해가 스데반을 공개 처형하는 사건이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흩어졌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곳들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립니다. 복음이 주는 부활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그러나 박해는 계속됩니다. 복음의 씨앗을 말려 죽이거나 혹독한 압제로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읽노라면 마치 출애굽기의 첫 장들을 읽는 느낌이 듭니다. 바로의 혹독한 박해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더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박해는 갈수록 혹독해집니다.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며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합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 번성하여 집니다(1:11-12). 절정으로 치닫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극복하는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죽음에 처한 이스라엘 자손은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바로가 내린 죽음을 극복하게 된다는 종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민족으로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 언약백성의 탄생 이야기와 신약 교회의 탄생 이야기는 흡사합니다. 모두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이며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이 말하기를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의 뜻이 생각되어 집니다. 순교자의 원형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교회가 왜 핍박을 받았는가?

    오늘 초기교회의 박해상황은 야고보의 순교로 시작된 것입니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로 열두 사도 중 하나였으며 예수를 따른 최초의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누가 5:10; 6:14; 행전 1:13).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최측근 삼인방을 이룰 정도로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제자였습니다(참조, 누가 8:51; 9:28,54). 그가 목베임을 당해 죽은 것은 스데반의 죽음 이후 잠시 평온했던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 큰 풍파를 예고하는 시그널이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아무런 무기도 없는 사도 야고보를 참수했단 말입니까? 그렇게 복음이 두렵다는 말입니까? 왜 헤롯이 초기 교회를 박멸하려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가 교회를 핍박하였던 것은 정치가로서 정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다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유대 지역은 유대교의 적극적 지지 없이는 다스리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였습니다. 따라서 유대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유대교 가운데 바리새파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것이야 말로 체제유지를 위한 중요한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핍박하고 처형한 일에 대해 유대인들이 보여준 반응 속에 잘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헤롯이 야고보를 칼로 죽인 일)을 기뻐했다(3)는 것입니다. 헤롯은 유대 종교인들의 민심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헤롯의 전략은 기막힌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헤롯왕의 처사에 얼마나 큰 환호와 찬사를 보냈을지 상상이 갑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사도 야고보는 정치가 헤롯과 열혈 종교인들인 유대인들의 저열한 야합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초기 교회의 발흥에 대해 극심하게 핍박했을까? 교회가 유대인들이 믿는 신앙 체계에 강력한 도전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좀 더 실질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그들 유대교인들이 누렸던 기득권들이 교회에 의해 강력하게 도전받는다고 생각하였고 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서면 유대교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말입니다. 유대교 자체가 몰락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유지하는 장치들이 끊어진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헤롯 왕에 압력을 넣어 반체제적인 신흥 종교인 기독교의 싹을 초장부터 잘라버리는 것이 당신이 다스리는 이 나라에 평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신호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정치가들에게 국가의 평온보다 더 좋은 꿈과 환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헤롯은 칼을 들어 예루살렘 교회의 심장부를 겨누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 지도자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옥에 가둡니다(3) 그것도 무교절 기간에 말입니다.

     

    (2)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

    졸지에 야고보를 잃은 예루살렘 교회는 아마 패닉상태로 빠졌을 것입니다. 야고보가 순교를 하고 베드로마저 체포되어 투옥된 예루살렘 교회는 큰 위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앞으로 불어 닥칠 태풍 앞에서 예루살렘 교인들이 할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었습니다! “함께 모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 증언하는 교회입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며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1:14). 사도들 역시 기도하는 일에 힘쓰겠다고 약속한 일도 있습니다(6:4). 본문에 따르면 위기가 닥치자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였다(12:12)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5). 옥에 갇힌 베드로가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없으며 베드로 역시 야고보처럼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절벽 같은 상황 앞에서 그들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초기 교회는 요즘처럼 교회당 건물이 없었지만 그들은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공동체의 간절한 합심기도였습니다. 간절히(5)라는 부사는 전심으로 몰두하여 열정적으로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공동체 기도입니다. 이게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위기에 있을 때 문제를 앞에 놓고 공동체가 합심하여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하늘에 상달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 기적적인 구출

    천상의 메신저인 천사가 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나타납니다. 베드로서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꿈꾸듯 한 대탈출이 이뤄집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내려쳐 깨웁니다. 결코 꿈이 아니라는 듯이 말입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지시대로 그대로 합니다(8).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천사를 따라갑니다. 옥을 벗어나 거리에 나오자 천사는 떠납니다. 비로소 정신을 찾은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11).

    격랑의 시간 속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는 뭔가에 홀린 듯이 따라갈 뿐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맨 정신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쇠사슬에 채인 발목은 현실입니다. 사방에 둘러싼 옥지기들은 실체입니다. 한 점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동굴은 실재입니다. 그곳에서 빛난 광채를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뭔가에 홀리듯이 끌려갈 뿐입니다. 그렇게 어둡고 캄캄한 긴 터널을 지납니다. 첫째 파수와 둘째 파수를 지나 마지막 쇠문까지 이릅니다. 얼떨결에 바깥에 나왔습니다. 거리엔 사람들이 보입니다. 비로소 옥에서 풀려난 것을 느낍니다. 그때서야 고백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기막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내가 한 것이라고 아무 것도 없었다고. 그저 꿈꾸듯 뭔가에 이끌려 따라왔을 뿐이라고. 이런 것이 뒤돌아서서 바라본 우리의 질곡 같은 삶의 궤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앙적 언어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섭리는 신앙고백같은 용어입니다.

    한편 마리아의 집에 모인 교회는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밤늦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 베드로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빠른 시일 내에 베드로가 무사히 석방되게 해달라고? 여러분이 그 경우에 함께 있었다면 무엇이라 기도했을 것 같습니까? 그들처럼 우리도 사도 베드로의 건강과 믿음과 석방 등을 놓고 두루 기도했을 겁니다. 모두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드로가 그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곳을 찾아 대문을 두드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의심과 놀람이었습니다(16). 마치 베드로도 자기가 구출 받게 된 것을 환상을 보는 듯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베드로의 나타남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를 했어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도는 진실성이 없었단 말인가요? 기도해 놓고도 정작 기도한 것이 이뤄지니까 못 믿겠다고 하는 반응은 신앙이 없어서인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절박할 때 드리는 기도는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매달리면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대문을 두드리는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베드로 사도께서 오셨다고 외친 어린 하녀 로데의 말에 너 미쳤구나!라고 말한 사람들이나 지금의 우리가 그런 경우에 보여주리라고 생각되는 반응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믿음이 없어서거나 아니면 진실하게 기도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베드로가 풀려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적법한 절차에 의해 풀려나기를 소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베드로가 풀려난 소식에 의심했고 풀려난 실제에 놀랐습니다. 본문의 가르침 따르면, 그들의 기도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기도응답에 대해 그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분에 넘치는 방식으로, 아니 그들이 차마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들이 간구했던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기적의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의 소식은 언제나 우리의 지상적 기대들을 넘어서는 하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놀람과 경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적절한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가 우리의 업적이나 공로나 내세움이 될 수 없다는 궁극적 이유입니다. 심지어 가장 간절한 기도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를 옥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로부터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4) 베드로의 간증듣고 전하라!

    베드로의 구출에 환성을 지르는 그들에게 베드로는 조용하라고 부탁합니다.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돌아온 베드를 눈으로 보고 놀라고 흥분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공동체에게 사도 베드로는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을 귀담아 들어보라고 합니다. 복음은 보는 일보다는 듣는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출해 내신 일을 들려줍니다.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라고 부탁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갑니다(17). 마치 출애굽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신약의 교회들도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는 그분의 위대한 구원사역을 교회는 반복해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에 신자들이 교회에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위대한 구원에 대해 들었으면, 이제 그 구원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야할 시간입니다. 복음을 차분하게 들으십시오. 그리고 들은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십시오!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먼저 듣고 전해야할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이미 죽었고 또 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기는 베드로도 잡혀서 이제 처형만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베드로의 구출을 위해 교회는 과연 무엇을 기도하였을까?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하겠는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소서!’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가 무슨 목표를 정하여 놓고서 매달리는 강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한걸음도 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진정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란 날마다 쉬지 말고 이러한 기도를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27-31)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나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핍박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당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나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담대히 증거하게 하옵소서 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죽으면서 베드로는 구출됨으로 주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를 당하든 기적적으로 구출을 당하든 주님께서 실패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주님의 일을 계속하시고 계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11절의 말씀인데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11:11)고 합니다. 이후로 베드로가 어디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살았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오직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위하여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행복침례교회가족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는 순간 이미 우리는 세상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런상황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듯이 고난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렇게 주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뛰어난 믿음때문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런 주님의 통치와 간섭이 보이지 아니한다고 해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옥에 갇혀서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그 순간에도 한숨 푹 잘 수 있는 하늘의 평안으로 평강을 누렸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늘의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주어지는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주께 구하여야 할 참된 기도가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손길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행복침례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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