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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3 첫째 계명을 저버린 신사참배의 후유증
    말씀 2018. 8. 19. 20:05

     

    첫째 계명을 저버린 신사참배의 후유증 20: 1-6

     

    1945815일 광복을 맞이한 우리들은 너무나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뛰어나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민족들이 이 땅에 수천년간 살아오면서 아마도 73년전 그 날 일본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었던 8.15 광복절 날만큼 기뻐했던 적이 어디 있었겠는가? 온 국민들이 태극기 들고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면서 외쳤던 광복절은 우리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스러운 날이 아닌가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10822일 한일 합방으로 조선왕조는 27519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고 조선반도는 나라를 잃고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다가 35년만에 나라를 찾았던 것이다.

    나라없는 설움이란 당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여도 실감이 날 수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을 위해 태평양 전쟁에 나가 목숨바쳐 싸우다가 죽어가고 처녀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리개로 살아야 하고 일반 사람들은 군수공장이나 탄광에 끌려가 노동하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농사곡물은 거의 다 공물로 받쳐 먹을 것이 없는 가난에 찌들리니 이런 비극이 이세상에 어디 있을까? 한마디로 꿈이 없는 민족으로 백성들은 절망속에서 배고픔으로 지쳐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815일날 갑자기 해방을 맞은 것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역사연구이다.

    지금도 광복절만 되면 누가 독립운동을 하고 그 후손들이 국가유공자로서 특별대우받고 있다는 것이 TV에 나오는데 나도 그런것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해방한 것은 당시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었던 독립군이나 임시정부의 역할과는 전혀 전무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방전 국내에서는 일본 총칼앞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고 혹시 발각이라도 되면 집안전체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 땅에서는 독립을 위해 아무런 액션도 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니 독립운동 후손이니 하면서 존경받는 것을 보면 좀 이상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이런 해방을 주신 분이 누구인가? 물론 독립을 위해서 독립군도 있었고 임시정부도 있었지만 그들의 힘은 너무 미미한 존재였으므로 독립군이나 임시정부의 힘으로 나라를 찾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조금전에도 언급하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건국100주년 운운하면서 임시정부가 건국의 시점이라고 국민을 속이고 있는데 주권이 없는데 무슨 건국이란 것인지 그저 아리송할 뿐이다. 저는 단언하건데 우리가 광복을 찾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고 눈물로 기도한 믿음의 선배들의 간구로 하나님께서 광복절을 주셨다고 생각하면서 광복절을 맞이하였으니까 지금의 대한민국이 생긴 것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일합방을 전후로 이 땅에 미국 선교사들을 보내주셔서 무지한 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복음을 들은 백성들은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찾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는데 그것은 하나님만이 우리 나라를 찾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교회와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는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교회가 아니면 어디 가서 이 억울하고 애절한 마음을 토해낼 수가 있을까요? 당시 교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교회는 하나님앞에 나아가 나라잃은 울분을 낱낱이 아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중에서 부르짖었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들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종살이할 때 그들은 울부짖어 기도했던 그 기도가 우리민족의 기도였으리라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 민족이나 고통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7 :7-8)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8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는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더 확실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33 :3) 3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또 빌립보서에는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염려하지 말고 받은 줄로 알라고 권고하셨습니다.

    (4 :6)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위에서 소개한 이런 성경말씀을 가지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기도할 때마다 이나라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였던가? 우리들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몰라서는 안됩니다. 진실로 우리믿음의 선배들이 이런 기도를 하였다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택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였던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나라도 교회와 성도들이 해방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였기 때문에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주신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해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통하여 우리나라에게 해방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통해 처음에는 일본이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공습하여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은 짧은 시간내 진주만의 패배에서 벗어나 원폭전 6개월 동안에는 일본 67개 도시에 집중 폭격을 가하면서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끝까지 저항했다. 결국 미국은 전쟁을 종식시키고자 194586일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투하를 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 폭탄에 의한 사망자만 히로시마에서는 140,000명정도, 나가사키에선 80,000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사망자의 절반은 원폭투하 당일에 집계된 것이다. 이런 전쟁피해는 인류 역사이래 처음있는 일로 일본은 815일 미군장군 맥아더앞에 무조건 항복 함으로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 것이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한 것이 해방의 진실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맞이한 해방도 알고보니 그 해방은 사실 반쪽짜리 해방이었다. 한반도는 38도 선을 기준으로 북쪽엔 쏘련군이 들어와 김일성을 앞세워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웠고 남쪽은 미군정이 들어와 대한민국의 건국을 준비하는데 전력하였다. 그러니 35년 만에 맞이한 대한민국해방은 반쪽짜리 해방을 맞이한 것이었다. 왜 하나님이 주신 해방인데 나라가 왜 분단되었을까? 원인이라도 찾아봐야 되지 않나 하여 곰곰이 생각해니 해방전 교회가 앞장서 신사참배를 한 것이 확 떠오르는데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논의하기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가 출애굽하였듯이 우리나라도 35년동안 일본의 종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맞이한 것이지 우리나라의 임시정부나 항일투사들이나 독립군에 의해 해방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위에서도 강조하였다. 말하건대 8.15해방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던 봉건주의적 폐습도 탈피하고 근대 민주주의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뜻깊은 날인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해방과 자유는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데서 그 의가 심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제의 노예 사슬에서 풀어 주신 그 은덕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데 그것을 모르면 마치 독립운동한 독립군이나 임시정부에 의해 우리가 해방된 것처럼 착각한다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짓인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는 공통점이 많다. 세계의 강대국 사이에 끼여 고통을 당한 역사라든지, 동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일이라든지, 특히 출애굽이 있었던 것처럼 8.15광복절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사점을 가진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의 고역을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초자연적인 역사로 응답하신 사건이 출애굽인데 이스라엘은 이날을 기념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광복절을 지키고 있다. 광복절을 잊지 않고 기념할 만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끔찍한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다. 조선의 남자들은 강제 징병을 당하여, 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었고 조선의 젊은 여자들은 일본군인들의 성노리개로 끌려 갔다.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말을 빼앗기고, 우리 글도 빼앗겼을 뿐만아니라 성도 이름도 빼앗겼으니 조선의 정신까지 빼앗긴 역사가 일제강점기인데 이것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일본신 천조대신을 섬긴 것이다, 소위 신사참배라고 말하는 그 일본천조대신을 조선의 교회들은 우선 예배시작과 더불어 아침마다 천황이 사는 궁을 향해 절하는 궁성 요배로 일제가 한국인에게 강요하였고 신사참배를 한 후에 예수님을 섬겼던 교회만 당시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방을 맞이함으로 이제는 예배드릴 때 신사참배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된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축복의 날이고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 73년이 지난 요즈음 후손된 젊은이들이 이러한 감격을 까맣게 잊어가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해방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 중에는 일본의 부패한 문화에 깊이 빠져 우리의 민족혼을 좀 먹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더욱 우리는 광복의 역사와 그이전의 참상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8.15 광복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여러 면에서 닮았는데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이 누렸던 출애굽의 역사에서 우리민족의 해방의 의미를 찾아 보고, 나아가서는 우리 개인이 누리게 되는 진정한 자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8.15 해방은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설움을 당할 때 그들은 성경말씀대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다는 것은 마치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고 응답하셨다고 출애굽기 37절 말씀하셨습니다.

    (3:7)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 감독들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을 들었나니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아노라 말씀처럼 하나님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괴로움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큰 소리만이 아니라 작은 신음소리까지도 들으십니다. 출애굽기서 65절 이제 애굽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하셨듯이 우리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 대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들이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의 팔로 우리들을 구속하여 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니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내가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내가 뻗은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하리라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45815일 해방도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의 구속인 것입니다. 광복절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은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시편 50:15에서도 말씀하시기를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하셨고 에레미야 33:3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말씀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이와 같은 약속을 확증해 주신 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방은 죄악의 도성을 떠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저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던 라암셋도성을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12: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라암셋을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10가지 재앙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바로 왕과 모든 애굽 백성들 위에 엄청난 재앙을 통해 파라오와 애굽사람들에게 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 출애굽역사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백성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거나 가나안에 이르는 행로가 어렵다고 라암셋을 떠나지 않았다면 출애굽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의 명을 따라 430년동안 살던 땅을 주저함 없이 떠났기 때문에 출애굽은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라암셋을 떠나고 마지막은 홍해를 통과하는 것으로 출애굽은 완성된 것이다.

    430년이나 살던 라암셋은 바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는데 정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어도 4대 이상의 뼈들이 묻혀있는 정들었던 곳을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로 그들은 라암셋을 떠나는 것이 출애굽의 시작이었다 이 출애굽은 어느날 갑자기 온 것이다.

    8.15광복절도 이스라엘 출애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우리 나라는 어느날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것이며 영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갑자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 왕국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출애굽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완전한 해방은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단번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심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들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이 땅에서 영적 가나안 천국을 향해 떠나가는 삶이다.

    우리의 가는 길에 어떠한 역경과 시련이 온다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예수믿은 사람들이 다시 죄악의 땅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죄로 물든 세상 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각종 우상에서 떠나야 합니다. 정들었던 세상 풍속에서 손을 털고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죄악의 세상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손실을 감수해야 하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장받는 다면 이 땅에서 그 어떤 손실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818일에 우리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위시한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학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준비 중에 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과 특히 순교적 정신으로 애국의 기도를  한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광복절을 통해 이들을 구출하여 주신 줄 믿습니다.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일본군이 항복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대부분도 자기들의 천황이 그토록 무력하게 연합군의 장군 앞에 무릎을 꿇리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다. 8.15 광복의 소식이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전국에 메아리쳤을 때 이땅의 일본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2.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려고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이 해방만 되었다면 아마 더 불행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홍해와 애굽 군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해방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67절에는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자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것입니다. 정말 아무 공로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출애굽기 67절 하반절에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주 하나님인 줄 너희가 알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말씀을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8.15 해방을 주신 것도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대한민국은 복이 있는 나라입니다. 애국가에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하였듯이 애국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에 어려움이 있다고 우리는 불평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인데 왜 우리가 망하겠습니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우리나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312절에서 시편기자가 멋진 고백을 합니다. 주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민족 곧 그분께서 자신의 상속 유업으로 택하신 백성은 복이 있도다.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은 복이 있는 백성입니다. 믿어집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나라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광야에서 지키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해방 이후로 이 나라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얼마나 혼란했었습니까? 지금도 얼마나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멸망치 않고 이만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출애굽의 최종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3:8).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기로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6:8)"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들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부요하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삼서 2절처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변치 않고 그대로 다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이루어지게 해 주셨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게까지도 축복을 약속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이 바로 히브리서 614절입니다. 내가 반드시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6:14)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출애굽 시키셨습니까? 왜 해방되게 하셨습니까? 마귀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축복과 은혜를 다시 회복시켜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고자 우리를 해방시켜주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광야를 지나는 것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습니까? 직장을 잃어버렸습니까? 혹시 건강으로 고생합니까?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훈련은 시킬지언정 망하지는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게 하시기 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복 되게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훈련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훈련을 마친후에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도 없는 복이 예비되어 있는 말씀(8:18)을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복음화가 빠르고 열심히 기도하는 나라,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성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 하나님이 해방만 시켜주신 것이 아닙니다. 5만 교회로 8백만 신자로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4절 상반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였듯이 이제 대한민국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세상의 빛답게 모든 족속과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1945815일 주님의 은혜로 해방된 우리나라가 이제 세상에 나가서 자기 가족을, 자기 친척을 복음화 하고, 저 북한 땅 사마리아를 복음화 하고, 저 세계만민에게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는 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복이 가정에, 일터에, 한국 교회에, 우리나라에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8.15 해방의 기적같은 역사를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애국지사들이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 독립을 위하여 애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꿈에도 그리던 해방의 기쁨을 안겨 준 것은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쪽만의 해방이 된 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또 해방된지 5년만에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1950625일에 일어났다가 1953년도 727일에 휴전이 되어 지금까지 휴전중에 있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왜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불행한 일이 닥쳤는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4.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와 황국신민화 정책에 넘어가다

    먼저 신사참배에 대하여 알아보면, 조선총독부에서는 1915년부터 전국에 1,100여개의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하게 하였다. 1912년부터 서울에 조선신궁이라는 신사를 조성한 일제가 1925년부터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 조상숭배, 애국심 고양을 위한 의식이라고 선전하면서 전국으로 확대를 추진하게 되는데 신사참배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사원인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하게 한 일로 한 신사를 중심으로 천황을 신격화하여 한국인들의 정신적 지배는 물론, 군국주의적 침략정책 및 식민지 지배에도 이용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계와 기독교계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전개되어 전국에서 약 2,000여명이 투옥 되었고, 200여개의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명에 이른다. 한국교회에는 일본의 태양신 숭배 압력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진리 수호에 나섰던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과 신실한 성도들이 있었다. 성도들은 목숨걸고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을 지라도 교회를 관리하는 노회와 노회를 관리하는 총회는 일본신을 섬기는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이 지난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요?

     

    (1) 신사참배 실시와 황국신민화 정책

    일제는 조선을 정치적으로 합병(1910)한 후 정신적으로도 예속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이들은 가장 효과 있는 방편으로 그들 민족종교인 신도(神道)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그들이 국조(國組)라고 믿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섬기게 하고, 왕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믿고 경배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조선과 일본이 참으로 하나 되는 내선일체의 이상을 이루려 했던 것이 신사참배이다.

    그런데 이 정책은 기독교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이에 가장 크게 저항한 것이 기독교였는데 일제는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고 애국을 나타내는 국민의식이라고 둘러댔다. 황국신민화정책은 일본이 그 식민지 주민들에게 일본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담은 교육 정책으로 일본인 뿐만 아니라 조선인, 타이완인, 남양 군도 주민 등 식민지 주민들에게 강제적인 동화 정책의 일부로서 행해졌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 교회의 변질을 경고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 민족사적 의미 역시 크다고 할 것이다.

    192410월 이 신사참배 거부사건 발생으로 일제 총독부가 1925년 조선신궁을 완공한 후 신사참배 제도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려던 정책을 10여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기독교계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한 유일한 사례이며 교사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어린이들이 일으킨 최초이면서 거의 유일한 신사참배 거부투쟁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신사참배, 궁성요배, 국기게양, '황국신민 선서' 제창, 근로 봉사의 월례 행사가 강요되었다. 또 각 가정에 신붕 설치, 신궁의 부적 배포가 강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경찰 안에 감시대를 조직하고 애국반 안에 밀정조직을 만들어 이를 감시하게 했다. 황국신민화정책의 주 내용은 일본어의 공용어화 및 교육 현장에서의 민족 고유어의 사용 금지와 가정 내에서의 일본어 사용을 헌병과 경찰을 배치시키고 장려하고, 지키지 못할 시에는 방언찰과 같은 명패를 차게 하여 수치심을 주었다. 천황 숭배 및 일장기 게양, 기미가요 제창, 궁성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2) 1938년 한국 교계가 신사참배에 앞장서다.

    193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조여오던 일제의 신사참배 강압으로 천주교는 이미 19365월에 신사참배를 용인하는 로마 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신사를 참배하고 있었다. 1938년 장로교 평양총회에서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라고 기독교인 장로교 평북노회(1938)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등도 뒤를 따랐다. 그러나 숭실학교, 숭의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들은 스스로 폐교(19383)까지 하며 항의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와중에 주기철 목사와 한상동 목사 같은 분들은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벌렸다. 일제는 회유와 협박, 심지어 고문까지 하면서 이들의 의지를 꺾으려 했지만 이들의 의지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그 결과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죄로 목사직을 파면당하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에 순교했다. 한상동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다가 체포되고, 옥고를 치루며 핍박을 당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람들로 투옥된 신자만 2천 명이 넘었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50여 명의 순교자가 생겼다.

    (3) 신사참배 거부항쟁

    () 한국 장로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주기철 목사 (1897-1944)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불응하다가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사망한 주기철 목사는 1939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목사직에서 면직 당했다가 2006년에 목사직을 회복하였다. 일사각오라는 설교중 일부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옥중에서 혹은 사형장에서 그 어디에서든지 내 목숨 끊어질 때 꼭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 고신파를 세운 한상동 목사 (1901-1976)

    1924년 박창근의 전도로 신자가 되어 1927년 가문의 추방을 받고 고향을 떠나 진주 광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1933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 1937년 졸업했다. 1938년 부산 초량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설교를 한 것이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19466월 진해에서 신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고신대학교의 시작이었다

     

    신사 참배를 할 수 없는 여섯가지 이유"

    첫째, 계명을 어기게 되니 하나님이 노하시므로 할 수 없다.

    둘째, 인생의 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인데 그렇게 못하니 할 수 없다.

    셋째, 결국 교회가 없어지게 될 것이니 할 수 없다.

    넷째, 강요하는 개인도 망하니 남의 망하는 꼴을 볼 수 없으므로 할 수 없다.

    다섯째, 신사 참배하면 국가도 망할 것이므로 할 수 없다.

    여섯째, 나 자신이 지옥 갈까 두려워 할 수 없다.

     

    () 손양원목사(1902-1950)의 신사참배 거부항쟁

    손양원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항쟁과 194810월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의 순교, 그리고 625전쟁 중이던 19509월 공산군에 의한 그의 순교 사실이 전해져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에는 그의 딸인 손동희가 나의 아버지 손양원이라는 전기를 출판하였는데 이 논문은 19458월 해방 이전의 손양원의 생애와 신사참배 거부항쟁을 정리한 것이다.

    손양원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을 경계로 본격적인 신사참배 거부항쟁에 뛰어드는데 19458월 해방까지를 신사참배  거부항쟁과 옥중투쟁으로 정리해 보았다

    손양원은 19026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손종일은 초대 장로였으며 그 지역의 유지로서 1919324일과 432차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095월 부친을 따라 예수를 믿게 된 손양원은 19354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 부산지방 부산시찰 구역 전도사로서 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하거나 부흥사경회를 인도하거나 교회 개척 전도를 했다.

    손양원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 전인 19382월 총독부 경무국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신사참배를 결의 실행하도록 교회까지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신사참배 거부항쟁은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해왔던 장로교측에서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다. 193829일 평북노회에서 경찰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한 후 그해 8월말까지 사이에 국내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압력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고 19389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던 것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손양원은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 부산시찰회 전도사가 되어 교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설교했는데, 신사 참배는 우상숭배라고 말하였다. 손양원의 신사참배에 관한 태도는 확고한 것이었다. 당시 기독교 신자들의 신사참배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우리 일본국민으로 당연히 할 의무가 있다는 교리해석 하에서 손양원은 양산신사에 참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십계명중 제1계명인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교리 원칙에 위반으로, 따라서 신사참배하는 신자는 천국에 못가는 고로 참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후 손은 다시 경찰당국에서 위험인물은 인식되었고 이 사건으로 1939년 초부터는 부산시찰회 순회 전도를 할 수 없었다.

    손양원은 경찰조사에서 신사에는 천조대신, 역대 천황 또 국가에 충성을 한 모든 신을 제사하는 것인데 순연한 우상이어서 이에 참배하는 것은 교리상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여서 성서의 계명과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유일신 여호와하나님 이외의 것에게는 절하지 말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고로 신사에 참배하면 여호와하나님께 대해서 불경이 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천황의 신격화도 철저히 거부하였다. 피의자 심문

    조서에서 심문관이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이라고 높이 보는 것은?”이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 성경 말씀을 들어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성경 이사야 455, 6절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하면서 천황을 우상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일제 검찰은 손양원이 이렇게 설교한 것을 신사불참배와 국체변혁을 목적으로 선동했다고 하여,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광주형무소에서 5개월간 대기 구금을 당하였고, 그 후 2개월간 경성구치소로 잠시 이감되었다가, 194311월 청주보호관찰소에 이감되어 해방 후인 1945817일에야 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5. 신사참배 거부한 한국교단의 보루

    (1) 장로회 고신파

    한국 장로교 중에서 가장 순수한 신앙을 고수하는 고신파. 일제의 신사참배 압력을 거부한 이후 기독교의 고난과 분열의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보수적인 신앙 자세를 견지해왔다. 고신파는 현재 14백여 교회, 40만 교인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해외선교와 군선교에 특별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일제시대 한국교회는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신사참배할 것을 결의하고 만다. 그러나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남선·한상동 목사 등을 중심으로 고신파가 탄생하게 된다. 해방 후 1950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하나의 장로교회만 있었지만 현재는 수많은 분파가 생겨났다. 고신 장로교회는 한국장로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분리된 교회로 분파에 대한 떳떳한 이유는 무너진 한국교회의 개혁과 재건을 위해 싸우다 나뉘게 된 때문이다. 이제 한국 장로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제일계명을 공적으로 범함으로써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의에 의해 한국교회가 무너졌지만 교회 안에는 신앙적 정조를 굽히지 않고 싸운 상당수의 교회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은밀하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으며, 드디어 일경에 붙들려 감옥에 들어가게도 됐다. 고신교회의 뿌리는 이들에게서 찾게 된다.

     

    45815일 드디어 해방의 날이 왔다. 평양을 비롯해 여러 감옥에서 5~6년간 옥고를 치렀던 교회지도자들이 풀려났다. 특히 경남 출신인 주남선·한상동 목사가 고신파 교회의 터를 놓아준 사람들이다.

    이들은 해방이 되면 진리에 따라 살고 죽을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할 신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이들은 출옥하자마자 서로 만나 뜻을 맞추고 46920일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설립, 개교했다.

    (2) 신사참배 반대로 교단의 문을 닫은 침레교단

    교회가 핍박받더라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믿음아래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한 우리침례교단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교회사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사실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이 교회사와 세상 언론에 부각될수록 우리침례교단은 신앙의 선배들에게 진 사랑의 빚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이 시작됐다면서 이에 굴하지 않았던 침례교단 선배 목사들의 일사각오(一死覺悟·죽으면 죽으리라)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라는 목소리가 전국의 침례교회에서부터 전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19426월 초 함경남도 원산 헌병대 심문실에서 한 일본 헌병이 천황 폐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하는가?”라고 물을 때 동아기독교회 5대 총회장인 이종근 목사는 성경에 그렇게 명기(기록)돼 있다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목사의 답변이 당시 전체 침례교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제는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회의 모든 재산을 몰수해 버렸고, 19445월에는 일방적인 교단 폐쇄 명령을 내려 침례교인의 반발을 샀다. 우리교단 소속 목사 32명을 불경죄등의 죄목을 씌워 감옥으로 보냈다. 일왕에 대한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데 따른 혹독한 대가의 결과였다.

    그러나 일제의 간섭으로 갈수록 국내사정은 여의치 못해 대한기독교회대한이란 말이 빌미가 되어 동아기독교회’(1921) ‘동아기독대’(1933) ‘동아기독교’(1940)로 교단 이름이 계속 바뀌었다.

    한국침례교의 선구자이자 독립선교사인 펜윅(Malcolm C. Fenwick)은 끝내 일제에 직접 굴하지 않고 버티다 신사참배가 강요되던 1935년 원산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곳에 안장됐다. 해방 뒤, 교회재건에 이어 1949년 교단명이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변경됐다.

    5. 신사참배로 남북이 나뉘게 되다

    일제강점기 교세를 확장한 기독교는 1937년부터 일본제국주의의 승전과 일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무운장구기도회(조찬기도회)1937년부터 1939년까지 8953회나 열렸다. 이를 통해 내선일체와 신사참배를 앞세운 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무운장구기도회는 불의한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에 편승하여 사익을 얻기 위한 굴욕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에 천황을 신격화하기 위해 일제는 가진 수단을 다 동원해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일제는 특히 19382월부터는 기독교에 대한 지도대책을 수립하고 일반신도들에게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선 경찰력을 앞세워 교회를 시작으로 노회, 총회 등 교단적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결국 기독교계는 일제의 강압을 못 이기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감리교단에 이어 장로교도 1938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게 됐다. 다만 성결교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해 194312월 교단이 해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가 의식이므로 참배를 허용하기로 한다'는 자기 합리화의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사참배 결의는 한국교회 역사에 수치스런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급기야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지난 19389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긴급 동의안을 가결시켰다. 여기에는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열심히 행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아래 후방의 황국신민으로서 열과 성을 다하기로 결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 지켜야 할 제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모든 계명 중 가장 중요하다는 제1계명을 버렸다. 그토록 정통성을 자랑하는 장로교가 결국 앞장서서 신앙의 정절을 저버렸던 배반의 교단이었다.

    장로교의 이같은 신사참배 때문에 우리나라가 남북의 분단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통일연구원 허문영 박사는 2015년 뉴욕포럼서 솔로몬의 우상숭배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그 결의를 10년 뒤 평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원인으로 볼 수는 없겠는가라며 신사참배의 결과 남과 북이 갈라지게 됐다고 시사했다.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결의한지 올해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교회에는 뼈아픈 역사지만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가 일제때 한국교회가 범한 신사참배 결의에 대한 무효화 선언과 회개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그 동안 일부 교단이나 개인이 신사참배를 회개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입니다.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한기부)는 이러한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신사참배 회개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6. 성경적 의미의 광복절

    다시 73주년 광복절이다. 우리가 기리는 광복절인 1945815일은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통치라는 어둠으로부터 을 찾은 날이다. 이사야 9:1-7과 이사야 11:1-9은 성경적인 의미의 광복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광복은 앗수르 제국에게 병탄된 이스라엘의 영토들인 스불론과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에 이상 왕이 나타나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고 백성들의 어깨 위에 지워진 무거운 쇠 멍에를 분쇄하는 날이다(9:1-4). 광복절은 의롭고 자애로운 메시아의 통치로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이 그치는 날이며, 악한 자들이 순화되고, 극단적인 탐욕을 추구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양심을 되찾아 인간화되는 날이다(11:4-9). 어린 양들을 잡아먹는 육식성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 되기로 결단하는 날이다(11:6-7).

     

    성경적 광복절은 모든 압제와 불의, 착취와 아우성이 사라져 파괴살상’, ‘폭력비국민적 대우와 차별이 사라지는 날이다. 앗수르 제국은 주전 10세기부터 7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와 근동 일대를 잔악하게 병탄하고 압제한 제국으로서, 피정복민들을 집단 이주시키는가 하면 피정복국가들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철저하게 수탈했다. 이사야 11장에서 예언자는 이런 앗수르의 제국주의적 압제와 착취가 꺾인 그곳이 빛을 찾은 새 이스라엘 공동체가 될 미래를 노래했다. 그는 왕과 고급관리들이 권력의 기득권 대신 가난한 땅의 백성들의 처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살피며(32:1-2),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만한 친척이 되어주는 우애 충만한 공동체가 세워지는 사건을 광복이라고 본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지배 권력자들은 이스라엘 자유농민들을 압제하고 노예화하다가 멸망당했다. 북이스라엘 왕국(BC 721년 멸망)과 남유다 왕국의 멸망(BC 586년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났다고 하는 성경의 주장은 당대의 상황에서는 결코 자명한 진리가 아니었다.

    이런 대다수의 의견과는 달리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유다 왕국의 멸망은 지배층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믿고 주장했던 예언자들은 당대에는 박해받는 소수파였다. 주전 8세기의 위대한 예언자들이었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는 지배계급과 국가권력층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 제국의 침략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또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 안에 진작되는 대 앗수르 항전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한결같이 매국노로 매도되었다. 100년 후의 예언자들인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거의 동일한 예언들로 유다 왕국의 멸망을 해석했다. 신흥 바벨론 제국의 유다 침략은 유다 왕국의 지배권력층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 차원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유다 왕국의 권력엘리트들은 내부의 민중들에게 이미 전쟁을 선포한 외국침략군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예언자들은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나 헤게모니를 신의 정당한 지배를 대행하는 질서라고 보지 않았지만, 당대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에게 침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실린 심판이었다고 믿었다. 이들의 의견은 유다 왕국이 멸망당한 후에야, 즉 더 이상 유다 왕국의 부흥 가능성이 사라진 이후에야 정통파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의견을 박해할 권력집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복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

    여기서 우리는 아직도 잔존한 일제의 민중수탈적 사회질서로부터의 해방운동과 분단된 겨레의 화해와 통일운동이 동일 궤적을 그리는 운동임을 깨닫는다. 광복운동은 식민지화된 백성, 수탈과 압제의 희생자를 구원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염려하는 것은 미래에 이뤄질 남북통일 과정에서 북한동포의 식민지백성화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남한에 의한 북한 지역 내부 식민화의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에게 유리한 제도적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북한 평민 대다수가 통일 조국의 약자 층으로 편입될 것이고, 이들은 지금 남한 사회의 하층민 수준의 삶의 질을 강요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양극화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통일시대의 북한동포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인권을 돌보는 자애로운 정치가 펼쳐진다면, 그것은 북한 동포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광복절은 일방적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하층 서민들에게도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나라를 되돌려주는 운동이다. 광복운동은 사자처럼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처럼 자발적으로 풀을 먹으며 어린 양처럼 연약하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뒹구는 평화운동이기를 소원해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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